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녀 를 생각하다
초등학교 친구 다섯명이 과천 대공원에서 만나 옥녀봉으로 향한다 한녀석은 소풍이라도 가는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앞장 서서 콧노래를 부르며 파란 하늘을 보고 손을 흔든다 시월 첫날의 휴일은 높고 푸른하늘에 하얀 목화송이 같은 뭉게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화창한 날이다 덥지도 않은날에 앞에서 시원한 바람마저 불어주어 산에 오르기에 아주 제격이다 우리 뿐일가 많은 사람들이 옥녀를 만나러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옥녀봉에 가는길은 그다지 힘은 들지 않아도 대공원역에서 빠저나와 산입구 까지 가는데 아스팔트길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아스팔트길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 도회지 생활자체가 하루종일 세멘트속에서 살고 있다 사방이 세멘트로 되여있는 우리네 주거 형태속에서 나오나 들어가나 하루종일 시멘트를 밟고다니는 실정이다 이럴때 모처럼 나와서 운동도 운동이려니와 시원한 산바람을 마신다는것은 새로운 활력소를 얻기도한다
옥녀라도 기다리고 있는지 지난주부터 녀석들은 옥녀봉 타령이다 우리들 나이에는 힘들이지 않고 갈수있는곳이 높이 369m의 매봉이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우리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눈에 잘띄지 않으니 나이의 실감을 절실히 느낀다 옥녀봉에 올라가나 매봉에 올라가나 똑같이 비슷한 높이의 산인데 무얼 주저할일이 있을가 사람들이 적고 조용하리라 생각했던 언덕길에는 휴일이라서 그런지 옥녀를 만나러 가는이들이 제법 많다 그래도 뒤질세라 어려움을 티나지 않게 누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앞장서서 옥녀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며 앞서서 부지런히 걸었다
김 옥녀 그녀는 나와는 동갑내기이며 내가 오랜동안 몸담아있었던 직장의 식당에서 일하던 아줌마였다 우리직장은 400여명이 넘는 종업원이 있었고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도 십여명이 되었다 그중 젊은 나이라서 그럴가 유별나게도 눈에 잘띄는 옥녀 아줌마였다 훤칠한 키에 얼굴이 갸름한데다가 피부색갈이 깨끗하고 상냥해서 식당에서 일하기에는 아깝다고들 수군거렸다 언제나 생글생글 잘웃고 상냥한 옥녀는 씽글이였다 예쁜 어린 딸과 사랑스런 젊은 부인을 남겨놓고 남편혼자서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한다 당시에만 하드라도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의 생활은 그리 넉넉한 사람이 없었고 가정적으로도 대부분이 좋은 환경이 없었다 평소 활달하고 너스레 잘떨며 붙임성이 많은 옥녀 아줌마도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평소 비빔밥을 좋아한다 그녀는 내가 비빔밥을 좋아하는것을 알고는 계란 후라이 퐁당 참기름 듬뿍 그리고 채소 송송 썰어놓고 그위에 따끈한 밥을 얹어놓고 된장국과 함께 식판을 내앞으로 밀어준다 때가 때인지라 맛이 기가 막히게 맛이있는데 그속에는 정성도 사랑도 듬뿍 부었기 때문이다
연 수미 옥녀 아줌마의 딸이름이다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똘똘하게 생긴것은 꼭 엄마를 빼다 닮았다 어린것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른스럽게 집안청소며 설것이를 다해놓고 엄마가 돌아올때까지 차분하게 공부를 하며 기다린다 언젠가 아줌마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이야기가 어른이 따로 없다고 수미의 칭찬 일색이었다 어린것이 엄마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갸륵한 마음씨가 더욱 어른 스럽다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사정이 그러하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가하여 공책이며 연필 기타 학용품은 내가 거의 조달하다시피했다 회사에서 나의 임무중의 일부분이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요로 하는 복사는 모두 나의 일이였다 당시엔 가리방의 시대인지라 각부서의 모든 서류는 내가 다 하는 관계로 해서 자재창고의 일부분인 문구류는 내것이나 다름없이 다루기 때문에 퇴근하는길에 조금씩 가지고 나와 수미에게 주라며 그녀의 손에 내밀었다 특히나 구매를 보는 직원이 사장과는 가까운 사이로 자재구입을 자기 입맛대로 구입하면서 문구류 일체를 나와 의논없이 필요이상을 사들여 오면서 은근히 소비를 부추기고 있었다 속으로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중학교때 김기혁 교장선생님은 아주 핸썸한 멋쟁이였지만 특히나 가리방이나 챠트글씨는 보기드믄 명필이였다 나는 그때 교장선생님의 온갖 심부름을 다 하면서 열심히 익혀두었다 그것이 사회생활하는데 얼마나 많은 보람을 주었는지 모른다 수미가 고마운 아저씨가 보고 싶다고 한다기에 수미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들고 