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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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년 교황, 헨리8세 파문
헨리8세
잉글랜드 왕 헨리8세의 주요 관심사는 대포·신학·여성이었다. 해군부를 창설, 영국을 해양대국으로 발전시켰고, ‘신앙의 소유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신학에도 해박했으며, 지칠 줄 모르는 욕정으로 왕비도 6명이나 갈아치웠다. 형이 죽어 형수 캐서린과 결혼한 헨리8세의 첫 결혼생활은 그런대로 순탄했다.
그러나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이 좀처럼 태어나지 않자 헨리8세는 이혼을 결심하고 명분을 찾는다. 다행히 형제 아내와의 결혼을 금한 성경구절 레위기 20장21절이 눈에 띄었다. 교황 클레멘스7세에게 이혼을 요청했지만 교황은 허락할 수 없었다. 당시 교황은 캐서린의 조카인 스페인 카를로스1세의 영향력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헨리8세는 의회를 통한 해법을 찾았다. 1532년 의회는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킨 잉글랜드 국교를 설립하고 왕을 수장으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성공회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1533년 7월 11일, 교황이 헨리8세 파문으로 보복했지만 약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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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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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상해 임시 의정원과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 의회가 합병을 결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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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서울대 제1회 졸업식, 졸업생 215명
1947년 7월11일...서울대학교 제1회 졸업식.
광복 후인 1945년 11월 ‘조선교육심의회’는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 건물을 활용해 국립대학 설립을 제안하였고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관한 법령’ 공포. 이에 따라 1946년 10월 9개 단과대학(문리과·공과·농과·법과·사범·상과·의과· 예술·치과)과 1개 대학원으로 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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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관상대, 첫 기상단파 방송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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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서울서 휴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
1951년 7월11일,,서울서 휴전반대 국민총궐기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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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여객선 제5편리호 침몰 참사(부산 다대포 근해서 승객 130명중 80여명 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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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산업은행연계자금 부정대부(약49억환) 국회서 말썽
1958년 7월 11일, 산업은행 연계자금 부정대출 국회서 폭로
1958년 7월 11일 민주당 박해정(1916-1966) 의원은 국회발언을 통해 산업은행의 대규모 부정대출을 폭로했다. 즉 1958년 5·2총선을 약 2주일 앞둔 4월 20일부터 산업은행에서 기간산업 육성자금 명목으로 특혜자금 40억환을 12개 기업체에 부정대출 했다는 것이다. 대출목표를 80억환으로 책정한 이 특혜자금의 재원은 산업은행에서 차후 금융채권을 발행해 마련키로 하고 우선 산업은행 지불보증으로 시중은행이 먼저 대출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연계자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0년대 후반 당시 산업은행은 자유당 정권의 친여권 기업에 대한 권력형 부정대출의 주된 창구였다. 당시 산업은행은 지금의 명동 롯데호텔 자리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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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북한, 중공과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조인 (군사동맹) 🌿65년 미육군 제1기병사단, 미국으로 복귀. 제2보병 사단으로 대체 🌿66년 서울 노량진ㆍ동부경찰서 신설 (13개서, 249개파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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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천마총 발굴
1973년 7월 11일 천마총 발굴
경주 황남동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황남동 155호분이라는 숫자만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71년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경주 시내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려 했다. 그러나 대규모 신라 고분 발굴 경험이 없어 먼저 155호분을 시험 발굴했다가 국보 제188호 천마총금관을 비롯해 1만1526점의 유물을 얻는 ‘대박’을 터뜨렸다.
숫자만 갖고 있던 155호분은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매단 가죽이나 헝겊 장식, 국보 제207호)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1974년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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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적십자사, 남북적 제7차본회담(평양)서 추석 성묘단 상호방문 제의 🌿73년 제8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박두병 선출 🌿73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시행령 공포 🌿74년 문교부, 중·고 교과서에 한자 병용하기로 결정 (75년 실시) 🌿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인혁당 피고인 7명 사형, 8명 무기 선고 🌿81년 중부·호남지방, 폭우로 재산피해 18억 원 🌿84년 충북 영동군 상공에서 군용헬기 추락, 김공한 육군대장 등 5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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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박철언-김용환, 북한의 한시해-최봉준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막후 실무회담(판문점 평화의집)
1985년 10월 17일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악수하고 있는 박철언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1985년 7월 11일 오전10시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한 밀사들이 비밀리에 두시간동안 만났다. 네차례의 서신왕래와 두차례의 실무접촉 협의를 거쳐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대표회담의 문이 열린 것이다.
