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blog.naver.com/ultra2761/221301444633
일제 강점기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 몇 군데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대전도 대전역을 통해 근대도시 대전이 ‘태동’했고
대전 행정의 중심 측으로는 중앙 도청과 대전 부청사및 상공 회의소가 있으며
대전 경제의 축이 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과 조선 식산은행 대전 지점이 있습니다.
대전의 원도심에 있는 건축물을 찾아보겠습니다.
(구) 대전여중 강당은 1937년에 준공되었습니다. 2011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앞쪽과 뒤쪽 벽면에는 네모진 창을 넓게 설치하여 지붕 선과 나란히 조화를 이루며 자연채광과 환기를 원활히 하고 있습니다.
(대전여중강당 안내판 참고)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로, 한국 고유의 초가지붕을 연상하게 합니다.
1937년에 준공된 대전여중 강당은 아르누풍의 부드러운 지붕선이 특징이며, 지붕 처마 아래는 고전주의적인 수법(치형쌓기)으로
벽돌을 쌓아 처마선을 받쳐주고 있어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전여중강당 안내판 참고)
지붕은 마른 모형의 망형 슬레이트를 파도치는 모습으로 이어서 생동감 있게 연출하였습니다 (대전여중강당 안내판 참고)
창문 주변의 인방은 벽면보다 들어가게 처리한 뒤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건물이 견고하고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사방 모서리에는 벽돌을 쌓기로 쌓아올려 변화를 주었다.
건물면적 360㎡ 정도 되는 단층 건물로, 아기자기하면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대전광역시 교육청이
소유하고 대전여자중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두산백과 인용)
대전역 건설로 ‘철도도시’로 발걸음을 내디딘 대전은 대전역과 옛 충청남도 청사로 이어지는 중앙로를 춘일 정통
이라고 했습니다.
본정통, 영정통과 춘일정통 이 세 도로가 근대 대전의 축으로 현재의 원도심을 이뤘습니다.
대전역 건설 이후 대전역 맞은편 시가지는 대전의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전 경제의 축이 됐던 1937년 개축한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은 일제의 식민 정치를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대전역에서 목척교를 건너 시내 방향,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고 르네상스 양식을 취하고 있는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으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르네상스 풍 신고전주의로 장중한 분위기와 폭과 높이의 비가 2 대 3으로 시각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상부의 수평 돌림띠를 통한 수평선을 강조하였고
화강석 타일로 이뤄진 외관은 세밀한 장식, 고전주의 양식인 좌우대칭으로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입문과 창문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조선식산은행은 대표적인 식민 금융자본이었습니다. 1954년에는 한국산업은행으로 합병되었고 1997년까지 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안경점이 인수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전역 앞 원동 방향 역전시장 건너편 건물로, 민족은행인 한성은행 대전지점으로 1912년 6월 17일 처음 문을 연 후
1943년 10월 1일 조흥은행으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1957년에 건립한 이 건물은 우리나라 근대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민족문화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0호로 등록되었습니다.
2006년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합병하면서 신한은행 대전역 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상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종래 은행의 고전적인 외형을 탈피해 장식 없는 화강암 평판 붙임으로 마감했으며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구성의 모더니즘을 추구한 건물입니다.
대전역에서 원동 사거리를 지나면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띕니다.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 시절 대표적인 수탈 기관이었던 동양 척식회사 대전지점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동양 척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한국경제의 착취를 위해 세운 국책회사입니다.
동양 척식회사는 대전지점은 일제강점기 시절 1921년 4월에 개설돼 1922년 강경과 수원지점을 통폐합한 뒤
옮겨온 것입니다. 1920년대 대전의 지정학적,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조치였다고 합니다.
광복 후에는 체신청과 전신 전화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민간에 매각돼 상업시설로 쓰이고 있으며 전국에 남아있는 동양 척식회사 건물은 부산과 목포, 대전 단 3곳뿐입니다.
부산과 목포에 있는 건물은 근대역사관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붕 중앙 부위에 양각되어 새겨진 태양 형태의 장식물은 제국주의 일제 식민 착취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층 중앙 주 출입구의 석조 캐노피는 사라졌지만 일제강점기 시대 건축양식이었던 좌우대칭적 근대 양식을 고수한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 식산은행 건물과 (구) 동양 척식회사의 건물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습니다.
구 철도청 대전 지역 사무소 보급창고 3호 건물은 철도청 필요 물자를 이동 · 보관하던 창고로 건립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조달본부 대전주재’로 불리다가 ‘철도청 대전지역 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다시 ‘구 철도청 대전지역 사무소 보급창고’로 변경되었다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안내판 인용)
1956년에 지어졌으나 일제 강점기 때 사용하던 기술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지붕틀의 각 부재가 삼각형을 단위로 짜여있는 트러스 목구조로 지붕을 만들고 건물 내부에도 기둥을 설치하지 않아
공간 활용성이 높다. (안내판 인용)
목재 널판으로 외부를 마감하여 통풍이 잘 된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으로 희소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창고 건축의 특징과 역사적 변천을 파악할 수 있는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높다. (안내판 인용)
구 철도청 대전 지역 사무소 보급창고 3호 건물은 대전역 동광장 주차장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력공사 대전 보급소 건물은 처음에 대전 전기 주식회사의 제3발전소로 건립되었습니다.
발전소로서 기능 상실 이후 보급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건물 내외부로 증축과 철거가 이루어졌으나
기본적인 형태는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안내판 인용)
외관은 보통 처마가 없는 근대기의 맞배지붕을 갖는 두 개의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독특한 형태입니다 (안내판 인용)
2층 규모의 발전소 시설과 3층 규모의 업무 시설이 맞붙어 건립되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발전 설비를 옮길 수 있는 견고한 철제 빔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내판 인용)
용마루에는 건축물의 일부가 솟아있는 솟을 지붕이 있어 조형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환기와 채광에도 좋다. (안내판 인용)
적벽돌과 흑회색 벽돌의 배색, 다양한 쌓기 방법 등에서 건축 당시의 재료와 기법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안내판 인용)
의장적인 측면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구조제는 건립 당시 산업시설의 건축 수법을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안내판 인용)
대전 원도심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들은 도심 속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는 빠져 있지만 구 충남남도청에서 시작하셔도 됩니다.
도보로도 충분히 여행하실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한군데 한군데 찾는 재미와 비록 아픈 역사 이야기지만 역사 공부를 하시는 재미도 있습니다.
대전의 유명한 성심당 빵을 드시며
역사의 현장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은 추억을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내 모교를 여기서 보다니..
나도 …내 모교가 ,,,!!뙇!
헐 저 다비치안경 일제때 건물 같다고 하고 지나갔는데 찐이였구나
헐 다비치 건물만 근대건물처럼 보였는데 찐이였군
아빠 말로는 대전역 뒤에 일본인들이 쓰던 건물들 있었다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 완전 일본식 건물이라 집안에 다다미랑 화로?도 있었다던데
도청은 축에도 못끼는거였구나
다비치 건물....!!!! 띠용
소제동도 그렇지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