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래창조과학부장관 '김 종훈' ****
안철수,
엄청난 열등감을 느끼며,
마음 속으로.......... 아, 나 개망신 당하는 거 아니냐?........ 이러겠다.
오늘 발표된,,,,미래창조과학부(약칭: 미래과학부) 장관 김종훈.
그는 누구인가?
미국과 세계, 지구인을 경악시킨,
세계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 중의 하나.
벨 연구소는,
미국의 자존심이며
또한 미국인의 자존심이다 !!
벨 연구소는
미국의 자부심이며
또한 미국인의 자부심이다 !!
2005년부터 [김종훈]이 이끌어왔다.
하여간에 일부 좌파들은 애시당초 인간 되기는 글러먹었다.
전혀 헐뜯을 꺼리도 아닌 것을 갖고....헐뜯고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구나 !!
조국이 김종훈에게 준 것은 가난과 헐벗음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되어, 다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면,
힘찬 박수와 뜨거운 갈채를 보내주어야 마땅하고,
설사 헐뜯을 꺼리가 있더라도 감싸주어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적인 인간, 인간다운 인간이다.
미국에 이민 가서 수십년째 사는 사람이
완전한 미국인이 되어 미국에 충성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똥오줌조차도 못가리는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그걸 문제삼는 놈들은,
애국심, 민족, 글로벌....이런 단어의 뜻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놈들입니다.
정치성이 지나치면 인간성이 괴물성이 되는 것이다.
또 일부 좌파들은 김종훈을 두고, CIA 어쩌고 저쩌고 그런다.
거기에다가, 세계최고의 벨연구소 대장이었으니까 김종훈은 미국과 관련된 수많은 고급 정보들을 갖고 있겠네.
좌파들의 논법대로 하면,
그 수많은 고급 정보들을 한국에 제공할까봐, 미국은 당장이라도 초주검이 되어 까무러치겠네.
밥 처먹고 남 헐뜯기나 하면서, 그 맛에 인생 사는 좌파 인간들이야
콩밥 달라고 해서 콩밥 주면, 콩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고,
그래서 콩을 조금 빼내고 주면 콩이 너무 적다고 투덜거린다.
이래도 불평, 저래도 불평...그런 것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아니라
나라를 좀먹는 버러지인생들이다.
김종훈은
세계적인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며,
글로벌 IT계의 신화적 전설적 인물이다.
김종훈에 비하면,
안철수가 이룬 성취는,
2살짜리 어린 젖먹이의 소꿉장난에 불과!!안철수는 김종훈의 3류 비서깜도 안 된다 !!
김종훈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김종훈은 한국 국적도 있다.
미국 국적 포기,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재산이 약1조원 추정시
미국에 2500억 정도의 세금(국적포기세)을 내야 된다네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2500억원을 그냥 버리는겁니다!
박근혜 당선자님이 [신의 한 수]를 던졌다.
김종훈은 [나눔의 황제] !!
스탠포드 대학에 200만 달러를 기부하여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게 하기도 한 김종훈.
메릴랜드대 공대에도 500만 달러를 기부한 김종훈.
세계 최고 통신장비 회사를, 1998년 당시 한화 1조3000억원에
매각,
직원들에게 주식의 40%를 나눠주며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훌륭한 팀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 김종훈.
이 외에도,
남몰래 수많은 나눔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부왕이다.
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조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조흥은행에 투자하려고 타진했으나, 예상보다 투자금이 과도해 생각을 접은 적도 있었다.
안철수의 성취와 기부도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김종훈과 비교를 하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래 글 출처 / http://peripanu.blog.me/40177307852
아래 글 출처 / http://peripanu.blog.me/40177307852
★ 살아 있는 IT 신화
- 벨 연구소 김종훈 사장
- 자상하고 온화한 미소, 바른 몸가짐이 돋보이는 김종훈 사장.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정확히 찾아보지는 못했다. 오늘 뭔가 다큐를 하나 보고 싶었는데, 무얼 볼까 하다가 글로벌 성공 시대를 보기로 했고, 김종훈 사장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사실 요새 손이 다쳐서 회복도 온전하지 않은데도 다큐를 보면서 뭔가 타이핑을 하고 싶었다. 슈퍼 리치가 된 김종훈 사장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늘 하루 좀 더 노력하면 내일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들였던 노력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었고 성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성공을 나누었다. 진짜 성공한 사람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는. 일요일 밤, 아직 손가락은 덜 회복되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보고 타이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 86년전 전통의 세계 최고의 아이티 연구기관 벨 연구소, 이곳에서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동양인이 있다. 벤처 정신으로 좌초 위기에 빠진 벨 연구소를 구한 사람, 그의 리더십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15살의 그는 역경 속에서도 최고를 꿈꾼다. 이십 년 후인 서른 여덟의 젊은 나이에 10억 달러의 미국의 4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그. 그러나 그는 십여년 간 하루 2시간만 자는 지독하고 치열한 노력을 했다.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불가능에 도전한 살아 있는 아이티의 신화, 그는 바로 벨 연구소의 김종훈 사장이다.
