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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번「실은 기적이나 우연은 절대로 없다는 것부터 아셔야 하리다.… 이러한 것들은 신앙심을 공고히 하기 위한 성경결집의 潤文(글을 신비롭게 보이게 지어만듬)이라 할 것이오.()」, 806번「성경에 이르기를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 하였으니 법을 만든 사람이 법을 어긴다면 그것은 무법 탈법 위법이 될 것이니 옳은 것이라 하지 못 할 것이로소이다. 따라서 비단 예수님만 죽어서도 육신으로 나타나고 육신으로 하나님이 데려갔다 하니 그 데려간 육신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러한 주장이 이치에 맞는 옳은 것이겠소이까?」, 51번「실은 예수님은 6년간 인도에 가셔서 불법을 공부한 불제자올시다.… 다만, 예수교라는 별도의 종교를 창시한 무리들의 아집과 왜곡으로 예수님을 신성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그 뜻이 변질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예수교를 신봉하는 성직자들의 왜곡된 해설로써 마치 불교와 예수교가 다른 것으로 굴절되었을 뿐이라 할 것이로소이다.」하였듯이 즉 예수님이 神이 아니라 신성시했다고 말했듯이 즉 2271번에서「하나님이라는 성인의 아래존재인 神을 성인이신 예수님 위에 설정하여 놓고」하였듯이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하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성인의 아래존재인 神으로 착각하듯이....(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 즉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인 하느님을 즉 부처님을 호위한다는 부처님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범천왕「인도 브라만교의 창조와 지배신의 브라흐마(범천)가 불교에 편입된 것」이나 제석천왕「제석천을 다스리는 임금 트리무르티를 제외한 신들의 왕이다.」처럼 그냥 그런 우상화시킨 神들로 엉뚱하게 착각하는 등, 즉 그러니까 초자연 법칙과 자연 법칙이 공존하면서 초자연 법칙은 자연 법칙을 초월하여 있듯이.... 청봉스님은 자연 법칙의 이치만을 말하면서 기적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듯이.... 즉 그러니까 초자연 진리의 이치는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기적을 하고 부활해서 승천한 것은 의심하고 오인하고 왜곡하면서 오히려 성직자들의 왜곡된 해설이라고 착각하듯이.... 청봉스님은 성직자들이 성서를 짜깁기 식으로 다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인지!.... 또 412번에서 도(道)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도(道)인 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듯이 즉 예수님은 6년간 인도에 가신 분도 불법을 공부한 분도 아니시고 성서를 보아도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분이시고 예수님은 유다와 야고보와 성모님께 교육을 받은 것 외에는 누구에게 어떠한 다른 교육도 받은 적도 없으신데....(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참조)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창조주 하느님이시니까 성부의 도(道), 성자의 도(道), 성령의 도(道)는 각각 위격의 도(道)이시지만 삼위일체 창조주 하느님의 도(道)이시듯이 예수님은 깨달은 체험이 있을 수 없으신 분이신데.... 즉 1956번에서「인격적인 창조주가 있다는 것은 진실을 왜곡한 헛소리라 하리다.」하였듯이 예수님은 삼위일체 창조주 하느님이시니까 즉 제2위격이신 하느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인간의 육신을 취하여 오신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즉 종교를 창시한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설에 대해서도 기독교의 성직자들에 대해서도 예언된 성서에 대해서도 예언의 성격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다른 것이 아니듯이(영성시집 ‘147. 두 증인 두 예언자①’ 편 123-134페이지 참조) 온통 청봉스님은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성서에 대해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듯이.... 예수님께서는【“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하시고(영성시집 ‘182. 윤회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일 뿐....’ 편 180-188페이지 참조)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부도덕한 종교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어떤 현자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에 따라 생겼고,” 하시면서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307-309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2페이지 참조)】하고 영혼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듯이 즉 한마디로 불교의 스님들은 아무리 크게 깨달아도 성서에 대해서는 또 영혼에 대해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깨달아지듯이.... 또 1706번에서【실은 기적이나 우연은 절대로 없다는 것부터 아셔야 하리다.… 기적 같은 감회를 받으며 평범한 일을 뛰어넘은 것으로 비췰 때는 기적이라 오인하는 것이라오.… 성경결집의 潤文(글을 신비롭게 보이게 지어만듬)이라 할 것이오.()】하였듯이 또 마태 17장 1-9절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편【5절 베드로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에서 모세와 엘리야 사도들도 증인이 된 기적 등, 아무리 바늘만한 작은 기적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 분은 아무리 큰 기적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 것인데 그리고 天使들이나 예언자들의 기적은 주님께로부터 위탁 받은 기적일 수밖에 없듯이....(영성시집 ‘115. 기적이란’ 편 98페이지 참조) 즉 성모님이, 요셉 성인이 섬기고(황데레사 저,「예수님․성모님의 40일 엄재수난 숨은 행적」참조) 로마가 회개하고 온 세계가 섬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불자들은 무슨 근거로 언제까지 폄하하려고 하는 것인지!.... 