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의사 서거 116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이규수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오사카마이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의 기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보도에는 기자의 상세한 묘소 현장 답사 내용과 함께 뤼순 감옥 관계자의 증언이 포함돼 있다. 이 전 교수는 “매장지의 구체적인 거리 정보와 매장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일본인 사형수 실명이 포함돼 있어 유해 발굴 작업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문에는 안 의사의 묘소를 직접 찾은 기자의 상세한 기록이 담겼다. 기자는 안 의사의 지지자로 알려진 구리하라 사다키치 전옥(감옥 형무소장)이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묘지를 방문했으며, 묘지는 감옥에서 약 10정(약 1㎞) 떨어진 “울타리도 산도 없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감옥 담장 인근이 아니라 감옥 관리 구역 내에서도 일정 거리가 떨어진 지점임을 시사한다.
지형에 대한 묘사도 포함됐다. 기사에는 묘지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는 청나라 통치 시기의 기병영(騎兵營) 터가 거의 완전한 형태의 흙담으로 남아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과 약 1정(약 109m) 떨어진 남쪽 산기슭이 가깝다”고 적었다. 이어 “이를 ‘마잉푸의 위쪽’이라 부를 수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남쪽만이 마잉푸 마을을 넘어 멀리 황금산과 라오후웨이를 마주하고, 그 사이로 항구 밖 바닷물이 보인다”면서 “서쪽으로는 바이위산(白玉山) 정상의 표충탑이 솟아 있다”고 기록됐다.
마잉푸는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있던 둥산포(東山坡)의 옛 지명으로 현재는 다롄시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일대를 유력한 매장지로 지목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또 2월에는 안 의사의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식을 엑스에 전하면서 “정부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8일 학계와 단체 등 전문가를 비롯해 국회, 정부 관계자 등 총 23명으로 구성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한 상태다.
첫댓글 저게 문제가... 공동묘지였고 묘비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장소가 지목됐다고 해서 특정 유해를 발굴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하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쉽게 땅을 파헤치기 힘든가보네요 ㅠㅠ
이 기사 마지막부분에
이재명 정부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또 2월에는 안 의사의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식을 엑스에 전하면서 “정부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8일 학계와 단체 등 전문가를 비롯해 국회, 정부 관계자 등 총 23명으로 구성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한 상태다.
이렇게 나와있는데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카이리무빙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만... 유해 발굴에 대한 의지와 상관없이, 116년 전에 다른 수천 구의 시신과 함께 아무 데나 매장이 되어버려서요. 심지어 그 이후에 매장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Doctor J 아 ㅠㅠ 안중근 의사만 묻힌게 아니라 감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묻혀있어서 뼈도 섞이고 그러니 위치를 알아도 쉽지않겠네요... 설명을 잘해주셔서 이해가 되네요
예전에 이 부분 1박2일에서 다뤄서 안중근 의사가 어떤일을 어떻게 했는지 상세히 알려줬죠... 아파트 들어설 위기라는거 까지 나왔었는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