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환씨는 청산님이 보안법으로 굶어죽은 이가 없다고 하자 양민학살을 들면서 반론했다...>
이데올로기적 상황에서, 또한 전쟁 상황속에서,
학살은 단지 국가 보안법의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정규환씨는 곧 그 국가보안법이 사건의 주체라 할지 모른다),
그 상황속에서 양자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태백산맥>등의 비교적 친북(?) 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소설속에서는 우익이라 칭하는 자들의(곧 친일파) 만행이 비교적 자세히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만행들과 함께, 북한의 이미 망한 사상인,(검증된) 북한의 사상에 대한 사람들의 동조를 자연스럽게 이끔과 동시에, 친미 쪽 인사들의 양민 학살을 크게 말하고 있습니다.
(친북인사들의 우익학살의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죠)
물론, 그 시절의 농민들(대부분의 소작인들이죠..)이 친북 성향으로 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친북이라기 보다,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따지고 판단할 상황이 안돼는 상황에서
자신이 살고 먹기 위해, 만민평등을 부르짖는 북한의 사상에 동조 된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님의 국가보안법 철폐와 관련지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첫째, 우선 아래의 글은 우익인사들에 대한 북측의 학살건이구요
반공피학살(反共被虐殺) 위령추모비(慰靈追募碑)
논산군 양촌면 오산리 2리 150번지에 반공피학살 위령추모비가 서 있다.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안겨준 6.25, 침략군들이 거치는 곳마다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 이웃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고, 약탈, 방화, 납북등 무자비한 만행을 자행 민족사상 유래가 없는 유혈참극이 벌어졌다.
오산리 위령추모비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대둔산 족으로 약 1Km 떨어져 있는 멱수바위 옆 계곡은 놈들이 우리고장의 양민들을 잡단 학살한 현장으로 온 계곡은 온통 시체 투성이와 피비린내로 꽉차 있었다.
1950년 9월 하순 논산군 일대가 적으로부터 점령 당했을 대 공산당들은 우익인사(右翼人士)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강경읍 농협 창고에 가두었다. 성동면, 부적면, 채운면 일대의 마을유지와 청년회원, 국민회원, 군경, 공무원 가족들을 마구 잡아다가 가두고 심한 매질과 물붓기등 갖가지 고문을 하여 온 몸은 피범벅이 된채 바닥에 깔린 가마니 조각에 누워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놈들은 사람이 아니고 피에 굶주린 살인귀였으며 인간 백정이었다.
주민들은 항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고, 수복되기만은 손꼽아 기다렸다.
UN군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퇴로가 막혀 전세가 불리해지자 대둔산으로 도주하던 북한 공산도당들은 더욱 악랄해기지 시작하였다. 농협 창고에 가두었던 인사들 200여명을 멱수바위 옆 계곡 쪽으로 끌고가 돌과 죽창, 쇠스랑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피에 굶주린 살인마들의 집단인 놈들이 아니고 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멱수바위 계곡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핏방울이 흩날리고 살점이 뒤엉키는 참상은 참으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고서는 감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놈들은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같은 피로 엉킨 한 겨레의 목숨을 한갖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앗아간 놈들의 만행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짙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억제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떨어야 했다.
