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杜甫)-返照(반조)(지는 해)
楚王宮北正黃昏(초왕궁복정황혼) 초왕궁 북쪽으론 황혼이 지고
白帝城西過雨痕(백제성서과우흔) 백제성 서쪽엔 지나간 비의 흔적
返照入江翻石壁(반조입강번석벽) 석양은 강물에 비쳐 석벽이 번득이고
歸雲擁樹失山村(귀운옹수실산촌) 저녁 구름은 숲을 감싸 산촌을 가린다
衰年病肺惟高枕(쇠년병폐유고침) 늙고 병들어 그저 누워만 있으니
絶塞愁時早閉門(절새수시조폐문) 변방의 혼란한 시국 걱정되어 일찍 문을 닫는다
不可久留豺虎亂(불가구류시호란) 이곳은 악당들이 날뛰어 오래 있을 곳이 못 되고
南方實有未招魂(남방실유미초혼) 남방에는 아직도 부름받지 못한 혼이 귀향을 꿈꾼다
*두보[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동정호(둥팅호)에서 사망] 시인은 중국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인데,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백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주로 낭만적이고 호방한 시를 쓴 이백과 달리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두보는 인간의 심리를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현실을 반영한 서사시와 서정시를 주로 썼는데, 안녹산의 난 등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과 산하를 노래하여 역사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시를 많이 쓰기도 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북정(北征)”,“추흥(秋興)” 등이 있습니다.
*두보는 비록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지만 전란이 끝난 후 친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사천성(쓰촨성) 성도(청두)에 완화초당을 짓고 농사지으며 전원생활을 하며 오랜만에 여유가 생기는 생활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편저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인데, 비온 뒤의 저녁 풍경을 노래하고, 아울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시로 시인이 대력 2년(767년) 기주(사천성)에 거하면서 지은 것이라 합니다. 위 시는 칠언율시의 백미인 登高(등고)와 함께 시인의 시 중 칠언율시의 뛰어난 작품 중 하나라 합니다.
*형식 : 칠언율시(七言律詩)
*返照(반조) : 저녁 무렵에 햇빛이 서산에 걸려서 동쪽을 되비추는 것, 저녁에 지는 해
楚王宮(초왕궁) :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의 양왕의 이궁離宮터, 무산 기슭에 있었다
白帝城(백제성) : 사천성 봉절현에 위치하고 있는데 양자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촉한의 소열제 유비는 영안성이라 이름을 고쳤으나 여기서 붕어한 뒤 다시 백제성이라 불려짐, 유명한 삼협의 최상류인 구당협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때문에 그 근처에 서게 되면 자연히 회고의 정이 묻어나게 마련이라 합니다.
過雨痕(과우흔) : 지나간 비가 스쳐 간 흔적, 지나가는 비의 마지막 빗발,
翻石壁(반석변) : 암석 절벽에 부딪쳐 흔들거리며 움직이다. 석벽에 번득이다
翻(번) : (날 번) 1.날다 2.나부끼다 3.뒤집히다
歸雲(귀운) : 저녁 구름, 구름은 산중 동굴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擁樹(옹수) : 숲을 감싸 덮다
衰年(쇠년) : 노쇄한 연령
高枕(고침) : 베개를 높이 하고 눕다, 평안히 누워 있기만 하다는 자조섞인 표현으로 사용
絶塞(절새) : 외진 변방의 땅, 촉의 기주를 가리킴
愁時(수시) : 혼란한 시세를 경험함
不可久留(불가구류) : 초사楚辭의 초혼招魂에 의하면 “혼이여 돌아오라, 남방에는 오래 머물지 말지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을 차용한 것임
豺虎(시호) : 이리와 호랑이, 흉악한 짐승, 흉포한 악인, 작가는 횡포한 절도사와 장군들에 대하여 이따금 이 용어를 사용함
未招魂(미초혼) : 초혼은 장례식에서의 의식 가운데 하나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들여 공양하려 하는 것, 전국 시대 말기 초나라 송옥宋玉의 초혼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음(추방된 屈原굴원의 招魂賦초혼부), 여기서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 곡 작가 자신, 두보는 잠시 성도에서의 평화로운 생활을 했은 사천성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다시 유랑길에 나섰다, 두보와 그 가족을 태운 배는 양자강을 내려가 사천성과 호북성의 경계인 기주라는 협곡 도시에 머물게 된다. 양쪽 기슭 절벽 사이로 양자강이 흰 물거품을 내면서 흐르는 곳이다. 두보는 거기서 2년 가량 머물렀고, 그 무렵 시는 심히 뛰어나고, 특히 칠언 율시가 가장 우수하여 새로운 시형을 완성하였고, 그러한 시형을 완성하게 영감을 끼친 것이 협곡 도시의 비장한 자연이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