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5
짤랑.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들여놓은 하리. 들어서자마자 누군가를 찾는 듯 휘
휘 둘러본다. 때마침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하리를 향해
오른손을 휘휘 흔들어보인다. 하리! 오랜만이네!
“아! 오빠!”
하리도 찾던 사람을 찾은 건지 그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다시피 다가간다. 그런 하리
를 보면서 동시에 입을 삐죽이 내미는 노마와 마한. 그런 둘을 무시하고 창가자리로 성큼성
큼 가버리는 다른 무리들.
그들이 자리에 앉았지만 하리는 카운터 옆에 서서 그와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저렇게 즐겁게 하는 건지. 노마는 슬쩍 눈을 흘기며 얘기하고 노마의
말에 피식, 웃은 서련이 대답한다. 뻔하지 뭐, 누구 얘기 하겠니.
“저 둘은 어째 변함이 없네 변함이.”
또 한 번 노마가 궁시렁 거리고 그런 노마를 툭 친 마한이 묻는다. 저 남자는 또 누구야?
도대체 오하리는 남자가 몇 명이야. 몇 명?
“셀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저 인간? 대대로,”
노마가 그렇게 대충 말을 던지고 노마의 말을 받아 지빈이 대신 얘기해준다. 저 사람은 하
리가 믿는 사람 중 하나랄까. 노마 다음으로 믿는 남자일 껄?
“에이, 노마 다음이 아니라 노마보다 더.”
노라가 지빈의 말을 보충하고 노마의 표정은 무자비하게 구겨진다. 내가 뭐 이 기지배야.
대대로 저 인간보다는 백배 천배 믿음직 하구만.
“웃기셔, 맨날 천날 하리만 보면 가만히 놔두질 못하는 응큼한 인간 주제에.”
“니가 내가 되봐라.”
“하긴 어젠 좀 부럽더라야.”
마한의 말에 노마는 또 한 번 인상을 팍 구기며 말한다. 그래도 넌 안된다니까 그러네. 노
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리가 테이블로 다가오고 일순간 침묵.
“어라? 왜 이렇게 조용해? 내 얘기라도 했나봐?”
“너도 귀신이다야.”
“너희가 뻔한 거야.”
“대로 오빠가 뭐래?”
“뭐 늘 그렇지. 내가 한 사람 얘기 밖에 더 하겠어. 녹음한 거 달라고 했어.”
“있대?”
“응, 옛날부터 있었어. 자꾸 내가 슬퍼진다고 안 준다고 한거지. 오늘은 뭐 누군가를 봐서
기쁘다나 뭐라나. 음식 가져다 줄테니까 먹고 있으면 복사본 준대.”
하리의 말이 끝나고 제각각 중얼거리는 가운데 려현이 노마의 어깨를 툭 치더니 말한다. 나
여기 예전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근데 기억이 안나네. 려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제각각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한과 비로를 빼고 조용
해져버렸다. 그런 려현에게 긴장한 채로 대답한 건 노마.
“예전에?”
“조금 오래 전에, 적어도 1년?”
“아.. 하긴 뭐 카페 분위기가 다 똑같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아까 그 대대론가 뭔가 그 인간도 본 것 같아.”
“그 인간 얼굴도 흔한 얼굴이라 그럴 수도 있어.”
노마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저 창문 밖을 쳐다보는 려현이다. 그런 려현
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는 아이들. 다들 잘 넘어갔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다시금 웃어
보인다. 하지만 단 한 명, 하리만은 아직까지도 조마조마하다.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내가 왜 수온성의 연인이였다는 사실을 수려
현에게 숨겨야 하는 거지? 도대체 왜? 아이들에게 말해서 그럴 필요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러기 싫은 거지? 왜 수려현에게 내가 수온성의 연인이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거
지? 왜 하필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해야하는 걸까.
“하리!”
이 주스 저 주스 하리가 날라오고 다들 조금씩 홀짝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대대로라는 사람
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하리의 눈 앞에 테이프를 흔들어 보인다.
“이거 틀어줘?”
그 남자는 아직도 헉헉 거리는 숨을 고르느라 헥헥 대면서도 하리에게 물어온다. 오랜만에
한 번 틀어볼까? 복사 잘 됐는지 확인도 할겸, 그의 말에 고개를 저어버리는 하리.
“왜?”
“혼자 들을래 오빠.”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여기. 아! 주스만 다들 마시고 있네. 조금만 있어봐요. 쿠키랑
파이 좀 내올테니까.”
“도와줄까?”
“됐네요.”
테이프를 건내주고는, 도와줄까하고 묻는 하리에게 다정하게 이마를 톡치더니 주방으로 가
버리는 그 남자. 그 남자를 보며 비로는 중얼거린다.
“남자 맞지?”
“응.”
“여자같다.”
“어?”
“하는게 여자같아. 생긴 건 남잔데, 저 사람 혹시 호모야?”
“파친 소리 작작해라.”
“유노마 넌 또 왜 하리 따라하냐.”
“내 마음. 부부 일심동체 몰라?”
“니네가 언제부터 부부?”
노라의 말에 피식웃은 노마가 결국 다른 얘기를 주제를 돌려버린다. 하리를 향해 속삭이는
노마. 그 인간 노래 녹음 한 거야?
“응.”
