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경복궁에서 지난 역사를 회고하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경복궁은 봄빛이 짙었다. 살구꽃이 곧 터트릴 듯 꽃망울을 머금었고, 산수유, 목련도 뒤질세라 피어나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조선시대의 한옥을 입고, 경복궁과 경회루 일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북궁에 진한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정도전과 이성계가 있다.
경”복궁의 그 당시 궁궐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아서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 그리고 행랑이 들어섰다. 근정문과 천랑穿廊, 각루角樓 그리고 강녕전康寧殿이 7칸, 연생전延生殿이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임금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이 들어섰으며, 상의원과 중추원, 삼군부三軍府 등이 세워졌다.
태조 4년(1395) 10월 5일 경복궁이 완성되자 태조 이성계는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정도전에게 새 대궐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했다.
지금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사 지내고 새로운 궁전이 낙성되어 여러 군신들과 잔치를 열게 되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궁전의 이름을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길이 빛나도록 하라.
정도전은 그때 술 석 잔을 마신 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경복일러라”고 한 《시경》 <주아> 편에 있는 시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미 술대접을 받아 실컷 취하고 또 많은 은덕을 입었으니, 비옵니다. 군자께서 만년에 장수하시고, 큰 복 받으시기를‘ 이라는 시구를 인용하여, 새 궁전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짓기를 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전하께서는 자손들과 더불어 만년이나 태평한 왕업을 누리게 될 것이며, 사방의 백성들도 길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부지런해야 한다며 지은 근정전
정도전은 이어서 경복궁의 법전을 임금이 부지런히 정치에 임하라는 뜻으로 근정전勤政殿이라 지었다.
근정전, 조하를 받는 정전입니다. 남쪽에는 근정문이요, 또 그 남쪽에는 홍례문이며, 동쪽에는 일화문, 서쪽은 월화문입니다. 홍례문 앞에는 개울이 있는데, 다리 이름은 금천이요, 동서에 수각이 있습니다.
정도전이 임금이 부지런해야 나라가 평화로울 것이라며 지은 근정전은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회랑에 둘러 싸여 있다. 임금이 왕위 즉위식을 치루는 곳이며,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는 정전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기도 했던 곳이다. 임금이 양로연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했으며 임금이 승하하면 왕세자가 근정문에서 즉위식을 하고 근정전의 옥좌에 오르기도 했던 곳이다.
근정문을 들어서면 근정전이 한 눈에 들어오며 조정 중앙에 3차선으로 된 길이 있다. 가운데 넓고 높은 길이 어도, 동쪽에는 문반, 그리고 서쪽에 무반이 이용하는 길이다. 삼도를 중심으로 관원의 품계를 나타내는 품계석이 줄 지어 서 있다. 이러한 품계석은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법전 앞마당에 다 있는 것이지만 이곳은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지어진 법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문반 쪽의 정일품正一品 품계석에는 의정부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그리고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등의 영사와 감사들이 섰으며, 종일품從一品石의 품계석에는 의정부의 좌. 우 찬성과 의정부, 돈영부의 판사들이 도열하였다.
조정을 지나면 정교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성된 화강석 상․하 월대 위에 웅장한 근정전이 우뚝 서 있다. 경복궁의 상징이자 최고의 건물인 근정전은 태조 3년(1394)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인 고종 4년(1867)에 다시 지었다.
근정전은 2층으로 된 구조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목조건물이며, 공포는 다포계인데, 북쪽의 중심에 임금이 앉았던 용상龍床이 있고, 그 뒤로 해와 달이 뜬 그림 한 폭이 있다. 왕권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고 칭송하는 상징물로 그려진 오봉산 일월도라고 불리는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에는 산, 해, 달, 소나무, 파도가 그려져 있다.
근정전의 천장은 높고도 깊다. 이 천장 중앙에 천변만화의 능력자인 제왕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戱弄하면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조각되어 있다.
생각을 지혜롭게 하나는 뜻으로 지은 사정전
근정전을 지나면 사정전에 이르는데, 정도전은 이어서 사정전이라는 이름을 다음의 예를 들어서 지었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어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지혜롭고 어리석은 사람과 어질고 어질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고, 모든 일에는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이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으로서 깊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일의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분별하여 처리할 수 있으며.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않음을 알아 쓰고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생각함은 지혜롭고, 지혜로우면 성인이 된다’고 하였으니, 생각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전각은 아침마다 여기서 일을 보고 모든 정무가 복잡하게 이르면, 모두 전하께 아뢰어 전하가 이를 지휘하게 되어 있으니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신은 청하건대, 그 이름을 사정전이라 하소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사를 논하는 편전이라는 뜻인데, 그 옆 부속 건물이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이다.
사정전을 지나면 세종 때 지었던 집현전集賢殿 자리에 들어선 수정전修政殿에 이른다. 정면 10칸에 측면 4칸의 비교적 큰 건물인 수정전은 세조가 임금에 오르는 것에 반기를 들었던 집현전이 있었으므로 쓰지 않고 있다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고종 때 다시 지었다.
사정전을 지나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강녕전康寧殿이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중 서울 편에서
오백 년 전에 살았던 이성계와 정도전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2023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