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람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 안지숙, 강이나, 정재운 지음
사현금 무크 4
쪽 수 : 296쪽
판 형 : 125*195
ISBN : 979-11-6861-763-6 03810
가 격 : 18,000원
발행일 : 2026년 10월 12일
분 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책 소개
사현금, 네 개의 현이 완성한 네 번째 선율
일곱 명의 소설가가 저마다의 목소리로 기록한 오늘의 삶
▶ 일곱 개의 색이 어우러져 무지개가 되듯,
동인 ‘사현금’ 네 번째 무크지 발간
소설 동인 ‘사현금’이 네 번째 무크지 『네 번째 사람』을 펴냈다. 사현금 동인인 김하기·강동수·박향·정인 네 작가에 안지숙·강이나·정재운 세 작가가 함께해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을 실었다. 분단과 민주화 운동의 기억, 세기말의 그릇된 믿음, 이민 가족의 해체, 아버지의 자서전, 머물 곳을 잃은 사람들, 멈춰 버린 청춘까지. 일곱 편의 소설은 우리 시대의 그늘을 저마다의 목소리로 비춘다.
‘사현금(四絃琴)’은 네 줄 현악기라는 뜻으로, 네 개의 현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화음을 이루자는 동인의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그 뜻대로 일곱 편의 소설은 작가들이 직접 살아내고 지켜본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끝나지 않은 시대의 기억
김하기, 강동수, 박향 세 작가는 지난 시대의 그림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드리워져 있는지 따라간다.
표제작인 김하기의 「네 번째 사람」은 작가가 오랫동안 붙들어 온 분단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군경의 추적을 피해 ‘땡점’의 집에 숨어 사는 무장공비이자 ‘땡점’의 작은아버지를 목격한 어린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로 인해 변한 ‘나’와 땡점의 관계를 통해 소설은 오랜 분단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 놓은 상처를 보여준다.
강동수의 「재심」은 43년 전 대학 시절 학생 시위를 이끌다 감옥살이를 한 60대 중반 남성의 이야기다.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던 동지들은 고단한 세월을 지나 어느덧 노년에 이르렀다. 화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올리며 뜨겁던 젊은 날을 복잡한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박향의 「어떤 농담」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무지와 잘못된 믿음을 그린다. 2000년을 앞둔 세기말, 세상이 곧 끝나고 믿는 자만 구원받는다는 말이 떠돌던 시절을 초등학생이던 화자의 눈으로 돌아보며, 그때의 공포와 맹목적인 믿음, 거짓의 그림자를 짚어 낸다. 종말론 교회 신도였다가 이제는 태극기 부대가 된 어머니의 삶은, 상식과 진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거짓과 선동이 차지한 현실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작품이 그리는 것은 지난 시대지만, 결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분단이 남긴 두려움, 꺾여 버린 젊은 날의 이상, 거짓을 믿게 만드는 맹신은 모습만 바꾼 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세 작가는 ‘역사’라는 큰 이름 뒤에 가려졌던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불러내며, 우리가 아직 그 시대를 다 건너오지 못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 집과 자리, 지붕 아래 무너진 삶의 거처
정인, 안지숙, 강이나, 정재운 네 작가는 ‘집’과 ‘자리’를 통해 관계가 허물어진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상처가 아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정인의 「해 뜨는 집」은 이민 가족의 이야기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느라 지친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다가 끝내 뿔뿔이 흩어진다. 소설은 자식에게 이기적이었고 이제는 뇌전증으로 고통받는 화자의 어머니가 가족을 무너뜨린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피해자였음을 드러내며 가족의 파국을 한 개인의 잘못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안지숙의 「지운 자리」는 아버지가 병상에서 쓴 자서전 원고를 정리하는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생애를 되짚는다. 세상일에는 엄격했지만 가족에게는 무책임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는 기관사로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러나 그 아버지 역시 집 안에서는 권위적이었고, 아들을 앞세우고 딸을 낮춰 보는 낡은 생각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소설은 고단했던 지난 시대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의 상처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강이나의 「나비비파」는 ‘집’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엮는다. 보육원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 빈집에 몰래 들어가 사는 청년, 학교에서 밀려나 새 학교를 찾아야 하는 자폐가 있는 아들, 무너져 가는 빈집을 돌보는 여성, 그리고 빛의 난반사로 죽은 수족관의 물고기 ‘나비비파’까지. 삶을 버티게 해 주는 최소한의 공간을 잃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 사이의 끈이 끊어지고 함께 살아가는 울타리가 무너져 가는 오늘을 마주하게 한다.
정재운의 「매끈한 지붕」의 화자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30대 여성 사진가다. 젊은 날 사랑했던 ‘선배’와 헤어지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화자는 6년 동안 시간이 멈춘 듯 살아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마을을 찾은 그는 그곳에서 오래 멈춰 있던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
네 편의 인물들은 모두 머물 자리를 잃었거나 잃어 가는 사람들이다. 집이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고, 가족이 있어도 서로에게 기대지 못한다. 작가들은 그 무너진 자리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독자는 그 시선을 따라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자리가 되어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할 것이다.
