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0년 11월 12일 오전 9시 20분(중국 현지시각),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우리절 칭다오 도량에서는 삼존불 점안식 및 개원법회가 열렸다.
점안식 및 도량개원 법회는 회주 큰스님을 비롯한 우리절 대중스님(칠곡․경산도량 주지스님, 칭다오도량 주지스님, 대호스님, 금강스님)과 신도님들, 그리고 칭다오 현지 불자. 교민 등 3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여법하게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 주 칭다오 김선흥 총영사님, 김찬원 영사님, 중국 내 한국사찰 포교당의 스님들께서 함께 하셨다.
-칭다오 도량 개원식 테잎 커팅식-
점안 및 개원 축하 테잎 절단식을 시작으로 이날의 행사는 아래의 순서로 진행됐다.
○ 1부
. 테이프 커팅-현판식
○ 2부
.점안의식
○ 3부
.육법공양
○ 4부
.삼귀위-우리절 노래-칭다오도량 경과보고-칭다오도량 신도대표 인사-대구 큰절 총동문 신도회장님 인사-주 청도 대한민국 총영사님 축사-청법가-우리절 회주 큰스님 법문-가릉빈가 중창단 축가(공양편4, 축복, 개사곡)-내빈소개-시루떡 절단식-발원문 낭독-사홍서원-공지사항-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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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도량을 세우는 것은 부처님과의 숙세의 인연/회주 큰스님 개원법회 법문
◈ 먼저 김선흥 총영사님과 김찬원 영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축하를 해주러 이 자리에 오신 스님 두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천진에 계시는 덕윤스님, 비행기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노산의 법성사 선정스님께서 오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열리고 있는
청도도량 개원의 의미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청도도량 개원을 한마디로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동녘하늘을 보고 있는데 마침 태양이 솟으려고 하는지 그 하늘 빛깔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파스텔 빛깔, 아주 은은하면서도 익어가는 살구빛깔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참 싱그럽다고 할 정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구를 보면 침이 입안에 돌지요? 그런 침이 돌만큼 싱그러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오늘이 그만큼 싱그러운 날인데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이 늘 오늘처럼 싱그럽고 밝은 날이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싱그러운 아침을 맞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늘 진리와 함께 있고 또 우리는 늘 부처님과 함께 하는 불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공부시간에 자주 해 드리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산동반도와 관련된 딱 맞는 이야기이기에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주 싱그러운 이야기이니 잘 들어보세요.
우리나라 1,600년 불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두 스님이 있다면 원효스님이요, 의상스님이십니다.
의상스님께서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중국땅이 바로 산동반도였습니다. 이곳은 지도를 펴놓고 보면 우리나라와 가장 근거리에 있는 중국땅입니다. 여러날 동안 배를 타고 많은 고생 끝에 산동반도에 도착한 스님은 몸이 쇠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자가정을 찾았는데 왕씨 성을 가진 거사의 집이었지요. 거기에서 서너달 이상 머물면서 몸을 추스렸습니다.
왕거사에게는 혼인 적령기의 딸 선묘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 선묘가 아버지를 따라 의상스님을 잘 보살펴 드렸지요.
그때 의상스님께서는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불교가 앞서 있지만 그 당시는 중국불교가 교학적, 수행적으로 더 많은 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의상스님께서는 중국의 지엄스님을 찾아가던 중에 산동반도에 머물게 되었던 겁니다.
몸을 추스린 스님은 지엄스님을 찾아가 7년 동안 화엄경을 공부하게 되었고 스님께서 화엄경을 적절하게 요약하신 것이 우리가 늘 접하고 있는 ‘법성게’ 라는 명문의 말씀입니다.
의상 스님은 공부를 마치고 산동반도를 거쳐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왕거사 집을 다시 찾습니다.
선묘 아가씨는 스님을 치료하는 동안 정이 들었던지 결혼적령기를 훨씬 넘긴 채 아직도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묘는 부모님 몰래 스님의 옷을 짓고 있었는데 그 옷이 다 될 즈음해서 스님이 돌아 왔습니다. 바느질이 조금 남아서 그날 밤새도록 옷을 지어 장농 위에 잘 올려두었습니다. 아침에 스님께서 가신다는데 이 옷을 꼭 드려야지 하고는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속속 도착하시는 내빈-
스님은 선묘아가씨가 곤하게 자니까 깨우지 말라 하고는 떠나가게 됩니다. 제가 여기 와서 보니까 이 칭다오 도량 근처에 왕거사의 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바다까지는 한 두 시간 걸리겠지요. 의상스님께서 부두에 도착할 때 쯤에 선묘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일어나 보니 스님이 떠나고 안 계신 겁니다. 인사도 없이 몰래 가신 걸 알고 선묘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지어놓은 옷 보따리를 들고는 달음박질을 합니다.
