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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후에 우현군에게 들으바에 의하면, 그 '빨간망토 차차' 컨셉은 실용성이 부족하단 이유로 업체에 거절당했단다.
확실히 너저분한 내 모습을 띄워주긴 했지만, 평상복으로 입기에 용기가 필요한 건 인정하는 바였다.
옷은 두번째 짜릿함의 추억을 안고 옷장 안에 고이 간직되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네 사람에 대한 편안함의 농도가 짙어졌고, 호칭이 바뀌었다.
진혁오빠. 재우오빠. 우현오빠. 그리고, 아저씨.
호칭 사건의 발단은 내가 무심코 뱉어버린 '아저씨'란 말이었다.
순간 '욱'한 재우군은 고래고래 큰소리로 외쳤더랬다.
"아저씨라니! 오빠라고해! 따라해봐. 재우오빠-"
연이어 우현군도 같이 칭얼댔기에 할 수 없이 우현오빠와 진혁오빠까지 호칭을 텄다.
그리고 마지막, '아저씨'라는 첫인상이 강하게 와닿아버린 휘민 녀석에게는
도저히 오빠라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던 난 입이 한치나 나와서 뾰루퉁해있는 녀석을 향해 달래듯 말을 건넸다.
"특별하잖아요."
일순간 녀석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담는 걸보며 재우군은
"다루는 법을 확실히 익혔군."
했고, 그 말에 난 괜히 뿌듯해짐을 느끼며 네 사람을 내 쳇바퀴에 꾹꾹 박아넣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다가온 '대수능 D-Day'.
철없는 고등학교 2년생 안유리에겐 '달콤한 휴일'이 되는 날이었다.
불어온 수능 한파에 보일러와 소설책을 찾아 1층으로 내려왔더니, 다짜고짜 '놀이공원'에 가자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처음으로
"저 놀이기구 못 타요!"
하며 반항이란 것을 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만 더 짖궂어질 뿐이었다.
결국, 소풍날 꾀병을 부려가면서까지 피해왔던 놀이공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역시 저것부터 타야겠지?"
재우군이 베시시 웃으며 가리킨 것은 '바이킹'이라 불리우는 그 것이었다.
타기 전부터 멀미를 시작한 나는 정신을 놓은채 탑승하여 정신을 놓은채 내렸다.
그 후 겨우겨우 정신을 찾았을 적에는 휘민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우현군이 전해준 귓속말에 의하면 내가 바이킹을 타는동안, 녀석이 아닌 진혁군의 품에 안겨있었단다.
이상하게,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아저씨."
대답없음.
"아저씨?"
역시나.
"화 났어요?"
이번에도.
"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바라본 녀석의 얼굴은 뾰루퉁하게 부어있었다.
나도 미쳤지.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순간 '핏'하고 웃어버렸다.
"왜 웃어?"
이젠 거의 울상이 되어 날 향해 물어오는 녀석.
그와 동시에 난 '내 18년 평생 가장 미친 짓'이라 할 수 있는 '그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항상 먼저 다가오던 그 촉촉한 입술에 내가 먼저 다가가 버린 것이다.
1초째엔 부드러운 감촉에 기분이 좋았고 2초째엔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패닉에 사로잡혔다.
3초째엔 뒤따라오던 세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고 4초째엔 휘민 녀석의 토끼눈을 보았으며
5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입술을 떼며 담담한 척 말을 건넸다.
"잘못...했다구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돌아선 나를 녀석은 거세게 끌어다 품 안에 가두었다.
살짝 열린 시야로 실소를 터뜨리며 지나가는 재우군과 그 뒤를 따르는 우현군이 보였고,
왠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진혁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녀석의 품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 12
"봤지? 이쁜이가 나한테 키스해주는거. 응? 봤지?"
녀석의 기분이 풀린건 이미 옛날 옛적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반복되는 그 팔불출 소리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이어지자
재우군과 우현군은 '으~!' 진절머리를 치며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진혁군은 언제나 그렇듯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올라가볼게요."
