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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 우리 교회
성경본문 : 잠언 14: 25-27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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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 15 ~ 17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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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목사
지난 해 어느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35년내에 일부일처제가 없어지고 다부다처제가 생긴답니다. 입헌군주국을 고수하는 영국 왕실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없어질 것입니다. 종교도 뷔페식으로 고르는 소비자의 시대에 맞아 종교의 위계질서가 무너질 것입니다. 출산조절이 방임하게 될 것입니다. 저개발국가는 인구폭발로, 선진국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미래가 불투명하게 될 것입니다. 의사의 진료실이 없어질 것입니다. 기대가 되지요? 과연 그렇게 될까요? 인간 지식의 오만으로 생명에 대한 경계가 침범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오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은 포스트모던 과학의 꽃이라고 합니다. 이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릴 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줄기세포와 냉동배아 등을 이용한 장기 생산과 질병치료 등 첨단 생명공학이 과연 생명보존과 생명연장을 가능하게 할까요? 아니면 이런 과학이 또다른 생명파괴로 이끌어갈까요? 질병치료라는 현실적 명분과 생명 불가침이라는 신학과 도덕원칙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생명공학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하겠다는 것은 도둑질하여 부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인간이 환경을 잘 보존하고 개인이 도덕적 삶을 살고 신앙적 사고로 오래 살아야지 정상이지요. 그렇지 않고 실컷 파괴하고 죽을만큼 황폐하게 해 놓고 생명을 파괴하면서 내 생명을 연장하겠다는 것은 도둑이나 강도의 심리입니다.
올해의 총회 주제는 “교회, 백성의 위로자”입니다. 그리고 부제를 “생명의 샘, 우리 교회”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는 샘같은 교회가 되라고 이렇게 정했습니다.
생명은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공급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였습니다. ‘네페쉬 하야’란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영입니다. 에스겔은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뼈들이 다시 합쳐져 사람의 모양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 있는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은 내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보셨습니까? 저도 영화를 잘 안보지만 봤습니다. 또 여러분도 보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주보의 ‘목회서신’에 자세히 썼습니다만 이 작품은 C. S. 루이스의 작품입니다. 루이스가 자신의 조카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쓴 환상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에 하얀 마녀가 나옵니다. 이 마녀가 여기에 등장하는 네 남매 가운데 에드먼드를 사로잡습니다. 아슬란이란 사자는 에드먼드를 위하여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됩니다. 아슬란이 마녀 앞에 갔을 때에 에드먼드를 행해 마녀는 “His blood is my property”(그의 피는 내 소유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피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니까 마귀도 자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피는 하나님의 소유(property)라고 하십니다. 피는 생명인데 모든 사람의 생명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에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생명강과 생명나무는 하늘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없는게 있습니다. 죽음이 없고, 애통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고, 아픔이 없습니다. 살리는 생명이 있으므로 죽음과는 영영 이별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36:9에는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4:6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생명을 살리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의 샘이 됩니다.
‘생명의 샘 우리 교회’라는 부제는 우리 교회가 생명의 샘이 되자는 말입니다. 생명의 샘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명을 상실한 사회에 대하여 이것이 생명이라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되세요”, “제대로 사세요”라고 하면 반응이 어떨까요?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겠지요? 우리나 잘 합시다. 우리가 생명이 되면 세상은 삽니다. 우리가 생명이 되면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라도 생명이 되어야 세상은 살아납니다. “생명의 샘, 우리교회”가 뜻나는 바를 생각하면서 생명의 샘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우리 교회는 생명의 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40년을 삽니다. 물이 날 곳이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어 불평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치게 하셨습니다. 물이 나온 그 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반석이십니다. 물이 나는 반석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물이 솟습니다. 그리스도가 생명의 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가 생명의 샘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4에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정신적 갈증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이 없으므로 갈증을 느낍니다. 그들의 영혼을 시원하게 할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온갖 갈증 속에 살아갑니다.
팔레스타인은 물이 귀한 지방입니다. 물 문제가 언제나 심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늘 염려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자랑거리였습니다. 땅을 파서 물이 난다는 것은 놀랄 일입니다. 양떼를 먹일 만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란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나라는 물이 흔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지하수를 거르지 않고 그냥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물 좋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물을 물쓰듯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물을 아껴야 합니다.
샘은 생명입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도 샘은 생명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샘이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4:2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가 생명의 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교회가 생명의 샘입니다.
저수지는 물이 말라 우리를 채워주지 못할 수 있지만 샘물은 항상 가득 찹니다.
필립 볼이란 분은 ‘생명의 기질: 물의 일대기’라는 책에서 “물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자양분이다. 물이 없다면 생명은 유지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은 그 자체가 생명을 공급하고 유지합니다. 꽃은 뿌리가 없어도 물에 담구어 놓으면 어느 정도는 삽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아도 물을 마시면 어느 정도는 생명을 유지합니다.