부두가에 도착해보니 저만치 돛단배 하나가 가고 있습니다. 분명 의상스님이 타신 배 같았습니다. 칠년을 기다리며 부모 몰래 짬짬이 옷을 지었는데 옷도 못 드리고 인사조차 못했으니 선묘의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한 번 헤아려 보세요.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 답답한 일입니까.
그래서 기도를 해서 이 옷만 어떻게 보내드리고 나서 호법신장이 되어 스님을 따라다니며 돕겠다는 원을 세웁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한 뒤에 온 힘을 다해 옷 보따리를 집어 던졌습니다. 옷보따리가 저멀리 배까지 갈 리가 없지요? 그런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일더니 옷보따리를 휘감아 올려서는 의상스님이 탄 뱃머리에다 툭 떨어뜨립니다.
아주 극적인 일이지요? 영화같으면 이 장면에서 박수가 나고 난리겠지요.
옷이 배에 떨어지는 것을 본 선묘는 자신의 치마를 뒤집어쓰고 바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호법 용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웠던거지요.
화엄경의 대가였던 의상스님이 한국에 와서 많은 일을 마무리 짓고 나중에는 후학들을 지도하기 위해 영주 부석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깡패스님들이 더러 있나 봅니다. 제가 이야기 듣기로는 청도에도 가끔 그런 스님들 때문에 신도들의 신심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계사에 싸움이 일어날 때 한 번 보세요, 여기가 소림사인지 헷갈리지만 그런 스님은 사실 1%도 안 됩니다. 전체 큰 것을 보시고 부처님 법을 보셔야지 그런 일로 신심이 떨어져서 절에 가느니 마느니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삼존불 점안의식-
그때도 그랬던지 의상스님이 부석사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절대로 못 들어가게 막는 겁니다. 그러자 늘 호법신장으로 따라다니던 선묘가 용의 힘으로 커다란 바윗덩어리 하나를 들어올려서 부석사 무량수전 공중에다 띄웁니다. 그게 떨어지면 법당이 무너지고 깔려 죽겠지요.
말 그대로 부석浮石입니다. 들어오지 못하게 막던 사람들이 공중에 떠있는 돌을 보고는 하늘과 모든 신장이 의상스님 편이구나 직감하고 혼비백산해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그때서야 의상스님이 그 절에 들어가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지금도 이름이 전해져 오는 10대 제자가 있습니다.
지금도 부석사에 가보면 ‘선묘각’이라고 해서 성냥통보다 작은 집이 하나 있고, 그 위 조사전에는 의상스님과 선묘아가씨가 비록 그려진 모습이지만 같이 있는, 그런 아리따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 바로 그러한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본거지가 칭다오 주위라고 보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어떤 인연으로 몇 년을 살든지 간에 참으로 멋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정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종교적 정으로 승화시켜간 가장 모델적인 이야기가 바로 선묘 이야기입니다.
인간적으로 느끼는 그 정을 진리의 정, 불심의 정으로 승화시켜서 불법을 지키는 훌륭한 보살이 되었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단한 감명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싱그럽고 멋있는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이 법당 역시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고 봅니다. 사람이 만나는 곳에는 정이 있어야 됩니다. 모두가 다 물 건너와서 살고있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고통을 서로 이해하는 도량이 되고 더 나아가 참선, 기도하고 봉사도 좀 열심히 해서 이곳이 바로 진리적 정, 불심을 나누는 대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멋진 인생을 노래하게 되고, 이 도량이 오늘처럼 멋진 도량으로 남아 더욱 발전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드릴 말씀은 칭다오 도량의 운영방향입니다. 여기는 영남불교대학이라고 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잘못될 일은 절대 없습니다.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의 성실도를 가지고 정법대로 수행을 하고 봉사를 할테니 지금까지 중국에 들어온 한국불교가 어떠했다는 선입견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 출발하는 마음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행사를 마치고 우리가 철수하면 여기 계신 분들이 스스로 칭다오도량을 지키는 주인이되셔야지 더 이상 큰절에 의지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영남불교대학.대관음사 칭다오도량의 간판 아래에서 칭다오 핵심멤버들과 함께한 대구팀-
그리고 또 여기 다니는 분들끼리 싸우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집안꼴이 안되는 집을 보면 늘 싸웁니다. 절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제 이곳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공양간에서 봉사하시는 이곳 불자님들이 벌써 우리절 수행복을 입고 계시는 것을 보고 참 흐뭇했습니다.