그녀의 집에 들렸다 비록 코딱지 만한 작은 전세방이지만 아주깨끗하고 아담했다 모두가 수미가 그리 치우고 정리하고 있다고 은근히 수미 자랑이다 이리도 예쁜 딸내미와 고운 아내를 두고 어떻게 발길을 돌려 먼길을 떠났을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즉석에서 백지에 그림을 그리고 [예쁘게 살자]라는 문구를 넣어 수미에게 주었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수미의 얼굴에서 잠시 어두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금새 명랑해진다 - 아저씨 고마워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 마치 어른다운 수미를 보자 가슴에 뭉클한 느낌이 들어 살며시 손을 잡아 당겨 꼭 안아 주었다 어쩌면 이리도 어른 스러울가 아주 귀여운 수미였다
땀을 뻘벌 흘리며 옥녀봉으로 올라가는길에 깜찍하고 귀여웠던 옛날의 수미가 떠오른다 지금은 어떻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가 이미 엄마의 품을 떠나 중년을 훨씬 지난 나이가 아닐가 엄마 닮아서 갸름하고 뽀얀얼굴에 양볼에는 보일동 말동한 볼우물이 깜찍해 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아마도 지금에 와서 거리에서 만난다해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리라
옥녀봉 ! 옥녀봉은 해발 376m로 그리 높은산은 아니다 그러나 과천에서 올라가노라면 군데군데 가파른 경사가 있어 노약자에겐 약간 힘든곳이기도하다 청계산은 아주 먼옛날에 푸른룡이 산허리를 뚫고나와 승천했다는 전설에 기인하여 일명 청룡산이라 했다고 하나 그보다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 부른데 반하여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한다는 풍수설에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옥녀봉은 봉우리가 예쁜 여성처럼 아름다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옥녀봉은 지형상 서초구땅으로 강남쪽으로 내려가려니 젊고 발랄한 아름다운 청춘 남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옥녀봉을 향하여 줄을이어 올라오고 있다 역시 젊음은 인생이있어서 봄이요 또한 꽃피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흔히 말하기를 인생은 나이로 늙는것이 아니라 이상의 결핍에서 온다고 하지만 꼭그런것은 아닌것같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느라면 솥에서 갓 구어낸 싱싱한 호빵과 같이 탱탱한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 구멍이 숭숭 뚫린 철조망 한쪽 틈사이를 비집고 가파른 계곡을 따라 또다시 과천쪽으로 내려온다 어저께 내린비로해서 졸졸 흐르는 맑은 계곡을 찾아 길섶언덕 평평한 곳을 찾아 자리를 하고 배낭을 풀고 품고있던 막걸리를 꺼내놓고 허튼소리가 시작된다 옛날 물레 방앗간집 점순이랑 대나무집 용순이의 이야기 까지 꺼집어내고 한소리 또하고 또 다시 거듭하지만 지겹기도 하련만 여전히 즐거워하며 술병이 거달나자 아쉬운듯 슬며시 자리를 뜬다 무에 그리 신난지 하산길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제껏 한말을 또다시 계속늘어 놓는다
- 다음에도 옥녀봉갈가? - - 네가 좋다고 한다면 못갈일 없지 너도 나처럼 마음속에 옥녀라도 품고 있는것 아니냐? - - 그야 젊어서 옥녀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 아마도 옥녀는 녀석이 생각하기는 첫사랑의 잊지못할 여인으로 아는가 보다 하기야 누구나가 젊은 시절을 지내면서 사연없는 사람 있겠나 어찌 마음속에 옥녀가 없을가 깊고 깊은 인생의 샘물속에 깊히 간직하고싶은 신선함 그게 젊은 시절이였지 ! 되지도 맞지도 않는 온갖 철학을 거더듬어 열나게 토로하면서 어느새 과천청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조그만 식당에 이르니 낯익은 아줌마가 활짝 미소를 띄우며 깨끗하게 치워진 테이불을 가리킨다 우리는 푸짐한 오이로스구이 앞에놓고 또다시 빨강뚜껑의 소주를 따고있다 우리는 거시기 친구야 ! 거시기 친구 ! 술좋아하는 친구가 어느새 기분이 취해 흐느적 거리며 전철에 오르는 순간 비어있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평소 앉기를 싫어하던 친구였는데 아마도 이제는 늙었나보다 - 산에서 한잔 하시고 오시는가 보네요 - 턱수염은 언제 칼질을 했는지 그역시 막걸리 냄새를 피우며 말동무하러 끼어든다 비슷한 나이또래가 아닌가싶다 - 아유 냄새야 술이 그렇게들 좋아요? - 힌머리 듬성듬성한 할머니 한분도 술냄새 난다면서도 바싹 다가 앉는다 할머니 얼굴위로 선듯 옥녀 아줌마의 얼굴이 스쳐지난다 많이 늙었겠지 ! 나이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떠오른다 |
첫댓글 명품 단편소설 한 권 읽었습니다.
옥녀!
추억의 그리운 이름입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내 오랜 일기장처럼 그냥 술술 풀어 준 일상의 이야기에 가슴이 쏠깃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