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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 화목 (막3-45)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찬양 : 내 평생소원 이것 뿐
본문 : 막9:38-50절
☞ https://youtu.be/K4LZbh2fmFU?si=-ce_0Gt5xG5jSVdR
두둥 ~
드디어 1년의 수고를 통해 중보기도 세미나 교재가 인쇄되어 나왔다. 예상과 달리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흥분과 기대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강사님을 만나 뵙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교재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무엇보다 먼저 달려가 포장을 뜯고 보니 표지가 멋지게 나를 반긴다. 흥분 ~
그리고 내용을 보니 인쇄의 질과 디자인이 아쉬움이다. 인생은 무엇이든 제값을 한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작은 비용을 투자하여 큰 대가를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가 나를 아쉬움에 실망케 한다. 아마추어인 나의 디자인 솜씨와 인쇄의 투박함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 ~
그러나 여기에는 더위와 싸우고, 시간과 싸우며 밤잠을 설치며, 오직 작은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쏟아낸 열정이 담겨 있다. 주님 받으소서. 당신이 주신 마음을 믿음으로 표현했사오니 주님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요한의 한 질문으로 시작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기록되었다. 38절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요한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막았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요한과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을 보았다. 문제는 그가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어서 제자들은 막았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졌다는 말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자신들만의 권한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면 매우 당연한 태도다. 바로 특허처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 놀랍다. 39-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이것은 당대 로마사회나 히브리 사회의 통념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말씀이다. 로마의 법과 질서라는 규율에 순종하는 것이 필수인 사회다. 유대인도 이방인과의 분명한 구별을 두고 할례를 행해야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단지 하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를 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연 설명을 하신다. 41-42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 주목되는 것은 <물 한 그릇이라도>라는 말과 <작은 자들 중 하나>라는 말이다.
우선 팔레스타인 지역은 더운 기후다. 그러기에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호의다. <물 한 그릇>은 이처럼 작고 사소해 보이는 행동임에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보상하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작은 친절조차 예수님은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신다. 로마에 있는 이방인교회가 비록 여러 가지로 연약하지만 그들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세상은 큰 것을 자랑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기억하는 나라다. 아멘.
<작은 자들 중 하나>라는 표현은 히브리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 즉 어린이, 가난한 자, 과부, 병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가리킨다.
세상은 이들을 무시했고, 그래서 소외된 존재다. 영적이든 육적인든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미숙함과 불편함을 가지는 이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라운 선포를 하신다. 이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연자맷돌은 매우 크고 무거운 돌로, 두 사람이 함께 돌려야 할 정도의 크기라 한다. 이런 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
작은 자들 중 하나인데 뭐 이리 큰 심판을 내린다는 말인가?
세상적 가치관으로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님께 그것은 영원한 형벌이 따르는 엄청난 범죄라는 것이다. 로마 사회 사회적 약자들을 이용하고 무시, 멸시, 천대하던 시대에 이런 메시지는 혁명이다.
발을 찍어버리고, 눈을 빼버리며 이 죄악에서 벗어나라고 경고까지 하신다. 왜냐하면 지옥이 너무도 힘겨운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결론을 맺으신다. 50절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당시 사회에서 소금은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보존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는 것은 본래의 역할과 가치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인이 본래의 신앙적 역할과 사명을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본질적인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경고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 즉 화목함이 교회 공동체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화목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생활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란 말이다. 화목함의 본질이 빠진 교회는 결국 작은 자를 실족하게 만드는 죄악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다. 아멘. 아멘. 아멘.
앞서 요한의 질문으로 연결하여 보면
<제자는 아니지만, 즉 내 편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란 말이다.>
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은 무서운 범죄이고, 작은 자들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일은 결코 상을 잃지 않는 너무도 소중한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신다.
오늘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세상 나라는 내가 가진 힘 앞에 세상이 굴복하기까지 싸워 점령하고, 누가 높으냐, 누가 잘하느냐, 누가 일등이냐를 가르기 위해 싸운다. 아니 이길때가 호시탐탐 그 자리를 겨누고 살아가기에 적을 죽이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분명 내 편이 아니고, 나와 다르지만 그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도 물 한 그릇에 불과한 너무도 평범하고 하찮은 수고마저도 결코 상을 잃지 않게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또 그런 사람의 수고를 무시하고 실족하게 한다면 엄청난 심판을 받게 할 만큼 그들과 화목하고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일이 본질인 공동체라는 말이다.
오늘 나는 목회사관학교 강의안을 준비하고, 중보기도 세미나 교안을 작성해야 한다. 바쁘게 금주간 마무리 해야 한다. 나를 대하는 태도에 맞추어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며 그리스도를 향한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화목을 이루는 자로 서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주님 ~
주님, 이 하루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는 자로 화목이 본질로서 내 마음에 두고 살아내야 할 가치임을 기억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본질을 지켜내며 세상의 가치에 혁명을 만들며 교회를 세워가는 날 되게 하소서. 이 종은 오늘도 주 말씀을 이루기에는 너무도 연약합니다. 주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허락하사 주님처럼 오늘도 살아내어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웨이브리즈: 플랫폼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며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목회사관학교: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재정적 필요: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스페이스 알 사역: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틴케이스 공간: 젊은 세대를 세우는 공간으로 소중히 쓰임 받게 하소서.
작은교회 부흥: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충주 라마나욧: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