우리절 수행복을 보면 깃에 줄무늬가 나 있습니다. 시골의 사립문을 연상케 하는 무늬입니다. 우리절 가방도 그런 무늬입니다. 절집안이 하도 잘 싸워서 어떻게 하면 화합할 수 있을까 해서 궁리 끝에 그 무늬를 넣었습니다. 화합하고 단결해서 우리 당대에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어 보자는 원의 상징으로 그 무늬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절대 화합하시기 바랍니다.
이 절은 공부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봉사하는 도량으로 잘 운영할 것이고, 또 대구 큰절과 연결해서 최첨단 기법을 이용해 영상강의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3월 네 번째 주에 대구 큰절과 대구 위성도시인 칠곡, 경산, 구미, 감포 등 많은 분원에서 동시에 강의가 열리게 됩니다.
함께 공부하고 수행함으로써 전체가 일체감을 가질 수 있고 또 요즘 시대에 맞는 첨단불교의 표상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백퍼센트 만족해하는 화상강의입니다.
-남성불자님이 더 많은 칭다오 도량 개원법회 모습-
아까 신도대표님 말씀이 한 달에 한 번 오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는데 제가 근처에 있는 구미도량에도 6주 동안 못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청도도량이 아주 잘하고, 많은 분들이 불교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신심을 내고 단결해서 땅이라도 크게 마련해서 열심히 하면 제가 한 달에 한 번 오겠습니다.
-영남불교대학.대관음사 칭다오도량 전경, 간판이 달리지 않은 이층 끝부분까지가 도량 건물-
우리 한국사람의 피 속에는 1,600년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불교의 피가 있습니다. 윗대에 올라가보면 조상님 중에 스님이 다 계셨을 겁니다. 어느 스님이 나셔도 나셨을테고 불교를 믿지 않았던 집안이 없을 겁니다. 지금 다른 종교를 믿고 있을지라도 그 마음과 피 속에는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다른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종소리를 듣고 목탁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다른 느낌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한국의 문화는 불교문화를 빼놓고는 더 이상 말할 게 없습니다. 문화재니 국보니 하는 것들이 불교를 빼고는 뭐가 있습니까? 그런 불교를 이역만리 땅에서 우리가 지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좋은 일에 스스로 동참한다면 칭다오에 나와 계시는 모든 분들이 그로 인해서, 이 도량으로 인해서 많은 행복감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칭다오 도량 역시 모든 재정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재정이 한국으로 역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여기에서 대도량을 일구어 가셔야 합니다. 대구 큰절은 또 하는 일이 많고 다른 곳에도 새로운 도량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지원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이곳을 한국문화의 교류장소로 삼으셔야 됩니다. 합창단의 노래라든가 감로다례회의 육법공양이 다 한국문화입니다. 이곳에서 필요하다면 선생님들이 와서 일년에 몇 번은 지도를 해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배워서 해야 합니다. 불교문화, 한국문화를 자생적으로 꽃피워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1월17일에 전체 도량에서 함께 시작하게 될 [송구영신 원성취 백일기도] 책자를 나눠 드렸을 겁니다. 그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이 도량을 의지해서 무조건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기도하고 참선을 해서 내공의 힘을 다져야 됩니다. 자기 힘이 없는데 뭘 하겠습니까? 스스로 힘을 다지셔야 합니다. 이 기도는 전체 도량이 함께 입재하고 회향하게 됩니다. 그 기도 열기에 칭다오 도량 신도님들도 동참하셔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기도책자 속의 기도 숙제 등을 간단히 설명해 주심)
기도 숙제 중에서 꼭 지켜야 할 것이 ‘일주일에 한 번 법당에 나오기’입니다. 이렇게 크게 잘 지어놓고 나오지 않으면 부처님이 외롭습니다. 부처님께서 외롭지 않도록 자주 오시기 바랍니다.
주위에 포교해서 법당이 비좁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행사도 법당이 좁아서 마당에까지 서게 되면 중국의 공안당국에서 뭔 일인가 하고 쫒아올까 봐 걱정을 하면서 왔는데 그 걱정을 없애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법당이 가득차서 무릎과 무릎을 붙이고 앉아야 됩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우리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고 전체 교민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이 부분을 두고 만찬장에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오셨다고 여러분들이 정정해 주심)
그리고 꾸준하게 오래 다녀주시기 바랍니다.
