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24. 상상 테마23 - 비유적 상상력으로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시는 은유다’, ‘시는 비유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시인들이 많다. 시가 직접적인 언술보다는 다른 것에 빗대어서 말하는 속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빗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에 표현하려고 했던 원관념이 모호성이나 애매성, 막연함을 가지고 있을 때 선명한 심상을 불러일으킬 보조관념을 끌어와 빗대면 명징하게 원관념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유에 대한 정의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현상이나 사물은 이미지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이미지를 동반한 보조관념을 통해 쉽게 감각할 수 없는 원관념을 감각할 수 있도록 비유가 도와주는 셈이다.
비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 중에 하나는 시의 언술을 갖는 단조로움을 탈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유적인 장치 없이 시적 대상이나 시적 현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진솔함이 흠뻑 묻어나는 시를 창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언술로 그려지는 머릿속 그림이 단조롭게 되어 시를 ‘돌려 읽는’ 맛이 떨어지게 된다. 통쾌하게, 시원시원하게 전달되는 맛은 좋지만 시를 음미하면서 되새김질하는 맛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시에 음미하는 맛을 주고 싶다면 ‘비유적 상상력’을 통해 창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비유를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익숙하게 설정하면 시적 재미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사성이 있는 대상과 현상을 찾아 비유를 구사하되, 익숙한 것들로부터 달아나는 기지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우선 내가 시에 표현하려고 하는 원관념이나 메시지를 분명히 머릿속에 인식해야 한다. 만약 사랑이 모티브라면 그냥 막연한 사랑을 떠올리면서 비유할 보조관념을 찾지 말고 구체적인 사랑의 형태나 속성을 상정하고 보조관념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진짜로 죽음과 맞바꿀 만큼 사랑을 한 화자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고독과 외로움에 미치도록 몸부림을 친다고 하자. 그것은 구체적으로 간절하지만 선명하지가 않다. 보조관념을 통해 죽을 만큼의 사랑임을 증명해야 한다. 최승자 시인의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꽂아다오.」와 같은 구절을 탄생시켰다. 쓰고자 하는 원관념의 속성을 분명히 했다면 이제 최승자처럼 상상력이 증폭되는 보조관념을 찾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원관념과 지나치게 유사한 것을 찾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사성이 50% 이상 되는 것보다 유사성이 10% 이내로 있어야 훨씬 더 신선한 비유가 된다.예를 들어 은유적으로 ‘A는 B이다’ 형태로 표현한다면 ‘사랑은 어머니다’나 ‘사랑은 십자가다’와 같이 유사성이 많은 것은 쓰지 말고, ‘사랑은 창문이다’ ‘사랑은 거울이다’ ‘사랑은 백지다’ ‘사랑은 버섯이다’ ‘사랑은 타인이다’ ‘사랑은 쥐새끼다’와 같이 유사성이 최대한 떨어지는 것과 상상을 통해 맞물리게 해야 한다.(유사성이 단 1%도 없으면 비유가 안 되니 최소한 유사성이 1% 이상 있어야 한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광어 한 마리 9900원 / 하린
생의 조건으로 나의 형벌은 낮은 포복이다 퇴화된 부레는 노비였을지도 모를 할애비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고 뱃가죽은 착 바닥에 붙이고 있을 때 흘러나온 웃음은 비열하다 저당 잡힌 영혼의 값은 겨우 9900원 자존심은 늘 질기지도 않고 물컹하지도 않은 먹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리한 칼날만 다가오면 몽땅 내주고 속수무책이 되어야 한다 수족관이 한바탕 출렁거린다 얇게 썰어진 살점이 한 점씩 먹힌다 소주잔이 파도처럼 오르내리고 얼굴이 주의보 수준을 넘어 경보 상태로 붉게 위태로워진다 창자까지 모조리 넣은 매운탕이 빠른 가락으로 겨울 바다를 건너갈 때 만취한 중년 사내가 소화 덜 된 찌꺼기를 쏴악 밀어 올린다 쏟아진 부유물 속엔 붉은색 상흔이 군데군데 처박혀 있다 그도 저가로 도시에 공급되는 한 마리의 광어다 생의 조건으로 우리의 형벌은 낮은 포복이다 ―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문학세계사, 2010.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밑바닥 삶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의 존재성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성을 직접적으로 언술하게 되면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진지함이 묻어나서 진정성은 전달될지 모르지만 ‘나만의 시’에 도달하지 못한다. 비슷비슷한 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매력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읽는 맛을 증폭시켜 줄 나만의 시적 장치가 필요했다. 필자가 생각한 시적 장치는 비유적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통해 원관념인 저임금 노동자의 비참한 생을 보조관념인 9900원밖에 하지 않는 광어에 빗대 표현했다. 