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기자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사는 곳도, 나이도, 신생아 성별도 각기 다른 20여 명의 산모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네이버 카페 ‘지후맘의 맘스홀릭’ 회원이라는 것. 최근엔 “임신을 하면 지후맘 카페에 회원가입부터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카페의 명성은 자자하다.
2003년 개설한 후 현재 정회원 수 45만여 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 임신&육아 카페인 ‘지후맘의 맘스홀릭’. 이 카페의 카페장인 지후맘 김경선 씨(32세)를 삼청동 ‘하루고양이’ 갤러리에서 만났다.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는 베일 속의 지후맘은 여러모로 기대를 배반했다. 아이한테 올인하는 펑퍼짐한 전업주부를 상상했는데, 미모의 젊은 커리어우먼이었다. 직장(네이버) 생활하면서 대학원(고려대학교 대학원 언론홍보학과)에 다니는 그를 대신해 지후는 시어머니가 키워 준다고 했다. 첫인상을 전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되도록 카페에 저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동갑방에서는 제 실체를 알죠. ‘야, 경선아! 지후는 잘 크니?’ 하고 물으면 ‘아이는 혼자 크는 거야’라고 대답해요.”
인터뷰한 날은 그가 다니던 회사에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이었다. 오전에 퇴직 관련 서류를 처리하고 왔다는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까지 다니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집은 봉천동인데 회사는 분당, 학교는 안암동에 있잖아요. 수업이 있는 날은 서울 투어를 하는 기분이에요. 학교요? 직장생활도 재미있지만 좀 멀리 내다봤어요. 사업을 하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인맥이 중요한데 공부도 하고 다양한 사람도 사귈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지후맘의 맘스홀릭’에는 산부인과 의사나 소아과 의사가 가르쳐 주지 않는 생생한 정보가 가득하다. 기자가 임신 중 출산의 징후인 이슬이 비쳤을 때의 일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개인에 따라 수 시간 안에 진통이 올 수도 있고, 일주일을 넘길 수도 있다”는 막연한 답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지후맘 카페에 들어가 키워드 창에 ‘이슬’을 입력하자, 이슬이 비친 후 출산한 산모 수십 명의 생생한 분만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통증의 감도와 시간까지, 다양한 경우의 분만기를 보며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
임신과 출산처럼 사람마다 가지각색인 상황에는 생생한 경험담만큼 믿을 만한 정보도 없다. 이렇다 보니 카페의 정보를 맹신해 빚어지는 소동도 많다. “모기에 물렸을 때 민간요법 좀 가르쳐 주세요”라는 급질(급한 질문)에 “에프킬라를 뿌리면 즉효”라는 댓글을 보고 실행했다가 난리가 난 적도 있다. 한 의학 잡지에서는 “의사의 말보다 카페 글을 더 신뢰한다”며 정보의 자정작용을 요청하는 의뢰도 있었다 한다. 김경선 씨는 카페에서 자신의 역할을 ‘무대 뒤의 조율사’라고 생각한다.
“‘지후맘의 맘스홀릭’은 엄마들이 모여 육아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장이에요. 제 역할은 엄마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도록 공간을 가꾸고, 안 보이는 곳에서 도와주는 거죠. 제가 직접 올린 글은 거의 없어요. 간혹 카페 회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적절히 조율을 하지요.”
“머리 아프시겠네요”라고 하자, “펑펑 운 적도 많아요. 4년째엔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로그인할 때마다 200여 개에 가까운 쪽지가 쌓여 있어요. 단순한 문의부터 사진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업체나 병원의 악성 댓글 삭제 요청, 누구와 싸웠으니 강퇴해 달라는 등 가지각색이에요.”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을 카페 운영에 쏟아 부었다는 그는 회사에서는 아예 접속을 안 했다고 한다. 지난해엔 출산 육아 백과인 《지후맘의 베이비 바이블》을 펴냈는데, 인세 수익금은 전액 미혼모를 위한 시설과 고아원에 쓴다고 한다. 처음엔 인세의 절반만 기증하려고 했으나 회원들의 항의가 거세 전액 기부하기로 했단다.
김경선 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물리 선생님을 좋아해서 택한 길이었다. 그러면서 포트란, 비주얼 베이직, C언어 등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 인터넷을 처음 접한 그는 방대한 정보가 무료로 무한 제공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웹서핑 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의 첫 직장은 프리챌. 이후 네오위즈를 거쳐 네이버에 입사했다. ‘지후맘의 맘스홀릭’은 네이버 카페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내 프로모션 이벤트로 개설됐다. 임신&출산&육아 카페 1호였기에 카페 활성화를 위해 밤잠 설치며 연구했다. 서핑을 하다가 좋은 정보가 있으면 재깍재깍 올리고, 엄마들의 니즈는 뭘까 늘 고민했다. 그래서 창안한 것이 주제별 수다방. 세대별로 구분한 것은 물론 쌍둥이맘, 직장맘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익명의 사람들이 육아를 하며 겪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을 펼쳐 놨다. 이 카페의 또 다른 장점은 카테고리가 체계화되었다는 것. 회사 일을 하며 쌓은 전문지식이 도움이 됐다.
여섯 살 지후는 그냥 놀게 해요
방대한 육아정보를 축적한 그는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그는 여섯 살 지후를 실컷 놀게 한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 가정학습지 등 조기교육 열풍이 거세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어릴 적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제가 커보니 그 보다 좋은 교육이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이 알아서 개척해 가는 것. 제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어요.”
주말이면 지후가 좋아하는 파워레인저나 유켄도가 등장하는 연극을 보러 다닌다. 이번 주말엔 롯데월드에 가고, 다음 주엔 파주 헤이리에 가서 피자 만드는 쿠킹 클래스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육아와 교육에 대한 차고 넘치는 정보를 접하면서 그가 터득한 교육 철학은 바로 ‘지후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함께 놀아 주는 것’이었다.
김경선 씨에게 ‘지후맘의 맘스홀릭’은 ‘무엇 하나 내 것이 없는 카페’다. 누가 운영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인세 수익금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상업적인 냄새가 나면 와글와글 시끄럽다. 익명의 사람들에게 때론 상처를 받고 때론 위무를 받으며, 사람 공부, 인생 공부, 사업 공부를 많이 했다는 김경선 씨. 여기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육아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가시적인 것은 없지만 육아박람회, 체험교실 등 아이템에 관심이 많단다. 그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냐고 묻자 “운동이요.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한강변을 누비는 지후와 지후맘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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