*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뉴욕,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벨 연구소는 인근 뉴저지에 자리잡고 있다.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이 남자는 종 킴으로 불리는 그는 전세계 8개국에 26,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세계 각국에서 온 이메일을 확인하기 바쁘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출장으로 보내는 그다.
* 김종훈 사장은 사장실에 앉아 있을 때가 많지 않다.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보다 직접 찾아가 토론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연구원들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말이 잘 통하는 사장이다. 특히 벤처사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연구원들이 부족한 실용화 방안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1925년에 세워진 벨 연구소 로비에는 그 모태가 된 과학자 벨의 조각상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전화기, 통신 위성 등 수많은 기술이 개발 되었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벨 연구소는 지구촌의 발명 센터로 통한다.
김종훈 사장이 벨 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이 세운 벤처기업 루슨트를 벨 연구소에 매각하며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곧바로 루슨트에 부문별 사장으로 역량을 발휘했고, 그에게 벨 연구소의 사장직의 제의가 들어온 것은 두 번 이었다. 첫 제의를 고사했던 그에게 루슨트는 벨 연구소가 위기에 처한 2005년 김종훈에게 SOS를 처했다.
좌초위기에서 오히려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사장직을 수락한 김종훈. 사장직이 되고 나서 7년째 프랑스 파리의 알카텔 루슨트에 출장을 가고 있다. 알카트 루슨트는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 통신장비를 구축하는 세계적인 통신장비 회사다. 파리에 와서도 김종훈 사장은 여전히 동분서주다. 6시간의 시차 때문에 힘들 법도 하지만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점심도 간단한 빵과 음료로 떼워가며 일을 놓지 않는다. 이런 지독한 열정으로 벨 연구소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이번 출장에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더 맡게 되었다. 벨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전략부문 사장직까지 맡게 되었다. 이틀 뒤 그는 이 주간의 파리 출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기업이다보니 그는 세계 각국을 발로 뛴다. 일년의 반을 해외에서 보낸 흔적이 고스란히 여권에 남아 있다.
* 승진 이후 더욱 바빠진 그의 발걸음. 그가 벨 연구소의 사장으로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연구소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벨 연구소에 벤처팀을 창출해 수많은 연구 실적을 상품화할 수 있게 했다.
그의 시도에 반신반의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국 그의 모험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사시간을 아끼려다 보니 피자는 그가 회사에서 가장 자주 먹는 단골 메뉴. 사장이 되서도 연구원들과 함께 피자를 먹는 그는, 여전히 못말리는 일 중독자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결코 안주하는 법이 없는 김종훈 사장, 지독한 노력과 뚝심으로 그는 오늘도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 워싱턴으로 출장을 가는 길,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이메일 확인에 바쁜 김종훈 사장. 그는 이렇게 업무가 많을 때는 자가용 대신 기차로 출장을 떠난다. 그런데 그가 기차에 오르게 무섭게 옆자리에 앉는 이들이 인사를 청한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유년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서울 정릉의 산동네에 살았던 그는 자주 굶어야 했고, 그의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민을 결정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가 열 다섯 살에 미국에 첫 정착했던 곳은 메릴랜드의 한 빈민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받고 외톨이였던 시간들. 학교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수업과 그보다 더 싫은 공짜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점심값 50센트가 없어 정부에서 주는 식권으로 끼니를 떼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공짜밥과 바꿀 수는 없었다. 김종훈의 10대시절 하루는 참 길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했던 그는 편의점, 신문배달, 주방보조까지 아르바이트 하느라 매일같이 밤을 새야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학교로 달려 가야 했다. 날마다 밤을 세다 보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교통 사고가 나서 구사 일생으로 살아난 일도 여러 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고교를 마칠 수 있었던 건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고교시절 교사 덕분이었다.
