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勿忘草
물망초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또는 나를 잊지 마세요 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꽃을 바치려다 죽음을 맞이한 어느 청년의 영혼이 담긴 꽃이기도 하다 유럽이 원산지이고 관상용의 꽃으로 한해살이 이다 5~6월에 대표적으로 하늘색으로 피지만 분홍색과 힌색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독일에 루돌푸라는 기사와 벨타라는 처녀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나우 강가를 걷고 있는데 본적이 없는 아름다운 보라색꽃이 강건너에서 보였다 루돌프는 벨타에게 꽃을 주려고 강을 건너가서 꽃을 꺾어서 가저오다가 강물의 거센 물결에 휩쓸린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그꽃을 그녀에게 던진다음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겼다는 내용이다
P 월간잡지에 나의글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3학년 이른봄이였다 여기저기서 펜팔하자는 편지가 여러통이 책장에 쌓이고 있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간에 펜팔이 유행하던 시절로 월간잡지나 잉글리쉬 또는 뉴스웍크 신문에 아예 펜팔 고정란 까지 있었다 어느 여학생이 보낸 예쁜 꽃봉투가 유난히 마음을 잡는다 문학 동아리 회원으로 있는데 같이 활동 했으면 좋겠다며 간단한 시한편을 보냈지만 꽤나 정성이 깃들어 있다
S 여고 3학년 김명희 ! 명희와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었던 것은 그 녀의 동생 명식이가 우리학교 일학년으로 오작교가 된것이다 명식이 편을 통하여 거의 매일같이 시한편씩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 지다가 어느날 그녀의 요청으로 처음으로 명식이와 같이 제과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기자기하게 예쁘지는 않지만 어디 한군데 흠잡을데라곤 전혀없는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번 두번 만날때마다 명희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여인다운 정숙한 면모를 나타냈다 우리는 이성간의 교제라는 것을 떠나 문학을 즐기는 친구처럼 아주 편하게 만났다
지나고 보지않는 책이 있으면 명식이한테 물려주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어차피 형편상 대학진학도 이미 포기했고 두어야 별로 필요를 느끼지 않아 쓰던 학습지까지 모두 넘겨주었다 명희 어머니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며 언제든지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커다란 철문이 열리며 입구에서부터 부드러운 잔디가 깔린 운동장 같이 넓은 정원한쪽 양지바른곳에 아담하게 꾸며진 양옥집 이층방의 명희방에는 햇볕이 마구 쏟아저 들어와 눈부시다 담장 울타리를 타고 기어오른 장미꽃이 한창 어우러저 명희의방 창문까지 기웃거린다 오밀조밀 정돈된 책장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있어 문학에 흥미를 가진 명희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쉽게 알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매스컴에 이따금 오르내리는 분이라며 책상위에 꽂힌 커더란 사진을 가리킨다 얼핏보아 늠늠한 표정에 틀이잡힌 몸매가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고위직에 계신분이 아닌가싶다 쟁반에 과일과 음료를 가지고 들어오는 명희 어머니는 아주 훤칠한 키에 준수한 귀티가 풍겼다 부유하지만 조금도 티내지 않고 행주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는 명희 어머니는 수수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가난에 찌들어 언제나 아궁이 불에 그을은 꾀제제한 흰무명치마를 입고 계시는 어머니와는 너무나 비교가된다 부유함이 이토록 두분의 명암을 비교하는것 같아 괜히 어머니께 송구스런 생각이 난다 친동생으로만 알았던 명식이는 사촌간이고 명희는 이집의 외동딸 금이냐 옥이냐 였다
-어쩜 그리도 글을 잘쓸가? - 명희 어머니는 명희의 책장에서 P월간잡지를 꺼내 펴들며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부모님은 다 계시고 형제자매는 몇명이며 고향은 어디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딸이 자주 만난다는 사람의 신분이 마냥 궁금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혹여 잘못된 녀석의 꼬임에 빠저들지 않을가 하는 부모로서 당연하지 않을수 없다 부모님 다 계시고 고향은 충청도 청양이며 7남매중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다 말했다 혹시나 하며 궁금하게 여겼든 마음이 사라지고 믿을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명희 어머니의얼굴이 금방 환해지고 편안해지며 밝아 오는듯 하다
-어찌 이리도 예쁘게 생겼을가? - 자식 같다며 곁으로 다가와 나의등을 토닥인다 순간 등을 타고 흐르는 그분의 따뜻한 손길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는것같다 마음을 놓으시고 즐거워 하시는 표정이다 식구가 적고 너무나 호젓하여 시골에 사는 형님의 아들 명식이를 불러들여 같이 살고있다 그런데 식구가 많은집 막둥이란 말이 아마도 마음에 흡족하셨든것 같다
