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의 시인 - 故 조영관 시인 영전에
긴 술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던
석가여래좌상이었다 해도 .....
술자리를 먼저 터는 것을 비겁하게 여겼던
어처구니 없는 한 사내였다 하여도 .....
스스로 정수리에 깊은 말뚝을 꽂고
다 떠나간 현장을 지키던
무모한 노동자라 하여도 .....
이 따위 유고시집이나 남기고 가는
몹쓸 시인이라 하여도 .....
드디어
그대 홀로 눕던 빈방을 닫고 가는가
깊은 강에 자책의 돌덩이를 던지며
저무는 햇살 속이 아니라 해뜨는 낯선 새벽 속으로
표표히 떠나던 유랑의 한 사내
참 사람 좋은 한 사람,
누구 뜻대로 가시는가 .....
영근이형 죽던 날
왜 저리 아프다 아프다 죽냐고 목놓아 울던
하 그 붉은 눈물자국이 당신의 짧은 꽃길이구나
노동이란 저마다의 진실인데
어찌
높이가
비굴과
구차가 있는가 .....
등허리 굽혀 지키던
외로운 불꽃들 사그러지고 .....
당신 오랜 시의 저장고였던
숙명의 지지대였던 철골이 무너지고 .....
산소통은 텅 비고
용접선은 널브러져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한꺼번에 울지 않은 울음은
나눠서 생을 두고 울겠지만
당신 전생의 발자국이
묵음으로 아프구나
이 위대한 노동의 숨결 위에 쏟아져 내리는
갯비린내 위에 아련히 저며오는 저 귀한 소금땀 냄새
그래 나는 돌아가야 하리라던
당신 그래 평안히 돌아가시라
너와 나를
인간을, 땅을, 바다를, 하늘을 섬기는 운동
아니 그걸 홀딱 넘어서버리는
가만히 거름이 되어버리는 운동
그 숙명을 이제 탈고하고 흰 백지만 있는 곳
운동도 공동체도 아픔도 이별도 없는 곳
다 없으되 좋은 것만 있는 곳
몇 발짝 더 먼저 가시라
그 거름 위에 봄꽃이 피고
보리밭 푸르게 넘실대고
우리는 당신의 시같은 긴 노래를 함께 부를 때
당신은 파안으로 다가와 어깨를 걸고
밤새 추임새를 넣으리
술같은 건 없어도 환장하게 취하리
- 문동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