기도책자를 잘 이용해 주시고 수행후에는 꼭 체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는 또 이곳에 올텐데 그때 기도책자를 점검하겠습니다. 그러려고 수행책자가 나와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체크하시고 저와 이곳 주지(지범)스님도 체크를 할 겁니다.
공부도 주위에서 독려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백일기도라고 하지만 기도를 십일 넘게 끌고 가는 사람이 잘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좋은 일은 옆에서 누가 자꾸 채찍질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곳에는 주지스님 외에도 금강스님이 총무 겸 기도스님으로 와 있습니다. 그리고 큰절에서 파견 나온 수향보살님이 있지요. 수향보살은 2개월 동안 이곳 살림을 돌보고 그 뒤엔 다시 큰절로 갈 겁니다. 그때는 현지인으로 바뀝니다.
그 동안에 주지스님을 중심으로 이 세분과 상의를 해서 칭다오 도량의 기초를 빨리 닦으셔야 됩니다.
세 번째, 기초를 닦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몇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께 절할 때 방석 위에 펴는 배례건을 보시한 분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오신 김창남 노보살님입니다. 일어나 보십시오. 가정도 잘 되어있고 자식들도 모두 잘 되어있지만 새벽부터 나오셔서 절에서 물건 파는 봉사를 하십니다.
이번에 칭다오 도량 개원식을 한다고 하니 이렇게 흔쾌히 배례건을 시주했습니다.
제가 소개를 드리는 이유는
불교를 믿고 신행할 때는 나이를 핑계 삼으면 안됩니다. 노보살님은 저 연세에도 오로지 불심 하나로 부처님이 좋아서 나이 따지지 않고 새벽부터 나와서 봉사하십니다. 우리 노보살님 본을 좀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서울에서 오신 분입니다.
한마니화 보살님 일어나보세요. 저 뒤에 계시네요. 통신반에서 공부를 하시면서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구까지 늘 다니시고 포교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신행에는 거리가 문제가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광주에서도 오시고 부산에서도 오시고 하는데 오늘 특별히 서울에서 오셨기 때문에 소개를 드립니다. 거리를 핑계대어 가지고는 정법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행을 하는데는 세월이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구큰절에 14기로 입학했던 분인데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까? 일층에서 일하고 계시답니다. 큰절 14기이면 1995년도쯤부터 다닌 분입니다. 한 2, 3년 다니다가 어떤 형편으로 중국 칭다오까지 왔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포교당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전세 삼천만원을 빌려서 시작했지요. 지금 이곳은 여건이 아주 좋은 겁니다. 그때 우리도 땅을 한 번 사보자 해서 전 신도님들이 발원을 했는데 그래서 나온 장치가 통장 하나씩을 마련해서 성의껏 모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08만원을 모으면 절에 갖다내자는 자발적인 행사가 있었습니다.
14기의 보살님이 그 당시 108통장을 가져갔던 모양입니다. 저는 누가 누군지, 누가 통장을 가져갔는지 잘 모릅니다. 가까이 있는 몇 분을 빼고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 많은 신도님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 사람은 오늘 우리절에 처음 왔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다가 몇 번을 창피를 당했어요.
‘오늘 처음 오셨습니까?’ 이러면 우리 신도님들이 ‘스님, 너무 섭섭합니다. 이 절에 4년 째 다닙니다.’ 그래요. 그런 경우가 많아 요즘은 꾀가 나서 그렇게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 오셨습니까?’ 그러면 '스님이 나를 잘 아는구나' 하고 신도님도 저를 좋게 인정을 합니다. 살다보니 꾀가 생기더라고요.
14기의 보살님을 저는 얼굴도 모르는 거지요. 그런데 몇 년 전 7년 만에 만났는데 통장을 하나 내어 놓아요. ‘스님 제가 6, 7년 전에 통장을 하나 가져갔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도저히 못넣다가 중국 칭다오에 가서 돈을 좀 벌어서 통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그것을 보고는 세상에 이런 분도 있구나 하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와 보니 그분이 이곳에 계십니다. 그때 전화번호를 주셨는데 이번에 오면서 못 가져와서 걱정을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거지요.
무원거사님이 도량을 내는 일로 몇 번을 대구큰절을 찾아왔다가 한 번은 저하고 딱 마주쳤습니다. 마주 대면하고 이곳의 불교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도량이 꼭 필요하다고 하니 제가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칭다오 교민들을 위한 도량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모든 여건이 여의치 않았지만 거절을 할 수가 없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보살님이 이야기했을 때는 칭다오에 분원이 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지요.