멱수바위 옆 당시의 현장은 산사태로 돌더미에 덮여 아직도 찾아가지 못한 유골이 묻혀 있는채 원혼들이 넋이 서려있는곳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방송공사에서는 1985년 6월 25일 6.25동란 35주년을 맞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피흘림 없는 조국통일을 기원하면서 반공피학살 위령추모비를 양촌면 오산리에 세워 6.25의 참상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양촌지구 충혼비(忠魂碑)
양촌면 남산리에 양촌지구 충혼비가 서있다. 6월의 푸른 산하가 북괴군의 불법남침으로 붉게 물들여지고 날로 타들어가는 더위와 함께 괴뢰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그들의 악랄한 만행이 점점 심해져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더위도 의식하지 못한채 적치하에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후퇴만 하던 아군은 1950년 9월 15일 연합군 총사령관인 미국의 「맥아더」원수의 총지휘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었다. 9월 28일 적의 수중에 있던 서울이 탈환됨과 동시에 파죽지세와도 같이 밀려오던 북한 괴뢰들은 주력부대가 양분되어 그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퇴로가 끊겨 사기가 떨어진채 북으로 탈출하거나 아니면 탈출하지 못한 인민군과 지방 빨치산 등이 규합되어 험산 준령인 대둔산, 칠갑산 등지로 숨어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대둔산지구 전투는 가장 치열했고 경찰 및 애국 단체원등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대둔산을 근거지로한 적들은 후방 치안 교란 목적으로 관공서를 피습하고 우익인사를 납치 살해 하는가 하면 식량 및 군수품등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대둔산과 연하여 있는 양촌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때 양촌면내 애국 청년들은 대둔산 공비 토벌작전에 자진 참여하여 군. 경. 민(軍.警.民)이 합동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1952년 9월에는 대둔산 낙조대에 공비들의 본부가 있고 1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둔산지구 전투대대 병력과 강경 경찰서 병력, 맹진부대, 양촌향토방위대, 벌곡향토방위대 병력등이 합동작전을 펼쳐 7일만에 완전 점령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양촌 향토방위대(대장황헌익)대원들은 수차에 걸쳐 패잔병 소탕작전에 참여했고 1955년 1월 대둔산 공비가 완전 소탕될때까지 무려 6년간에 걸쳐 양촌.벌곡.연산.두마.가야곡 등지에는 낮에는 대한민국 국기가 게양되고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 불리우는등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양촌지서가 소실되는등 치열한 격전속에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와같이 6.25당시 대둔산 공비토벌 작전에서 전사한 양촌면내 순국지사 29명과 공산당에게 항거하다 학살당한 순국지사 39명을 합하여 68위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후대들에게 반공정신과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지표로 삼기 위하여 1981년 8월 16일 한국반공연맹 논산군지부 양촌면 지도위원회에서 충혼비건립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자체의 성금과 주위의 협조로 1981년 11월 26일 충혼비를 제막하게되니 충혼을 불태운 그분들의 얼은 충혼비와 함께 후세에 영원히 남으리라.
둘째, 북한은 아직 주적입니다.
물론 정규환 님은 주적은 무슨 주적,
민족애를 바탕으로 평화스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라고 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민족애를 방해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 되어야 한다.라고 하실겁니다.
물론 민족애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북한은 아직 주적입니다. 주적의 의미란 서로 총부리를 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님은 그러므로 보안법 폐지가 중요하다
라고 하실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얼마전에도 친북 사이트에 "남한내를 갈라놓으라"라라는 지령을 내리는등,
불과 몇년전만 해도 무장공비, 또한 아직도 북한 당성의 지령은 남한내의 친북좌파세력 확장과, 남한내 불일치 조장입니다.
이러한 것은 곧 북한은 남한을 아직 주적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이나면 미국을 공격한다구요?
하지만 전쟁이나면 우리나라 국민이, 자신들이 민족이라 부르짖던 서울시민을 향해 수백개의 포문을 열것입니다.
그러한 남한내 북괴 침투의 마지막 법적 버팀목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민족애, 화해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북괴가 또 남침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윗말의 의미는 곧, 한쪽으로는 화해와 민족애, 자주적 통일등이 중요하므로 그것을 내세우는 한편,
국가보안을 위한 보루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님은 군인이 지키면 되는 거지 그러한 법이 왜 필요하냐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지키라고만 하면 될까요??
님께 한분 여쭙고 싶습니다....정규환님....
그리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차별받는 인사는 현상황에선, 이적단체들, 곧 대표적으론 한총련 일것입니다.
한총련은 말그대로 북한의 앞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말가지고 또 모라하실테지요..ㅋㅋ
하지만 사실입니다. 언제적 기사인지 몰라도 북한의 지령이 한총련에 내려왔고 그들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해선(즉,북한당성에 대한 항의) 한번도 말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조총련과 통해 있는데, 조총련은 일본 정부가 압수수색한 결과 북한 당성과 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지령이 무엇이겠습니까?
곧 위에서 말한대로 남한내 분열 조장과, 친북좌파세력 확장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