따라서 이 시의 장점은 비유적 상상력이 되는 셈이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저가로 팔려온 광어다. 광어는 횟집 수족관에 갇힌 채 잠깐 ‘자유 아닌 자유’를 맛보고 있다. 규격화된 수족관이 왠지 노동자를 가두고 있는 공장인 것만 같다. 광어는 어느 순간 해체되어 접시에 오른다.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 소화가 되는 과정이 저임금 노동자가 자본주의라는 뱃속에서 소화되는 과정인 것만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처음부터 돈이 없는 자는 빈곤을 유전자처럼 물려받는다.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고 밑바닥에 배를 착 대고 생활한다. 힘이 센 자본가 앞에서 “자존심은 늘 질기지도 않고/ 물컹하지도 않은/ 먹기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예리한 칼날만 다가오면 몽땅 내주고/ 속수무책이 되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저가로 공급된 광어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이미지화시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광어로 대변되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빙의 상태가 되어 극대화하기 위해 필자는 이중적으로 체험을 했다. 하나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고 또 하나는 광어의 삶이다.저임금 노동자는 일당이나 월급을 너무나 적게 받기 때문에 장시간 일을 해야 하고 항상 피곤에 절여져 있다.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지 못한 채 쳇바퀴 돌 듯 제자리만 반복하는 삶을 산다. 수족관에 잡혀온 광어도 자신에게 매겨진 가격이 9900원인지도 모르고 어쩌다 꿈틀꿈틀 헤엄치기만 한다. 가격이 9900원으로 매겨졌다는 것은 그만큼 빨리 팔려서 빨리 죽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해체가 된 후에는 회를 남기고 매운탕을 남긴다. 모조리 다 내주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두 존재의 삶을 상상으로 체험한 후 필자는 둘의 공통분모만을 남긴 채 그것을 비유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맞물리게 했다.
* 또 다른 예문
도서관의 도서관 / 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으나 말 한마디 못핶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선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스테이플러 씨 / 이규정
그는 서류들을 한 코에 제압하고 있다. 바람의 두께에 따라 뒤집어질 수도 있지만 이미 꿰인 코는 염기서열을 갖는다. 하얀 낱장에 뼈대를 두고 있는 얼굴들
묶인 것으로 질서가 된 몸이지만 위아래 각을 맞추는 것은 복종의 의미 자세를 낮추고 하나의 각도와 눈높이로 사열되어 제왕에 예의를 갖추듯 손발을 맞추고 있다.
어떤 묶음도 첫 장 머리에서 움직이고 펄럭이는 팔과 다리를 갖게 된다. 간혹 흩어질까 묶인 것들끼리 권卷이 된다. 날개를 갖고 있어도 그 손에 한 번 잡히면 그만이다
입이란 하나의 입구 무엇이 채워졌을 때 뜬구름이라도 소화하게 만든다. 솜사탕과 뜬구름은 종이 한 장 차이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입에 꽉 물려서 봉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 있다.
흐트러진 낱장들을 함구시키며 제압하는 따악, 그 소리 일침으로 조용히 봉할 줄 아는 그는 서류의 제왕이다. -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변압기變壓器 / 이상근
너무 강렬한 힘을 품어서, 그는 늘 울고 있다 처음으로 밀물을 들일 때 심장이 울컥, 수축을 접었다 이제부터 홑몸의 호흡이 시작된다 그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그에게 오는 에너지와 그에게 기댄 저항 사이 적당한 거래, 팽팽한 긴장은 덤으로 주어지는 책무이므로 내부에 흐르는 피의 밀도를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는 벼락의 세기를 제한하는 등급에 따라 그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그를 감싼 철갑은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떨림과 자극을 허용하므로 체온을 조절하여 시간의 기울기로 세운다 그에게는, 순종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신경망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을 부풀리는 변형된 돌연변이, 예민한 촉각으로 낯선 진동을 끼워 넣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기댄 저항들이 그의 위상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의 터전을 만들어 그의 견고한 영역에서 공명共鳴하고 있다 그는, 그가 버거워하는 힘을 수긍할 수 없어 울음에 조바심을 실었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들판처럼 그의 곱아 굳어버린 열 손가락은 허허로운 확장을 꿈꾸지만 들판은 마지막 노역勞役, 바람이 왜곡된 파장으로 찾아왔다
서숙*이 바람에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를 둘러싼 곁가지들이 파편으로 흩어진다
* 조의 방언(경기,경상,전라,충남) - 2019년 〈투데이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저자(하린 시인) 약력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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