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방송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주류시장 내에서 록 음악으로 극히 드문 성공의 행진을 이어간 밴드 넥스트의 1995년 앨범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넥스트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무한궤도의 리더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대중음악계에 입문했던 '순례자' 신해철이 로큰롤과 발라드, 그리고 테크노와 프로그레시브의 숲을 종횡무진 거치며 드디어 '귀환'한 진검승부의 장이다. 1995년 초 다운타운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세황을 영입, 본격적인 4인조 밴드로 환골탈태한 뒤 2장짜리 라이브 앨범으로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낸 바 있다. 1994년 같은 이름의 'Part 1 The Being'을 내며 "결국 록이다"를 선언했을 때 이 땅의 록 지지자들은 환호로 영접했으면서도 일말의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은 과연 '출신 성분' 자체가 '낙오자dropout'적 파괴력과는 거리가 먼 아이돌 스타로서의 엘리트적 길을 밟은데다 3인조로 시작한 넥스트 자체가 정통적인 록 음악의 편성이 아니라는 점, 부차적으로는 동물적인 샤우트 창법과는 거리가 먼 신해철의 보컬까지 혐의의 사유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존재'의 2탄으로 '세계'로 화두를 옮긴 이 앨범에 대한 기대가 높기도 했다. 그것은 1995년 봄 라이브 앨범에 대한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근간으로 삼았던 이전의 음악 세계가 과연 진정한 록의 정신으로 비상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며 나아가 당시 조용히 일기 시작한 록 르네상스의 기운이 결정판을 분만하지 못한 채 주춤하고 있는 판도에 어떻게 새로운 기합을 불어넣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한 장의 CD를 가득 메운 66분의 경악스러운 런닝타임이 우리에게 먼저 제공하는 것은 이 앨범이 포섭하는 음악의 넓이와 그 자체로 압도해오는 사운드의 질이다. 한 줄로 줄일 수 없는 좌충우돌의 음악적 감수성은 이 밴드가 이 한 장의 앨범에 미래를 향해 얼마나 많은 것을 걸었는지를 단숨에 증명해 준다.
9분이 넘는 머릿곡 '세계의 문' 2부작에서 제시하는 스래시 메탈의 진동에서 '나는 쓰레기야'의 사이에 자리 잡은 'Teh Age of No God'의 혼돈, 그리고 'Mama'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아가에게' 같은 발라드, 'Hope' 같은 중용적인 템포의 로큰롤에 이르기까지 이 밴드가 구현하려는 야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단 한 번에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닐까. 모든 곡의 가사를 맡은 신해철의 분석적인 메시지가 전작에 비해 그리 성공적으로 형상화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앨범을 관통하는 음악적 핵심이 다양성의 파고에 밀려 표류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국악의 구음과 비정하리만치 정확한 김세황의 기타, 그리고 건반 주자로서의 신해철의 명연주가 여한 없이 발휘된 'Requiem for the Embryo(태아를 위한 진혼곡)'의 발상과 효과음 사용의 적절함은 경탄 받아 마땅하다. 결국 이와 같은 탄착점이야말로 넥스트가 앞으로도 계속 독창적인 권위를 실현할 대목이 아닐까. 한 마디로 우리는 비로소 당대의 스타일리스틱한 밴드 하나를 얻은 것이다. (강헌/19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