즉 가톨릭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성서지식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 깨달아지듯이....《《《성무일도 제4권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일 제2독서 ‘성 예로니모 사제의「이사야서 주해 서문」에서’【유다인 들처럼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는 성서 말씀을 듣지 않기 위해, “성서를 파고들어라.” 그리고 “찾으라. 얻을 것이다.”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에 순종할 때, 내가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권능이시고 하느님의 지혜이시라면 성서를 모르는 이는 하느님의 권능도, 그분의 지혜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기 창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끄집어 내는 집 주인을 본받고 싶으며, 또 아가에서 “아, 임이여, 햇것도 해묵은 것도 임을 기다리며 마련해 두었답니다.”고 말하는 그 신부를 본받고 싶습니다.……
사실 이사야서에서는 주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임마누엘로, 여러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을 행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분으로, 그리고 만백성의 구세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 말씀에서 이 신비들의 깊이를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밀봉된 책에 쓰여진 말씀과 같다. 글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책이 밀봉되었는데 어떻게 읽겠느냐?’ 고 할 것이다. 글 모르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나는 글을 모른다.’ 고 할 것이다.”……】참조.》》》즉 예수님은 요한 2장 13-22절 ‘성전 정화’ 편【19절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1절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예수님의 몸은 하느님께서 온전히 살아 계시는 성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즉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 법칙과, 초자연 법칙이 성서 속에 예수님 안에 온전히 공존하시면서 예수님은 시간 밖에 머무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즉 인류의 자연적인 역사에 개입한 기적적인 전능한 초자연적인 법칙인 진리인데 즉 이것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장 6절 참조) 할 수 있는 참 하느님의 참된 진리인데 불교는 眞空妙有를 말하면서도 자연적인 법칙인 진리를 어긴다는 것으로만 보는 등.... 이야기를 해서 그러나 이러한 것을 어디에다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마음으로 고심을 했는데.... 불교의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으로는(영성시집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78-279페이지 참조) 진리를 몰록 깨달아서 그 깨달음이 아무리 성성적적하다고 해도 영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처님과 영혼에 대해서 잘 아시는【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2페이지 참조》》》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권한과 예수님의 권한이 다르듯이 즉 마태 28장 16-20절 ‘제자들의 사명’ 편【「18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절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영성시집 ‘168.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편 160-162페이지 참조)】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묵시 5장 1-14절 ‘두루마리와 어린 양’ 편【9절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12절 그들은 큰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즉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주인이시듯이.... 즉 불교에서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고 하지만【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은 과거심가득 현재심가득 미래심가득이시듯이】즉 부처님의 자격과 권한이 예수님의 자격과 권한이 서로 다르듯이 즉 창조의 계시(啓示)진리와 윤회가 근본적으로 다르듯이 즉 2271번에서「하나님이라는 성인의 아래존재인 神을 성인이신 예수님 위에 설정하여 놓고」하였듯이 즉 예수님은 계시(啓示)된 진리이시고 空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에 불과하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00페이지 참조) 즉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온 그 순간에도 전능하신 神(주님)을 출애 32장 1-6절 ‘금송아지’ 편「4절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수송아지 신상을 부어 만들자 모두들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온 우리의 신이다.”」의 우상과도 구분하지 못했듯이 天使를 창조한 전능하신 神(주님)을 이집트나 그리스처럼 힌두교의 神 개념과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므로 본래 깨달은 체험이 있을 수 없으신 하느님의 본질의 모상이시고 진리의 실체(實體)이신 분이신데 깨달은 성인으로 본다는 점, 즉 그러니까 사상(思想)과 우상(偶像)과 이단(異端)은 비슷한 말로써 하느님께로부터 계시(啓示)된 온전한 진리가 아니고는 사람의 생각이 2%든 20%든 부족한 생각이 섞여 있으면 사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듯이 즉 히브리서 1장 3절에서「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하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본질의 모상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 때에는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어 하늘에 있는 天使들과 같아지는 것인데.... 즉 天使도 사람도 같이 피조물이면서 결핍된 존재이듯이.... 