* 김종훈은 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꿔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었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1: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무언가를 하라!
* 절망대신 희망을 쫓았던 그는 전교 2등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명문 존스 홉킨스 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을 한다. 그러나 대학을 와서도 여전히 영어 수업을 알아 들을 수 없어 책으로 공부해야 했고,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늘 하루 24시간 분주해야 했다. 일하고 공부하느라 잠은 늘 부족했다. 그런 그의 초인적인 생활에 친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김종훈은 7년 간 해군 장교로 복무한다. 그는 힘든 군생활을 하면서도 사업가를 꿈꾸며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는다. 청춘 시절 내내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도전은 끝이 없었다. 그는 바쁜 군생활 속에서도 일년 이나 일찍 학위를 따내는 기염을 토해낸다. 오늘 내가 열심히 해서 내일이 오면 더 낫게 살자, 오늘 내가 일불 저축하면 내일이 오면 더 낫게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니까. 그날 그날의 땀방울이 모여 또다른 내일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 그가 박사 학위를 땄던 메릴랜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평균 5년이나 걸리는 박사 학위도 2년만에 마친 그는 이곳에서도 전설로 통한다. 이 대학엔 김종훈 사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건물도 있다. 드러내지 않고 기부활동을 하는 그가 이름을 드러낸 것도 예외가 있다. 이 학교에 동양계 학생들이 꽤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 누군가는 포기했을 힘겨운 길 위에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품고 최고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업가의 길에 뛰어든 그는 10억 달러의 벤처 신화를 세우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계의 기업인이 된 김종훈 사장.
* 공학 박사까지 딴 그는 기업의 잇단 스카웃 제의에도 나홀로 길을 선택했다. 그가 벤처 신화를 일궜던 그 곳, 유리 시스템즈이다. 1992년 32살에 세운 벤처 회사, 직원 한명으로 시작한 유리 시스템즈는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큰 딸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유리 시스템즈로 짓고 5년 안에 최고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꿈꾼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2: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 그는 기술 개발에도 온 힘을 쏟았다. 걸프전 당시 데이터 송수신이 안 된다는 사실을 착안해서 ATM통신 장비를 개발해냈다. 그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유리 시스템즈에 대박을 안겨 주었다. 실제로 벤처보다 비싼 10만달러에 팔려나간 ATM은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팔리고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김종훈 사장은 유리 시스템즈가 혼자의 성공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직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
* 그는 무엇보다 팀워크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믿는 사장이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 3: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좋은 팀을 이뤄라!
* 1997년 나스닥에 상장한 유리 시스템즈의 주가는 첫 주 만에 2배로 뛰었다. 이듬해 유리 시스템즈의 주가를 10억달러(한화 1조 3,000억)에 매각하며 미국 400대 부자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려 40% 넘게 나눠 주었다. 직원들 중에는 스무 명 가량의 백만 장자가 등장했다.
* 게다가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그를 사장으로 영입하기 까지 했다. 루슨트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1998년은 김종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끼니를 거리기 일쑤였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20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이룬 성공자 반열에 우뚝 섰다.
* 루슨트는 벨 연구소 사장직과 관련해 김종훈에게 두 번이나 사장직 제의를 했다. 첫 제의는 2001년이었는데 그때 사장직을 고사했다. 벨 연구소에 위기를 맞은 2005년 그는 특유의 도전 정신으로 사장직을 수락한다. 좌초 위기에 타이타닉호라는 벨연구소의 위기를 일으켰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 오랫동안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야 했고, 가난과 싸워야했던 그에게 성실은 큰 무기였다. 그는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우쳤던 것이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 4: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장 김종훈, 그가 직원들을 축하하기 위해 한 팀을 찾았다. 이 팀에서는 세계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기술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실패를 거듭한 연구원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것이 원동력이기도 했다.