한국측 실무대표로는 박철언(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용환( 통일원 남북대화국 과장)이 지명됐고 북한측 실무대표로는 한시해(노동당중앙위 비서국 부부장)과 최봉준(판문점 책임연락관)이 지명됐다. 실무대표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측은 장세동 안기부장, 북측은 허담 노동당 중앙위 비서 명의의 신임장을 휴대키로 이미 합의한 바 있었다. 3번째 실무회담에서 양쪽 특사가 각각 상대방 남북한 정상을 만나기로 합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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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경북 영풍서 삼국시대 채색고분 벽화(직경 12, 높이 3) 발견 🌿85년 정부, 언론기본법시행령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취소ㆍ발행정지 처분때 상대방의 진술기회 주기로 🌿85년 한·영어 기계번역 시스템 개발. 국내에도 제5세대 컴퓨터 시대 도래 🌿86년 남북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들, 경제ㆍ적십자ㆍ국회회담을 8월중 열자고 제의 🌿86년 여자 핸드볼, 국제청소년대회서 우승(이탈리아 테라모) 🌿86년 서울시경, 서울 20개 대학 심야수색 시위용품 1만 8000여점 압수 🌿87년 전두환 대통령, 시국수습에 관한 특별담화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ㆍ29 제안 전폭적 수용 🌿87년 민주당 김영삼총재, 김대중씨의 민주당 입당 합의 🌿88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7ㆍ7특별선언 두 개의 한국을 조작 분열주의안" 🌿88년 부산일보, 한국언론사상 처음 노조 주도로 파업, 신문발행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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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사망
‘폭풍의 언덕’(1939)에서의 로렌스 올리비에. 영국의 영화배우 겸 연출가 로렌스 올리비에가 1989년 7월 11일 사망했다. 향년 82세였다. 올리비에는 60년간의 배우생활 중 연극 1백21편 영화 58편에 출연했고 아카데미영화상을 두번 수상하는 등 20세기 최고의 배우로 칭송을 받았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 해석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등 주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연출하거나 주연을 맡았다. 비평가들이 그를 ‘오셀로의 초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907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5세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올리비에가 처음으로 무대에 선 것은 15세 때였다. 2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서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시작,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 만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 ‘재즈 싱어’ 등에도 출연했다. 스스로 감독-제작-주연을 맡은 영화 ‘햄릿’은 194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여배우 질 에스먼드, 비비언 리와 결혼한 적이 있으며 사망 당시 부인인 조안 플러라이트와 런던에서 살아왔다. 1947년 기사, 1970년 귀족 작위를 각각 받은 그는 신장수술과 암 등 지병으로 몇년간 투병생활을 해오다 1987년 80회 생일을 끝으로 은막에서 은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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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행정개혁위, 문공1부를 문화행정부문과 공보 행정부문으로 분리, 문화체육부를 신설 체육부 흡수통합 🌿89년 서울 영등포을구 재선거를 앞두고 구로동에서 민정당원 100여명 민주·평민당원 16명이 충돌, 15명 부상 🌿89년 헌법재판소는 구 사회보호법 5조1항 '필요적 보호감호'부분을 위헌 결정 🌿90년 백색 스모그현상 확인-수돗물에도 발암물질 🌿90년 그로미코그 회고록, 6·25당시 소련이 유엔안전 보장이사회에 불참한 것은 스탈린 수상의 뜻이었다언급 🌿90년 문교부, 세종대 사태 최종 유급시한 넘겨 수업을 거부한 학생 전원이 학점 미취득으로 유급 발표. 🌿90년 팔당호 주변 경기도 7개군 43개 읍면과 대청호 주변 충북 1구 3개군 11개읍면 수질보전 특별지역 선포. 🌿90년 한국-홍콩-일본 간 해저 광케이블 개통 🌿91년 정부,북한의 연형묵총리가 제4차 남·북고위급(총리)회담을 평양에서 열자고 제의해와 이를 수용하기로. 🌿91년 조흥·상업·서울신탁·산업은행,167억원을 한보철강에 무담보 신용대출. 🌿91년 오대양 사건 관련자 7명이 10,11일 이틀동안 잇따라 자수해옴에 따라 경찰이 재수사에 나서. 🌿92년 통계청, 우리나라 인구가 세계 23위인 4367만 4117명으로 추정되고 남북한 6600만명 추정 발표. 🌿92년 서울대 김수태 교수, 뇌졸증에 빠진 최모 부인(47)의 간을 홍모군(11)에게 부분 간이식수술 실시 🌿93년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美대통령, 청와대-ㅂ백악관간에 상시 전화연락체제 갖추기로 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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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조선일보, 국내 최초로 ‘콩기름잉크’로 인쇄