그래서 사람은 동물과는 다르게 영혼이 있기에 그에 따른 기능(능력)으로 이성과 기억과 의지가 있는 것인데 이것이 가톨릭의 정통적인 교리의 가르침인 것인데.... 그리고 예수님은 天使의 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신약의 계약도 天使와 맺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맺으셨듯이....(영성시집 ‘152. 책 제목을 간파하고「예수님의 엄재수난」이면’ 편 139-142페이지, ‘201. 천지 창조론과 참된 계약(현재)의 종교’ 편 268-286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8.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①”’ 편 343-347페이지,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398-408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가톨릭은 창조주의 권능과 주도권을 성서 곳곳에서 주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낱낱이 말씀하시듯이(539-544페이지 참조) 하느님께로부터 계시(啓示)된 온전한 진리의 말씀으로 天使와 영혼 문제의 교리를 분명하게 다루는데 불교의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으로는 이러한 세상의 창조와 사람이 天使와 같아지는 영혼의 창조를 믿지도 깨닫지도 못하니까 즉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419-420페이지 참조) 하셨듯이 즉 무아(無我)는 영혼이 아니라 동물적인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듯이.... 즉 삼위일체 하느님(주님)이신 예수님은 참나(眞我)로써 영혼이 있는 사람과 계약을 맺으셨듯이.... 그렇다면 동물들이야 영혼이 없으니까 이성과 기억과 의지도 없고 무아(無我)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어찌 무아(無我)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신앙수기 ‘43. 명상과 무아상태’ 편 28-29페이지 참조)《《《또 인터넷 다음 블로그【8. 우리말 반야심경- 선행학습〈무아경〉: 수행승들이여, 물질(色) = 몸은 무아(無我)이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몸(물질)이 나라면 이 몸에 질병이 따를 수가 없고 이 몸에 대하여 “나의 몸은 이렇게 되라. 나의 몸이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참조》》》또 사람이 무아(無我)라면 어떻게 무아(無我)인 베드로와 바오로가 무아(無我)의 경지를 체험할 수가 있겠습니까?(사도행전 10장 10절, 11장 5절, 22장 17절 참조) 또 명상이나 묵상이란 말이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지 명상이나 묵상은 믿음에 비해 대단한 것도 아니듯이....(영성시집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4페이지 참조) 나의 경우도 명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죄를 짓고 고백성사를 자주 보아왔듯이.... 즉 그러니까 왜 불법을 깨달은 스님들은 정법을 이야기 하면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법인 십계명을 깨닫지 못하고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법인 십계명을 부정하는 법이라면 정법이 아니라고 깨달아지듯이....(영성시집 ‘192. “나는 전능한 신(하느님)이다”’ 편 229-23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 명을 데리고 올라가서 그들은 하느님을 뵈오며 먹고 마셨듯이 또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셨듯이....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당신의 모든 선을 최대한 보여주셨지만 얼굴은 보여주시지 않으셨듯이.... 모세가 본 하느님으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불가에서는 본질인 실체(實體)가 아닌 현상 세계를 꿈이라고 표현하듯이 즉 창조 이전의 세계가 그냥 神(하느님)의 본질인 실체(實體)이듯이 즉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오심으로 지상에서도 우리는 神(하느님)의 본질인 실체(實體)를 겨우 파악할 수가 있듯이....(422-42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불교의 반야심경의 큰 지혜를 깨달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가톨릭교회의 삼위일체의 전지전능한 지혜와는 분명 같은 지혜는 아니듯이....(영성시집 ‘215.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지를....「신비적 혼인」’ 편 402-407페이지「천주성삼 호칭기도」참조) 즉 그러니까 나름대로 큰 지혜를 깨달았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모든 것을 불이(不二)로만 보니 반야심경의 空사상은 어디까지나 사상에 불과하듯이....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우리의 불이(不二)와 공(空)과 색(色)인 불이(不二)는 차원이 다른 불이(不二)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듯이....(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252, 252-254페이지 참조) 구약시대에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예언자나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수많은 예언자들이나 달마대사, 원효대사, 김정빈 구도소설「道」책의 주인공 대행스님같은 부분적인 초자연적인 견성(見性)이나 부분적인 초자연적인 계시(啓示)가 있었지만 또 모세는 다른 예언자들과는 다른 야훼께서 “나는 나의 온 집을 그에게 맡겼다.”고 해도(민수기 12장 4-8절 참조) 즉【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를 지금 시대에도 비추어보지 않고서는.... 몰록 깨달아서 그 깨달음이 아무리 성성적적한 성인이라고 해도 모세성인이나 엘리야 예언자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해도 부분적으로 깨달은 견성(見性)과 부분적으로 체험한 계시(啓示)로는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도 견성(見性)의 완성도 아니고 계시(啓示)의 완성도 아니듯이....(영성시집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39-440페이지 참조)】
