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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terview #02
앨범이 나오고 처음 들었을 때 No.1이 될걸 확신했어.
그래도 이렇게 유명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야.
처음부터 UK락을 짊어지고 있던 오아시스의 출발점. 데뷔 직후, 94년 내일(來日) 인터뷰.
지금은 세계 굴지의 락밴드가 된 오아시스가 처음 내한 했던 것은 94년 9월. 이 인터뷰를 했던 당시는 데뷔앨범 ‘오아시스’를 발매한 직후로, 그들은 문자 그대로 신출내기 신인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라이브에서의 난투 소동과 호텔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난폭한 행동이 신문에서 크게 다뤄져, 오아시스를 따라 다니는 퍼블릭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완성 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악이 강한’ 신인 이었다는 소리. 그로부터 10년을 좀 넘기고 새삼스럽게 당시의 발언을 읽어봐도 그들이 이미 대물밴드의 풍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에 와선 귀중한 초기 인터뷰. 먼저 리암과 귁시부터.
-맨 처음 일본 공연은 의외로 점잖아서 놀랐어요, 라고 말하는 것도 당신들이 해왔던 행동의 정보로 기그에서의 난투라든가 호텔의 출입금지라든가 이런거 밖에 없어서 말이에요.
리암- 확신히 그런 것도 있었지.
귁시- 그래도 언제나는 아니야.
리암- 맞아, 언제나도 아니고, 이유도 없이 그러는 것도 아냐. 일년 내내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매스컴은 우리가 가는 족족 그런 걸 한 것처럼 써내. 우리랑 만나면 얼굴에 아이스크림을 맞는다 같은거. 뭐... 한 것 자체에 거짓은 써있지 않지만 과장 되어 있다고 생각해.
-당신들 형제는 전부터 스톤로지스 팬으로 그들을 뒤쫓고 있는 듯한데요, 만약 스톤 로지스가 순조롭게 활동을 계속 해왔다면 오아시스는 지금 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리암- 아아, 사실 우리는 그들을 앞질렀어. 걔네는 확실히 좋은 앨범 (89년의 ‘The Stone Roses’. 이 취재당시는 활동을 하지 않았던 때라 아직 두 번째 앨범은 판매되지 않았었다.)을 만들었지만 그 이래로 5년을 아무 음악 소식이 없었으니까 섭섭했지. 당시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밴드가 없앤 것은 확실해. 어쩌면 변한 걸로 끝일지도. 그래도 우리는 그렇지 않아, 마구 곡을 쓰고 마구 레코딩하고 있어. 우리는 이정도의 준비가 되있다고. 그들이 어떻게 해보려 해도 이미 우리의 밴드는 시작했고 말야. 대체로, 밴드를 시작한다고 하는 것도 별로 다른게 할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엔 진짜 락도 아니어서 나조차도 싫어질 정도였어. 하지만 시작했던 당시 반신반의했던 것도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믿고 있어. 100%정도로 믿고 있으면 150% 자신 있어. 나 자신에게도 말야. 그리고 우리의 음악을 팬이 사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런데 리암은 락팬이라고 하기보단 축구 훌리건에 가깝다, 라고 들었어요.
리암- 훌리건? 내가?!
귁시- 좀 달라, 축구를 보러가도 소리 지르거나 깃발을 흔들거나 한 정도인걸.
리암- 나 싸움 같은거 한 적 없어.
귁시- 뭐... 지면 울거나 하긴 했었지만.
-실제의 오아시스는 친근한 밴드다, 는요?
리암- 그래! 우리는 이녀석 같이 (라고 취재 전에 건냈던 Crossbeat 94년 8월 호의 표지, 블러의 데이먼 알반을 가르키면서) 건방지지 않다고! 이녀석 따위 우쭐해서는 어쩔 수도 없지만 나는 달라. 어떤 질문을 해도 제대로 대답하잖아? 우리도 여러 가지 물어오면 이녀석 처럼 하는 둥 마는 둥 인터뷰 하는 것도 가능해. 그치만 나는 그런 건방진 태도로 하기 싫다고. 나는 사람하고 이야기하는게 좋고 사람이 좋아.
-데뷔 앨범은 모두 노엘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후에 당신들도 작곡에 관련하는 건가요?
리암&귁시- 아니.