▶ 인공지능이 대신 써 줄 수 없는 이야기
『네 번째 사람』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모두 작가들이 직접 살아내고 곁에서 지켜본 삶의 이야기다. 인공지능은 그럴듯한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오래 견뎌 온 시간의 무게, 끝내 말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미안함, 놓지 못한 그리움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일곱 작가는 바로 그 대신할 수 없는 자리를 한 사람의 목소리로 기록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나간 시대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도 사람은 어떻게 삶을 이어 가는지를 조용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연관 키워드
#사현금 #동인 #무크지 #단편소설 #근현대사 #가족 #세기말 #단절 #소외 #AI
책 속으로
p23
어린 시절, 세상은 아직 단순했다. 어른들이 내어놓는 말의 무게도, 전공비에 새겨진 문장의 차가움도, 내가 알 수 있는 것도 감당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댕바위에 세워놓은 전공비에 새겨진 ‘3’이라는 숫자에서 완결이 아니라 빈틈을 느꼈다. 국군의 총에 의해 사살된 무장공비 3명의 숫자는 돌 위에 변함없이 새겨져 있었지만, 내게는 물음표 같으면서도, 누군가를 지워버린 자국 같았다.
_「네 번째 사람」
p65
사십 년간 밀봉된 호리병의 봉인이 뜯겨 나갔다. 아라비안 나이트 속 어부가 건져 올린 구리 병에서 튀어나온 마왕 같은 묵은 기억이 나를 덮쳤다.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_「재심」
p113
지방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와 있는 거리는 이런저런 색깔 옷을 입은 선거원들로 시끌벅적했다. 거리와 뉴스와 SNS는 알 수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고, 자극적인 구호들은 사람과 차량의 바퀴 사이를 휘감고 지나가며 여운을 느낄 사이도 없이 반복되었다. ‘알 수 없는 확신’이라는 말은 엄마가 자주 쓰던 말이었다. 어떤 확신인데? 하고 물으면 그걸 어떻게 딱 잘라 말하느냐? 이유 없이 느껴지는 확신이 진짜 확신이라고 세상 그 무엇보다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_「어떤 농담」
p159
마침내 엄마가 발작을 멈추었다. 엄마는 근심 없이 깊은 잠에 빠진 아기처럼 갑자기 사지를 무방비하게 늘어뜨리고 고요해졌다. 조금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평화롭기까지 한 얼굴을 보면서 엄마가 쇼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빠는 여전히 침대 곁에 앉아서 엄마의 두 손을 거머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웅크린 어깨에 올라앉은 피로가 아빠의 긴 목을 꺾어버릴 것 같아서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_「해 뜨는 집」
p197-198
아버지는 침대를 반쯤 세운 채 플라스틱 식판 위에 메모장을 올려두고 있었다. 새마을금고 달력을 잘라 더블클립으로 묶은 것이었다.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앞 장은 유난히 얇았다. 종이의 결을 따라 글씨의 자국이 눌려 있었다.
_「지운 자리」
p229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는 아버지의 냉장고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고 했다. 이웃들이 나눠준 음식이 많이 있었고 오래된 음식은 하나도 없었으며 마지막까지 굶주린 흔적은 없었다고. 그리고 다행이라고 했다. 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무연고 추모의 집에 5년 동안 머물다가 5년 뒤에는 합동 안장될 처지였는데 가족의 품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사회복지사가 효진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효진은 날카롭게 되받아쳤다. 왜 그쪽에서 그런 인사를 하는 거죠.
_「나비비파」
p259
느낌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느낌표가 붙어 있지 않아도, 붙어 있지 않아도… 이어질 말이 얼른 튀어나오지 않는다. 충분하다, 라는 말로 맺으면 안 될 것 같다. 몸을 틀자, 눈앞에 바다가 들어찬다. 충분하다는 말은 저 가득한 물에나 어울린다. 드물게 예외가 있겠지만, 좋은 것(羊)이 크면(大) 결국 아름다운 것(美)이 된다. 그래서 충분하다는 아름답다와 쌍생아가 아닌가 생각한다.
_「매끈한 지붕」
저자 소개
김하기
1989년 단편 「살아 있는 무덤」(『창작과 비평』, 가을호)으로 등단
작품집 『완전한 만남』, 『은행나무사랑』, 『복사꽃, 그 자리』 외
제1회 임수경 통일문학상, 제1회 부산작가상 수상,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
강동수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장편소설 『제국익문사』, 『백탑의 달』, 『처용의 바다』 외
요산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외황강문학상 외 수상
박향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좋은 여자들』, 『즐거운 게임』, 장편소설 『에메랄드 궁』, 『희주』 외
세계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외 수상
정인
2000년 〈21세기문학〉 등단
작품집 『그 여자가 사는 곳』, 『만남의 방식』, 『누군가
아픈 밤』 외
노근리평화상(소설 부문), 백신애문학상, 이주홍문학상 외 수상
안지숙
2005년 〈신라문학상〉 등단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장편소설 『우주 끝에서 만나』 『스위핑홀』, 『데린쿠유』 외
부산작가상 수상,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강이나
2018년 무영신인문학상, 202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1그램의 재』
부산소설문학상 우수상 수상
정재운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
요산김정한창작상 수상
차례
책을 펴내며
네 번째 사람-김하기
재심-강동수
어떤 농담-박향
해 뜨는 집-정인
지운 자리-안지숙
나비비파-강이나
매끈한 지붕-정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