콩기름잉크로 인쇄된 조선일보 신문이 윤전기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
1996년 7월 11일 무공해 콩기름잉크 인쇄에 들어간 조선일보는 이날부터 한국신문잉크사로부터의 기존 석유잉크 도입을 전면 중단했다. 신문제작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성을 실천하기 위해 종래의 석유잉크는 사라졌다. 콩기름잉크는 생분해성이어서 석유잉크와는 달리 자연 속에서 손쉽게 분해됐다. 스모그의 원인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의 발생량도 최대한 억제되었다.
1987년 미국신문협회(NAA)와 미국 농무부 농업응용연구소에 의해 개발된 콩기름잉크는 19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보급이 확대되어 왔다. 국내에서 최초로 콩기름잉크 개발작업에 참여했던 대한페인트잉크사 기술연구소 임종학 책임연구원은 “콩기름잉크가 환경보전적 측면에서 지금까지 개발된 최상의 잉크 제품”이라고 말했다. 신문제작에 사용될 경우 잉크 사용량도 10% 이상 줄일 수 있으며 파지도 훨씬 적게 나오고 폐잉크 찌꺼기의 독성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페인트 잉크사가 콩기름잉크 제작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91년 미국 내 콩기름잉크 사용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 미국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한페인트 잉크사가 콩기름잉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시제품이 만들어진 것은 1992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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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최승찬(29.제38항공여단 10년 근무 93년 상사 제대) 군사분계선 넘어 귀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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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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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11일, 영국 네이처誌, 인류·침팬지 공통 선조로 추정되는 700만년 전 두개골 화석 발견 보도
인류의 선조(先祖) 중 가장 오래된 약 700만년 전의 두개골 화석이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 공화국에서 발견됐다고 영국 과학주간지 네이처가 2002년 7월 11일 보도했다. 연구를 이끈 프랑스 포와티에 대학의 미셸 브뤼네(Michel Brunet) 교수는 네이처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원인(原人)보다 100만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의 `투마이(Toumai)`라는 이름이 붙은 이 원인의 두개골은 침팬지와 그 크기가 비슷하지만 성인 남자와 유사한 얼굴을 지녔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목의 근육과 연결되는 두개골의 뒷부분을 볼 때, 원인은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발견된 원인은 당시 사람과 침팬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셈이다.
Michel Brunet and his finding, ‘Toum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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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1일, 여성 산악인 고미영이 히말라야 하산 도중 사망하다.
고미영씨와 오은선 대장 고미영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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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적인 게임업체 닌텐도 이와타 사장 별세
닌텐도 이와타 사장.
세계적인 게임업체 일본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56) 사장이 지난 11일 담관암으로 별세했다고 닌텐도가 13일 밝혔다. 도쿄공대 출신의 엘리트 프로그래머였던 이와타는 2000년 닌텐도에 입사해 2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이후 최고경영자로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와 가정용 게임기 ‘위(Wii)’ 등의 개발을 주도해 닌텐도 전성기를 이끌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스마트폰 무료 게임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게임기용(用) 게임에만 집중하던 닌텐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나마 경쟁사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그는 회사의 경영 악화에 대해 속죄하는 뜻에서 자신의 월급을 반 토막 내는 등 시련을 겪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