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조현묵
밤마다 기와집을 몇 채 씩 짓고 헐었다 하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2, 3일 잠을 안자고 밤을 새도 피곤치도 않고 멀쩡했다. 백묵을 내려놓고 평생 교단을 떠나면서 일주일을 그렇게 밤을 새며 정신을 잃었다. 한 밤중에 정신과 병원에서 강제 체포하듯이 납치해간 줄도 모르고 정신병동에 입원한 모양이다. 입원 경위는 몰랐는데 다음날 보니 영락없이 감옥에 갇힌 꼴이 돼 버렸다.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뒤늦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을 못자 생긴 불면증이니 수면만 충분히 취하면 될 간단한 문제를 침소봉대한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가족과 친지들이 병문안이 계속되었다. 특별히 친한 친구들도 어떻게 수소문을 했는지 찾아왔다. 원래 친척 아니면 면회를 금하는데 어떻게 면회를 왔는지 궁금했다. 생각하면 창피해서 감출 일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든 추억들은 아름답다.
병은 이 뿐이 아니다. 하루는 발바닥이 곯는 것처럼 밤새도록 통증으로 정형외과에 갔다.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밤새도록 한 잠도 이룰 수 없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전혀 뜻밖의 통풍이란 병명이 나왔다. 일명 황제 병이라고도 한다. 주사를 맞고 약을 일주일 분 타가지고 집으로 왔다. 불편한 것은 재발할 때마다 오라는 것이다. 이 병은 평생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라고 잘라 말하는 게 아닌가! 몇 달 동안 재발해서 병원에 다녔다.
친척 형도 똑같은 통풍인데 한 알의 투약으로 재발되지 않고 괜찮다는 놀라운 정보였다. 서둘러 그 약을 처방했다. 아주 편해졌다. 정형외과 약은 독하고 약도 알 수가 많을 뿐 아니라 매달 재발 했는데 내과에서 처방한 약은 달랐다.
이 뿐이 아니다. 최근 심장의 맥박이 고르지 않은 부정맥에 초미의 관심이다. 역시 위험을 수반하니 평생 약을 복용하란다. 높은 산을 오르거나 테니스 운동을 할 때 숨이 가쁘다. 새벽에 운동을 늘 자랑삼아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계속 할 경우 위험을 초래한다고 의사는 단단히 주의를 준다. 그래도 기본체력이 누구보다 튼튼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내게 실망감도 크지만 놀라지 않는다. 콜레스트롤 수치도 높고 간도 나쁘다고 해서 요즘 주사도 맞고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
나이가 더해가면서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각종 질병들이 나를 괴롭힌다. 최근 나에게 큰 불편한 주는 병이 또 있다. 무엇인가! 전립선 비대가 그렇다. 수필문학 행사로 홍천 문학 탐방 갔을 때였다. 병은 자랑하라고 전립선 비대 이야기를 꺼냈더니 모두 입을 모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처방까지 전해 준다. 전통적인 처방이었다. 엉겅퀴를 삶아 차를 끓여 먹으면 특효라고 정보를 준다. 계절이 바뀌면 찾아 캐서 다려 먹어야 갰다고 생각했다 늦가을이라 마음만 급했지 막상 찾아보니 말라서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둘째 딸, 외손자 외손녀, 사돈과 서울 랜드 여행을 갔다가 소변 때문에 곤혹을 치룬 적이 있다. 휴게소가 멀어 진땀을 흘리며 고생을 했다. 문화원에서 문학 탐방 갈 때 역시 휴게소가 멀어 진땀 빼며 혼자 부심하던 부끄럽던 일. 병중에 전립선 비대는 특히 소변과 연관되어 늘 나를 괴롭히고 있어 주눅을 들게 만든다.
예배시간이 길어도 큰 문제다. 장로라 자꾸 앞에 특별석으로 모시려 하지만, 소변 때문에 나 선뜻 나갈 수가 없는 웃지 못 할 난센스들이 그 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약제를 보름치 복용해 보기도 하고 사통팔달로 다니며 처방을 신중히 받아 보았다. 최근 아내는 수술까지 권유하는 게 아닌가! 초기라 약으로 치유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양약은 3년도 더 먹었는데 큰 변화가 없다.
혹자는 나이 탓이니 너무 예민해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려니 하란다. 병이 많은 내 몸뚱이는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병이 도대체 몇 가지인지 셀 수 가 없을 지경이다. 누군가 우리 지구는 거대한 병동이라고 했다. 엄청난 질병들이 고령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질병, 고독, 빈곤, 그리고 최근 無位 까지 노인 주위를 항상 안개처럼 아니 독가스처럼 맴돌며 겁을 주고 있다. 잡병을 고치는데 무엇보다 걷기가 최고라고 해서 등단을 하고부터 걷기에 총력을 다 한다. 칠흑 같은 밤중에도 애막골 산길을 다녀와야 잠이 온다.
