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에게 드리는 글
“형님,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영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반드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길이라고 인정하고
바로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친애하는 형님에게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 생활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시는 형님에게 이렇게 글로나마 제가 아는 만큼 몇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구는 방싯 방싯 피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족 돋아나는 풀싹에 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중을 날며 노래하는 새들이나 청청하고 울창한 수목들, 천진난만한 귀여운 아이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형님,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일은 자기의 분한을 아는 일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우리의 생존을 편리하게 하는 문명의 이기를 많이 창조해 낸 발명의 시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면 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 간에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질병이나 전쟁 혹은 죽음과 같은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습니다. 불행해질 근거라곤 추호도 없다고 생각되었던 사람들과 행복한 삶이 보장되었다고 믿어졌던 사람들조차 인생길에서 패배자가 되거나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되거나 뜻밖의 죽음으로 일생을 끝마치는 일들이 많습니다.
1923년 미국 시카고의 엣지워터 비치 호텔에서 아주 중요한 회합이 열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여덟 사람의 사업가들이 이 회합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성공의 기준을 벌은 돈의 양으로 비교한다면 이들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었으며 행복을 재산이나 외모로 헤아린다면 이들을 능가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형님, 그런데 이분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알아볼까요?
그들 중 3명은 자살로 생애를 끝냈고, 2명은 교도소에서 다른 3명은 각각 채무자와 망명자와 미치광이로 세상을 떠돌다 일생을 청산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돈 버는 비결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참으로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염려하여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는 것은 아직도 이 세상 도처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단계마다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모두가 다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세상이 악한 것은 웬일입니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처럼 많은 인간의 괴로움을 허락하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생소한 일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전쟁을 허락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허용하십니까?
그리고 만일 그분이 전능하시다면 그와 같은 인간의 불행들을 방지하실 수 있을텐데 왜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까? 이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은 오직 성경만이 보여줍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처럼 만드시지 않고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원하기만 한다면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자원함이 없는 순종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봉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에나 인간을 강제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죽음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지만 자유를 남용할 때는 엄청난 불행을 가져옵니다.
죄라는 것은 반항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마땅히 행할 일에 대하여 나는 당신보다도 더욱 잘 안다”고 말하는 자유남용입니다. 죄인이란 하나님을 등진 인간을 말하며 그 때에 유한한 인간이 마치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모든 불행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과 행동에서 빚어지며 그 결과로 오는 필연적인 죽음을 인간은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전기 스위치를 끄면 흐르던 전류가 끊어지고 어둡게 되듯이 죄는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단절시켜 놓았습니다.
형님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죄는 꼭 교도소에 갈만한 두드러진 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생활 속에는 걱정근심, 초조, 의욕상실, 권태감, 열등의식, 좌절감, 현실도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다 인간에게 풍요한 삶을 주시기를 갈망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인간이 분리된 증거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인간은 꼭 자신의 참 모습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불행과 역겨운 생활의 원인을 하나님과 분리된 자신의 상태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될 때에 그는 곧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꼭 자아발견과 병행 합니다.
아직도 인생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부질없는 인간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을 보게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인의 한사람인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이여!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나이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평안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위대한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인간심령 속에 있는 절대자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개개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마치 어떤 마이너스 표식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너스 위치의 생활과 플러스 위치의 생활과의 차이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수직선 하나 더 긋는 것과 같습니다. 아래와 좌우만 보고 비관하던 인생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위를 쳐다보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인생에게는 참된 희망이 용솟음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연히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그렇습니다. 형님,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영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반드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길이라고 인정하고 바로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강제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외면하면 살 길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안타깝게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의심과 공포심과 죄책감이 떠날 줄을 모르는 내 멋대로 사는 길이 있으며 믿음과 사랑과 평화가 지속되는,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다스리시는 생애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갯벌을 맨발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랫길을 한참 거닐다가 뒤를 보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모래 위에 남긴 자기의 발자국이 얼마나 꾸불꾸불한지를 보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 발걸음을 옮겨 놓으면서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바로 나의 일생의 경로로구나, 매 발걸음마다, 매 발자취마다 비뚤어져 있구나!”
그 후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단 하나의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조수가 밀려와서는 갯벌에 찍힌 발자국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물러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자 하십니다. 죄를 용서받는 기쁨은 비길 데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를 씻는 특수 세척물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역사적인 인물로 믿는 일은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모시는데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한 권의 책도 쓰신 일이 없지만 각 나라의 도서관에는 그분에 관한 책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의 작곡도 하시지 않으셨는데도 어느 작곡가보다 더 많은 곡의 주제를 만드셨습니다. 한 폭의 그림도 그려보지 않으신 분께서 가장 위대한 걸작들의 주제가 되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학교를 설립한 적도 없었으나 그의 이름으로 설립된 대학들이 얼마나 많으며 군대를 조직하거나 모집하지도 않았으나 그를 따라 자원하여 나서는 십자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런 재판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온 인류가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한 역사가도 아니셨으나 그는 역사의 가장 중심점에 서 계시며 그분은 연대를 BC와 AD로 갈라 놓으셨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시지도 않았으나 그에게는 불치의 병이 없었으며 심리학자도 아닌데도 그에게는 상담자들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또 하나의 전문직을 가지셨습니다. 호주의 시드니에 한 천재적인 수선공이 있었는데 그는 손님들을 이끌기 위하여 매우 독특한 광고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문구였는데 즉 “여기서는 모든 것을 다 고침”리라고 씌어 있었고 그 밑에는 하나의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단 부서진 마음은 제외” 그렇습니다! 형님, 예수님은 이 수선공이 고칠 수 없었던 부서지고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전문가 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형님, 지금 이 부분은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주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머뭇거리다 실패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께서만이 오직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알고만 있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으면 마음이 더 괴롭기만 합니다. 이제 그분을 마음에 모시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순간적인 일입니다. 기도로써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고 그리스도를 초청하면 그분은 즉시 들어오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준비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인간을 준비시킵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간절히 다음과 같이 말해 보십시오.
“사랑의 하나님,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 공로를 의지하여 구하오니 저의 죄악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순간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원하오니 저의 마음에 임하여 주십시오. 저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를 형님의 마음속에 초청한다는 것은 형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또한 절대적인 결단입니다. 그리스도를 기도로 모시는 순간 형님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1. 하나님께서 형님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요한1서 1:9).
2. 그리스도께서 형님 마음에 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갈라디아서 2:20).
3. 형님은 지금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요한복음 1:12)
4. 형님은 지금부터 인생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신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완성한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생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계속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지 않고 음식을 먹음이 없이 그리고 운동을 하는 일이 없이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 생활에도 항상 자라나는(GROW) 일이 필요합니다.
G-Go to God in prayer daily(매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것)
R-Read God's Word daily(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것)
O-Obey God, moment by moment(순간순간 하나님께 순종할 것)
W-Witness for Christ by your life and words(생활과 말로 그리스도를 증거 할 것)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모실 때에 큰 기쁨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감정의 변화가 없다고 하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보증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근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요한복음 15:5)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4:13).
형님, 오늘 참으로 감사합니다. 불이 잘 붙어 있는 숯불도 하나하나 갈라놓으면 꺼지고 말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모이지 않으면 열이 식고 맙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 그리고 안식일 오전에 예배드리는데 이 집회에 참석하실 수 있도록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형님께서 이 중대한 결정을 굳게 하시고 평생토록 이것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로서 돕겠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2024년 월 일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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