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4:21~24, 출 20:22~24
설 교 : 2011년 8월 4일 주일 예배
찬 송 : 88장(내 진정 사모하는). 92장(위에 계신 나의 친구)
321정(날 대속하신 예수께). 368장(주 예수여 은혜를).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잠시 유대 땅에 가셔서 사역을 하시다가, 다시 본거지인 갈릴리로 돌아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가려고 하면 사마리아를 거쳐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피를 섞은 사마리아인들과는 오랜 세월동안 관계를 끊고 살아왔기 때문에 사마리아 땅을 거치지 않고 피해 다니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예배 장소도 따로 해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사마리아 인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고 따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저들은 남보다 더 소원하게 지냈고, 피차 상종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시고, 화목을 이루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불신과 불화의 담을 허시기 위해서 일부러 사마리아를 돌아가지 아니하시고, 직접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시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시고 사마리아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잠시 쉬고 계시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물 긷는 시간이 아닌 정오인데도, 마침 한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다라는 말을 거시며, 이 여인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이미 다섯 남편과 더불어 살았던 경건치 못한 여인이었고, 지금 동거하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해 왔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사람들이 물을 걸러 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물을 긷기 위해 우물가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메시야시며, 목마른 인생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 곧 성령(요 7:38-39)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예배의 소중함과 참된 예배의 의미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는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거룩한 예식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신령과 교제를 가지는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1-2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예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분별하여 그 뜻대로 바로 사는 삶이 곧 산 제사요, 우리가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 곧 영적 예배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바로 주님께 드릴 온전한 예배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생활의 예배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모두가 예배요, 성도의 하루 24시간이 바로 예배시간인 것을 깨닫고,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같이 합당한 예배, 영적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자를 찾으시고, 그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쓰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겠습니까?
1. 예배하는 자들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시실 예배란 하나님과 만나 거룩한 교제를 가지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의 말씀을 받게 되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딤전 4:5)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강조하신 것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좀 더 예배하는 삶을 충실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힘입게 하기 위한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예배하는 생활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예배하는 일에 충실한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덧입게 될 것이며, 보다 성화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질 것입니다.
2.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내려 주시고, 신령한 축복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일이 바쁘다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소중함을 알고, 예배에 충실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만족한 삶을 사람을 살게 되고,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 난다.”(고후 3:5)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심령의 만족을 얻게 될 것이며, 우리의 육신의 삶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을 받게 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데 있고, 이 같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일 또한 우리가 얼마나 예배하는 삶에 충실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일에 충실함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3. 말씀과 사명을 맡겨주시기 위해서.
사실 우리는 예배에 참예(參禮)해서 주의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며 살다가, 결국은 인생을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서 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받기 위해 무엇보다도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애 하나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명을 받아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들도 예배드리는 일에 충실해서 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살 뿐만 아니라 때마다 주시는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예배하는 일에 우리는 얼마나 충실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아침, 저녁예배인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한다.”(욜 1:9)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삶 가운데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배하는 생활에 실패하지 마시고, 예배하는 생활에 성공해서 인생살이와 신앙생활 모두에 성공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저를 성화시켜 주시며,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시고, 때마다 일마다 필요한 말씀과 사명을 맡겨주셔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