명희가 서울 명문대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헤어진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렵사리 야간 고등학교를 나온터에 대학진학은 커녕 직장마저 변변치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을때 또다시 P잡지사에 [건너지 못할 강]이라는 글을 보내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명희를 염두에 두고 쓴것처럼 비치었고 그 글을 읽은 명희로부터 여러번 연락을 받았으나 모르는척 그냥 지나첬다 명희와 나와는 처음부터 어울릴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니 나와는 살아온 길이 너무 거리가 멀다고 믿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따금 만날때와는 달리 명희네 집을 다녀온후로 나는 나대로 앞으로의 나아 갈길에 고민이 깊었고 명희는 명희대로 진학문제로 시간이없어 둘이의 사이는 유야 무야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의 꿈이라 생각하고 모든것을 잊기로한채 내가 가야할길을 고민하기로 마음 먹으니 모든게 홀가분 하였다 언젠가는 의사가 되는것이 꿈이라던 명희였고 외동딸 이자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스스로 단념한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나에게 관심을 가저줄가는 나의 헛된 착상에 불과하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 언젠가는 나와는 멀어질 것이며 그상처는 고스란히 나의 가슴에 남을것이란 것이 나의 속단이였고 그래서 억지로 명희의 모습을 스스로 미련없이 지워 버리기로 한것이다
돈도 학벌도 직장도 어느 한가지 내세울것 없는 내가 아닌가 어쩌면 은근히 자식처럼 생각하셨던 명희 어머니는 나의 학교 성적표까지도 조사한 억척같은 분이셨다 하지만 한낱 희망 사항이였을뿐 귀하게 기른 외동딸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는데는 인색하실지 모르며 애당초 나와는 비교가 되지않는 다고 여러번 생각한것이 나의 현실적인 생각이였다
그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고등학교 반친구였던 녀석하나가 K 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직장 가까이에 있어 땀내에 찌들은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채 병원을 찾았다 병 문안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하얀까운의 여 의사가 들어오면서 마주치게 되자 얼른 얼굴을 돌렸다 그의 옆엔 인턴과 간호사와 같이 회진중이다 우연찮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의사도 나를 보았는지 주춤하는듯 하다가 정색을 하고 스처지나간다 까운에 찍힌 김명희 이름이 눈에띈다 분명 옛날의 김명희가 맞다
어느날 책한권이 나에게 배달되었다 발신인은 명희 였다 아름 아름 나의 주소를 알아내려고 애쓴것 같다 [ 물망초 ]란 시집으로 명희 자신이 오랜동안 정성을 들이어 만든 작품이다
시집 내용은 주로 꽃말로 되어있고 책갈피 깊숙이에는 두툼한 장문의 편지와 옛날에 내가 보낸 편지도 들어있다 세월은 변해도 추억마저 변할수없어 고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어엿한 의학박사인 김명희는 옛날의 명희가 아닌 신분이 틀린의사이다 발랄하고 깜찍하던 그런 명희가 아닌 으젓하고 품위가 있어보인다 잠시 장미가 아름답게 엉클어 지고 햇볕이 내려쬐는 그녀의 창문이 머리속을 잠시 스처 지나간다
또 하나의 추억이다 세월은 변해도 추억 마저 변할수 없어 고히 간직하고 있다니 아직도 그때를 잊지못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일가 명희의 편지속 이야기를 읽고 다시 읽어본다 편지속의 명희는 조금도 변한것이 없는 옛날 그대로의 명희였다
산을돌고 들을지나 흘러가는 저강물아 그누구가 기다리나 강가에 홀로있네 황금빛 젖은노을 금빛두른 저물결 미풍이 강물위로 소리없이 지나누나
말없이 눈빛으로 무슨말은 못하는가 지난후면 애닳다고 시한줄을 띄운다 강건너 나루에는 돛내린 나룻배가 지나온 물결위로 외로히 떠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처다보지도 말라고 그 누구가 말했는가 누군가 아마도 나처럼 지레 질려 헛소리 처럼 하늘을 향한 메아리로 보낸것 같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시조를 읊으며 읽고있던 [물망초]를 멀리 창문 앞으로 집어 던진다 정말 세월은 흘러도 추억만은 잊혀지지 않는 것일가 ?
강물은 말없이 흐르는게 아니라 침묵을 삼키며 조용히 생각하며 흐른다
바람은 건성으로 부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그리워하여 옷깃을 스치며 절규하는 것이다
산은 그냥 서있는게 아니라 잊혀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벌써 잊었어야 하거늘 아직도 무슨 미련이 있길래 눈감으면 아롱이는 것일가
#오늘도 낡은 일기장을 찾아 그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읽는다 "고마워! " "그냥 우리는 친구로서 만족해야할 숙명인가봐" 명희의 미소가 손끝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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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왜 내 가슴이 찌잉 ~하면서 시려 올까요 ?
의학박사 명희님은 청진기로, 춘암님은 글로 세상을 치유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