즉 1956번에서 청봉스님께서【온우주 만유의 창조주는 형상없는 그 무엇인 것이오. 이것을 이름하여 眞空妙有한 法性(佛性, 自性, 부처, 佛, 마음, 참나인 眞我)이라 하는 것이올시다.()】하였듯이....(410-411페이지 참조) 형상없는 그 무엇인 眞空妙有가 바로 불성(佛性)의 자리, 신성(神性)의 자리 즉 참 근본의 자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 즉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온전히 갖추신 유일한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구분하는 법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듯이....(영성시집 ‘198.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불이(不二)」①”’ 편 246-252, 252-25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성무일도 재4권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2독서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그분이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밖에는 하느님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파악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고 보이지 않으시며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을 보기를 원하시며 당신에 대한 관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사람의 관념이나 空사상이나 우상화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듯이....(영성시집 417-424, 439, 448페이지 참조)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사상의 그림자도 있을 수 없고 요한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신 진리의 실체(實體)이시듯이 즉 진리통달의 은혜는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교리가 각각 다른 부분적인 교회에 내릴 수가 없는 것이듯이 진리통달의 은혜를 곱비신부님 메시지「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책《《《(299번 4. 하느님의 뜻은 (내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너희에게도 너희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너희가 삶을 통해, 갈수록 그분께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너희 정신을 양육하는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씀을 거룩한 책인 ‘성서’에서 찾아라. 내 아들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의 온갖 아름다움을 음미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지혜’를 주어, 너희가 ‘성서’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도록 이끌고 있다.【너희로 하여금 성서 (말씀을) 샅샅이 이해하고 즐기고 간직하며,】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313번 7,), (314번 ‘두 군대’ 편 2-3.), (318번 6. 너희가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판독하는 법을 알려면,】오늘날에도 깊은 고요가 요구된다.)》》》에서 보더라도 가톨릭교회에만 주시는 이유도 깨달아야 하겠지만....(420, 443-444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55-456페이지 참조)】
즉 계시(啓示)의 완성은 교리의 완성이고 부분적인 견성(見性)은 교리의 미완성이란 말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지듯이.... 그래서 계시(啓示)의 완성인 가톨릭의 교리는 10계명과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으로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교리가 완성되어 잘 정리되어 있는 반면....(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206. 불교와 계시종교의 차이점「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 편 298-314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페이지 참조) 그리고 이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이지만 인터넷 다음 어학사전「신덕」을 검색해 보면【「신덕(信德)」: 향주 삼덕의 하나로 천주와 교회의 가르침을 굳게 믿는 마음】이라고 하였듯이 이것을 그냥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신덕의 근본인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계시(啓示)하시니까 보고 듣고 교회가 그 계시(啓示)를 전수받아(영성시집 ‘187.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편 211-213페이지 참조)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는 조건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믿는 그런 믿음인 것이지 그냥 무조건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닌 것이듯이....【‘상해천주교요리(詳解天主敎要理)’ 상권 –믿을 교리 편- 제1장 천주/제2장 삼위 일체/제3장 천지 창조, 천사, 마귀/제4장 사람/제5장 원죄/제6장 구세주/제7장 천주 성신/제8장 교회/제9장 사말(죽음, 심판, 천당, 지옥) 참조】그런데 불교의 교리는 부분적인 견성(見性)인 만큼 교리가 사실상 불완전하기도 하지만 즉 깨달음과 지혜와 관상과 명상도 교리를 넘어서 있는 것은 아니고 10계명을 지키고 7덕을 지켜서 완덕(의 경지)에로 이끄는 깨달음과 지혜와 관상과 명상이 아니라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듯이 어떤 것을 깨달은 부분은 인정하지만 깨달았다고 해도 교리적인 부분을 다 대신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솔로몬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오히려 지혜를 깨달은 그 자체가 바로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듯이....(424-425, 466-47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유위법(有爲法)의 교회를 세우신 무위법(無爲法)의 실체(實體)로써 즉 한마디로 자연적인 2차원과 초자연적인 3차원의 세계가 공존하는 것으로써 즉 그러니까 계율이나 八正道의 경지란 복음을 지키고 10계명과 완덕인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잘 지켜서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10계명과 완덕인 7덕을 지키기 위한 견성(見性)이나 계시(啓示)가 아니라면 그런 견성(見性)과 계시(啓示)는 (거짓) 사상으로써.... 