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5. 09 목요일
(2208 회)
-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
조선 숙종(肅宗)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 (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金眞喜)와 ‘'이혈룡’'(李頁龍) 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友誼) 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言約)
했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 평양감사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鍊光亭)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大同江)으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그를 죽이라고 한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이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沙工)을 매수, 혈룡을 구해 그녀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보살펴 준다.
그 후 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 암행어사(暗行御史) 가 돼 걸인행색으로 평양으로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하던 진희가 혈룡이가 다시 찾아 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도’'를 해 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린다.
그 뒤 혈룡은 우의정(右議政)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友誼)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友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강태공과의 천생연분(天生緣分)을 함부로 끊은 아내 馬씨와 이혈룡과의 친구간 우애(友愛)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모두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것은 상식이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智慧)롭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이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사랑도 그렇고, 우정(友情)도 그렇다. 인연(因緣)과 연분(緣分)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緣)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者의 몰상식한 소치(所致)에 불과하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 에 달려있다.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失手)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만다.
공자는 論語 ''衛靈公篇''에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고 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 같은 경우에 맞닥뜨리게 돼 끝내는 허망에 빠져들고 만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
그게 숱한 인연(因緣)과 연분(緣分) 속에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이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폐(疲弊) 해 진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緣分)과, 인연(因緣)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연(緣)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忍耐)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智慧)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人生)의 최종 승리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