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개령(開寧)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金泉)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삼한시대에는 감문국(甘文國)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231년(신라 조분왕 2)에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병합하여 감문군을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다가 백제를 정벌한 후 661년(문무왕 1) 감문군을 정비하였다. 687년(신문왕 7)에는 개령군으로 고쳐 사벌주(沙伐州: 757년 상주로 개칭)의 속현이 되었고 감물현(甘勿縣: 禦侮縣)·지품천현(知品川縣: 知禮縣)·무산현(茂山縣: 茂豊縣)·김산현(金山縣) 등을 관할로 두었다. 1172년(고려 명종 2)까지 상주(尙州)에 속해 있다가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6년(태종 16)에는 개령현으로 격하되었고, 1598년(선조 31)에는 반란을 꾀하던 자의 고향이라 하여 폐현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유림의 상소로 복현되었다. 1896년 지방관제 개혁으로 개령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개령·김산·지례와 성주의 일부를 김천군으로 통합하면서 개령군에 속했던 부곡면과 서면이 개령면으로 통합되었다. 김천은 1949년 김천시로 승격되고, 김천군은 금릉군(金陵郡)으로 개편되었다가, 1995년 금릉군을 병합하여 김천시가 되었다.
성씨의 역사
시조 문세욱(文世郁)의 선계는 남평문씨의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이다. 그는 472년(신라 자비왕 15) 때 태어나서 후에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에 오르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졌다.
문세욱은 고려시대에 재랑(齋郞), 곧 참봉(參奉)을 지냈다고 한다. 후손들이 남평문씨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개령(開寧)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개령문씨는 병사(兵使) 문귀지(文貴之)의 후예이며, 진사(進士) 문사빈(文士彬)을 일파로 전한다고 한다.
남평문씨에서 분적했기 때문에 현재에는 대부분의 참고문헌에서 독립된 성씨본관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개령문씨는 132가구 총 432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