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table border="0" bgcolor="white">
<tr>
<td width="580" height="39"><table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tr>
<td width="15"><p> </td>
<td width="541" bgcolor="#DFE0DB"><p
align="center"><font face="돋움"
size="2" color="maroon"><br>
</font><font face="돋움" size="2"
color="#400000">철원은 골이
좁고 산이 높은 강원도 땅에서
가장 시원하고 넓게 트인 곳이다.<br>
철원평야의 너른 들판이 남에서
북으로 치닫고 있고, <br>
지평선 아래를 흐르는 임진강
상류인 한탄강의 지류가 <br>
철원군의 젖줄 구실을 하며 세로로
흐른다. <br>
조금더 인문지리적인 지식을 빌어
철원군을 소개하면 <br>
금강산에서부터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광주산맥을
<br>
등받이처럼 동쪽에 대고, 서울에서
원산에 이르는<br> 추가령 지구대를
서쪽으로 바라보며 기름기 흐르는
살찐 몸으로 <br>
비스듬히 누워 있는 평야지대다.<br>
</font></td>
<td width="18"><p> </td>
</tr>
</table></td>
</tr>
</table>
<p><font face="돋움체" size="2"><br> </font><font face="돋움"
size="2" color="#004040"><br>
<img src="photo/cw02.jpg" align="left" border="0" vspace="10"
hspace="10"></font><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비교적
지리적 여건이 좋아 유일한 강원도의 곡창지대인 철원군은
모든 인구의 반 이상이 농사에 종사하고 있고 전방인 관계로
군인과 군인가족들도 많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의 60 % 정도가 외지사람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물도 넉넉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춰져 있는 덕분으로 보인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북으로
조금만 발길을 돌리면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분단 조국의
현실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철원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고석정이나
순담계곡 등의 빼어난 경관이 있다. 그리고 ' 한국의 나이아가라
'라고 불리는 직탕폭포도 있어 눈요기감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만 북으로 달려 올라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br></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3264"><b>승일교와 고석정
</b></font><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b><br></b></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철원의
명소인 고석정 부근 나들이는 승일교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승일교(
承日橋 )는 갈말읍 내대리와 장흥리 사이에 놓인 시멘트
다리로 공산군이 만들다 6.25때 패해 그대로 두고 도주한
다리를 아군이 120m의 길이로 완성했던 일화를 가진 다리다.
다리의 이름은 그 당시의 대통령인 이승만의 승( 承 )과
김일성의 일( 日 )을 합성시켜 만들어졌다. 급하게 흐르는
한탄강물을 아래에 두고 색바랜 회색 시멘트의 둥근 아치가
교각을 받들고 있는 모습에서 지난 아픔의 기억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다리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상념들을 뒤로하고 승일교를
건너 언덕길을 하나 넘어서면 고석정( 孤石亭 )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다. 승일교에서 고석정까지의 거리는 1.1
km.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고석정은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철원팔경의 으뜸으로 치는 곳으로
평지의 30여 m 아래를 흐르는 한탄강 지류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고석정은 보통 강가에 세워진 옛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정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강가에 우뚝 선 바위덩어리다.
12 m 정도 높이의 바위가 조형미를 갖추고 우뚝 서 있는데
그 위에는 3평 정도의 자연 석굴도 있으며 바위의 꼭대기에는
십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의 평평한 공간과 소나무가
고고히 서 있다. <img src="photo/cw01.jpg" align="right"
border="1" vspace="10" hspace="10"></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원래 고석정이란
이름은 이곳에 신라 진평왕이 정자를 세워 붙인 이름으로
지금은 그 정자가 사라졌어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고려의 충숙왕도 이곳을 찾아 쉬어간 기록도 있으며 조선
명조때의 의적 임꺽정 (林巨正)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고
활동했던 곳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너른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고석정에 이르면 차를 세우는데는 큰 불편이
없다 (1일 주차요금은 2,000원). 고석정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 전통양식의 기와가 있는 철의 삼각지대 전적기념관의
3층 규모 시멘트 석조 건물이 웅장하게 서있고, 양쪽 곁에
6.25때 맹위를 떨쳤던 세이버 전투기가 호위하듯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과 식당,
그리고 그밖의 위락시설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오른편에는
잘 단장된 잔디밭이 골프장의 그린처럼 반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한탄강
특유의 협곡구는 수만년 동안 침식된 강안 (江岸)이 30
- 50 m의 깊숙한 협곡을 이루는 과정에서 형형색색의 기암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고석정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전망대에
서서 고석정이 있었던 바위와 계곡을 바라보면 우리나라의
