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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의 한마음,하나 되는 자리
信天함석헌
우연히 교황 저격 현장에 계셨던 노병례 님이 모임예배에 오셔서, 뉴스에서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목격담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이야기를 듣고 하신 말씀입니다.(편집자 주)
만일 방탄유리가 아니었더라면 교황은 죽었을 것은 사실이로군요. 아주 정면을 대고 쐈으니까. 여러 가지가 생각되는군요. 교황의 그때 마음은 어땠을까? 방탄차를 안타고 그때 있었더라면 마음이 그땐 어땠을까? 방탄차를 탔거니 했을 때도 그게 없을 때와 마음이 같았을까?
오늘은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세우기 위해서 모이는데 과연 미리 다 발표되고 비상경계를 하고 그랬으니까 교황은 보통 마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미리 방탄으로 준비를 했다 그런다면 역시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까? 그러니 사람들이 연구 발명을 해서 생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그게 정말 진정으로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어느 것이 내 참마음이라 그럴까? 안전한 것을 계획 해놓고 안전할 때 평안한 마음이 참마음일까? 무슨 일도 다 소용이 없다고 그럴 적에, 무슨 큰일이 날는지 모른다 하고 불안이 오고 할 때에, 불안 속에 있는 상태의 그 마음이 참마음일까? 교황을 죽이려고 각오하고 나오는 그런 사람의 마음은 또 무슨 마음일까?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이란 왜 그럴까? 그런 사람들은 다 여러 가지 명목으로 자기를 정당화하면서 할 터인데, 그것도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터 인데, 과연 생각이란 무엇일까?
나는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나 자신도 잘못이다 하는 생각이 있군요. 교황이 왔다는데 난 하등 무슨 소위 교황에 대한 보도도 주의 깊게 읽어보려 하지 않았고, TV 보도도 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럼 무슨 반대하는 생각이 과연 있느냐 하면 터럭만큼도 그런 건 없고. 나도 생각에, 난 어쩌면 이리도 무관심하지?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어쨌건 무관심했는데, 어쩌면 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니 세상의 일이란 한마디로 옳다 그르다, 잘했다 못했다 사람의 생각이 천차만별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영웅적인 행동이라 그럴 테고, 어떤 사람은 심히 악독한 행동이라 그럴 테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생각도 않고 무관심하게 지내는데, 무관심 그게 옳은 걸까? 나는 지금 그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달라지는군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고, 순교한 이들을 성자로 선포하러 간다 그래도 뭐 그러나보다 그랬을 뿐이지 그것도 뭐 그다지 생각해보려고 그러지도 않았어요. 그 일도 잘했다고도 못하겠는데, 각별히 뭐 잘못이다 그런 생각도 없지만, 하여간 일이 이렇게 되는 걸 보고는 나도 마음이 이상하군요.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나대로의 내 생각을 오늘 하는 것이 있고, 요새는 이 일 저 일 바쁜 일이 있고 그런데 오늘 아침엔 왜 그런지 마음이 아주 좀 이렇게 무언지 모르게 좀 슬퍼요. 뭐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어요. 오늘 오후에 우리가 읽을 성경 제 2이사야 그 생각을 주로 하긴 했어도, 무슨 그런 것과 관계도 아닌데 거 알 수가 없군요. 내 마음이 참 그렇다하고 느껴지는 게 슬프군요. 차타고 오면서도 그러고 왔어요.