"벌써? 아직 9시 되려면 멀었는데?"
"오늘 휴일이잖아요."
"아~"
녀석은 작게 탄식을 내뱉더니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곤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섰다.
잠겨져 있지 않은 현관. 엄마께서 돌아와계셨다.
"어디 갔다오니?"
"놀이공원이요."
"놀이공원? 다 같이 다녀온거야?"
"네."
엄마에게는 네 사람과의 일을 조금씩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그 덕에 감추고 있는 몇몇 사실에대한 죄책감이 조금 사그라들 수 있었다.
아빠는 의도적으로 녀석의 이야기를 피했고, 동생은 관심조차 없었기에 가족들 중에선 엄마가 유일한 소통창이었다.
"하아-암. 엄마 일찍 좀 잘게."
오후 6시가 채 안된 시각. 하품을 거나하게 한 엄마가 잠잘 채비를 모두 마쳤다.
고된 일을 시작하신 뒤로 종종 있는 일이었다.
"네. 안녕히주무세요."
"아빠 오늘 저녁 먹고 늦게 들어오신대. 유진이도 이모집에서 자고 바로 학교 간다니까 밥 먼저 먹으면 돼."
"네."
그렇게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고, 부엌으로 향하던 난 문득 든 생각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살금살금 집 밖을 빠져나와 아래층으로 향했다.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자 평소와 달리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 나갔나, 현관문을 다시 닫으려던 찰나 아득히 '달칵' 마우스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들어선 집안,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방문을 열자 역시나 진혁군이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슬며시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자, 진혁군은 나에게 눈길을 한 번 주더니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며 입만 벙긋거렸다.
"표절 시비가 붙었대. 회사에 불려갔어."
그닥 달가운 소리가 아닌데.
"오빠는요?"
"난 컴퓨터 관련 일만 맡고 있으니까."
"아..."
그 뒤로 계속해서 이어진 침묵. 간간히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만이 방안에 울렸다.
멀뚱히 방 이곳저곳을 살피던 난 게임기로 보이는 물건 하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거 게임기예요?"
진혁군은 내 시선을 따라 물건을 힐끗보더니 나에게 진지한 어조로 물어왔다(항상 진지한 어조다),
"응. 할래?"
"하던 일에 방해가 되면..."
내 대답히 채 끝나기도 전, 그는 하던 일을 과감히 꺼버렸다.
그리곤 게임기를 들고 나가 거실 TV에 설치하는가 싶더니, 이내 말없이 게임을 시작했다. 시범을 보여주려는 모양.
"재밌겠다."
게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두 사람이 딱 붙어서야 하는 것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참 오랜간만에 '까르륵' 웃어보았고, 진혁군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개구진 미소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웃을 줄 아는구나.
그렇게 게임 요령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조금 어두운 표정의 세 사람이 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왔어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대답 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노려보는 휘민 녀석. 맞잡고 있는 나와 진혁군의 손이었다.
어쩐지 놀라버린 난 황급히 손을 떼려 했지만 그의 손엔 꽤나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올려다보자, 그는 비로소 힘을 풀었다.
주춤주춤 그에게서 떨어져나왔다. 공기가 무거웠다.
한참이나 진혁군을 노려보던 휘민 녀석이 나에게로 시선을 옮겨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어깨에 팔을 두르려 들었다.
순간, 왜 그랬던걸까.
난 녀석의 팔을 밀어내버렸다. 진혁군을 흘끔 보면서. 분명 티가 났을 것이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휘민 녀석의 표정과 굳어있는 진혁군의 표정이 겹쳐졌다.
난 황망히 현관으로 향하며 들릴듯 말듯 인사를 전했다.
"올라가볼게요."
뭔가, 엉망이다.
# 13
넉살좋은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단 마냥 활기차게 굴었다. 나 또한 담담한 척 받아들였다.
갑자기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된 것과 휴일마다 억지스럽게 둘만의 데이트를 권하는 것까지도.
돌아온 주말. 이번에도 둘이서 시내의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재우군과 우현군이 무지막지하게 달라붙는 통에 결국 다섯사람이 함께하는 외출이 되어버렸다.