그러니까 보리달마의 저작《혈맥론》에서도 즉 견성(見性)을 해야 생사윤회를 벗어난다고 근본적으로 가르치고 예수님은 “윤회는 없다”고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오류라고 근본적으로 가르치시니 창조와 윤회 둘 중의 하나는 당연히 진리가 아니겠지만.... 견성(見性) 체험과 깨달음(완덕)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439-444, 449-455, 460-472, 497-502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교리적으로 지키는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절덕의 경지는【‘성모성심 메시지’에서 ‘천당문 열고 들어가니 9층이 보이고’ 단테의 ‘神曲’에서 연옥, 지옥, 천국도 제10천 하늘까지 여행하듯이....(486페이지 참조)】천당에서는 초보적인 완덕 성인의 단계라고 이제는 파악해 볼 수가 있듯이 즉 송담스님께서《《《인터넷 다음 백과사전「화두(話頭)」: 공안(公案)·고칙(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의 ‘화(話)’는 말이라는 뜻이고, ‘두(頭)’는 머리, 즉 앞서 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참된 도를 밝힌 말 이전의 서두, 언어 이전의 소식이 화두이며,… 염화두(念話頭)를 놓치지 않고 계속 하게되면 일을 하거나 말을 하면서도 화두가 또렷하게 들리는 간화두(看話頭)를 할 수 있게 되고, 간화두가 되었을 때 거듭 대용맹심을 불러일으키면 참의심(眞疑)이 생겨나서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닌 대무심(大無心)의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때의 화두를 참화두(參話頭)라고 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를 깨치게 된다고 한다. 즉, 화두가 또렷하게 잡혀서 놓아지지 않는 경지,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나 꿈을 꾸나 항상 참화두가 되는 경지에 이르면 7일을 넘기지 않고 확철대오(廓徹大悟:확연히 꿰뚫어 크게 깨우침)하게 된다.》》》화두를 자주 말씀하시듯이 즉 그러니까 ★깨달았다고 말을 해도 초보적인 깨달음은 성숙된 깨달음이 오면 ‘아차! 그때 잘못 깨달았구나!’ 하고 나도 이렇게 여러 번 바뀌었듯이 바뀔 수가 있는 것이지만 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교리대로 살지 않고 10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참된 도(道)도 아닌 것이며 10계명과 7덕(신덕, 망덕, 애덕,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을 지키면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완덕(깨달음)을 이루는 것이고 즉 화두를 들고 선정삼매에 이르는 깨닫음(완덕)도 있어왔고 즉 7덕을 닦아서 완덕(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도 있어왔듯이 즉 이것이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라는 즉 이것이【계시(啓示)의 완성자이신】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우상을 쳐부수시고 십자가의 구속 사업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교리적인 지혜 자체의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417-424, 439, 455-475, 475-501, 501-509페이지 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6-509페이지 참조)】
※ 2023. 9. 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날 성무일도 제2독서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주교의 강론에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현양이다―
우리는 오늘 암흑이 쫓겨나고 빛이 다시 오게 한 십자가의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축제를 지내면서, 땅과 죄를 밑에다 남겨 버리고 위에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과 함께 들려 올라갑니다. 십자가는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것을 소유하는 이는 귀중한 보화를 소유합니다. 십자가는 그 이름으로 또 실제로도 지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 고귀하고 보배로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참으로 보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안에,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를 위해 우리 구원의 온갖 부요가 있으며, 우리에게 구원이 되돌아옵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생명께서 나무에 못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더라면 그분의 늑방이라는 불사 불멸의 샘물에서 세상의 죄를 씻어 주는 피와 물이 흘러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죄의 문서가 무효화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는 자유를 얻지 못하고 생명 나무의 열매를 맛보지도 못했을 것이며 낙원의 문이 열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죽음이 짓밟히지 않았을 것이며 지옥의 약탈품을 빼앗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참으로 위대하고 보배롭습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축복을 얻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업적에 있어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과 그분이 당하신 수난이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인 만큼 십자가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십자가는 또 보배롭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받으신 고난이요 상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죽음을 자원하여 맞이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고난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귀가 상처를 입어 죽음이 정복되고 지옥문이 산산이 부서져, 그를 통해 온 세상이 공통적인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은 상패입니다.