오다가 중가운데 차창 밖을 보니까 어떤 여자가 서 있는데 어쩐지 그 사람도 얼굴이 보통이 아니에요. 말을 아무것도 않고 천연한 얼굴로 서 있는것 같은데, 그 사람 뒤 뭔가 마음에 걱정되고 슬프다고 하는 그런 말인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다가 그 사람은 자기는 그렇게 그저 여러 사람 속에 나오니까 자기 속을 나타내자는 마음도 없을 터이고, 각별히 숨기자는 마음도 없을 터이고 그럴 건데, 어째 사람이 보면 사람 속을 꼭 알아맞힐 수도 있고 알아맞히지 못할 수도 있지만, 또 꼭 다 알아맞힌다는 게 어디 있어요? 쉽지 않지만 어쨌거나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뭘 이렇게 느끼게 될까? 들어맞는 일도 있고 들어맞지 않는 일도 있지만, 사람의 맘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람의 마음이 다 그런데, 그럼 그건 어딜 겨누고 있느냐 하면, 한 점을 겨누고 있어요. 사람이란, 이렇게 생각하면 꼭 맞힌다 안 맞힌다ᅳ그 생각도 없지 않지만ᅳ그 보다도 중요한 건 어쨌건 사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상대하고 있는 거, 의식적으로 그 사람들한테 내 생각을 알리자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고, 알리지 말자고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 지만 자기 혼자 속에서 나는 어째서 나는지도 모르게 나는 생각인데, 그 생각은 세상에 있는 이루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걸 상대로 해서 있다는 것ᅳ그런 줄도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의 생각이란 그런 것이지요.
그럼 그건 결국은 무어냐하면. 그게 곧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하는 무슨 뭐 그런 말로 설명을 하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 어느 한 분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느 한 순간에도 그대로 알고 그걸 잘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못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안다 나타나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사람의 마음이란 어느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 모든 거를 다 알고 있는,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과 그걸 차지하고 있는, 그 한 점에 관계가 없을 수가 없어요. 그러한 마음이 있다는 걸, 한마음이라고 할지 뭐라고 할지, 그런 걸 사람들이란 다 암암리에 생각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하다 오게 됐어요.
그런데 이제 또 우스운 생각이지만, 저번 날 어느 학교에서 와서 말을 좀 해달라고 해서 그 말을 할 생각하니까, 내가 젊어서 세상이 달라진다고 할 때, 그때의 일을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느라니까, 그때 어렸을 때 듣던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이 났어요. 그때는 학도란 말도 없었지. 그저 서당에나 가는 줄 알고 거기 가서 몇 해 공부하는 게 공부겠거니 그렇게 알 때인 데, 그러다가 서양 신식교육이, 문명이 들어왔고 해서 뭐 이제 우리나라도 깰려고 몸부림치던 땐데, 괜히 깬 건지, 깨려고 하다 못 깬 건지… 닭이 알을 품고 있으면 그걸 까서 새 생명이 나오라고 품고 있는 건데, 그 속에 있는 알이 자기가 그걸 아나 모르나, 우리 생각하는 그런 따위 생각으로 알리는 없지. 모른다면 모를건데, 그렇지만 그게 있다가 20여 일이 지나면 거기서 생명이 나오는 것만은 사실일텐데. 그래 새 시대가 온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무엇도 모르면서ᅳ좀 이렇게 뭘 아노라 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 안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ᅳ대부분이 뭣도 모르고 그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다 어느 누구의 영향이라 그럴 수도 없이, 아주 생생한 그 기분 속에, 일반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학생들이 그런 기분에서 부르던 노래 하나가 “학도야 학도야 저기 청산 바라보게, 고목은 썩어지고 영목이 소생한다” 그래서 가면 이제 우리 그때에 그 신생 기분에 그러던 그걸 얘기하려고 그랬었는데, 실지는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그만 잊어버리고 얘길 못하고 왔는데, 그러고 지나갔는데 우연히 오늘 아침에 아까 얘기대로 무언지 모르게 이상해져요. 그래 찻간에 앉으려니까 왜 내 입에서 자꾸 그 노래가 속으로 반복이 된단 말이에요. 가면서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긴 하는데…… “고목은 썩어지고 영목이 소생한다” ......
그래 내가 스스로 나 혼자 묻기를 나도 인제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 오니까 자연히 그래서 그런 생각에 이러는 거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내가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서 물어 보아도, 뭐 죽는 거 그렇게 걱정해서, 죽기가 싫어서 하는 그런 생각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럼 어떤 의미로 그랬을까? 물론 그때에는 그 젊은이가 “고목은 썩어지고 영목은 소생한다” 새 시대가 나와야 된다. 새 시대가 오려고 한다. 그때 젊은이들의 산 무엇을 돋우려고 그런 노래를 불렀을 건데, 그게 이제 수십 년 전 애기로 거의 80년이 다 지나가고 했는데, 그런 소리가 묵은 노랜데, 그날 하려다 못하고 그러긴 했지만, 그랬기로서니 그게 어째 일부러 그걸 회상하자는 것도 아닌데 입에서 자꾸 그런 노래가 나올까……그러면서 이제 여길 왔단 말이에요.
