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부러진 우산
김 여 정
일기예보에 오늘은 비가오지 않는다고 해서 오랜만에 우산 없이 외출을 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보니 우산을 쓴 사람이 눈에 띈다. 금년 여름은 끝끝내 지리한 비의 잔치로 이어 지려나보다. 안개비인가 싶더니 차에서 내리자 머리가 젖을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진다.
가야할 목적지는 5분쯤 거리인데 흠뻑 젖을 생각을 하니 난감하고 오늘따라 빗나간 일기예보가 야속하기만 했다.
할 수없이 비를 적게 맞을 요량으로 도청 담 측백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며 걸어가는데 손잡이가 없는 우산이 담 벽에 접힌 채 있지 않은가! 몹시 반가웠다. 얼른 펴보니 우산살이 한 개 굽어 있는 버려진 우산, 살 부러진 우산이면 어떠하랴. 비를 막아주는 것이 고마울 뿐, 오늘 이 우산이 집에 있는 새 우산보다 나에겐 더 소중한 구실을 하고 있다.
옛날에 바람이 불고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이 생각난다. 대나무 대에 대나무 살로 만든 우산이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살이 빠지며 힘없이 접혀져 낱낱이 풀어진 우산살과 대를 꼭 움켜쥐고 집으로 와야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것을 어머니께서 바늘에 굵은실을 꿰여 다시 우산의 모습을 만들었을 때에 어머니가 굉장한 기술을 갖고 계신 것처럼 위대해 보였다
그 시절 지(紙) 우산이나 비닐우산이 대부분인지라 찢어진 우산도 곧잘 쓰곤 했다. 내가 직접 써보지 않았지만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기도 했고, 짚이나 띠 풀로 만든 도롱이가 농부들의 우의(雨衣)가되던 때도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골목을 떠들썩하게“우산 고쳐요”.하고 외쳐 대면 우산을 들고 나와 고쳐 쓰고 아껴 쓰던 시절에 풍경은 사라졌다.
요즈음 개업 집이나, 은행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은품으로 받아오는 우산만으로도 넘쳐나 굳이 살 필요가 없게된 우산. 그래서 그런지 우산을 파는 곳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또 너무 흔하다 보니 살이 하나만 빠져도 아무데서나 버려진다. 오늘 내가주운 우산이 하마 트면 쓰레기로 버려져 공해가 될 수도 있지 않았던가. 이렇게 전 주인에게는 거추장스러워 버려졌지만 용도에 맞게 쓰니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물건이 되었다.
이세상 모든 만물이 나로 하여금 꼭 필요로 하는 존재, 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유익하게 쓰여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볼일을 보고 나니 날이 개였다. 우산을 우산 꽂이에 꽂다가 문득 내 자신도 고장 난 우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 튼튼하기만 했던 우산살이 나이 먹어 한 두 개쯤 부러진 그런 우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서글퍼졌다.
내 비록 몸은 늙어 갈지라도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는 되지 않겠다. 남은여생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외롭고 괴로울 때 진실한 위로의 말로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고 그의 인생에 고달픈 비가 내릴 때 오늘 내게 비를 막아준 주워든 우산 같은 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마음속 떨어진 우산을 꿰맨다.
첫댓글
내 비록 몸은 늙어 갈지라도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는 되지 않겠다. 남은여생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외롭고 괴로울 때 진실한 위로의 말로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고 그의 인생에 고달픈 비가 내릴 때 오늘 내게 비를 막아준 주워든 우산 같은 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마음속 떨어진 우산을 꿰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