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머니들은 짐을 머리에 이고 아버지들은 지게에 지고 다니셨다. 어머니가 짐을 머리에 일 때는 짐이 떨어지지 않게 똬리를 틀어 얹었다. 철마다 힘들여 지은 채소며 곡식을 이고 져서 장에 내다 팔아 가족의 생계를 잇는 것이 부모들의 일 중 하나였다.
장에 내다 판 농산물이 돈이 되어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훨씬 가벼웠다. 몇 장의 지폐를 손에 쥔 가벼운 촉감은 돈으로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기쁨이 있어 힘든 줄도 몰랐다.
우리나라는 고려 태조 때부터 임금이 스스로 짐이라 하였다. 그것은 임금 자신을 뜻하는 말이 되지만, 나라의 살림을 짊어진다는 뜻도 된다. 나라 살림을 꼭 임금만이 지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임금이 짐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짐꾼이 튼실해야 나라의 기강이 서고 국민이 평안하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처럼 짐은 임금이든 부모든 사회의 일원이든 누구나 꼭 져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사람이면 저마다 지고 가야 할 몫이 있다. 그 몫이 바로 일이다. 일에 짐이라는 말이 실려 무게를 달리할 뿐이다. 짐은 또한 사람 몸으로 이고 지는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 비행기 배는 물론이지만, 리어카나 수레도 짐을 실어 나르는 도구다. 지금은 지게나 리어카 수레 등은 트럭이나 컨테이너에 밀려나 사라지고 있지만, 한때 우리 조상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피붙이 같은 역할을 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짐의 무게와 부피는 날로 늘어난다.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를 보면 땅이 얼마나 많은 차들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가.
항구에 가보면 컨테이너가 즐비하고 각 나라의 짐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들이 곳곳으로 짐차나 배에 실려 나가 나라와 나라 간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짐으로써 나라 간의 사귐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마음에도 짐이 실린다. 살림을 하면서 마음의 짐에 부딪힌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가장이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럴 땐 집안일이 잘 풀려나가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고 어느 사이 불만의 짐까지 실려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짐이 짐을 낳는 것이다.
아파트 3층에 사는 나는 가끔 20층의 아파트를 머리 위에 이고, 산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실체가 아닌 허상의 큰 무게에 위협받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 인 것은, 가벼운 공기뿐인데 괜한 발상으로 내가 나를 괴롭힌다. 사람들은 이런 망상에 눌려 다른 병을 낳고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도 짐이다. 한두 살 먹던 나아가 돌담처럼 높이 쌓여가다 세월에 헐어서 담의 구실을 못 할 때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살며 차곡차곡 쌓아온 짐이 허무하게 내려앉고 보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럴 때 중병에 걸리기도 하고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말로써 상대에게 짐을 실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 네가 장남이라서 맏며느리라서 부자니까 당신이니까…. 등등의 책임 무게를 지우게 된다. 또 지고 가는 짐이 무겁다는 이유로 가정을 버리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일 또한 허다하다. 반대로 내 식구가 아니라도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짐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할 일로 여기기에 가능했으리라.
우리는 늘 짐을 지고 또 상대에게 지우며 살아가지만 짐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면 짐은 짐이 아니라 정이 될 것이다. 짐과 정은 확연히 그 무게가 다르다.
고속철 KTX가 시속 304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짐을 싣고도 산과 들을 거침없이 가르며 유쾌하게 생기 있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생활의 활기를 힘차게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이 고속철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려운 가운데도 사랑하는 마음에 가속을, 부쳐서 나아간다면 생기가 넘치지 않을까. 어머니가 짐을 이고 장에 가는 뒷모습에서 나는 어떤 모습의 짐을 지고 오늘까지 왔는가를 잠시 생각해 본다.
첫댓글 무시무시한 이 여름을 이겨내시어 더 좋은 글을 쓰시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