오는데 오면 올수록 자꾸 뭔지 모르게 비참한 생각이 들어요. 오늘 이 말에 무슨 결론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런 생각인데, 하필이면 여기엘 이렇게 썩 들어오니까 노선생의 첫번 말이 “아이구, 오늘 참 놀라운 거 봤다구. 아주 참 쇼크를 받았다” 그러면서 가까이서 그걸 당하고 보신 일을 애기하신단 말이에요.
나는 무관심하게 지내고, 일부러 무관심하게 하자고 한 것은 아닌데, 어째 그런 사건이 나나? 그래서 나도 교황 생각을 안할 수가 없어. 교황 생각을 하면 200년 전에 혹은 100년 전에 순교한 사람들을 생각 안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순교자라고 그러지만 그 순교가 내게는 조금도 그 순교적인 그런 걸 느끼지 않고 이런단 말이에요. 대개 사람들이 그저 역사상의 그런 일이라고 그러지 순교하는 그 사람의 심정을 거길 알아보려고, 거기 돼 보려고 하는 마음은 아마 별로 없을 거에요. 그렇게 왔는데 그런데 지금 이게 뭐냐. 이제 와서 뒤늦게지만 200년 전에 그때 나라 모양으로, 그때 소위 세상 투쟁한다는 사람의 심리와, 거기 또 이번에 그 동기야 뭐였든지 간에 그 복음을 전하겠다고, 새 종교를 전해주겠다고 하던 그런 사람의 마음, 그래서 왔다가 그 열두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이나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수백 년을 공자, 맹자, 석가의 가르침 속에 내려온다고 하던 사람들이 그 새 종교를 믿겠다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고, 그중에 다른 건 모르는데 그전에 일본사람이 쓴 가톨릭 역사에 보면 그걸 내가 다시 알아보겠다고 하면서도 못 알아보고 있소만—그 사람이 쓰기를, 거기 이벽(李萌)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늘 성자 중에도 올라 있어요. 아마 무슨 인척관계가 돼나 봐요, 정약종, 정다산 하는 이들과도 그렇고, 남종상과도 그렇고……아주 열심 있던 그런 분이었던 모양인데, 그때 이승훈이 북경에서 가져온 가톨릭 책 그걸 보고 연구를 하고 해서 열심 있던 신자였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그 사람은, 나는 잘 모르지만 순교는 아마 못했지—순교는 그 다음에 했던가?……역사가가 그걸 잊지 못해요. 그 사람이 “한국이 이렇게 특별하게 된 가톨릭의 역산데, 이벽이란 사람이 그렇게 유망하고 열심이었는데, 정작 가다가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졌다고, 그래서 그걸 보다가는 이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난다고……” 그랬는데 그 다음에, 내가 아마 그 다음 일을 몰라 그렇지, 이번에 아마 그분이 성자가 된다고 그러지요. 그러나 그렇게 열심 있던 사람도 죽음이라고 하면 참 여간해서 사람이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질 수가 없다 그 말이에요. 그랬다가 다시 신앙을 잡았기에 아마 성인 품위에 오르지. 그러니 믿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 아니냐.
이 우주라고 해서 여기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에 여기 우리는 난 사람들인데, 그러려니 가지각색 일이 많은데,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거기 마지막에 무슨 겨누는 점이 있다면 뭐겠어요. 한마디로 하면, 하나 된다고 하는 자리 그것 하나밖엔 없을 거예요. 뭐 날 때 어떻게 나았다든지 역사가 어쨌다든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었다든지 별별 일이 다 있어서 개인이 있었다 나라가 있었다 그래 왔지만, 그래 그래 마지막에 겨누는 것은 하나 자리에 간다는 거, 유니티(unity)라고 하는 것,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도 결국은 하나 자리에 가자는 생각이에요. 왜 하나에 가자는진 모르지만 사람의 목적, 서로 싸우는 좌익과 우익이 서로 원수가 돼서 죽이지만 죽이는 공산주의자들도 역시 세상이 마지막엔 다 자기네 생각대로 다 한 공산주의가 된다든지, 뭐 하나의 것을 바라긴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그러는 생각 때문에 각각 따로따로 사분오열이 되어 있어요.