십자가는 또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현양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갈망하셨던 잔이고 우리에게 있어 모든 고통의 종결입니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것을 그분의 다음 말씀이 증명해 줍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고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또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버지,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제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 주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그때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 모든 말씀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얻으신 영광을 뜻해줍니다.
십자가는 또한 그리스도의 현양이라는 것을 다음 주님의 말씀이 증명해 줍니다. “내가 현양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영광이요 현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편을 읽으면서 또 오늘 매일미사 제1독서「민수기 21장 4-9절 ‘구리 뱀’」편과 복음「요한 3장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절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말씀을 들으면서 이 구리 뱀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의 예표였다는 사실과 창조사업, 구원사업, 성화사업이 더욱 확실하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 400번에서도 말씀하셨듯이(673-676페이지 참조) ‘십자가’에 오르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구원계획은 깨닫지 못하고 지금 시대에도 눈앞의 기적을 바라며 마태 27장 42절「“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처럼 내가 바라는 기적의 어리석은 말은 삼가 해야 할 것이며 마태 27장 54절「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지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며 몹시 두려워하였다.」처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대망의 구원사업의 정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한 두려워 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그러니까 요한 6장 1-15절 ‘오천 명을 먹이시다’ 편「1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에서 또 18장 28-38절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다’ 편「36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에서 또 루카 13장 31-33절 ‘죽음에 직면하시는 예수님’ 편「32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하고 말씀하셨듯이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라고는 하지만 실지 다윗 왕처럼 왕권을 잡고 다스리러 오신 그런 왕이 아니라 유다인들은 아직도 다윗 왕처럼 왕권을 잡고 다스릴 그런 왕을 착각하고 기다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말하면 요한 18장 36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듯이 하늘 나라의 권좌에 앉으실 분이라면 실지 이 세상의 왕권을 잡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당신의 거룩한 품위에는 어울릴 수가 없듯이 십자가의 희생제사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된 하느님의 거룩한 섭리라는 것이 깨달아집니다.(667-668, 673-676, 723-724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사도 바오로의 코린전 1장 18-31절 ‘십자가의 복음’ 편「23절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절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의 말씀을 더욱 깨달아 십자가가 생명나무 열매임을 우리는 확실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을 누가 어떤 방법과 어떤 능력과 자격으로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그러니까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고 세상이 세상을 구원할 수가 없듯이 이 세상은 본래 구원의 방법도 모르고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듯이 십자가의 구원 사업은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하신 구원 사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묵시 5장 1-14절 참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다가 마태 27장 3-10절 ‘유다가 자살하다’ 편에서 말씀하셨듯이 또 마태 7장 21-23절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편「21절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절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절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에서 말씀하셨듯이 지옥에 갈만한 죄의 상황에서도 연옥에 갈만한 죄의 상황에서도 천국에 갈만큼 완덕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을 죄는 얼마든지 있음을 체험해 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신앙수기 ‘54. 침묵이 지켜지질 않아 “주여!, 주여!” 불러봅니다.’ 