“저 인간은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대? 정말 호모아냐?”
“나한테 주라고 했었대.”
“그 테이프를?”
“응. 지금까지 안주고 버티더라고,”
“캬하. 대대로 저 인간도 참.”
“오빠야 오빠. 너한텐 형이라고 유노마.”
오빠야 오빠. 너한텐 형이라고 유노마. 노마가 하리의 말투를 따라하며 키득키득거리자 옆
에서 같이 키득거리는 지빈. 그런 지빈의 머리를 툭툭치며 또 시비를 거는 마한.
“여자애가 웃음소리가 그게 뭐냐,”
“이렇게 웃든 저렇게 웃든 무슨 상관이냐.”
“하리처럼 저렇게 좀 조용히 웃어보라고,”
“저게 조용한거냐. 음흉한거지.”
“기지배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노마의 말에 버럭,하는 지빈. 니가 지금 나한테 말하는 꼬라지 따질 때야? 결국 그 둘은 또
하리의 한마디에 조용해 지고 만다. 어허이, 그만그만.
“카페에서 나가면 다들 찢어 질꺼지?”
노라의 물음에 비로가 끄덕거리고 마한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쩝, 다실 뿐이다. 난 오
늘 여기 남는다. 아싸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라고! 지빈이 쾌활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
지만 돌아오는 하리의 반응은 싸늘함 그 자체.
“앞으로 주말은 내게 지옥이 되겠군.”
“오하리!”
“메롱일세.”
“그럼 지금 천지빈 너, 우릴 버리겠다는 거야?”
“주말마저 암울한 너희랑 보내야겠니?”
“우리가 어딜봐서 암울한데?”
마한이 지빈에게 바락바락 대들자 얌전히 있던 비로가 또 한 번 입을 연다. 우리가 뭐가 암
울하냐. 장마한 저자식만 암울한 거지. 그리고 천지빈 너 안 본다니 주말이 천국이네,
“나비로 니가 제일 밉상이야.”
“내가 왜?”
“얌전히 헤실헤실 웃다가 입만 열면 핵폭탄이니까.”
“난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맞아서 탈이지 뭐,”
그들이 그렇게 궁시렁 거리는 동안 또 대로의 옆으로 사라진 하리. 얼마안가 테이프를 보물
이라도 되는 양 손에 꼭 쥐고 그들의 자리로 돌아온다. 아이고, 열녀 나셨네. 노라가 비꼬
아 보지만 하리의 입은 이미 귀에 걸려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런 하리를 보면서 씁쓸해하는 노마. 그런 노마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노마를 툭 치며
하리가 물어온다. 너 번호 뭐야.
“이제서야 번호 따는 거야?”
“장난하지 말자 유노마.”
“니꺼 입력해. 내가 나중에 전화 할테니까.”
노마가 던지는 폰을 가볍게 받아서는 번호를 쿡쿡 눌러대는 하리. 그런 하리의 옆으로 슬금
슬금 다가가더니 노마의 폰에 입력되어지고 있는 하리의 번호를 뚫어져라 보는 마한. 왠지
이상하다 싶었더니 하리가 입력을 끝내자마자 마한이 소리를 지른다. 오예! 오하리 폰 번호
다 외웠지롱! 하리야, 나도 나중에 전화해도 되지?
“얼마든지.”
하리의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마한의 표정은 천사라도 본 듯 해맑고 노마의 얼굴은 지
옥이라도 본 듯 암울의 극치다.
“넌 좀 아무나한테 잘해주지마.”
“내 마음이야.”
“그러니까 무지막지하게 남자가 꼬여들지.”
노마가 툴툴거리는 순간, 지금껏 창 밖만 보고 있던 려현이 고개를 돌려 하리를 바라본다.
그리곤 고개를 한 쪽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혼잣말하듯 하리에게 말한다.
“왜 그래.”
“..응?”
“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거지?”
“수려현 너 무슨 소리냐.”
갑자기 조용해지는 분위기에 마한이 애써 웃으며 려현을 말리려 해보지만 생긴 것 만큼 고
집 센 려현이라 자신이 할 말은 다 해야겠다는 태도를 취한다.
"너 남자 데리고 노는 걸 즐기나?“
“뭐 꼭 그런 식으로..”
“아니잖아.”
“이봐, 수려현.”
노마까지 말리려고 해보지만 려현은 노마를 없는 사람 취급한 채 하리만을 뚫어져라 바라본
다. 다들 웅성거리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조용해진터라 카운터에 서서 일하던 대로도 이 쪽
을 바라본다. 하리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듣지 않아도 수려현이 지금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뒷
말을 듣지 않아도 가슴께가 무언가에 찔린 듯 쿡쿡 쑤셔왔다.
“아프지?”
수려현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왔다. 비로와 마한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고 려현에게 궁시렁거렸지만 려현은 그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하리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 할 뿐이다.
“응.”
결국 하리는 려현의 말에 대답하고 말았다. 어째서 알게 된지 이틀 밖에 안된 려현이 자신
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대답은 하나였다. ‘수온성’도 이랬었어.
Written By.이도화
첫댓글 ㅋㅋㅋㅋㅋ잼잇어요ㅋㅋㅋ
피식- 님 감사드려요^^*!
재밌어요,ㅋㅋ 다음편 기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