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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서 인터뷰
“타이틀곡 말고 앨범 전체를 들어 주세요!”
김종서는 8집을 내고 얼마 뒤인 2002년 초부터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 및 방송관계자들과 만나는 것도 꺼렸고, 공연이나 행사 등의 외부 활동도 일절 삼갔다. 매니저를 통해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새 앨범작업 때문에 만날 수가 없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그 사이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마침내 그는 막 통산 9집이 되는 신보 < No. 9 >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타가수의 경우 1년에 두장도 떡떡 내놓으며 공백의 최소화에 급급한 시대를 생각하면 가히 느긋한 처사(處士)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음반작업에 매진한다고 해도 보통은 공적인 활동과 병행하게 되어 있다. 또한 오로지 그것에만 올인 했다면 앨범은 더 빨리 나오는 게 정상이다.
정말 앨범작업이란 하나의 이유로 외부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스스로 소외를 창출한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정말 다른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하면서 그러한 격리는 모두 앨범을 만드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긴 공백기는 어쩌면 콘텐츠를 꾸려내기 위한 혼신만이 아니라 갈등과 번민의 세월이 개입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사실 2003년 하반기에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었어요. 준비가 다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이 들었어요. ?i기면서 만든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앨범을 내버리면 나부터가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족하는 쪽으로 가자!'고 맘을 먹었습니다. 녹음해놓은 것을 과감하게 접어버렸죠.”
그 뒤는 무엇을 했을까. “음악 청취에 몰두했어요. 그동안 사놓았지만 손대지 않은 CD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습니다. 취향을 가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다로 계곡으로 혼자 여행을 다녔죠.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아마추어리즘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신보를 가지고 재림한 김종서의 얼굴은 말마따나 격랑의 파도와 암초를 거치고 목적지에 도착한 사공과 같은 성취감, 안도 그리고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힘든 수술을 막 끝낸 의사가 곧 긴 잠에 빠져들 것 같은 피로와 탈진의 기색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홀가분해 하는 표정이 우세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톤의 굴국 없이 나직한 목소리를 유지하면서도 신보의 작업과정을 비롯해 김종서의 어제와 오늘, 대중가수로서의 영광과 고통의 삶 등을 기탄없이 털어놓았다.
어때요? 거의 4년 만에 앨범을 냈는데...
한마디로 후련해요. 지금까지 낸 앨범 가운데 가장 디테일하게 한 작업이었기에 때문에 끝내고 나니 시원합니다. 적당한 드럼의 스네어 음색 하나를 고르기 위해 녹음실에서 한달을 고민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2003년 후반에 만들어놓은 앨범을 버리고 난 뒤 방향을 어떻게 잡았습니까?
최대한 편하게 하자는 것이었죠. 장르 설정의 틀을 송두리째 거부해버렸습니다. 어떤 장르냐를 배제하고 그저 한곡 한곡의 완성도에만 주력하자고 맘을 먹었어요. 욕심 내지 말고 2005년의 김종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번 수록 곡들은 전부 (러닝타임이) 길죠. (웃으며) 타이틀곡인 '별'도 치명적으로 길잖아요. '방송활동을 안하겠다는 뜻이냐'는 말도 나왔지만 자연스럽게 하다보니 길어지더라구요. (타이틀곡 '별'은 6분20초로, 방송홍보를 위해 4분20초짜리 편집 본을 마지막에 붙였다)
이번 앨범은 관록의 산물이다. 인트로 'Tube'를 지나 'Lamia'부터 통상적인 대중가수의 곡 패턴에서 유리되어 있고, 감각적이지만 결코 평범치 않은 모던 팝 'The mint', 세련된 독백인 'Marry me'까지만 들어도 이미 작품이 현재의 주류에 훌쩍 비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어떤 장르라고 딱히 규정하기가 어려울 정도. 타이틀곡 '별'이 그나마 김종서식 록발라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흔하디흔한 '뽕'조는 아니다.
이어서 일렉트로니카의 요소가 고개를 내민 '칼네아데스의 판자', 소프트 코어와 힙합이 마주하며 몰아치는 'Metropia', 빠른 드러밍과 특징화된 보컬로 신나는 록 잔치를 벌이는 'Toxin', 서정성을 세련되게 표현한 '소야(小夜)' 등에 이르면 팬들마저도 시종을 관통하는 드문 실험적 접근에 놀란다. 통상적 김종서 곡이라곤 'Diamond forever'에 불과하다.