귁시- 노엘의 곡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어떤 레벨까지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동안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리암- 그걸로 좋다고. 노엘은 송라이터니까. 뭐, 그 녀석이 막다르게 돼서 곡을 쓰지 못하게 됬다면... 그래도 어려운거라고. 노엘은 자기가 이 밴드의 곡을 쓰고 싶어하니까. 다른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하면 그만둘거야 라든가 말할지도 모르고, 다만 혹시 녀석이 그만둔다고 말해도 우린 멈추지 않을꺼야. 우리도 기타 치고, 곡도 쓸 수 있으니까.
-뭔가 같은 밴드에 형제가 있다는 것도 꽤 큰일 인 것 같네요.
리암- 음... 괜찮아, 좋아..... 라고 할까나. 잘 모르겠어.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고, 생각하는 걸로만 열 받는 때도 있으면 질투 하는 날도 있어. 아님 그쪽이 나한테 질투를 느낄 때도 있을지 몰라. 서로 신경을 건드릴 때도 있으면 너무 좋은 날도 있고. 전에는 치고 받는 싸움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없어. 처음 MNE에서 취재 받았었을 때, 그녀석이 나를 열라 무시해서 말야, 알아? 나 같은건 이~런 작은 존재고, 그 녀석만 중요하다는 듯한 말투여서 ‘싸움 걸어버린거야?’ 라고 말하면 그녀석도 같이 동참했지. 취재 중에 싸우기 시작했단 소리야. 그래도 이건 처음의 이야기지... 지금은 서로 말하고 싶은거 말하고 있어. 그 녀석은 확실히 송라터지만 독재자는 아니야. 자기가 곡을 쓰니까 나한테 ‘넌 그런 말할 처지 아니야’ 같은거 말하지 않아. 나도 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했으니까 말하고 싶은거고. 어떤 때엔 그렇게 말해도 안돼, 이렇게 말해도 안돼 라고 들어서 ‘안된다니 뭐가!’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라고. 뭐.... 그걸 또 매스컴이 음악은 뒤로 하고 기사로 냈고.
-데뷔작이 전체 영국 1위의 대성공인데요, 당신들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리암- 언제나 말할 수 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어. 나는 스타 지망으로 소위 팝스타 라든가 락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니까 지금 무지 재밌어. 이제 여러 가지 싫은 것도 나올지 모르겠는데 우선 지금은 재밌어.
-락스타가 돼서 뭔가 변했나요?
리암- 아니, 변한게 없어. 다만 다른 것 같은데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는데, 거리를 걷고 있으면 확실히 나는 스타라는 기분이 들어. 예전에 보통의 일을 했던 때에 ‘내가 있을 곳은 다른 곳에 있을거야’ 라고 언제나 생각했는데 그 때랑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거리에서 느끼는 기분이 좋아. 밴드를 시작했을 때, 마치 잊어버렸던 친구와 재회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 ‘오랜만이네, 어디가는거야?’ 라고 느꼈어.
이어서 등장한 것은 노엘갤러거. 당시의 그는 27세 이면서 성숙함 같은 차분함이 엿보였다.
-당신들의 데뷔 앨범은 최근의 영국에 흔히 있는 속임수스러운 발상이 느껴지지 않는 실로 락밴드 같은 락밴드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 그대로. 최근의 영국 밴드는 대부분이 락앤롤이라는 걸 진짜로 이해하고 있지 않아. 공연에 있어서나 가사에 있어서 말이지. 그 녀석들이 영국 생활이 어떻다라고 노래하는 시점에서, 예를 들면 일본인이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어? 오아시스는 그런 밴드가 아냐. 우리는 꿈을 노래해, 꿈이라면 누구라도 꾸는 것이고. 담배, 술, 락앤롤 스타.... 이런 누구도 이해 가능한 걸 노래 한다고. 그리고 이런 노래에 기타를 치는 것이 좋아. 롤링 스톤즈에 지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게 말이야. 이게 락이지.’
-지금 대부분의 밴드는 많으나 적으나 60~70년대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겐 생각 안해. 블러도 60년대의 영향따위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 스웨이드도 마찬가지. 그 녀석들, 비틀즈 들어본 적도 없지 않아? 이 녀석도 (라고 crossbeat 표지의 데이먼을 가르키며) 애비로드랑 같이 포즈 취하고 있어도 레코드의 내용물은 어떤지 모르잖아.’