그런 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세월도 문제가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법을 찾는 데는 나이도 개의치 말아야 하고 거리도 세월도 개의치말고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다보면 이곳에도 여러 단체가 생길 텐데 저와 함께 큰절에서 온 단체를 소개하겠습니다.
아까 부처님께 육법공양을 올린 감로다례회(지도 손말숙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일어나 보세요. 칭다오도량에 부처님을 모시는데 함께 가시겠냐고, 소임을 맡은 스님이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을 했던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육법공양을 올리는 큰절 감로다례회-
오늘 축가를 불러줄 우리 합창단 속의 중창단입니다. 단장보살님(박판임님) 일어나 보세요. 채널을 통해 칭다오에 노래하러 가시렵니까 했더니 흔쾌히 동참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이 이렇게 협조적이면 사는 보람이 있지요.
그리고 또 총동문신도회 임원님들이 같이 오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대구 큰절의 가릉빈가 중창단-
단체를 소개하는 뜻은 절을 위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모두 이렇게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패거리를 지어서 단체끼리 비방하면 큰일이지요. 전혀 다른 성격의 단체라면 비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나름의 봉사, 그 영역의 일은 그 단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그것을 시기질투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절이 망할 때 보면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중지란으로 스스로 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점을 오늘 오신 분들은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네 번째로 대중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칭다오도량의 주지 소임을 맡게 된 지범스님, 총무 겸 기도스님인 금강스님, 그리고 종무소와 불교용품점에 근무하게 될 수향보살입니다. 수향보살은 큰절 사무장인데 두 달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서류 작성하는 것을 가르칠 겁니다. 뭐든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겁니다. 심성도 착하고 절 사정을 아주 잘 알며 기도하는 방법 등 신행상담도 해 줄수 있는 보살입니다. 자리 잡힐 때까지 두 달 동안 사무를 봐 줄 겁니다.
이 세분을 중심으로 신도대표와 거사님 보살님들이 힘을 합쳐 빠른 시간 내에 도량을 잘 일궈서 건물에 세들어 살지 말고 땅을 확보하기 바랍니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봤을 때 중국은 종교적 제한이 많다고 하지만 다행이 불교에 대해서만큼은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우리는 운이 좋고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오늘 오신 총영사께서도 우리불교, 우리문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협조해 주시겠다하니 더 이상 좋은 일이 없지요.
일이 잘 되리라고 봅니다만 문제는 우리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제와서 보니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이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 오신 신도님들로부터 '칭다오가 다른 도량 못지않게 잘 될 것같습니다. 신도님들의 생각이 청정하고 연세가 젊고 거사님들도 많고 생각들이 원만해서 잘 될 것 같습니다'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부처님과의 숙세의 선근이 아니고는 이런 도량을 개원하고 지키는 일을 맡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인연 끝에 이런 도량과 인연이 되었고 우리 스스로 도량을 세울 수 있는 그러한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시고 우리일,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교대학에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라는 말인데 참으로 좋은 인연입니다.
다 합장을 하시고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저희들은 이 도량에서 수행의 맛, 봉사의 맛, 인생의 맛, 진리의 맛이 무엇인지 분명히 터득하겠습니다.
이 세상이 다하고 미래세가 다하도록 오직 정법을 지키고 받드는 참 부처님제자가 되며 호법신장이 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모두 건강하시고 칭다오도량이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늘 기도하고 지원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 칭다오도량 경과보고-불사추진위원장 무원 류문수님영남불교대학 칭다오 도량을 마련해 주신 회주큰스님께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또한 바쁘신 가운데도 금번 칭다오도량 개원법회에 동참해 주신 총영사님께 감사드리며 경과보고 드리겠습니다.
칭다오에는 현재 약 10만 명의 한국교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많은 불자들이 있지만 부처님 법을 배우고 따를 수 있는 신행도량이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대구의 영남불교대학을 방문하여 회주큰스님께 간곡히 청한 결과 오늘과 같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자리가 마련됨으로써 우리 칭다오 교민들의 마음의 안식처, 나아가 마음놓고 신행생활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칭다오 불자 또는 많은 교민들이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식처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하겠습니다.