산하 (山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과장된 표현을 빌자면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라도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평평한
들판을 거닐다 갑자기 큰 구덩이에 빠지는 기분으로 고석정으로
향하는 300여 계단길을 걸어 내려서면 고석정 바로 앞에
시멘트로 세운 정자에 닿게 된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그 옛날
임꺽정이 몸을 숨기며 지냈던 고석정 바위에는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관리 사무소 사람이 상주(?)하며 말리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 바위 위에 오르는 것을 말리지
않았으나 간혹 실족하는 사람들이 있어 출입금지를 시켰다고
한다. 바위의 곁에서 세심하게 바위를 살펴보면 임꺽정이
은둔생활을 했다는 자연석굴도 볼 수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한탄강물이
협곡을 쿵쾅거리며 흐르고 있는 물가로 내려서면 의외로
고운 모래에 감탄하게 된다. 보트놀이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수량과 바위를 넘어가는 물흐름에서 모처럼만의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간혹 지각없는 행락객들의 고성방가도
들리지만 뛰어난 경관을 잘찾아 왔다는 만족감이 불쾌한
감정을 희석시켜 줄 것이다. <br>
<br></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3264"><b>'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 폭포 </b></font><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br></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img src="photo/cw04.jpg"
align="left" border="1" vspace="10" hspace="10">고석정을
출발,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면서 시원하게 뚫린 463 호 지방도로구철원을
향해 3.8 km 달리면 직탕폭포 입구를 알리는 작은 팻말이
길 오른편에 서 있다. 팻말이 작아 자칫하면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도 있으므로 고석정에서부터 적산거리계를 살펴보며 오는것이
좋을 듯하다. 이곳에서 우회전해 차 두대가 겨우 오갈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1.0 km 달리면 직탕폭포 입구 주차장에
닿는다. 직탕폭포 입구에 있는 주차장은 휴일에 2,000원씩의
주차비를 받는데 주차규모는 약 100대 정도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직탕폭포는
' 한국의 나이아가라 '라고 불리는 폭포로 그 규모나 위용은
미국의 그것에 비해 보잘것이 없으나 떨어져내리는 물소리와
물보라를 보면 저절로 탄성이 튀어나올 정도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강 전체가
폭포로 이뤄진 직탕폭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으로,
폭포의 폭으로는 가장 크다. 폭포의 높이는 약 3m, 넓이는
80 m 정도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직탕의
주변 강가에는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곰보돌이 많다. 이
돌은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우리나라안에서는 제주도와 이곳밖에 없다. 비록 구멍이
있을 망정 무척 단단해 이곳 사람들은 흔히 맷돌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한탄강물이
빚어내는 장관이 있는 직탕폭포의 50여 m 아래에는 자갈밭과
모래톱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초여름의 더위를 씻기에 충분하다.
<br></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3264"><b>순담계곡, 여름
피서지로 제격 <br></b></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구철원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고석정을 지나고 승일교를 지나면
길 오른편에 순담계곡으로 가는 입구를 알리는 팻말이 나온다.
승일교에서 이곳까지는 불과 800m 남짓 거리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입구에서
비포장길로 1.9km 달리면 신철원쪽에 있는 농공단지에서
들어온 길과 마주치게 되고 이 길과 합류해서 1.5km 더
가면 순담에 이르게 된다. <img src="photo/cw03.jpg" align="right"
border="1" vspace="10" hspace="10"></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순담계곡은
하천을 에워싼 협곡의 암벽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보기좋은
모래밭도 있어 한탄강 일대에서 경승이 빼어난 곳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순담게곡에는 연못이 있어 이야기 거리를
주고 있는데 조선 정조때 영의정 김관주가 관직에서 은퇴한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20여평의 연못을 파고 제천의
의림지에서 순(蓴)약초를 옮겨다 심고는 순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조정에서 이 약초의 신기함을 인정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봄철에서 단오까지 자생하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협곡이
만들어내는 기묘하면서도 운치있는 풍경이 이채로운 순담계곡의
물가에는 보드라운 모래톱이 있어 여름 피서지로도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일가족이 둘러앉아
쉬기도 하고, 밥도 지어먹을 수 있는 평평하면서도 너른
바위를 찾을 수도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가끔 단체
야유회를 나와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이 호젓한 분위기를
깨뜨리기도 하고, 근처에 기도원 등이 있어 행동에 조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부담없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순담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아직 주차요금을 받고 있지는 않아 조금은
부담이 덜한 곳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 color="#003264">서울로
되돌아 오는 길에는 신철원에 있는 삼부연폭포도 들러 보자.
