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일부국가에서부터 시작하여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 스트리트 증권 시장의 대폭락에 의한 이른바 암흑의 목요일날로 인한 미국 경제시장 붕괴에서 세계로 확대된 전세계적 공황을 의미한다.
이로 인하여 기업들의 도산이 일어나고 이는 29년부터 대부분의 공장문을 닫게되는 계기가되었으며
이러한 기업들의 위축된 행동은 대량 실업과 인플레이션 그나마도 안정된 주식가격의 폭락등을 초래하게 되었다.
개별 국가경제들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고 자본의 흐름도 자유로왔기 때문에
공황은 세계적 규모로 짧은 시간 내에 확대된 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는 그 당시 아직 발전되어 있지 못하여 피해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로인해 세계자본주의는 대공황에 의하여 1920년대의 황금기가 종언을 고하였다.

대공황은 1929-39년 무렵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산업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지속된 경기침체를 가리킨다. 1920년대의 미국 경제는 호황을 이루었으나 1929년 10월 암흑의 목요일이 선언되면서 좋던 경기는 막을 내렸다.
이 때부터 아국 및 유럽의 경제는 계속 후퇴를 거듭... 1932년까지 아국인 미국 노동자의 1/4이 실직되었다.
불황의 영향은 곧 유럽 경제에 파급되어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과 동유럽 여러 산업국가에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유럽의 경우 과격한 인민들의 폭동과 파업으로 인해 정부가 골치를 썩일정도로 사회세계는 혼란해져있었고
그 상황을 틈을 타 사회주의사상이 인민들에게 틈을 파고들어가기시작했다.
커뮤니스트코뮌의 씨앗이 퍼져가고있었던것이다.
또 강력했던 산업국가들마다 강력했던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외국상품 수입에 반대하는 정책을 세움에 따라
1932년 무렵 세계무역의 총가치는 반 이상 줄어들었다.
불황은 정치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공산주의세력이나 파시스트위주의같은 극단세력적인 정치파벌들의 세력이 확산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위신이 떨어지는 중대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에 전체주의로 기울지 않은 나라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대량 실업과 불황에 시달렸다.
암흑의 목요일로 인한 금융공황의 도미노 현상은 후버행정부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후버는 "미국경제는 튼튼하니 언제든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만하였고 점차 미국경제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려 하고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미국의 경제붕괴로 인한 여파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은행인 크레디트안슈탈트를 31년 5월에 파산으로 몰아게되었으며,
이 여파는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
1931년 9월에는 영국을 휩쓸고 1993년 3월에는 미국이 금본위제에서 이탈한다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물본위와의 붕괴에까지 이르게되자
이 포괄적인 의미의 세계대공황은
33년 여름에는 세계각국경제타개책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면서 불황으로 옮겨가고야 말았다.
결국 대공황은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장기정체를 나타냈으며,
호황으로의 회복을 보이지 못하다가, 그 뒤의 만성적 불황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 때까지 전례도 없었던
자본주의의 자동회복력 상실을 나타내 순조로운 성장력을 보여주는 사회주의와 대비되었다.
세계의 대세는 영국의 스털링 특혜제도의 성립을 기회로
세계무역의 블록화와 그것에 대항하는 파시스트 국가의 국가독점자본주의화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블록경제를 통한 수정자본주의를 소련은 자급자족경제를 통하여 해결책을
타개해 나가고 있었다
*)예외점이 있다면 소련은 어차피 대공황에 휩슬리지않았다는점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진영이
이미 그들에게 경제적인 압력을 가했었고 인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게되었으나 레닌 영도하에
국유화의 이점을 이용 농업에서는 대대적인 단체공동농장을 공업적으로는 계획경제를 통한
자급자족을 노렸던것 이것은 제정시절때부터 화폐사용에 익숙해졌었던 러시아 여자인민들로인해
대폭 수정이되어 화폐도입과 소규모 시장경제 부활을 통해 Nep[신경제정책]으로 탈바꿈된다...
[물론 이는 스탈린에의해 또 다시수정되게된다 1차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하여 Nep는 폐지되었던것...]

1931년 후버행정부의 늦은 대책이 시작되었다. 물론 후버로서는 과감한 정책이라고 말할 수있었으나
이미 쓰러져가는 미국 경제를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자본이었다. 결국 1932년 우리는 그유명하고도 유명한
회사에서 두번이나 짤리고 대학시절 마약복용을 한경험이있으며 브랜디의 4/1을 마시고 여자를 탐하는[?]
대통령인 프랭클린.D.루스벨트를 만나게된다. 쓰러져가는 미국을 어떻게든 세워보려는 이 호색한은 곧 참모진과 함께
다른 국가의 자금으로서는 행할수없는 초거대 계획[?]인 뉴딜정책을 수립하게된다.
3R정책에의해 본격적인 구조,회복,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첫 시발점으로 정부에서 대대적인 빈민층에 대한 지원과
미국에 당장은 필요없는 시설들이 지어지기시작하였다 수십곳의 댐,도로,공항과 군사기지 공공시설을 짓고
광대한 미국농원의 밀밭과 가축들을 불사르고 도살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모든것은 빈민들에게 제공되거나 소각되었다
이것은 곧 국민들의 세금으로 반영되는 정책이었다. 당연히 세금을 내는 합법적인[?] 시민들의
반발이 심하였지만 '묻지마식의 돈퍼주기 정책'은 효과를 보기 시작하였다.
일시적이었지만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지옥이 풀려나갔던 것.....

"......뭐 그렇게 된것이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알다시피 구체적으로는 해결되지못했어 점점 정책의 효과는 줄어들어가고 그에 비례해서
루스벨트의 지지율도 떨어져만갔지... 하지만...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어
[물론 처음엔 그도 이걸 피해갈려했었지만말이지...]
바로.........

첫댓글 말머리
끝났나 유리? / 아닙니다 서기장동무 아 막 레드얼럿2의 추억이...ㄲㄲ
역사공부가 되는구나!
유태인 형들의 노력의 산물일거야. 대공황은(음?)
토미건을 든 미군보병
끝났나 유리? 아닙니다 서기장동무 이제 시작입니다.
우린 동맹국이란 말이야 이 정신병자야!
우리 로마노프 가문은 유서깊은 가문이란 말이오!!!
당신네 집안사정은 내 신경쓸 필요 없어!
그런데 위 글의 의견에 대한 비판론이 잇습니다. 일단 공황이란 지극적으로 자본주의적인 현상으로 오히려 공황기에 기반이 약한 회사가 없어지고 건전한 기업만 남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후버행정부는 지나치게 그대 시장에 개입하여 결국 공황을 끝낼수있는 시기를 놓쳤다는것입니다. 그리고 그이후에 루즈벨트는 단지 후버의 정책을 이어 받았을뿐이라는이야기도 있습니다.(모던타임스라는책을 참조)
알비스노래이네요..
엘비스 프레슬리...캬아...노래 잘 하죠...ㅋㅋㅋ 레드얼렛2의 추억이...새록새록...오랜만에 영양가 있는 글...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