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울산시민들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주민자치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필자 역시 2년전까지는 그 존재를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3천500여개의 읍면동에는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주민자치회가 설치,운영중에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1998년, 당시 정부가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IMF 사태로 인해 공공기관의 개혁 및 효율화를 위해 정부조직 축소가 추진되면서 읍면동 사무소의 업무범위가 축소 조정돼 여유공간이 생기자 여기에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고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를 심의, 의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풀뿌리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주민자치에 초점을 두고 근본적인 고민과 장기적인 계획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읍면동장의 자문위원회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민자치위원회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지속되면서 2010년 지방행정체제 개편위원회가 이를 개선한 협력형, 통합형, 주민조직형 등 주민자치모형 3가지를 제안했고 이중에서 읍면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와 상호협의, 심의하며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협력형 모델이 최종 결정돼 현재 일부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로 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법적근거에서 큰 차이가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시군구의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조례에 근거하는 반면에 주민자치회는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원은 읍면동장의 위촉으로 해당 지역의 有志, 관변 민관 단체장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민자치회는 기본적으로 공개추첨을 통해 위원을 선정하고 시군구청장의 위촉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로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단지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권만 주어졌지만, 주민자치회는 설립 취지가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이기 때문에 주민자치 사무, 지자체의 위임,위탁하는 사무처리 등 주민자치를 기획하고 심의, 의결하는 실행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과정에서 살펴봤듯이 지난 2013년부터 실시 중인 주민자치회는 현재 여러가지 법적, 제도적, 운영측면에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의 공식적인 통계(2021년 12월말 기준)에 의하면, 전국 3천519개 읍면동 중에서 주민자치회로 전환된 읍면동의 수는 1천13개로서 전환율이 28.8%에 불과하다. 지역별로 보면, 세종특별자치시가 90.9%로 가장 높으며 다음으로 대전광역시(59.3%), 인천광역시(58.1%), 경상남도(50,5%), 서울특별시(46.9%) 순이고, 가장 낮은 곳은 제주특별자치도(0%), 전라북도(2.1%), 대구광역시(4.1%), 부산광역시(4.9%)로 나타났다.
울산시는 2021년 12월 기준 56개 읍면동중에서 7개가 전환돼 비율이 12.5%였다. 그러나 2023년 5월 현재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13개 읍면동이 주민자치회로 전환돼 23.2%를 나타내고 있다. 북구는 8개동 모두가 전환되었고, 중구에는 태화동이 유일하며, 울주군에는 4개 읍면동(범서, 언양, 삼남, 상북)이 전환됐다. 그러나 남구(14개동)와 동구(9개동)는 주민자치회로 전환된 곳이 현재까지 딘 한군데도 없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너무 짧다. 우리의 지방자치의 시작은 해방 후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고 전쟁중인 1952년 지방의회(읍면 의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되었으나, 10년 후 5.16 군사혁명으로 지방의회는 해산되고,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어 지방의회 선거가 다시 시작된 1991년까지 30년 가까이 중단되었다. 그 후 2021년 12월 지방자치법이 다시 전면 개정된 뒤 22년 1월 13일 시행되면서 주민조례 발안제, 주민의 권리 확대 등이 반영되어 주민중심의 지방자치가 시작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민자치회와 관련된 조항이 삭제되어 주민자치회의 법제화가 되지는 못했다.
1952년부터 1961년까지 지방의회가 만들어져 활동중이었던 당시의 대학진학율은 단지 5~6%정도였고,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권재민(主權在民), 즉 우리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정신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대학진학율 80%인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주권재민의 헌법상의 정신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울산은 현재 주력산업의 위기, 빠른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향식의 광역지자체와 시ㆍ군구의회의 보다 더 적극적인 관치행정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아울러 상향식의 일반시민(주민)들의 대표 기구인 주민자치회를 통한 노력도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보다 더 빨리 극복하고 새로운 울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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