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천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바다의 창고라는 뜻의 ‘해창(海倉)’이라는 지명답게 논밭이 이어졌다. 그 사이로 오래된 건물이 하나씩 눈에 띄었다. 적산가옥이다. 적들의 재산,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을 목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만들었다는 창고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생산한 쌀과 농산물을 잠시 보관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터. 그들은 내륙 깊숙이 들어오던 바닷길을 막아 간척지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쌀을 생산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해창주조장도 적산가옥 중 하나다. 해창 마을에 쌀 창고를 두고 일본을 오가며 미곡상을 했던 시바다 히코헤이가 1927년에 지은 건물이다. 광복 이후 시바다와 함께 일했던 장남문씨가 이 건물의 주인이 되었고, 1961년 즈음에는 양조장 면허를 취득했다.
그 뒤로 강진에서 막걸리를 빚던 황의권씨가 건물을 인수해 이곳에서 해창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수많은 단골 중에서도 오병인씨, 박리아씨 부부의 관심은 남달랐다. 2008년부터는 이 부부가 주조장을 매입, 지금까지도 해창막걸리가 이어지고 있다.
해창주조장에서는 막걸리 시음 체험이 있다. 어찌 보면 막걸리도 하나의 예술이 아니던가. 묵직한 식감만큼 찹쌀 본연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아름다운 정원 너머 들판을 향해 판소리 한 곡조가 울려 퍼졌다.
해남 지역의 소리꾼인 이병채 명창이 부르는 춘향가의 한 구절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구성지게 꺾일 때마다 한 잔씩 스리슬쩍 넘어가는 막걸리 한 사발. 해창주조장에서 내려다본 고천암 간척지는 붉게 물들어갔고, 해남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해창주조장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전화번호: 061-532-5152
영업시간: 09:00~18:00 (방문 전 전화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