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대산 송이풀꽃
시월 초순 첫 주 일요일이다. 지나간 날들이 워낙 뜨거웠던 폭염에 시달리다 보니 구월 초순 같은 느낌이 드는 때다. 지난달 진전 둔덕에서 미산령을 넘거나 진북 서북동에서 감재를 넘어 함안 가야로 나간 적이 있다. 북면 외감에서 달천계곡으로 들어 함안 경계 고개를 넘어 칠원 산정마을로도 나가봤다. 그때마다 가을이 오는 길목 산기슭 임도 길섶에 피는 야생화 개화가 더뎠다.
사찰 주변에 흔히 보던 꽃무릇이 근래는 도심 공원에서도 조경용으로 심심찮게 본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도 꽃무릇이 군락을 이룬 데가 있다. 우리 지역 꽃무릇 개화는 구월 중순이 절정으로 시월 초가 되면 꽃잎은 시든 끝물인데, 올해는 꽃무릇이 뒤늦게 피어 지금이 절정을 이루었다. 올해는 더위가 늦게까지 물러가지 않고 버티다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일요일 아침 근교 산자락의 계절감을 느껴 보려 야생화 탐방을 나섰다. 도계동으로 나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로 갈아타고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에서 내렸다. 힐스테이 아파트단지에서 조롱산 등산로로 올라 소목고개를 넘었다. 사림동 사격장에서 덕산 소목으로 넘은 고개와 같은 지명이다. 감계 소목고개에도 무릉산 기슭 작은 마을로 소목이 있어 거기도 그렇게 부른다.
칠원 운곡에서 드나드는 골프장엔 이른 아침 잔디밭을 누비는 골퍼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대산 허리로 난 길고 긴 임도를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선 이를 드물게 만났다. 길섶에 절로 자라 떨어진 밤톨이 보여 몇 알 주워봤다. 멧돼지가 시식하고 남겨둔 것이었다. 크기가 작은 밤을 ‘싸락밤’이라 이르는데 벌레가 파먹지 않은 온전한 것이 있었다.
산허리를 돌아간 모롱이 시야가 트인 전망 정자에 올라 쉬면서 간식으로 챙겨간 커피로 술빵 조각을 떼먹었다. 골프장이 들어선 골짜기와 산마루 너머 온천장으로 겹겹이 산으로 에워쌌는데 옅게 낀 안개가 골을 메워 인상적이었다. 한동안 머문 정자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가다 이고들빼기와 참취가 피운 꽃을 만났다. 당국에서 길섶 풀을 자르지 않아 온전했다.
길바닥에 알밤이 보여 더 주웠는데 멧돼지가 몰랐던 모양이었다. 어디서나 이즈음 멧돼지에 도토리나 밤톨이 좋은 먹이가 될 텐데 작대산 북사면 골짜기는 멧돼지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을 듯했다. 넓은 골프장 주변으로 물샐틈없이 철조망을 둘러쳐 놓음은 멧돼지가 출몰하지 못하게 한 조치였다. 녀석들은 골프장 주변에는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음을 알아 접근하지 않았다.
산허리를 한참 돌아 골프장은 시야에서 벗어나고 무릉산을 마주한 곳에 정자가 나왔는데 작대산 임도에서 전망 좋은 쉼터였다. 골짜기가 깊은 산중이라 그곳까지 산행을 나선 이들이 없어 호젓함을 혼자 누린 호사였다. 쉼터에 일어나 산허리를 돌아가면서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봤는데 비로소 제철에 피는 야생화였다. 참취가 피운 꽃은 저무는 즈음이고 누린내풀꽃과 산박하꽃도 봤다.
깊은 골짜기 어디쯤 절로 자라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가는 들깨는 잎이 청청했다. 거름을 주거나 약을 뿌리지 않은 야생 그대로라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들깻잎이 비록 쇠기는 해도 찬으로 삼을 수 있을 듯했다. 가던 길을 멈춰 배낭을 벗어두고 들깻잎을 따 봉지에 채웠다. 강가는 고라니가 많았으나 산중에는 노루가 있을 법한데 녀석들은 취향에 맞지 않아선지 오롯이 내가 따 모았다.
들깻잎을 배낭을 채워 임도를 따라 계속 걸으니 운동마을에서 오르는 작대산 등산로가 나왔다. 여름에 피어 저무는 며느리밥풀꽃을 만났고 그와 같이 분홍빛으로 핀 낯선 야생화를 만났다. 사진에 담아 검색창에서 확인해 보니 송이풀꽃이었다. 그 곁에는 역시 화사한 분홍색으로 작고 앙증맞은 꽃잎인 이질풀꽃도 봤다. 예년 비해 짧아진 가을이라도 제철을 잊지 않고 피는 야생화들이다. 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