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들마저 숨어 버린 깜깜한 바다
눈 부릅떠도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곳 어디쯤에선가
돛배는 거친 파도에 낙엽처럼 날렸네
갈 길 잃었지만 목적지는 더욱 뚜렷해
우이도 성산봉 동백꽃도 보고 싶고
모래 언덕 바람 소리 더욱 그리웠다네
목포 서남쪽 64킬로 소 귀를 닮은 섬
스물다섯 살 문순득(1777~1847)은
흑산도로 홍어 사러 가다 태풍 만나
길을 잃고 덧없이 먼 바다 헤매었네
오키나와, 베트남, 필리핀. 마카오 거쳐
3년 2개월 만에 고향 땅 다시 밟았네
정약전이 소식 듣고 <표해시말> 펴내
5대손 문채옥이 평생을 품고 살아왔네
70 평생 영산포에 홍어 내다 팔아 온 그
지금은 우이도항에 동상으로 일어서서
드넓은 세상 다시 꿈꾸고 있다네
* 표해시말
1801년 1월 문순득이 우이도에서 흑산도로 홍어 사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3년 2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정약전이 문순득의 이야기를 듣고 쓴 책
2
순조 1년 신유박해 때 마흔네 살 정약전
얼어붙은 겨울바다 끝, 우이도에 귀양 오고
홍어장수 문순득은 표류하다 길을 잃었네
3년 2개월 지나 서당골에서 만난 두 사람
약전은 순득에게 하늘 아래서 맨 처음으로
넓은 세상 보았다며 천초天初 호를 주었네
순득은 약전을 통해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약전은 하늘만큼 너른 세상 처음 알았네
삶의 길이 꼭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둘의 만남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
약전이 59세, 유배 16년 만에 눈 감으니
우이도가 온몸 흔들며 파도치듯 울었네
순득은 홍어 들고 서당골 상가로 달려가
밤새도록 통곡하며 홍어잔치 벌였다네
두 시람은 홍어와 함께 시간 속을 헤엄치고
홍어 때문에 끝내 헤어질 수가 없었다네
3
바다가 소리쳐 울며 파도치는 날
솟아오른 칼날을 순득은 보았는가
두꺼운 고래의 배도 가를 만큼
송곳처럼 날캄한 꼬리 보았는가
꿈속에서 연이 되어 날아오르고
검붉게 피어나는 연꽃은 보았는가
수컷이 두 개 가시로 찔러 교미하는
해음어의 사랑법을 아는가
꼬리에 독 있어 사람도 죽인다는 거
선비님은 여태꺼정도 몰랐지라우
수치보다는 암치가 더 맛이 있고
1년에 새끼 딱 두 마리만 낳는다는
그 요상한 이유는 알고 계시남요
동지 지나 입춘까지가 살이 통통 쪄서
맛이 쫄깃하다는 것도 모르셨지라우
두엄 속에서 삭힌 홍어 코빼기 먹고
콧침 맞은 것 맹키 얼얼한 기분 아실랑가
- 홍어, 문학들 시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