-그래도 당신들을 포함해서 이런 영향을 받아 나온 밴드는 많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 당신들을 유일무이의 존재에 오르게 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뭔가요?
‘영향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건가. 롤링 스톤즈에 영향받았어요, 라고 말하고 그것 밖에 없는 밴드도 있어. 그 점에서 우리는 비틀즈, 롤링스톤즈, 섹스 피스톨즈, 스톤 로지스, 스미스에 영향 받은 게 많아서. 게다가 그 영향을 무서워하지 않고 쓰고 있어. 그니까 우리 음악은 다른 연중에 비교해서 매우 여러 방면에 미치고 있고 폭이 넓지.’
-그런 당신의 제일 처음의 음악 체험은 뭐였나요?
‘6살인가 7살 때 비틀즈 빨간 음반, 파란 음반이 나왔어. 그게 처음으로 들었던 음악이었지. 그때부터 11살인가 12살이 돼서 기타를 잡았고 비틀즈 곡을 치기 시작했어. 확실히 (손가락으로 세면서) 73년 정도 였을꺼야. 내가 6살 때다. 당시에 락이라고 하면 제네시스, 로드 스튜어트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듣기에는 너무 어렸었고.’
-영국 음악지에서 당신은 자신들의 데뷔 앨범은 Rubber Soul 이고 다음은 White album 인가...
‘Revolver 일껄? 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 작품이 Rubber Soul과 똑같은 정도로 멋지다는 소리는 아니야. 그 작품 이전의 비틀즈는 매우... 뭐라하면 좋을까. “She loves you yeah~ yeah~ yeah~” 같은 것만 노래하는 팝밴드 였지만 그 후에 더욱 락앤롤 밴드가 되었었지. 우리 데뷔작도 그런 의미로 Revolver가 되고 White album이 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 그 다음으론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
-당신은 전에 락키드라고 하기 보단 클럽 죽돌이 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라고 할까. 나는 계속 락이 좋았지만 88~89년 당시 맨체스터에서 가장 익사이팅 했던 건 댄스 뮤직하고 클럽 다니기 였어. 그래서 나도 잠깐 하시엔드(유명 클럽) 다니기에 빠졌었던 것 뿐. 2년 정도 다녔나. 그래도 그러고 나서 2시, 3시에 돌아가면 역시 비틀즈 노래를 들었어. 확실히 둘 다 좋은 시기도 있었고. 지금은 하우스 음악따위 안듣지만.’
-맨체스터 무브먼트에서 배운 것이 있나요?
‘아니.’
-그럼 반대로 교수가 됬던 점은?
‘별로 나쁜 샘플은 아니었지만 문제점은 스톤로지스 같은 좋은 곡을 쓰고 있는 밴드가 없었다는 거야. 그니까 우리가 밴드를 시작함에 있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맨체스터 출신이라는 걸로 처음에 주목 받을 거지만 곡이 좋지 않으면 6개월도 못 갈거라는 거였어.’
-만약 스톤로지스가 지금도 재건하고 있었다면 오아시스는 지금 같이 존재했을까요?
‘음.... Yes야. 왜 내가 오아시스에 들어왔냐고 하면, 스톤로지스나 인스파이럴 카페츠가 몇 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걸 보고 ‘나도 같은 수준의 좋은 곡을 쓸 수 있어, 아니 내 쪽이 더 위야,’ 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야. 슬슬 내가 직접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지. 만약 스톤로지스가 활동을 계속했더라면 맨체스터엔 좋은 밴드가 2개가 되었을 뿐 일거야.’
-당신이 오아시스에 가입할 때 이정도의 성공을 예상 가능 했었나요?
‘음.... Yes. 앨범이 완성 되서 처음 들었을 땐 No.1이 될 거란걸 확신했어, 라고 할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모두의 맘에 들꺼야 라는 기대는 있었어. 그래도 팬들이 이렇게까지 열광적으로 우리의 곡을 사랑해 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우리의 곡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더더... 라고 할까, 느긋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야. 앨범의 성공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유명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단 말.’
-마지막으로 동생인 리암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이건 꽤 많이 물어오는데, 나는 동생이 없는 밴드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어떠냐고 물어도 곤란해, 알아? 하지만 보컬리스트로 보자면 그 녀석은 오아시스엔 퍼펙트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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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리암의 대답이 길군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