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변화는 지난해 삼성건설 실적이 예상에 훨씬 못미쳤기 때문이라는 평가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수주 등 실적지표가 모두 하락했다. 경기 침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삼성건설의 실적이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수준이었다는 평가이다.
실제로 2001년 이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삼성건설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한해 동안 매출액이 1조원 가량 감소한 적은 거의 없었다. 같은 기간 경쟁업체인 현대건설이 매출액 9조2786억원으로 전년 대비 27.6% 증가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원가 절감을 통해 삼성건설의 경쟁력을 높이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실제 삼성건설의 매출원가율은 90%대. 건설업체로서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삼성엔지니어링(지난해 기준 83%)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
정 사장이 부임한 직후 삼성건설은 원가 절감을 위한 갖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일부 사업부서에서는 사내 인트라넷과 외주 구매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년도 평균계약 단가의 95% 선으로 맞추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실적 악화 올해는 나아질까
지난해 말 기준 삼성건설의 매출액은 6조7702억원에서 6조10억원으로 11.4% 감소했다.
건설부문의 영업이익은 2331억원으로 전년의 3292억원에 비해 29.2%(961억원) 줄었고 영업이익률도 3.9%에 그쳐 전년대비 1%포인트 떨어졌다. 수주 실적 역시 겨우 10조원을 넘겼다. 그나마 토목분야에서의 선전이 뒷받침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비율도 5.46에서 2.14로 낮아져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 비율이 1 이하면 이익보다 이자로 지급한 비용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현금성 자산도 지난해 2008년에 비해 4000억원가량 줄었다.
◆신규 시장 진출 모색, “뜻대로 안 되네”
삼성건설의 실적 부진은 해외 사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삼성건설의 해외수주액은 2조58억원으로 전년(2조6994억원)대비 25%가량 줄었다. 이는 삼성건설의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건설의 주력 상품은 초고층 건물 등의 건축부문과 교량 및 도로 등 토목공사다. 하지만 이들 상품은 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이 커 안정적이지 못하다.
- ▲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수령(樹齡) 1000년된 느티나무가 식재된 서울 반포동'래미안 퍼스트지'. 이 나무는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경북 고령에서 10억원을 주고 옮겨 심었다.
이에 따라 삼성건설은 새로운 분야와 지역을 개척하려고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재진출이다. 삼성건설은 지난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에 현지 지점을 개설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발주 물량이 늘어날 것을 대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 실적은 전무하다.
올 초 일본 마루베니와 함께 입찰한 사우디 국영전력회사(SEC)의 리야드 민자 발전소 프로젝트의 수주가 유력했지만, 현대중공업에 자리를 내줬고 얼마 전 세계 최고 빌딩으로 기록될 ‘킹덤 타워’ 입찰도 포기했다. 결국 올해 삼성건설은 방향을 돌려 알제리를 거점으로 한 북아프리카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내부 전략을 세웠다.
◆주택ㆍ개발사업 부문도 휘청..래미안 불안한 1위 고수
지난해 말 삼성건설은 한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해 브랜드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응답자의 30% 이상이 최고 브랜드라고 답해 여전히 업계 1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삼성건설 주택부문 관계자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경쟁업체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지만, 그 간격이 크게 좁혀진 것.
주택업계는 래미안의 위기를 다른 건설업체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래미안은 단기간에 브랜드 파워가 급성장했지만, 최근 들어 새아파트 단지에서 하자보수 민원이 제기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개발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용산역세권개발은 자금조달 문제로 시행사와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해 현대건설과 함께 수주한 송도 인천타워 개발 사업 역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재 사업 추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삼성건설은 여전히 국내 건설사 중 가장 경쟁력이 우수한 업체로 손꼽히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점은 삼성건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기술력 역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건설의 기술능력평가는 1조4161억원으로 업계 1위인 현대건설(1조6884억원)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린 투모로우로 대표되는 친환경 건축물 분야에서는 국내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초고층 빌딩, 대공간 건축물 등 특수 건축물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의 시공능력을 갖고 있다.
정연주 사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정 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을 맡은 이후 공격적인 경영과 수주활동으로 2003년 1조1200억원가량이었던 매출액을 2008년 말 기준 2조6355억원으로 235%가량 성장시켰다.
특히 해외건설부문에서의 수주실적은 괄목할 만하다. 2003년 2억4362만달러였던 삼성엔지니어링의 해외 수주 실적을 지난해에는 89억8700만달러로 45배 가깝게 성장시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절대적 기준에서 삼성물산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대내외적으로 여러 도전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라며 “정연주 사장이 부임하고 나서 새로 시작된 경영진단이 삼성물산의 약점을 잘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