* 행동하는 리더이자 상용화 전략이자 수입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김종훈 사장. 전임 사장인 아론은 그의 리더십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2009년부터 김종훈 사장은 모국인 한국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서울에 벨 연구소를 열어 윈윈 전략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발로 뛰며 두시간을 자고도 버티는 그의 강철 체력의 비결은 그는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 김종훈 사장과 함께 유리 시스템즈에서 일했던 직원들 중에 무려 20여명의 백만 장자가 나왔다. 성공은 혼자 이뤄낸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으로 성공의 댓가를 함께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본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 라고 김종훈 사장은 말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실패나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하루 하루 새롭게 도전하라는 것이다.
* 워싱턴을 찾은 김종훈 사장, 그는 종종 미국 프로 농구팀에서 사업자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그는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이곳에서 자선활동을 해서 또 감탄을 준다. 그는 전사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농구 선수였던 이 팀을 인수했다. 사업 뿐만 아니라 운동에서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김종훈 사장, 그는 철인 삼종 경기에 도전한 적도 있다. 50대 나이에 기록은 저조하지만 마라톤 완주까지 해냈다. 고학으로 어렵게 성공했던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한국학 강좌에 기부하고 있다. 김종훈 사장은 부를 나누는 것이 성공한 리더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루 2시간 자고 쓴 피나는 노력으로 쓴 벤처 신화. 하루하루 흘린 숱한 땀방울들이 모여 오늘의 그를 만들었고, 내일을 향해 오늘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
위 글 출처 / http://peripanu.blog.me/40177307852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가둬두고,
조국, 안철수 등 피래미 급들을 띄워
마치 신인 양 추앙하는 환경에서,
박근혜 당선자님이
월드클래스급 세계적 벤처신화를 이룬
김종훈을 전격적으로 영입하여......
이제 축구처럼
EPL 보다가 K리그 보면 속터지는 상황이
속출하듯 그렇게 될 듯ㅋ
이로써,
안철수의 시대는 막을 내릴 듯하네요.
안철수는 쪽 팔려서 명함도 못내밀 듯.
김종훈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김종훈은 한국 국적도 있다.
박근혜 당선자님이
[신의 한 수]를 던졌다.
민주당을 강력 규탄함 !!
민주당을 강력 규탄함 !!
민주당이 왜 문제인 줄 아는가?
민주화 훈장은 집에 모셔두어야 하는데,
어찌된 판국인지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화 훈장을 24시간 가슴에 달고 다닌다.
심지어 밤에는 머리맡에 두고 잔다.
세계 어느 나라 민주화 세력에게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이다.
더 웃끼는 것은,
그 훈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며
국회의원을 평생 해먹으려 하고.... 국회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한다.
기가 찬다.
그러니, 허구헌날 이념이나 들고 날뛴다.
심지어는 종북 똥구녕이나 졸졸 따라다니는 세력까지 있다.
왜 국회가 그대들의 평생직장이 되어야 하는가?
전두환 정권 하에서 몇 년 투쟁했다고,
세계최고의 직장인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평생 해먹어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일년에 열두 번씩 전두환을 찾아가 큰 절 올리며 고마워해야겠네.
국회가 평생직장, 그런 괴상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전두환이 없었다면 회사원이나 개인사업을 했을 개연성이 높았으니...내 말도 무조건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민주화투쟁을 당신들만 했는가?
민주화투쟁을 한 국민,,,,,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줄 알아야지.
그러니, 국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일은 뒷전이고,,,,,걸핏하면 극단적으로 꽥꽥 소리치며......
민주당이 사는 길은,
민주화세력을 거의 다 쫒아내고,
미래화세력을 전면적으로 앞에 내세우는 것이다.
난 민주당의 이용섭 의원을 전혀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난 그와 관련된 글과 책을 모두 다 꼼꼼히 읽어봤다.
민주당의 최고 보물은 이용섭이다.
공부도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이 양반은 국회 청문회를 세 번이던가 다 통과했다. 그 정도로 도덕적으로도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썩을 놈의 집구석,
왜 이용섭같은 사람은 크게 키워서 써먹을 줄 모르고,
해먹었던 구닥다리 사람이 또 해먹고, 또 해먹고, 또 해먹고.....
그 지랄하니, 맨날천날 그 모양 그 꼴인 게여
첫댓글 명예와 부를 다 가진 그가 이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화답하여 준것이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이러한 숨은 인재를 발굴한 대통령의 안목도 높이 평가한다. 새 정부가 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