그런 생각에서 오늘은 아주 드문, 쉽지 않은 날입니다. 그전에 순교를 해서 죽었던 사람, “그놈들 사람 아니다. 제 조상도 모르고 나라도 모르는 놈들이다” 그러면서 죽여 버렸는데, 가톨릭에서는 존경이나 했지만, 그걸 성인이라고 서품을 하거나 말거나 그까짓 건 큰일이 아니에요. 그것도 역시 사람의 생각에서 하는 거지 등급이 뭐 있겠어요? 복자 따로 성인 따로.
그렇지만 그것도 생각을 하면 마지막엔 어느 한 점, 하나 되는 그 점엘 가는 과정으로 그러는 거겠는데, 그래 그런다면 내가 믿는 종파든지 아니든지, 내 나라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거기 대해서 무관심할 수가 없어요. 교황이라는 분도 어느만큼 한 인물인지는 몰라요. 그이는 물론 보통 마음이 아닐거요. 이 땅에 내려서 하는 첫번부터ᅳ그건 물론 격식이 그래 그러기도 하겠지만, 첫 번 우선 이 땅에다 키스를 하고ᅳ 이 땅과 그곳이 딴 땅이겠어요?
하여간 그랬다고 하는 그 마음이 보통 맘일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다만 한 사람이라도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하는 나는, 나도 역시 그 마음과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할건데,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 하게 그랬을까? (전 서로 있는 것이, 뭣이 서로, 나는 내 아는 것이지 그 사람 아는 것이 그것 아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이건 80이 다 넘은 담에야 근년에 와서 하는 얘기예요, 내가 참 불효자다. 언젠가도 저번에 말했지만, 나는 내 생각에도 집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 아버지 명령을 어긴다든지 걱정을 끼쳐본 일이 없어요. 내 무슨 학교엘 갈까요 이 일을 할까요 말까요 하는 의논도 안해도 대개, 또 아버지도 너 뭘 어떻게 할거냐 그러신 일도 없어요. 그래도 대개 짐작이 가 니까 그렇게 지내왔는데, 지금 와서야 생각이 나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다든지 그런 일은 없다, 그러니까ᅳ물론 크게 자랑을 한다든지 그런 마음은 없다ᅳ그렇게 생각하지만, 내가 그래도 큰 잘못은 없이 살아왔거니 그랬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까 어쩌면 참 내가 불효자다. 그것이 다일 수가 없는데……아버지의 생각은 무엇이지? 아버지의 마음이란? 그거야 말로 공부를 해서 그걸 아는 것이 곧 하나님 찾는거겠는데, 나는 뭐 걱정 끼친 일이 없지……그러고 그저 다행인 듯이 그렇게 지내왔으니, 그러나 어디 그것만이겠나.
그후에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내가 아버지 속에서 났으니 내가 자란 것만큼 뿌리에서 나와서 꽃이 피는 모양으로 무슨 드러낸 것이 있어야겠는데, 그건 못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참 불효 아닌가? 그런 생각이, 도리어 그전에는 좀 자만심을 가졌었는데, 늘그막에 생각하니까 “참 내가 불효다” 해요. 그렇게 깊이 알아볼 생각도 안했어요.
그래 동경 진재 50주년에 대해 쓰면서「아들이 모른 아버지 마음」이라는 것을 썼지만, 그때까지 그걸 몰랐단 말예요. 그러니까 선악이 뒤바뀌는지도 몰라요. 외양으로 보기에 선악이 뒤바뀌는, 선하다고 하는 사람이 악일 수도 있고, 악하다고 하는 사람이 선할 수도 있고,알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건 그 한 분만이 참 아시는 일이지요.
1984.5.6
퀘이커 서울모임 월보9 1984.5월
저작집30; 15-127
전집20;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