휘민 녀석은 진혁군과 상당한 거리를 둔채 내 어깨를 두른 팔에 힘을 실었다.
난 꼼짝없이 녀석의 가슴께에 기대선 채로 노래방에 들어서야 했다.
"나부터 할래!"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일단 이 형님부터!"
"형님은 무슨! 겨우 3개월 차이를 가지고!!"
순서를 앞다퉈가며 마이크를 잡은 재우군과 우현군의 노래실력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둘 다 처음 몇 곡은 그럭저럭 소화하는가 싶더니 네 곡째를 넘어가면서부터는 힘들어진 목상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하늘에서 귀마개가 떨어지길 간절히 기다리던 그 때, 진혁군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분위기에 꼭 어울리는 애잔한 발라드.
굉장한 노래 실력과 함께 그의 옆모습 또한 '예술'이란 단어를 거부하지 않았기에 난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멜로디 음이 차차 가라앉아갈 즈음,
재우군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장소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큭."
고개를 돌리니 실소띈 재우군과 굳은 표정의 휘민 녀석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너무 집중해버렸나. 어색한 미소를 띄워보였다.
'100점'을 알리는 요란한 기계음을 끝으로 드디어 휘민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미래의 남자친구'가 한번쯤 불러줬음직했던 그 노래, 임재범의 '고해'였다.
하지만, 진혁군의 노래를 이미 듣고 난 터라 휘민 녀석의 노래는 그닥 큰 감흥이 없었다. 미안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사건이 있었던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어느새 편안한 일상처럼 녀석의 품안에서 보내는 학교생활이 막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살짝 피곤한 감이 없잖은 자율학습을 마치고 녀석과 함께 대문으로 들어섰다.
녀석이 들어간 1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나도 우리집 현관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바로 옆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옅은 담배 연기와 인기척이 배어나왔다.
호기심에 이끌려 어느새 옥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진혁오빠?"
옥상에 다다르자 보인 것은 시선을 먼 곳에 둔채 담배를 태우고 있는 진혁군의 모습이었다.
그는 깊은 상념에 빠진 듯 내 목소리에 반응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난간에 안겼다.
역시나 이어지는 침묵.
세상에서 제일 혐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담배연기가 허파 깊은 곳에 기분 나쁜 숨을 몰아쳤지만, 참아내었다.
진혁군과 함께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침묵의 미학을 즐기기위해.
담배꽁초가 두 마디 남짓 남겨졌을 즈음 그는 '춥다, 들어가'하며 아래로 내려가버렸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내려왔다.
그렇게 저녁 9시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그 일상이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꼭 그 시간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진혁군 덕택이었다.
삼일째부터는 담배가 녹차를 따른 종이컵 두개로 변해 있었다.
칼바람에 온기는 아스라히 식어버렸지만 가슴 한켠이 따스해져왔다.
새로운 일상이 생겨난지 꼭 8일째가 되던 날,
역시나 아랫층에서 들려온 문닫히는 소리를 확인한 난 옥상으로 향했다.
침묵, 녹차, 그리고 바람이 둘 사이에 놓여있었다.
야금야금 비워가던 녹차가 어느새 종이컵 바닥을 드러내자, 어김없이 그가 뒤돌아섰다.
언제나처럼 그의 뒤를 따르려던 그 때, 옥상 입구에 사람의 형상이 비쳤다.
"역시."
"재우...오빠?"
재우군이었다.
왠지 긴장이 되어 쥐어졌던 손바닥의 땀이 바람에 날아갔다. 기분이 묘했다.
"제수씨."
평소의 깐족대던 모습을 지운 재우군이 가로등 빛에 희미하게 비쳤다.
온몸에 바짝 힘을 준 채 꼿꼿히 서서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지금, 굉장히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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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보내 드렸어요- 히힛. 리플 감사합니다♡
왜왜 왜 위험해! 쪽지주세요 ^^
네엡, 쪽지 보내드립니다~ 리플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