삼부연폭포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30m 나 되는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시원하기 그지없다. </font></p>
<p>
<table border="0" cellpadding="10" bgcolor="#E4E4E4">
<tr>
<td width="554" height="136"><p><font face="돋움"
size="2"><b><br> </b></font><font face="돋움"><b>여행정보
</b></font><font face="돋움" size="1"><br></font></p>
<p><font face="돋움" size="2"><b>운전</b></font><font
face="돋움" size="2"> / 서울에서 의정부-포천-운천을
거쳐 신철원으로 가는 43호 국도는 왕복 4차선
길로 과속하기 쉽다. 유난히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많은 길이므로 앞을 잘 살피며 달려야 한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b>맛집</b></font><font
face="돋움" size="2"> / 문혜리 문혜국민학교
앞 초가집손두부집(0353-452-2948)의 보리밥은
고향의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보리밥에는
직접 만든 순두부가 한냄비 따라 나온다. 도토리묵과
동동주 맛도 그만이다. 신철원에 위치하고
있는 순담식당 (0353-452-3034)은 도토리 묵과
감자전이 별미다. 같은 장소에서 15년 동안
도토리 묵과 감자전, 녹두전 을 내왔는데 도토리
묵은 가을에 도토리를 모아 직접 만든다. 감자전은
감자를 곱게 갈아 양파, 풋고추, 파를 다져넣고
깻잎, 미나리를 얹어 기름을 많이 두른 철판에
구워 낸다.</font><font face="돋움" size="1">
</font></p>
<p><font face="돋움" size="2"><b>숙박</b></font><font
face="돋움" size="2"> / 순담계곡에서는
목련식당(0353-452-2006)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다. 고석정에는 대규모 방갈로가 있고 신철원(갈말)으로
나가면 삼부연관광호텔(0353-452-5884)과 청송파크(0353-452-7727),
하이눈모텔(0353-452-5884) 등의 장급 여관에
들 수 있다. <br>
</font> </td>
</tr>
</table>
<p>
<table border="0" cellpadding="20" bgcolor="#D1D1A3">
<tr>
<td width="554"><p><font face="돋움" size="2"
color="red"><b>MINI DOCUMENT </b></font></p>
<p align="center"><font face="돋움" size="4"><b>직업군인의
길은 고난의 길</b></font><font face="돋움"
size="5"> </font><font face="돋움" size="2"><br>
<br></font></p>
<p><font face="돋움" size="2">폐허가 된
철원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여 살고
있는 구철원은 오덕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2.1km
달리면 닿는다. 오덕 삼거리에서 구철원을
향해 달리면 평평하게 달리는 철원평야를 가로막고
서있는 고대산 (832m) 아래 횡대로 늘어서있는
구철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평평한 땅위를
길게 늘어선 건물들과 위압감을 주면서 우뚝
서있는 고대산은 조금은 거친듯 하면서도 균형미가
넘치는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행정구역상으로는
동송읍에 속해버린 구철원은 휴전선과 가까이
있는 관계로 행정 기능을 모두 신철원에 넘겨주고
다만 군인과 군인가족 그리고 민통선 북방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 역할을 할뿐이지만
생각보다 번화하고 위락시설도 꽤 많이 있는
소비성향이 강한 곳이다. 읍내에 들어서면
다른 곳에 비해 오히려 활기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이곳에 사는
직업군인들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민간인들에게
단지 '돈'으로 여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동송읍 분위기는 생각보다
냉랭하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읍내에서 만난
이 아무개 중사(30)는 이곳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다. 특기는 수송이지만 하는 일은 취사반장이다.
그는 일반 병으로 입대해서 직업군인으로 눌러
앉은 경우로 그리 흔하지 않은 케이스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왜 직업군인
생활을 택했는지를 묻자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일반
병으로 입대를 해서 복무를 하던 중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지요. 형님도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계셨고, 사회에 나가서 새롭게 적응하는
것보다 차라리 군에 남아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만족이요?
글쎄요...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생활여건은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처우도
조금 좋아졌고, 지난해 결혼을 한 후로 좀
더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군인의 길이
만족스러운지를 묻자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을
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그러나 그의
말 뒤에는 어딘지 모르게 그림자가 숨어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보통 이중사
정도의 군인은 월 70만원 정도의 기본급에
위험수당, 일직수당, 가족수당 등을 합쳐 연봉
1,5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도시 생활 근로자의
벌이와도 큰 차이가 나는 돈이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국방부에 따르면
95년 현재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는 하사관의
73.5%가 전역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은
할 수 있지만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그가 전하는 말 한마디가
가슴을 저민다. </font></p>
<p><font face="돋움" size="2">"예전에는
'군·관 민'이라는 말을 많이 썼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민·관 군'입니다. 돈이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옷을 벗지 않았는데...가끔 후회 비슷한
생각도 들어요.". </font></td>
</tr>
</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