◈
주 칭다오 김선흥 총영사님 축사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9월 22일에 부임했습니다. 한 달 반이 되었는데 이런 좋은 불도량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우리들 마음의 스승이신 스님들 그리고 불제자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참석해 주셨고, 그리고 이 도량을 만들기 위해 발심하시고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이 도량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이웃과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에게도 미치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이 도량의 무궁한 발전과 불제자 여러분들, 그리고 스님들의 건강을 빌면서 저의 인사에 가늠합니다. 감사합니다.
-왼쪽:칭다오 주지스님, 오른쪽: 대한민국 주 칭다오 김선흥총영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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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도량 주지이신 지범스님 인사말씀반갑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큰스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동안에 분원을 짓느라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신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칭다오 주지소임을 맡고나서 많은 기대를 안고 이 곳에 왔을 때는 뭔가 희망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한 달 동안 준비해 오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여러분들의 신심과 힘으로 이곳 사회주의 국가에 불교의 싹이 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년 뒤에 열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더 많이 개방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시다보면 많은 발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칭다오 주지스님께 꽃을 달아 드리는 대구큰절 마정락 총동문신도회 국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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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도량 신도대표 김상표님 인사말씀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와 주신 회주 큰스님과 총영사님 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지 스님 오셔서 고생도 많으셨는데 짧은 준비기간 동안 이렇게 완성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대구에서 많은 동문들이 오셔서 어제도 많이 도와주셨고 오늘도 이렇게 도와주셔서 도량이 성사되었습니다.
귀하고 중한 자리에서 몇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회주큰스님께 부탁드립니다. 어젯밤 좌담회에서 석달에 한 번 이곳에 와 주신다고 하셨는데 매달 한 번씩 꼭 오셔서 저희들에게 좋은 법문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칭다오 주변 외곽에도 많은 불자님들이 계시는데 사업차 잠시 한국에 가신 분들 등 많은 분들이 오늘 못 오셨습니다. 대신 축하를 해 달라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런 분들을 위해서 매달 한 번씩 꼭 와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려 봅니다.
그리고 주 칭다오 총영사님께서 이 자리를 빛내주러 오셨습니다. 한국을 대표해서 와 주신 총영사님께서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주재원으로 와 계신 분, 유학 온 학생들, 그리고 사업상 오셨다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 분들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좋게 지내다가 중국이란 나라가 갑자기 종교활동에 제재를 가하면 굉장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 됩니다.
힘은 들겠지만 큰스님도 계시고 총영사님도 계시고, 또 우리 불자님들이 간곡하게 기도하면 자유로운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여기 이 자리에 참석하신 칭다오 불자님들은 이번에 모두 영남불교대학 칭다오도량 1기생들로 입학해서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총영사님이 도와주신만큼 저희도 교민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각종 봉사활동과 문화 교류에 앞장 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왼쪽:무원 류문수 칭다오 불사 추진위원장, 오른쪽:칭다오 신도대표 김상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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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불교대학 대구 큰절 김상길 총동문신도회장님 인사말씀관세음보살
먼저 대한민국 주 칭다오 김선흥 총영사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연석해 주신 영사님, 오늘이 있기까지 노력해 주신 우리 무원님, 칭다오 도량의 신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와서 보니 참으로 열심히 해 주시는 모습이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마음 놓지 마시고 끝까지 정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절 영남불교대학의 주인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절 영남불교대학은 12만 동문을 자랑합니다. 대구 큰절이 98기까지 나가있습니다. 한 기수에 약 600명 정도가 들어옵니다. 경산도량 15기, 칠곡도량 9기, 구미도량 2기, 감포, 뉴욕분원 그 다음이 칭다오 분원이 됩니다.
회주 큰스님의 포교원력이 지금 결실을 보고 있는 시점입니다. 우리절의 발전은 지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체 임원진의 숫자만 해도 3천 명이 넘습니다.
우리절 '영남대학의 주인은 나'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도반님이 되셔야 합니다.
불교는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대중적입니다. 불교가 비록 고구려 시대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지만 이제 한국불교가 다시 중국으로, 그것도 칭다오에 전파됩니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하신 칭다오의 교민 여러분들이 바로 포교사가 되고 이 절의 주인이 되어서 칭다오도량이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하여 해외포교에 모범적인 그런 분원으로 자리매김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12만 동문들이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포교하는 전법사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리면서 축사에 가늠합니다. 감사합니다.
-왼쪽:삼존불 점안식 및 개원법회 사회자-대구큰절 총동문신도회 임미화부회장님,
오른쪽:인사 중인 큰절 김상길총동문신도회장님-
발원문 낭독에 이은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끝으로 칭다오도량 삼존불 점안식과 개원법회는 끝이 나고 자리를 일층으로 옮겨 이곳 신도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공양을 나누는 모습은 한마디로 흥겨운 잔칫집이다.
