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 도토리묵
한로를 사흘 앞둔 시월 첫째 주말이다. 엊그제 창녕함안보 근처 트레킹에 이어 삼랑진으로 나가 강변으로 뚫은 자전거길을 걸어볼 요량이다.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서 퇴촌삼거리로 향해 창원대학 앞을 지났다. 도청 뒤를 돌아 역세권 상가 빌딩을 지나 창원중앙역에 닿아 순천발 부전행 무궁화호를 타러 갔다. 삼랑진역에 내려 강변 따라 걸어 원동으로 내려가 점심나절 복귀할 참이다.
예전 경전선 열차는 순천을 출발 진주와 마산을 지나와 해운대를 돌아 울산과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갔더랬다. 근래 부전에서 송정 기장을 거쳐 울산까지 복선 전철로 개통되었고, 포항에서 영덕을 거처 삼척 강릉까지 연장한 철길이 곧 완공을 앞두었단다. 가끔 열차 교통을 이용하는데 버스비보다 열차 운임이 싼 편인데다 20퍼센트 경로 할인까지 받아 교통비 부담을 들었다.
정한 시각에 도착한 무궁화호를 타고 진영역을 지나자 차창 밖으로 노 대통령 생가 봉하마을과 사자바위가 드러났다. 영강사 암자와 같은 경내 장방리 갈대집도 보였다. 한림정을 지날 즈음 근래 개통된 화포대교는 철길과 습지 구간은 사장교로 건너 터널을 뚫어 생림으로 이어졌다. 모정에서 터널을 지나 낙동강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니 경부선과 나누어져 삼랑진이었다.
삼랑진 역사를 빠져나가 송원마을을 거쳐 낙동강 강변으로 뚫은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4대강 사업으로 굴삭기가 모래를 퍼낼 때 전설에 나온 ‘처자교 승교’ 유적 발굴 현장을 지났다. 작원으로 불리는 깐촌에 전해온 아가씨를 흠모하던 스님의 청혼을 뿌리치려던 설화다. 다리 놓기 시합에서 스님이 지자 강물에 몸을 던져 연이어 아가씨도 뒤따라 둘이 놓은 쌍다리만 남았더랬다.
물길이 실어 나른 퇴적층이 쌓여 기름져서인지 갈대와 물억새는 세력이 좋게 자라 휘어져 쓰러질 듯 무성했다. 까치 ‘작(鵲)’에 공무 수행 관리가 머문 ‘원(院)’이 결합된 작원은 까치마을을 줄여서 ‘깐촌’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 이후 두 번째 맞선 관군이 왜군에 패한 작원이다. 강변 작은 마을에는 당시의 전투에서 희생된 넋을 기린 빗돌과 작원관을 복원해 놓았다.
강가에는 내수면 어로 작업 고깃배가 세 척 묶여 있었다. 밀양강이 합류해 원동으로 휘감아 도는 강물은 유장하게 흘렀다. 강 건너편 김해 생림 도요는 산길 트레킹에서 상동 용산으로 이어졌다. 천태산은 암반이 드러난 절벽이라 경부선 철길은 터널로 지나는 곁에 4대강 사업 때 자전거가 다닐 생태 보도교를 놓았다. 조선시대 영남대로 작원잔도는 이끼가 낀 채 흔적으로 남았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라 자전거를 타고 나온 이들이 상당한 숫자라도 나처럼 걸어서 가는 이는 없었다. 강변 풍광을 조망하기 좋은 쉼터 정자에서 간식을 먹고 계속 걸으니 ‘작원잔도’가 나왔다. 강변에 영남대로 잔도 모습이 오롯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낙동강 중하류 물금 근처 황산잔도와 함께 영남대로에서 볼 수 있는 옛길 흔적으로 파발꾼이나 파발마가 다녔던 길이다.
벼랑을 돌아간 원동 중리마을 앞은 가야진사 공원이 나왔다. 강 건너는 김해 상동 용산으로 옛적 신라와 경계를 이룬 금관가야 땅이다. 가야로 건너가는 나루라 가야진(伽倻津)으로 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은 가야진사로 불린다. 생활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잔디밭엔 승용차를 몰아온 이들이 파크골프를 즐겼다. 원리 삼거리로 향해 칠순 부부가 빚어 파는 도토리묵을 맛봤다.
활엽수림이 우거진 배내골에서 수집된 도토리를 가루로 빻아 전분을 가라앉혀 먹음직한 묵이 되었다. 가을에 내가 누린 식도락이다. “가지산 낙동정맥 신불산 지맥 뭉쳐 / 배내골 협곡으로 활엽수 우거진 숲 / 가으내 도토리 주워 묵 재료로 삼는다 // 삼거리 칠순 부부 꿀밤을 가루 빻아 / 전분을 가라앉혀 끓는 솥 휘휘 저어 / 틀에다 퍼내 식히면 굳자마자 동났다” ‘원리 도토리묵’ 2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