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만 그럴까?
박병률
나는, 도시에 살면서 옥상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봄에 씨 뿌리고 작물이 자라면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결실을 보기까지는 벌레를 손으로 잡아내고 친환경 약 (베이킹 소다, 식초, 설탕, 식용유)를 분무기에 섞어서 뿌렸다. 상추, 들깨, 오이, 토마토, 호박, 가지, 파, 고추를 심었는데 벌레들이 많이 꾄다. 벌레들은 호시탐탐 남의 곳간을 넘보고 뭐든지 먼저 훔쳐 먹는 놈이 임자다.
배추벌레가 나비의 애벌레인 줄 몰랐다. 나비가 텃밭으로 날아오면 반가워서 동요를 불렀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 바람에 꽃 잎도/ 방긋 방긋 웃으며/ 참새도 짹짹짹/ 노래 하며 춤춘다/ ~.
여름 끝자락에 열무와 배추씨를 뿌린다. 작물이 어느 정도 자라면 나비가 날아와서 열무, 배춧잎에 알을 낳는다. 며칠이 지나면 알이 부화해서 ‘배추흰나비 애벌레’(청벌레)가 잎을 갉아 먹는다. 나비가 날아와서 몰래 알을 까고 가다니,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과 위장 평화에 나는 속았다.
야도충(거염벌레)은 낮에 땅속에 있고 밤에 활동하며 배추, 파, 상추, 가지 등을 갉아먹는다. 잎을 뜯어 먹고 근처에 똥을 싸서 흔적을 남긴다. 상추가 또 구멍이 나 있었다. 주변을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꽃삽으로 파니까 야도충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굼벵이를 닮았는데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야도충을 꽃삽으로 떠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꽃삽으로 후려치려다가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마지막 가는 길, 벌레라고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야도충을 한쪽에 모셔놓고 꽃삽으로 땅을 두 뼘 깊이로 팠다. 그다음 구덩이 속에 정중히 모시고 흙을 덮고 발로 밟으면서 말했다.
“도충 씨, 좋은 데로 가시게!”
박각시나방 애벌레(깻망아지)는 참깨, 들깨, 고구마잎 등을 갉아먹는다. 나는 깻잎 향이 좋아서 쌈을 싸 먹고, 깻잎장아찌는 여름에 입맛 없을 때 깻잎의 은은한 향과 짭조름한 간장 맛이 어우러져서 입맛을 돋운다. 해마다 들깨 모종 15 개 정도를 심었다. 모종이 세 뼘 정도 자라 잎이 넓적넓적할 때, 자고 나면 들깨 모가지가 부러지고 잎은 손가락 들어갈 만한 구멍이 났다. 온기를 품었던 자리마다 허물어져서 바람이 들락거렸다. 벌레를 잡지 않으면 잎을 갉아 먹어서 줄기만 남는다. 돌돌 말린 깻잎을 펴보면 깻망아지가 들어있다.
진딧물은 주로 작물의 새순에 붙어서 진액을 빨아먹는다. 작물이 자라지 않고 이파리도 말라비틀어진다. 진딧물이 많지 않다면 수돗물을 강하게 뿌려주거나 장갑 낀 손으로 문지른다. 개미가 진딧물의 배설물을 먹기 위해 진딧물 꽁무니를 따라다니므로, 개미를 차단해야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가 활동한다. 진딧물이 남의 몸에 붙어서 피 빨아먹는 거와 뭐가 다를까?
벌레들은 밤에 식욕이 왕성하므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작물을 살폈다. 고추 속에 ‘담배나방의 애벌레’가 숨어있고. 오이, 호박, 가지 등 이파리에 진딧물이 앉아서 군데군데 색이 바랬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토마토를 심은 도랑으로 건너갔다. 주먹만 한 토마토가 붉게 물들었다.
민달팽이가 토마토에 구멍을 냈는지 머리를 처박고 식사 중이다. 민달팽이는 발걸음이 느린데 어둠을 틈타 토마토까지 습격하다니 민달팽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젖었다. 삶은, 욕망이 부풀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느림의 시간은 지난 일을 떠올렸다. 민달팽이는 낮에 틈 사이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에 활동한다. 어쩌다 나랑 눈이 마주쳐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죽은 척을 하는지 움직임이 거의 없다. 이놈을 어쩌지,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벌레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런데 벌레만 남을 못살게 굴까?
한국산문 20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