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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30
나는 다른 말을 할 이유가 없었고 하지 않기로 하였다. 소파로 가는 그 짧은 거리에서도 그의 구둣발 소리는 쩡쩡 울렸다. 몸무게 때문이리라. 역시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고. 이제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인상은 탐욕적이었다. 얼굴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지만, 경계해야 할 인물로 느껴졌다. 그는 능글한 타입이었다. 나는 이런 타입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생각 보다 가볍거나 낮게 보이면 그는 가차없이 거만하게 나올 것이다.
이호규가 일인용 소파를 재빠르게 옮겨 두 줄로 난 소파 우측 끝 부근의 중간에 놓았다. 그는 그곳에 앉았다. 나는 그의 우측 편 벽을 등진 소파 중간쯤에 앉았다.
“먼 타국 캐나다에서 한국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신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사업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제임스를 도울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보잘 것 없는 일로 생각하는 직업입니다. 그냥 열심히 살 뿐입니다.”
“무척 겸손하시군요. 다운타운에서 그런 일을 하시는 데는 보통 생각과 능력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하는데, 대단합니다.”
그는 대화를 하는 요령에 익숙해 보였다. 그는사람을 쉽게 자기 의도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현재까지는 여유있고 자신 있게 느껴졌다.
그때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한 여인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 냄새는 베르사체 W-30 이었다. 20ml 한 병에 700 불 정도 한다. 베르사체. 그가 생전에 30 대의 성공한 여성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중 하나이다. 이브생 로랑, 베르나드 성, 구찌, 알마니, 랑콤, 샤넬, 프라다가 아직 만들지 못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남자를 뇌살시킬 수 있는 독특하고 은은하며 상큼한, 한 방울이 6 시간 이상가는 아주 특별한 향수이다.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어려 있고, 온몸을 감싼 검은 색 실크 원피스는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그대로 들어내듯 몸에 꼭 맞았다. 풍만한 가슴의 중간 계곡을 반쯤 드러내었고, 허리와 히프의 윤곽은살아있듯 출렁이며 드러내었다. 원피스의 끝자락은 무릎 위에서 끝나 탄력있고 싱싱한 다리를 과시하듯 노출하였다. 역시 검정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맞은 편 소파. 그리고 강일성의 왼쪽 곁에 앉았다.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은 극히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여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식기 세척대가 있는 우측 코너 문에서 나왔다. 나이는 30 대 초반 정도. 그리 큰 키는 아니었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흔적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이런 타입의 얼굴을 싫어한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짓고 말하였다. 고개를 숙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눈은 먹이를 쫓는 매 같이 나를 뚫어지게 보면서.
“미라. 스와니라 불러도 좋아요. 제임스라고 하셨죠? 성은 뭐예요?”
그녀가 강일성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대신 물었다. 그녀는 정말 거만하였다. 타원형의 얼굴. 눈은 검고 컸지만, 경망스러워 보였다. 입술은 작고 붉었다. 그 사이 코는 잘못 붙여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균형상 크다. 나는 쎄지로가 동양인으로서는 가장 균형 잡힌 얼굴에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미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지성과 야성. 그리고 성숙하고 풍만한 성적 매력과 촌 아줌마의 포근함. 여성의 가장 평화로운 모습인 잠자는 미녀의 모습까지 두루 갖춘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미라. 그래. 스와니라 하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그런 내 앞에서 폼잡는 것은 잘 못 찍었다. 한참 잘 못 찍었다. 내게는 쎄지로가 있다. 그들과 나는 시각적 차원이 다르다. 케롤라인이 어깨를 들썩일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리. 제임스 리입니다. 스와니는?”
그녀는 강일성을 보며 소리나게 웃었다. 감히 자기에게 묻는다는 가소롭다는 의미였다.
“그냥 스와니라고 필요할 때 불러요. 알겠어요?”
이런, 망할. 나는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여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선을 제압 당할 이유도 되지 않았다. 목소리는 강하지만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아마 이 여자의 매력은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목에 특별한 펜던트가 있었다. 금으로 가장자리를 세팅한 계란 반쯤 크기의 타원형 크리스털에 KL 이라는 작은 다이아몬드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써브 크기의 다이아몬드 수십 개를 크리스털에 부착하는 세팅 기법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데 그녀는 완벽하게 세팅된 펜던트를 금목걸이에 달고 있었다. 나는 강일성을 보았다. 그는 미소를 엷게 짓고 있었다. 그때 이호규가 커피를 가져와 탁자에 놓았다.그리고 스와니 옆에 앉았다.
22.
“조경순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강일성이 자리에서 허리를 펴고 커피잔을 들며 물었다. 그는 잔에 든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경순을 어떻게 아십니까?”
나도 내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며 그를 보지않고 물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이곳은 적진이었다. 이제 전투는 은근하게 시작되었다.
“당신은 칼림교를 아십니까?”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든 채 다시 물었다.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는 간단했다. 아직 서로의 의도를 모른 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칼림교 소속이라는 것을 압니까?”
그는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굵게 하려고 애썼다. 말에 무게를 싣자는 의도일 것이다. 아직은 탐색 중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겠군.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만나는 이유까지도 알겠군요.”
