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늘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사랑한다고 하면 믿어야 할까?
얼마 전에 어떤 자매가 자신과 결혼하자는 어떤 형제와 결혼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하니 기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라면 나의 딸은 절대 그런 사람에게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사람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우 이창훈 씨 딸 효주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TV에 출연하여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효주는 공부하면서 계속 어딘가를 응시하였습니다. 그렇게 바라봐야 공부할 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 바라보는 곳에는 5만 원권 지폐 모형이 달려있었습니다. 심지어 금주머니 열쇠고리, 골드바 자석, 금전운을 부른다는 돈나무 그림도 붙어있었습니다. 아이의 꿈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그래서 편안할까요? 아이는 불안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물론 엄마와 분리되면 안 되는 불안증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집착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집착은 다 자기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욕구는 다 ‘생존’이란 두 단어로 집결됩니다. 다 살자고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가 불안하다는 말은 부모가 자기 생존을 책임져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사람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다 자기 생존을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불안하면 그 대상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용하게 됩니다. 딸의 이 불안함은 이창훈 씨의 가족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창훈 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5남매 중 유일한 아들 막내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계
셨지만 세상에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어머니는 이창훈 씨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 앞으로 이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보호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함께 있어 주지 않을 때는 하교하다가 나쁜 일도 많이 당하곤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호해주지 못한 것, 왜 자신을 낳았는지 부모에 대한 원망도 들었습니다.
그에게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은 돈과 인기였습니다. 공황장애를 겪으면서도 일하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어린 신부를 맞이하여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수입도 줄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다 아내 탓이라고 하며 우울증에 걸리고 방황하였습니다. 임신한 아내는 이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했습니다. 매일 이혼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사랑하려면 먼저 ‘불안’이 해결된 상태에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감정이 자녀에게 갑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선교하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라고 하시며, 또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십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사랑하고 선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는 먼저 죽음까지 이기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이 나를 보호해주시니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불안은 하나의 ‘믿음’입니다. 만약 쥐의 꼬리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쥐일 수도 있고 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불안해합니다. 확인한 뒤에 불안해 할 수 없습니다. 쥐면 안심하고 뱀이면 싸우든 도망치든 결정해야 합니다. 불안은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의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불안증을 없애기 위해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명상을 하는 것도 좋지만 믿음 차원에서 해결하려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믿음만이 진정 불안에서 우리를 해방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배우 정은표 씨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족도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정은표 씨 부부는 자녀들에게 불안함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 공부를 방해도 하지만 지웅이는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구글에서 창의력이 가장 높은 부서의 특징을 조사하였습니다. 결과는 소통이나 아이큐나 학벌 등에 있지 않았고 그 부서의 ‘심리적 안정감’ (Psychological safety)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아이들 공부도 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안하게 하면 외우는 기계밖에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날입니다. 먼저 가족이 복음화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민족들을 복음화시킬 수 있을까요? 나 먼저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확실하게 믿기 위해 성령을 받는 기도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위한 가장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부터 복음화되어야겠습니다.
https://youtu.be/3-8VnifNUkE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행동이나 마음을 말합니다. ‘~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미국의 작가 나폴레온 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욕망이 있다면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이다. 욕망이 없다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능력은 욕망과 함께 온다.”
제 형님이 은퇴 후에 요즘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그리고 그린 그림을 가족 SNS에 계속 올리십니다. 점점 더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그림을 잘 모르는 저도 알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형님이 그린 멋진 그림을 보며 “우와~~”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에게는 그림에 관한 관심 자체가 없어서 욕망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능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제 형은 한 번도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 그리고 싶다’라는 욕망을 가지면서, 여기에 본인의 능력도 추가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욕망은 능력도 함께 오도록 합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최초로 등정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에베레스트산을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욕망이 계속 커졌던 것입니다. 이 욕망에 본인의 능력이 더해져서 최초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능력이 더해져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한 일이 있었습니다(마태 10,5; 루카 10,1 이하). 그러나 이때는 일종의 실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길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하셨고,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체험을 위해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신 뒤에 파견하셨습니다.
이번 파견은 그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 결정적이고 본격적인 파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전교는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반대를 받아 때로는 박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교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전교하고 싶다’라는 욕망 자체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실행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키워야 합니다. 그에 따른 능력도 생길 것입니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파울로 코엘료).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