편 34-35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하느님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道, 無, 公, 眞空妙有, 불생불멸을 실존하신 분으로 설명하자면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전능하신 예수님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분으로써 즉 道, 無, 公, 해탈, 열반, 깨달음, 행복, 완덕, 자유, 구원의 경지란 즉 교리대로 살아서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참된 지혜란 즉 단테의 ‘神曲’에서 연옥, 지옥, 천국도 제10천 하늘까지 여행하듯이 초보적인 완덕 성인의 단계도 있다고 이제는 파악 해볼 수가 있듯이 즉 그러니까 참된 행복의 길과 완덕의 길의 십자가의 희생 제사로 즉 십자가의 지혜의 열쇠로 하늘의 문 구원의 문은 열렸으니까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믿음, 희망, 사랑, 자비, 지혜, 참된 행복, 구원, 완덕이 뭔지도 불완전한 세상은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고 빈 깡통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논리가 나올 수밖에 없듯이....(영성시집 ‘175. 완덕의 경지를 실지로 느꼈습니다’ 편 169-171페이지, ‘199. 참된 행복 선언 기념 성당을 순례하고’ 편 262-265페이지, ‘207. 문득 구원(道)의 화두(경지)를 깨달았습니다’ 편 321-323, 328-335페이지,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503-504, 522-523, 662-663, 673-676페이지 참조) 즉 그러니까 교외별전이나 사도 계승은 교리대로 사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대로 사는 삶의 완성이듯이 즉 초대교회 때부터 형성된 권한을 갖춘 사도단과 성모님과 성령의 활동이 있어야지 지금도 성령의 도움을 받은 해석을 배척한다면 우상화로 쏠릴 수밖에 없듯이 솔로몬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아무리 진리나 지혜를 깨달았다고 해도 오히려 지혜를 깨달은 그 자체가 바로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듯이 사탄에게 (거짓) 사상으로 키에 담긴 밀처럼 까불림을 당하거나(루가 22장 31절 참조) 미혹(迷惑)되어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417-424, 439, 455-475, 481-509, 575, 673페이지, ‘219. 그 짐승의 숫자인 666②’ 편 591, 601-608, 623-624, 630-631, 655, 711-713, 721, 747-754, 755-756페이지 참조)】
※ 2024. 2. 9. ‘연중 제5주간 금요일’(성무일도 1-4권 각 권마다 제1주간 금요일 참조) 날 성무일도 아침기도 찬가 이사야 45장 15-25절【19절 나는 주님 다른 신은 없도다 * 땅의 어두운 곳에서 남몰래 말한 것이 아니로다. / 21절 너희는 알리고 제안하고 토론하여 보아라 * 누가 예전부터 이것을 들려주었으며 알려 주었는가. / 나는 주님이로다 +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 의롭고 구원하는 신이 나 외에는 없도다. / 22절 땅의 극변들아 + 너희는 구원되기 위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 나는 너희 하느님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도다. / 23절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고 내 입은 진리를 말하니 * 그 말이 되돌아오지 않으리라.】을 읊으면서 무심코 이사야서가 시편 인줄로만 알고 순간 아!--- 다윗을 통하여 그렇게 시편을 읊게 한 하느님의 전능하신 섭리가 절절히 깨달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하느님의 전능하신 말씀이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음에 징징 울려왔습니다. 아!--- 지금도 주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땅의 어두운 곳에서 남몰래 말한 것이 아님을 알리고 제안하고 토론하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니 생명수의 강물이 나에게서도 흐르옵니다. 아!--- 주님께서는 모든 사상과 우상과 이단들을 당신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쳐부수시고....《《《【(고린전 1장 18-31절 ‘십자가의 복음’ 편「23절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참조), (필리피서 2장 1-11절 ‘일치와 겸손’ 편「10절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절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참조), (콜로새서 2장 6-19절「15절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참조)】》》》즉 그러니까 겸손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전능하시니까 너희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 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시고 동정 성모 마라아를 통하여 인성을 취하신 몸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 제사를 드리시고 구원사업을 다 이루셨듯이....【(요한 19장 28-30절 ‘숨을 거두시다’ 편「30절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참조)】즉 그러니까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하고 무릎을 꿇어 경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듯 주님께서는 당신 땅을 강복하셨고 당신께서 거쳐하시는 하늘 나라의 궁전에 좌정하시고 홀로 주님께서만 정의와 능력과 권능이 있으시고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심을 우리 모두 성경 전체를 통하여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673-676, 735페이지 참조)
※ 묵시 5장 1-14절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 편【9절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12절 그들은 큰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절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곧 온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이, “옥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 찬양과 영예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소서!”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14절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했으며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참조.【(영성시집 ‘216.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다「견성(見性)과 계시(啓示)」③”’ 편 784-791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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