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예찬(無味禮讚)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최애리 옮김. 이태호 요약
첫 번째 격언 : 道之出口 淡乎其無味(도덕경 35장)
줄리앙 : “우리 입에서 나가면 도는 싱겁고 맛이 없어진다.”
이태호 : “도에서 나온 것은 담백하고 맛이 없다.”
머리말 : 도(중심)의 싱거움[淡]이야말로 가장 음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음미하는 것이다.
제1장 기호의 변화 : 중국문화의 중심과 바탕을 이루는 가치인 무미(無味)함이란 은미(隱微)하면서도 아주 구체적인 것이다.(무미함은 기호의 부재를 기호에 대한 우리의 탐욕이 정지됨을 보는 것이다.)
제2장 무미의 풍경 : 예찬(倪璨)의 풍경화 속에 나타난 무미함은 도무지 사람의 눈길을 끌고 유혹하는 것이라고는 없지만, 그런데도 이 풍경은 풍경으로서 충만하게 존재한다.
제3장 무미-초연함 : 텅비고 고요하고 무심하고 무감각하며 무위한 것, 무미하고 초연한 것이 현실의 기초를 이루며 모든 삶에 기초가 된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제4장 중립의 의미 : 중심만이 상황의 전체에 반응하게 하며, 과잉과 결여를 모두 피하게 하며 그 전체성 가운데 도래하게 하는 기량을 증진시킨다. 담의 자질도 중립성에서 나온다.(중용이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공자는 세계와 인간 모두에 적용)
제5장 사회에서의 담 : “군자와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백하지만, 소인과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이익으로 결합된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란함을 당하면 서로 버리지만, 하늘로 맺어진 사람들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
제6장 성격의 담백함과 평범함 : 성격이 평범하고 담백하여 어느 한 가지 특수한 성향에 치우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자질을 다스려 최선으로 사용할 수 있다.(편파성이 병폐의 원인이다.)
제7장 여음(餘音)과 여미(餘味) : 비파의 현들은 붉은 줄(탁한 소리를 냄)로 되어 있으며 악기의 바닥이 갈라진 상태(소리를 늘어지게 만듬)로 둔다. 한 사람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다른 세 명은 반주(가장 단순한 합주)만을 한다. 그래도 큰 여름이 있다. 탕에는 간을 맞추지 않는다. 그래도 여미가 있다.
제8장 침묵의 음악 : 형체 없고 소리 없는 것은 무엇과도 소통할 수 있으며, 어디에나 퍼질 수 있다. 진정한 조화는 모든 차별화의 이전 단계에만 존재한다.
제9장 음(音)의 담(淡) : 담에 대해서는 덜 말할수록 더 잘 말하는 것이다. 음악적 담이란 탁월한 시적 주제가 된다. 비파의 현이 낸 여운이 온 우주로 퍼져나가고, 마지막 현의 담백한 음은 연주된 음악으로부터 명상적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
제10장 문학에서의 담 : 문학에서의 담은 양극(너무 두드러질 위험과 기호로서 존재하질 않을 위험) 사이에, 즉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나타나 오히려 불모의 것이 되기 쉬운 상태와 지나치게 희미하여 지워지고 잊혀질 상태 사이에 있다.(문학에서의 담은 8세기 학승인 교연이 평담(平淡)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 최초일 것이다.)
제11장 담의 이데올로기 : 담이란 오랜 변모 끝에 비로소 얻어지는, 성숙의 결실이라는 사실도 널리 인정되었다. 담을 인정하는 것이 일반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모호하다.
제12장 맛 너머 맛, 풍경 너머 풍경 :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모든 것은 후퇴하며 변형된다. 예술가의 표현(시인의 언어)은 담의 기호를 사용하여 재현 너머 재현(象外之象)인 탈재현을 수행한다. 이것으로 예술가(시인, 서예가, 화가 등)는 맛 너머 맛, 풍경 너머 풍경을 느끼게 한다.
제13장 담의 가장자리와 중심 : 담의 너머는 맛의 ‘중심’이며, 거꾸로 담은 그 ‘가장자리’이다. 중심은 존재와 비존재, 긍정과 부정,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극단의 대비를 초월한다. 진리가 이원적이지 않는 것은 그 덕분이다. 중심이란 오류에 반대되는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전언 대신 침묵이 들어서는 자리이다.(불교의 중관 수용)
제14장 담(淡) 또는 힘(勢) : 담은 어떤 강함의 직설적 표현보다 더 강하다. 고요함은 완벽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고, 담백할수록 한층 더 독창적이 된다. 미완성이야말로 완성된 어떤 회화보다 한층 더 강력한 것이다.
제15장 자연스러운 ‘초월’ : 중국의 담은 단순한 완곡법이나 가장된 (또는 복잡해진) 담담함이 아니라, 그 저체 안에 그 너머를 포함하고 있는 전향이다. 초월과 내재가 상반되지 않는 자연과의 화해를 이룩한 초월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