늦은 오후 일행은 여유시간을 이용해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칭다오의 '석노인해수욕장’을 들렀다. 18.2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동로를 따라 이어진 조각공원과 신흥도시를 구경하며 중국의 활기찬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곳 칭다오시는 인구가 600만이라고 했다. 지금은 우리 교민들을 위한 도량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저들에게도 불법이 전해질 날을 꿈꾸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개원법회 후 잠시의 여유시간을, 칭다오의 석노인해수욕장에서-
개원식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2시 30분, 큰스님 일행을 모신 43명의 대구팀이 도착했을 때 법당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바닥에는 장판이 깔리고 있었고 천장에는 연등을 다는 작업이 한창인가 하면 이곳 신도님들이 새 부처님을 장엄할 꽃을 꽂고 있었다.
일행은 가지고 온 짐(불기와 교재, 불교용품, 판매용 우리절 수행복 등을 각자 트렁크에 나눠 담아 운반해 옴)을 정리하고 개원법회에 쓸 배례건을 접고 오색실을 준비하고 함께 법당 청소를 하는 등 일손을 보탰다.
출국을 위하여 인천 공항으로 이동하던 버스 속에서 큰스님께서는 ‘이 버스 한 대의 병력(?)만 해도 어디를 가든 도량 하나를 거뜬히 세울 수 있는 분원개설 특공대’라 하셨다. 총동문회장단과 감로다례회, 음성공양 중창단, 그리고 각 부서에서 일하는 종무원으로 이뤄진 팀이다.
-대구팀이 막 도착한 법당의 모습, 칭다오 도반님들이 꽃장식을 하는 모습-
-대구와 칭다오 도반들이 섞여 마무리 청소중-
11월 11일 인천공항으로 출국한 일행은 12일 점안식 및 개원법회를 마치고 13일 대구공항으로 입국하기까지 빠듯한 삼일간의 일정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은 시간이었다.
뉴욕분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칭다오도량은 여러 대중들을 모시고 점안식과 개원법회를 연 첫 해외도량이기에 우리절의 창건이념인 바른 깨달음의 성취와 온 세상의 정토구현의 힘찬 발걸음을 실감한 행보였다.
회주큰스님께서는 도착하던 날 밤에 이어 둘쨋날에도 칭다오도량을 일구는데 큰 힘을 쏟은 현지의 불자님들과 몇 차례의 좌담 시간을 가져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시고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또 여러가지 당부를 하셨다.
둘쨋날 저녁예불 시간에는 과부하 탓인지 정전이 되었지만 부처님 전에 켜둔 촛불빛 아래 예불은 끊어짐없이 이어졌고 이후 한 시간 동안 대구에서 간 일행과 청도 불자님들의 상견례 겸 좌담회가 있었다.
-왼쪽:중국의 전기사정이 열악해 저녁예불 중 전기가 나감, 촛불아래서 예불후 칭다오 신도님들과 상견례 겸 좌담을..오른쪽:칭다오도량 총무스님으로 가신 금강스님,
-촛불 아래서의 좌담 후 칭다오 핵심 신도님-
11월 13일 아침, 짧은 삼일간의 일정을 마친 대구팀이 귀국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몇 분의 칭다오 신도님이 모여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눴다. 두 줄로 서서 마주보며 체인처럼 돌아가며 악수하기, 그리고 우리절 교가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참고있던던 눈물을 먼저 쏟아낸 쪽은 칭다오 불자님들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친다.
칭다오도량을 열기까지는 이곳에 다 적을 수 없는 힘겨운 사연들이 많았다. 불법을 향한 갈증과 맘 놓고 법회를 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이곳 불자님들의 그 간절함의 토양 위에 뜨거운 신심과 수행정진을 거름삼아 이 도량이 깊이 뿌리내려 불교 불모지를 개척할 가열찬 전진기지가 될 것임을 믿는다.
함께 간 일행 중 금강스님은 칭다오도량 총무스님으로 남게 되셨고 수향사무장은 두 달간 파견 근무이다. 잠시의 이별이겠지만 먼 이국땅에 남겨두고 가야하기에 떠나오는 이도 보내는 이도 헤어짐이 서럽다. 잡은 손 쉬이 놓지 못하고 인사가 자꾸 길어지고 있다.
