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슬렁슬렁 걷다 보면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등 몇 개의 작은 절을 지나 어느새 동학사다. 동학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동학사에는 승가대학인 동학 강원이 있는데, 이곳은 운문사 강원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힌다.
724년(신라 성덕왕 23년)에 지어진 동학사는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東鶴寺)라 지었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을 정립한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셔 동학사(東學寺)라 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조선 세조 3년부터는 단종을 비롯해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김종서, 사육신 등을 모셔 제를 지낸 절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런 의미 있는 고찰이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중건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은 출가하는 행자가 많지 않다지만, 이곳에 오니 여리고 풋풋한 어린 비구니들이 얼핏얼핏 눈에 띈다. 이렇게 어린 여승들이 한곳에 모여 인생 공부를 하고 불교 공부를 하고 도를 논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애틋하고 기특한 게 아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학사 대웅전에서 삼배(三拜)를 해본다. 삼배는 원래 몸과 입과 생각을 다 바친다는 뜻에서 세 번 절하는 것이라지만, 오늘은 세 번 절을 하며 산과 신과 나 자신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몸과 마음도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불상에 하는 절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절이다.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뜻에서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