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첫날, 동네 한 바퀴
시월, 가을이 한 달을 늦춘 시월에 시작되는 기분이 드는 첫날이다. 정부는 국군의 날을 임시 휴무일로 정해 하루걸러 개천절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휴일이 되어 주중 이틀 빨간색이 칠해진 한 주다. 다음 주에는 한글날도 있어 시월 초순은 시간 배분을 잘해 여가를 실속 있게 보내야 할 듯하다. 당국은 국내 여행을 권장해 내수 진작을 도모하려는데 국외로도 다녀오려는 이도 있을 테다.
나는 치과 진료가 예약되어 하루 동선을 멀게 나설 여건이 못 되었다. 주치의로 정해 다니는 동네 치과 첫 손님으로 갈 참이라 그 이전 산책을 마친 뒤 오전에 치과로 찾아갈 생각이다. 날이 밝아온 이른 아침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지상 주차장 차들은 한 대도 빠지지 않고 빼곡한 그대로였다. 집에서부터 걸어 두세 시간 걸릴 산책 코스를 마음속 그려두었다.
길 건너편 낮은 아파트단지에서 용지호수로 진출했다. 모처럼 도심 속 호수 공원으로 나갔는데 이른 아침 산책로를 걷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맑은 물이 공급되는 수로에 커다란 물레방아는 고장 난 벽시계처럼 멈춰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는 물억새와 갈대가 이삭이 패어 도심에서도 가을 운치를 느낄 만했다. 노랑어리연은 꽃이 모두 저물었고 수련 꽃송이는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산책로에 벚나무 단풍이 마른 잎으로 깔렸다. 어디서나 벚나무는 낙엽이 일찍 졌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도 마찬가지였다. 퇴직 이전 한 근무지였던 교육단지 여학교의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도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낙엽이 모두 졌다. 그 학교 뒤뜰 개교 연륜과 같을 벚나무가 자랐는데 가을이 오던 길목 3년 내리 아침마다 낙엽을 쓸어치웠다. 아이들 청소 지도를 맡은 구역이었다.
호수 남쪽에는 상가 빌딩과 재건축된 아파트단지가 우뚝했다. 호수 가장자리는 부들이나 갯버들이 자라 도심에서도 자연 생태를 가까이 접하는 산책 명소였다. 멀리 정병산과 비음산 산등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걷고 이웃한 용지 문화공원으로 건너갔다. 넓은 잔디밭에는 조경수를 비켜 가며 산책로를 잘 꾸며놓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아 호젓해 좋았다.
용지 문화공원에서 도청에서 시청에 이르는 중앙대로 보도를 따라 걸었다. 아직 단풍빛이 물들 기미는 아닐지라도 도심 거리의 가을이 근교 산보다 일찍 찾아옴은 수목에서 알 수 있었다. 중앙대로는 가로수와 조경수가 우거졌는데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단풍으로 물들면 무척 아름다웠다. 이제 시월이 시작되는데 앞으로 달포쯤 지나 다음 달 중순이면 단풍은 절정을 이룰 것이다.
중앙대로에서 도청으로 이어진 창이대로는 출근 시간대임에도 차량이 한산했다. 임시 휴무로 지정되어 관공서나 회사로 나가는 이들이 적어 차도는 혼잡하지 않았다. 도청 정문으로 들어 동편 연못가를 거닐다 이갑열의 야외 조각상 ‘인간의 길’을 눈여겨봤다. 장복산 조각공원에서 봤던 ‘중력 무중력’의 김영원 작품이 연상되었다. 나신의 한 남성이 두 팔을 펼쳐 벌려 서 있었다.
도청에서 의회로 다가가 청사를 보니 한 곳만 실내등이 켜져 있었다. 거길 지나다 내 고향 현직 도의원이 생각났다. 소멸 위기 경고등이 켜진 기초자치단체라 군 전체를 대표하는 도의원은 한 명인데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동기생이다. 친구는 군서기로 퇴직해 건설업과 더불어 정당 활동을 하다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경합 후보자가 없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투표 당선 도의원이다.
창원중앙역 역세권 상가와 병원을 지나 물향기 공원으로 갔다. 창원중앙역 철로가 놓이기 전에는 경작지와 저수지였는데 상가와 공원으로 바뀐 지 제법 되었다. 물향기 공원을 한 바퀴 둘러 창원중앙역으로 건너가 창원대학으로 내려섰다. 휴일 아침을 맞은 캠퍼스에는 오가는 젊은이들이 드물었다. 대학 정문을 나와 제과점으로 들어 빵과 커피로 간편식을 때우고 동네 치과로 갔다. 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