그는 다시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묻는것인지…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경순은 칼림교 교인이었오. 캐나다에 칼림교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얼마 전에 살해당한 것을 알고 우리가 그 사건의 해결을 오타와에 있는 한국 대사관과 토론토의 영사관 그리고 해당 지역경찰에 강력하게 요청하기 위하여 왔오.”
그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이호규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호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탁자에 올려놓은 메모지를 들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린 이미 조경순을 살해한 범인을 검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안에 그를 만나길 바랍니다. 또한, 빠른 시일안에 조경순의 남편인 에드워드 강을 만나서 사후 수습을 한 후 그 집을 저희가 매입할 것입니다. 이것은 칼림교인이었던 조경순의 남편과 그 아이들의 경제적인 도움을 조속히 줄 수 있는 길 중 하나로 알고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니 제임스. 당신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
맞는 말이었다. 좋은 일이고. 타당했다. 그 말대로라면. 그렇게 끝나서 돌아갈 것이라면.
“당신의 말대로라면, 칼림교인 조경순이 칼림교 온타리오 지교를 설립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차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그 일과 사건의 마무리와 조경순의 가족을 돕기 위하여 조경순이 살해된 후 여러분은 급히 캐나다로 입국하였다는 말이군요. 제가 바로 이해하였습니까?”
강일성이 담배를 꺼내어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은으로 만든 것 같은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팅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는 맑은 지포 라이터의 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다. 백색 다비도프였다. 한 때는 한국의 수입 담배 중 가장 비싼 담배였다. 다른 담배들보다 반 이상 더 굵었다. 그는 어거지로 보스기질을 스스로 느끼며 만족하는 타입 같았다. 그는 나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나는 재킷 좌측 주머니에서 피러앤잭슨과 플라스틱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방금 말한 그대로입니다.”
이호규가 안경테를 손으로 만지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강일성을 보며 중심부 가까운 곳에 한방 쏘았다.
“우린, 조경순이 살해되기 이틀 전에 강 부장님의 캐나다 입국을 확인했습니다.”
아픈 곳이었다. 놀라운 곳이었다. 강일성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호규가 당황하고 있었다. 스와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일갈했다.
“야! 이 자식아! 구두닦기 주제에 어디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어. 죽고 싶어서 지랄하는 거야?”
강일성 대신 고통을 당해 주려 악을 쓰는 것 같았다. 오뉴월 서릿발 같은 게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충성경쟁 같았다. 역시 본국 스타일이 나왔다. 강일성은 담배 연기를 한껏 내뿜으며 허리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제임스! 당신. 경찰이요?”
그는 심각하게 묻고 있었다. 정보가 전혀 수집되어 있지 않은 적이었다. 오히려 내가 혼란해졌다. 이럴수가.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행태와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아니요. 그러나 조경순의 살해사건으로 경찰과 공조하고 있는 사립탐정이요. 내가 직접 밝혀주는 이 정도의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을 겁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찾으면서 이 정도의 주변 정보도 확보하지 못했음에 오히려 내가 의아해 하였다. 아무리 낯설고 물 선 타국 캐나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여러 정황과 관계로 인하여 이미 용의자적 의심을 받고 있지 않은가. 또한, 지금까지의 추적에 의하면, 그들은 행적과 의도를 뒷받침하는 조직의규모로 봐서 절대 정보에 대한 소홀함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인데. 그들은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였다는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캐나다 한인사회에서 나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립탐정이라… 그러면 누가 의뢰자이요?”
강일성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호기심도 얼굴에 비쳤다. 그때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여전히 바삐움직이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정각 9 시였다. 케롤이었다. 잘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4번 내 거처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 하고있었다. 나는 플립을 제껴 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누구도 이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하였을까. 아니면 이 만남이 그렇게 위험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들은 아마추어였다.
“굿모닝. 케로라인 경사님. 지금 트라팔카 스트릿, 에시그로브 타운 36100 번지에 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기선을 제압 당했다.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즉각 전화기를 탈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황하였다. 예측지 못한 사태에 세 사람의 낭패한 모습이 보였다. 이 전화가 아니더라도 휴대폰으로 추적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케롤에게는 쉬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말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그들의 첨단 씨스틈이 있을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최소한 안전을 확보하였고 동등한 입장이 되었다.
“저는 그들로부터 위치 추적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며 이 전화는 단지 작은 확인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주변의 가장 가까운 경찰에게 내 동태를 보고하라고 했을 겁니다. 이러한 것들은 조경순의 살해 사건 후 남편인 에드몬드를 만나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멈췄다. 다시 피러앤잭슨을 입에 물었다.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숱한 많은 생각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좋소. 누가 당신을 고용하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오.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를 도와주시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오. 그 보상은 당신이 만족스럽도록 해주겠오. 우리는 빨리 이 문제를 마무리 짓고 돌아가고 싶오. 그래서 더욱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왜, 이곳에 거처를 만들었습니까? 이곳은 조경순의 집과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조경순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려면 그 집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째서 이곳에 거처를 정하셨습니까?”
강일성은 다비도프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나를 뚫어지게 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호규에게 신호를 하였다.
“당신다운 질문이오. 실은, 조경순이 살아 있었다면 이 주변의 적당한 곳을 매입하여 칼림 교당을 신축하고 설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오. 우리는 이미 적당한 구 가옥을 물색하여 매입을 의뢰하였오.”
그는 말을 마치자 강일성을 보았다. 강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허락을 하는 암시였다.
이호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