새로운 불국토를 개척하는 일은 이래저래 눈물겨운 일인가 보다.
-왼쪽:2개월 동안 칭다오 도량에 파견 근무 하게 될 대구큰절의 수향사무장(가운데 교복 입은 분)과 대호스님, 수련화보살님, 경산도량 공덕행님, 왼쪽은 곽병해 총동문신도회 국장님, 오른쪽: 눈시울이 붉어진 칭다오 불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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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문나무 불. 법. 승
일체 중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신 거룩하신 부처님, 저희들은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한마음으로 정성 드려 발원하나이다.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으로 오늘 우리절 영남불교대학.대관음사 칭다오도량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마땅한 정법도량을 만나지 못했던 우리 칭다오 불자들은 신도들의 아파트에서 가정법회를 열며,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간절함을 키워왔습니다.
오늘 다행히, 정법대도량 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의 이름으로 이곳 칭다오에 부처님 도량을 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힘이 되시는 부처님께서는 원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바라는 바를 성취시켜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천개의 분원을 세우리라는 회주큰스님과 우리절 12만 신도님들의 염원과 정진의 대열에 이제 칭다오의 불자들도 함께 하게 된 것을 부처님 전에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는 지금 우리절의 창건이념인 바른 깨달음의 성취와 온세상의 정토구현의 현장에 함께 한 것을 감개무량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복된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 이곳 법당에서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겠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 도량을 아름다이 가꾸겠습니다.
늘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봉사하는 도량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웃에 기꺼이 포교하겠습니다.
우리절 칭다오도량으로 말미암아 넓은 중국이 불국토되게 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부처님, 정법 도량 우리절 영남불교대학.대관음사 모든 도량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가피 내려 주시옵고 구경에는 온 세상이 불국토 되게 하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불기 2550년 11월 12일 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 청도도량 신도 김영숙-
-개원법회 축하 시루떡 절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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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중국의 노산 법성사 선정스님, 천진 능인선원 불광사에서 오신 덕윤스님-
-왼쪽: 점안식 법회, 오른쪽:육법공양을 올리는 대구큰절 감로다례회-
-첫째날 칭다오 신도님들과의 좌담-
-대한민국 주 청도 총영사님 주최 만찬장에서-총영사님께 종교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 불자들은 교민사회에서 봉사활동과 문화교류에 앞장 설 것을 약속드림-
-중창단과 함께 하신 칠곡.경산주지스님-
-대구큰절 총동문신도회장단-
-든든한 칭다오도량 거사님들, 맨 오른쪽은 큰절 김상길 총동문회장님-
-절마당에서 큰스님을 모시고..칭다오 도반님들-우리절 수행복 덕분에 한가족임을 실감하게 됨-
-왼쪽:점안식 하루 전의 공양간 모습, 오른쪽:대구팀과 청도팀의 법회 순서 의논(총동문회장님과 부회장님, 청도의 무원님)-
-왼쪽:망중한을 즐기는 대호스님과 신도님,오른쪽:법회 전 좌복 펴기(대구팀)-
-감로다례회-
-칭다오도량 간판 아래서, 가릉빈가 중창단(칠곡과 경산도반님이 한 분씩 나란히 동참)-
-법당을 가득 메운 칭다오 불자님과 교민-
-왼쪽:개사곡을 열심히 따라 부르는 칭다오 불자님, 오른쪽:대구큰절에서 지원 나간 중창단 반주자 이윤정님-
-음성공양 찬불가와 개사곡을 지도해 준 대구큰절 가릉빈가 중창단과 반주자-
-육법공양을 올려준 대구큰절 감로다례회-
-대구 큰절의 감로다례회, 중창단-
-왼쪽:대구큰절의 수련화님 김창남노보살님-부처님 전에 올릴 떡공양을 준비하며, 오른쪽사진:오신 분들께 드릴 배례건을 접으며..(김창남노보살님께서 시주하심)-
-왼쪽: 발원문 낭독 중인 칭다오 김영숙님, 오른쪽:큰스님 일행을 마중나온 칭다오 신도님-
-사진 왼쪽:공양후 과일을 준비중인 칭다오 불자님 , 오른쪽: 법회 후 칭다오 신도님들이 준비한 점심공양을 나누며-
-왼쪽:칭다오 신도님들이 대구도반들께 선물한 옥 포대화상목걸이, 오른쪽:가던 날이 11일 빼빼로데이-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아쉬운 작별을-
첫댓글 부처님의 인연법 세상 ... 널리 널리 불국토 세상 이루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