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17 전투비행단 견학 후기
고 영 옥
공군 17 전투비행단 견학을 마치고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하얀 포물선을 그으며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간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던 모습이 오늘따라 커다란 아픔으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견학에 앞서 동영상을 보며 공군비행단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공군 17 비행단은 대북 전쟁 억제의 중추적 역할을 맡은 F 4E 팬텀을 운용하는 비행단이라고 한다. 주요임무는 대공 정찰 및 요격(邀擊)으로 우리나라 전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임무를 띤 비행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태까지의 전쟁과는 달리 미래의 전쟁 양상은 전자정보전, 사이버전, 우주 전의 시대라는 설명에 크게 공감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공군의 역할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전투 비행기를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무기의 변천사도 둘러보았다. 상황실에서는 최첨단 레이더 기술로 남북 전투기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도 있었다. 어디를 가나 그 정교함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연평도 사건 때는 조종사들이 비행기에 올라앉은 채 대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싹해오는 한기를 느꼈다. 오늘 인솔하신 비행교수님께서는 비행을 마치고 땅을 밟는 순간 “후유 해냈구나. 이제 살았구나.”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어쩌면 매초 생명을 내건 비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사명감이요 긍지라고 하셨다. 우리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전쟁의 위험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이들의 헌신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자 마주치는 얼굴들이 참으로 귀하고 믿음직스러웠다.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태평양 전쟁과 6·25를 겪으며 민족의 격동기를 아프게 사신 분이다. 그럼에도 매사에 꼿꼿하고 의연하셨다. 헌데 마지막 두어 달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자유인으로 살고 가셨다. 어느 날 아버지 계시는 노인 병원에 갔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손을 끌어다 이불 속에 넣으시며 전쟁분위기를 연출하셨다. “B29가 떴다. 빨리 숨어라”고 하신다. 오늘 아버지는 전쟁 통을 살고 계시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는 밤마다 문에 두꺼운 담요를 치고 살았다. 그럼에도 쌩~ 하고 비행기 소리만 나면 불이란 불은 다 끄고 불안에 떨었었다. 살면서 그 시절의 공포가 악몽으로 되살아나 가위눌린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괜찮으신 줄 알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내 아버지 모습에서 가슴에 묻어둔 기억의 편린들이 아프게 되살아나는 것일까?
9살 남편은 피란처에서도 친구와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다고 한다. 한데 갑자기 쌩~하는 비행기의 굉음이 다가오더니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오르더란다. 집으로 달려가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동생들을 안고 나오고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를 부축한 누나가 불구덩이에서 나오더란다. 할아버지는 제대로 응급처치도 못 한 식구들을 마차에 태우고 피난길을 거슬러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모두가 살겠다고 피난을 가는데 어머니와 형제들의 신음을 싣고 되돌아오는 그 처절한 모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와 동생들의 신음도 무서웠지만, 할아버지의 핏기 없는 얼굴에 충혈된 눈은 섬뜩하리만치 무서웠다고 한다. 하얗게 눈 덮인 길에서 소가 멈추어 서서 움직이지 않아 눈을 헤쳐 보면 거기에는 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9살 남편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꽁꽁 얼어붙은 주검을 치우면서 집에 당도했다고 한다. 지방 빨갱이의 출현으로 한밤에 담을 넘으신 아버지의 소식조차 모른 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은 더는 9살 철부지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피 토하는 분단의 세월이 자그마치 60여 년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폭격기의 공포를 재연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한, 어버이를 빼앗긴 자식의 상처, 이런 것이 우리 민족의 현주소이던가. 더는 그런 상처의 대물림을 아무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딸을 군에 입대시키며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무사 안녕을 빌고 또 비는가.
우리는 먼저 현실을 선명하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만약에 이렇듯 첨단화된 무기를 가지고 남북이 전쟁한다면 그 후유증으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의 패망을 불러오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덩어리의 땅을 공유한 같은 민족으로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우리는 평화통일을 원한다. 이렇듯 커다란 명제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주눅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기력하지도 가망 없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군인이든 학생이든 사회인이든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든든히 입지를 굳히는 일이 우선이지 싶다. 약자의 입장이어서는 안 된다. 무력 도발의 대상일 수 없는 힘과 저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힘과 민족애를 양손에 쥐고, 평화통일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그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