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아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먼저 공개해야! 이영훈 교수"文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 자체가 잘못 되었을 수 있다" 조샛별(조갑제닷컴)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 문용형을 둘러싼 친일 논란은 문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부친의 이력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내용을 정확히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1978년 부산에서 사망하기까지 보통의 가족이라면 있음직한 부친의 사진조차 공개된 바 없다. 그의 회고록에서조차 부친 문용형의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이토록 베일에 꽁꽁 싸매두니, 문용형을 둘러싼 제3자들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眞僞공방을 벌이는 해프닝이 일어나는 것이다.
위키백과는 故 문용형에 대해 “1936년 함흥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0년 졸업 이후, 함주군 흥남읍사무소 농업계장, 과장을 역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 설명이 덧붙었는데 “2023년 9월 7일까지는 문용형이 1940년에 일본 제국주의 정권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해당 일자 이후 문용형이 공직에 취임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는 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9월 7일은 국회 정무위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백선엽이 스물몇 살 때 친일파였다고 한다면, 흥남시 농업계장을 한 문용형도 친일파가 아니냐’는 발언이 나온 시점이다.
결국 이 발언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문용형을 친일파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의 말단 공무원이라고 친일파라 단정할 수 없듯이 만주국의 하급 장교인 백선엽을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설명이었다. 박 장관은 “국가라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이 부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서 생기는 논란이라는 점이다. 위키백과나 나무위키 등은 ‘1936년 함흥농고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함흥읍의 농업계장 또는 서기로 근무했다’고 기술했었다. 물론 이런 인터넷 사전은 자유롭게 편집 수정이 가능하기에 100% 신뢰할 수 없기는 하다.
문재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도 정보가 구체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일제 때 함흥농고를 나왔다...졸업 후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되어 있는데, 해방 이전에는 공무원으로 복무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이 내용으로는 알 수가 없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의 일”이라며 “박 장관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문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7년 5월 12일자 중앙일보 기사(“가난한 가정사정으로..” 문재인 대통령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보니)도 “그의 아버지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남쪽으로 피난해 내려왔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文 주장대로라면 박민식 장관과 마찬가지로 소송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최근 이영훈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승만TV'를 통해 ‘문재인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가 불분명하거나 잘못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문용형이 1936년에 함흥농교에 입학하여 41년에 졸업했다는 여러 매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근거로 제시한 것이 1936년 3월 18일 동아일보에 실린 함흥농교 합격생 명단이다. 여기에 문용형 이름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중학교 진학은 적령기 소년 인구의 1%에 불과한 엘리트 코스였기에, 각종 중학교의 입학생 명부가 신문에 보도되었다고 한다. 현재 1932, 34, 35, 36년 함흥농교 입학생 명부가 신문 기사로 확인되고 있다. 1936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함흥농업교 지원 354명 중 53명 합격”이란 제목 하에 명단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문용형은 없다. 따라서 1936년 함흥농교에 입학해 41년에 졸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1937년 이후에 입학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함흥농교 졸업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아버지에 관한 회고라 해도, 그것이 정확한 기록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 얼마나 불확실할 수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文을 향해 “함흥농교에 입학한 정확한 연도를 학적부 등을 통해 밝혀달라”고 말했다.
둘째, 문용형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일정기의 공무원 시험이라면 연간 100여 명을 선발하는 보통문관시험을 가리키는데, 이에 합격하면 판임관 이상의 직급에 임명된다는 것이다 즉 함흥읍 서기 또는 계장이었던 문용형이 이런 문관시험을 통해 임명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읍면의 경우 읍면장은 총독부 소속이지만, 그 아래의 직원들은 총독부 소속이 아니었다. 대개 읍면장이 보통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거나 간단한 필기시험을 통해 재량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따라서 문용형이 합격했다는 공무원 시험은 이런 선발시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당시 최고 엘리트 코스인 함흥농교 졸업생이 굳이 보통학교 졸업생들과 경쟁하면서 읍면 직원 선발시험에 응시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함흥농교 졸업 후 농업계장’ 이력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 전 교수는 지적했다. 또한 함흥농교 졸업생들의 관청 취직은 소수에 불과하고 교원, 금융조합, 북선전기 등 대우가 훨씬 좋은 곳으로 취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근거도 들었다.
셋째, 이영훈 전 교수는 文의 ‘해방 후 함흥시 농업계장으로 일했다’는 주장도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국 제일의 공업도시였던 함흥읍은 1944년 함흥부(시)로 승격되었는데, 그 보다 훨씬 작은 공업도시였던 성진읍에도 농업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함흥시청에 농업계가 있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록과 문서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1)문용형은 함흥농교에 진학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2)보통학교만을 졸업한 뒤 흥남읍의 고원으로 취직하여 서기나 계장으로 승진했을 수 있다, 3)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회고는 함흥읍이 재량으로 실시한 전형일 가능성이 있다 4)일제하에서 함흥읍의 서기로 복무했을 가능성은 있다, 5)그런데 계장으로 승진한 연도가 해방 후인지 해방 전인지는 관련 증거가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련 기록을 공개해 증명하지 않는 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영원히 수수께끼라는 결론이다. 왜 자신의 부친 관련 정보를 이토록 불투명하게 공개해놓고 명예훼손만 주장하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