알라맹의 전투에서 영국과 독일의 전투가 격렬했습니다. 마침내 독일이 영국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독일이 항복한 이유는 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아라비아의 로랜스’를 보면 갈증 때문에 손과 발과 고개와 눈동자가 제각기 논다고 합니다. 물은 이렇게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생명의 물을 공급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자신있게 오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6:1에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계시록 21:6에는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자이시기에 우리가 공급자가 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공급자가 아니라 배급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가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셔서 하신 대화를 보세요.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은 퍼도 퍼도 끝이 없는 샘물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여러분은 ‘용비어천가’를 아시지요? 제2장에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믈은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라고 합니다. 깊은 샘은 마르지 않습니다. 샘이 깊어 마르지 않는 물이 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중국 성도(청두)에 가면 무후사(武候祠)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유비의 무덤, 혜능이 있습니다. 조조는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의 무덤을 파헤칠까봐 100개의 비슷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조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을 찾기 위하여 100개를 전부 파헤쳤다고 합니다. 유비의 무덤은 하나만 세웠습니다. 전체 길이가 120미터 정도 되는 별로 크지 않는 무덤입니다. 무후사에는 지금까지 무덤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죽는게 겁나면 잘 못 산 겁니다. 죽은 후가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칠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잘못 살지 말아야 합니다. 죽는게 즐거울 수는 없지만 겁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산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생명에 대한 자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우리 교회가 이런 생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거트루드가 햄릿에게 말한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습니다”. 그런데 죽은 것이 다시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영혼의 생명의 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생명의 샘인 것을 알게 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생명의 샘인 교회로 사람들은 인도됩니다.
계시록 7:17에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라고 합니다. 생명의 물이 있으면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예레미야 2:13에는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교회가 사람들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오래 전에 성지를 순례할 때에 여리고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엘리사의 샘이라고 하는 샘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읍의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않으므로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게 하여 샘의 근원에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맑아지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물이 맑아지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도 새해에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에 뿌려야 합니다. 맑은 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물이 맑아야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물이 맑아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합니다.
생명의 샘은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 곳입니다. 생명을 퍼내는 곳입니다. 생명의 샘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나고 흐르면 좋은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좋은 열매를 기대합니까? 생명의 물이 솟아나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의 샘이 될 때에 사회는 교회를 따를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사회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갔을 때 사흘 길을 갔지만 물이 없었습니다. 마라에서 간신히 물을 얻었지만 먹지 못할 쓴 물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원망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은 한 나무 가지를 물에 던지게 하셨고 던지니 물이 달게되었습니다. 그들이 ‘엘림’이란 곳에 갔을 때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어 처음으로 장막을 쳤습니다. 처음 장막을 친 곳은 물이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장막을 칩니다. 교회가 샘이 되고 물이 있으면 사람들은 몰려옵니다. 장막을 치고 자리를 잡습니다.
“너 물가로 곧 나오라. 내게 오라. 너의 목마른 영혼 채우리라”는 복음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우리가 채워줄테니 우리에게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절대로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55:1에도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목마른 자가 다 와서 물을 마셔야 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여인들의 교제의 장소입니다. 동네 소문의 진원지입니다. 서로 소식이 오갑니다. 강이 있는 곳에 도시가 형성됩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를 보세요.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이 다 강을 끼고 있습니다. 우선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하고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오게 마련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샘이 되면 사람들이 인도되고, 모여와야 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그리스도의 소식이 전해지고, 시대 문화가 꽃피우고,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계천 복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랑거리입니다. 우리교회가 청계천 주변의 교회인 것을 감사합니다. 또 청계천사랑의 봉사단의 중심교회로 열심히 봉사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다시 흐르듯이 우리 교회도 새로운 시대의 물이 다시 흐리기를 바랍니다. 청계천이 복원된 후로 1,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았습니다. 물이 흐르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우리 교회도 생명의 샘물이 흐르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며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얻는 영성이든 아니면 생명 파괴적 영성이든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문화가 있는가 하면 생명을 살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부여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있으므로 생명이 사는 교회의 존재 가치가 드러나야 합니다.
결론
장수학의 권위자인 마이클 로이젠 박사가 제시하는 젊어지는 비법이 있습니다. 운동이나 소식이나 웃음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젊은 유지 비법이 많다는 것입니다. 담배를 끊으면 8년을 더 삽니다. 혈압을 조절하면 25년은 더 삽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32년을 더 삽니다. 양치질만 부지런히 해도 6.4년은 더 삽니다. 자동차 벨트를 매는 것만 가지고도 3.4년은 젊어집니다. 매일 웃으면 8년을 더 오래 삽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으면 이 모두 다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영육간의 생명을 얻는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샘입니다.
죽어가는 자를 살려야 합니다. 무기력한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땅에 떨어진 도덕 윤리를 다시 회생하게 해야 합니다. 타락한 대중 문화를 건강하게 살려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모세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가 받은 십계명은 모두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그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것은 이 날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혼인 서약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공급하는 생명의 샘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 47장의 환상을 보세요. 성전에서 동쪽 문으로 물이 흘러나옵니다. 그 물은 처음에는 발목에 찹니다. 조금 후에는 무릎에 찹니다. 얼마 후에는 허리에 찹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물이 가득 차서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이 환상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며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생명의 물이 가득할 수 있도록 채워야 합니다. 물 부족 인구가 2025년에는 30억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영육간의 물을 채울 수 있는 생명의 샘,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우리 교회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와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에서 흘러나는 생명의 물로 사회가 새롭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는 물로 온 세상이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는 생명력 있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