말없이 초침은 쉬지 않고 세월을 앞당긴다.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5시가 다 돼가고 있다. 이러다 또 정신과 병원에 나도 모르게 납치되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희한한 예견들이 나를 윽박지른다. 나이 탓일까!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아본다.
그렇게 골몰하던 어느 날이었다. 춘천시보에 겹자리로 따라온 평생정보기관에서 시행하는 각종 정보를 접한 것이 천금 같은 계기가 될 줄이야! 친구 따라 시와 수필에 등록을 하고, 기타를 배우고, 합창을 하면서 짙게 내려앉은 종합병동을 훌훌 걷어 낼 수가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모임에서 중책을 도맡아 바쁘게 뛰고 있다. 감사하다. 딸 같은 세대와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어떤 권위나 체면 따위는 이미 내 사전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신선하다. 종합병원을 넘볼 시간조차 끼어들지 못한다. 공부하면서 그 누구보다 많은 여유를 값지게 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부족할까! 생각해 본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저버려야 한다. 무식해도 건강이 최고란 극단적인 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모든 병실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신의 건강이다. 지금 내 머리 거의 전부를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배우려는 강한 의지에서 생기는 약효야말로 최상의 건강이 아닐까! 영혼의 대화가 맑은 천상의 목소리와도 같다고 어느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지만 현재 움직이는 종합병원에서 내게 잔존해 있는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고 시기하지 않고 세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내게 육체를 지배할 정신의 건강이라고 자부한다
첫댓글 조 현묵씨 회장되신 것 축하 드리고 지금은 육체건강. 마음건강. 다 좋으십니다. 종합병원 털어버리시고 올 한해 열정 으로 공부해요.
자신의 육체적 질병을 정신 건강으로 잘 극복해 나가시는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긍정적으로 사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장로님인데 특석에 나와 앉지 못하는 구절이 너무 진솔하시기에 감동 ㅎㅎ 그쵸?
글씨가 너무 작아서 제가 좀 크게 올렸습니다.ㅎ
감사합니다
청진,하오. 합병원이라 재미있군. 운동 꾸준히 하고, 배우고픈 욕구 열심히 채우고, 하고픈 일 모두 해 보고 내가 뭐 아버진가 잘 계셔. ^*^
건강하실 때 건강지키실 줄 아시고 건강하실 때 부부가 멋지게 유럽 여행하시니 금술 좋은 부부 멋지십니다.
좋은 것 많이 보시고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소변때문에 빠지신 것 아닌지요.ㅋㅋ
요즘 늘 날아다니시는 모습을 보는데 언제 그런 것들을 달고 다니셨던 과거가 있으셨네요.
아마 귀한 생명의 해산을 위한 진통과정이 아닐까 버릇없이 낙관해봅니다. 형님 화이팅!
종합병원 폐업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다시 읽어봐도 좋은 글이네요.ㅎ
그런 고초를 겪으셨단느게 당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 모습이 너무 건강해 보이셔서.
늘 열심이신 선생님 모습...늘 감동스럽습니다.
더욱 건강, 건필하시길...
모두 고령이 되면 지니고 있는 것을 문학을 위해 클로즈업했다고 할까 ㅎㅎ 꾸밈없는 진솔함이 감동을 주지요.물론 건강하시지만 -.ㅎ
부끄럼 다 내 놓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네요. 그래도 용기주시는 글벗이 있기에 글로서 즐거움을 대신할까 합니다.
졸작은 항상 오를 길이 있으니 꿈이 있어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저 먼 미국에서도 사월님이 용기 주시고 개업 아닌 폐업을 축하해주신 선배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개업아닌 폐업 너무 멋진 단어들이 영혼을 살찌웁니다. 솔직한 문장들이 이렇게 감동을 주네요. 어느 강의에선가 이영춘님도 남편이 질질거린다고 해서
좌중을 웃겼던 일도 기억나지요. 고령이면 그러려니 하고 ㅎ 전립선 하나만 가지고도 멋진 수필을 만들수 있었는데 ㅎㅎ
부끄럽고, 챙피한 것 고백하는것이 가족이 알면 주책이라고 말했을겁니다. 그렇군요. 들어내놓기 힘든 부분을 진실되게 고백하는 것이 수필 소재가 된다고요. 오늘 선생님 강의 시간에도 하신 말씀입니다. 폐업이 좋은 단어로도 쓰일 수 있군요. 결국 사업이 흥할 수 있는 꿈을 주셔서 용기가 납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수필가는 이혼문제를 아주 적나라하게 경험을 써나가 내가 밥을 사면서 무엇이 그리도 자랑스럽냐고 했어요.
그것이 무슨 큰 내세울만한 것인가요.물론 특수한 경우 이혼이면 몰라도 -. 아무리 수필은 상처난 곳 바람쏘이기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사람 이름을 거론하면서 평범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극히 삼가해야 할 것밈 ㅎ
항상 밝은 표정을 보이셨는데 그런 고초가 있으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저역시 이런저런 일로 병원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그정도는 아닙니다.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