보컬은 더 놀랍다. 곡에 따라 철저히 목소리의 강약, 광협, 고조, 대소가 구분되어 들려나온다. 한곡 내에서도 마구 오르내리고, 읊조림과 외침이 교차하는 실로 '요동'의 예술이다. 메탈 가수의 흔적은 많이 지웠다. 프로듀서는 물론 김종서. 프로그래밍까지 스스로 했다. 그는 다시 한번 “기존 장르의 틀 안에 갇히기 싫었다. 장르란 솔직히 어떤 음악이 잘 되면 나중에 붙여지는 것 아니냐.”며 '김종서장르'에 대한 기대감을 슬쩍 내비쳤다.
프로듀서로서 신보에 임한 어떤 작업수칙 같은 것이 있었을 듯 합니다.
'프로듀서 김종서'와 '가수 김종서'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듀서의 시선에서 노래를 하나의 악기로 분류한 것이죠. 노래가 곡에 붙어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처럼 곡에 맞춰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어요.
노래가 곡마다 다른 이유가 그래서군요. 그래도 이번 앨범을 만들 때 염두에 둔, 롤 모델이랄까 그런 음악은 없었습니까?
아까 얘기한 것처럼 그동안 들었던 많은 음악들이 섞이고 섞여 이번 곡들로 나온 것 같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요소도 있고 힙합 요소, 비틀스적인 느낌, 모던 록의 느낌도 있죠. 하지만 어떤 것도 미리 설정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은 장르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았나요. 장르파괴란 말도 있고. 하긴 그 말도 무의미하죠. 우린 이미 음악적으로 크로스오버 상태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말은 지난 8집 때도 했는데...
그랬어요. 그 앨범은 처음으로 내 주도로 만든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래도 (장르의) 틀은 있었어요. 거기서 시행착오가 생겨났습니다. 아쉬움이 남았고, 그 때문에도 이번 앨범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여태껏 그랬던 같아요. 고쳐야 되는데 수정해야 되는데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신보작업이 그래서 오래 걸렸던 거죠.
신보에서 가장 만족스런 곡을 하나 꼽는다면
없습니다. 딱 하나 꼽을 수가 없어요. 다 하나 하나 정말 내 자식 같고... 만들 때 힘들었던 구석이 생각나서 모든 곡이 제게는 같은 비중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앨범홍보를 위해 타이틀곡을 정해서 가는 게 조금은 안타깝겠는데요.
타이틀곡은 결과적으로 앨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알리려면 하나를 정해야 하고... 그러나 신보의 경우는 어떤 때보다 '별' 한곡이 앨범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별' 하나로 그치지 말고 앨범 전체적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앨범을 보니 록 색채가 가장 강한 곡들인 'Metropia'와 'Toxin'에는 서태지와 관련된 그룹 '피아'의 멤버가 참여했더군요. 서태지와는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나 보죠?
그래요. 자주 의견 교환을 합니다. 저한테 보이지 않는 지지를 보내주죠. 주변을 보면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음악 얘기를 안 하더라구요. 대부분 딴 얘기들만 해요. 태지는 '90년부터 알았으니까 꽤 오래된 사이인데도 지금 통화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얘깁니다. 무슨 앨범이 새로 나왔나, 뭐에 충격을 받았는지 등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죠. 그게 좋아요.
김종서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몰고 온 혁명적 회오리바람 속에서 '대답 없는 너'라는 기념비적 록발라드로 서태지와 비등한 슈퍼스타덤을 포획한다. 둘이 같은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출신으로서 동반적 평행선을 달린 가운데 김종서는 강한 친화력을 발한 록발라드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집의 후속타 '지금은 알 수 없어(My love)'에 이어 이듬해 2집의 '겨울비' '그래도 이제는', 3집의 '남겨진 독백', 4집의 'Plastic syndrome' 그리고 1996년 미국에서 작업한 5집에서는 랩 보컬을 시도한 '추락천사'와 김종서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구속' 등 매머드 히트가 줄을 이었다.
1집과 2집 100만장을 포함, 낼 때마다 5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희망가'가 수록된 '98년 6집 < Seeds >부터는 행진속도가 둔해졌다. 1999년의 7집, 2001년의 8집은 각각의 타이틀곡 '실연' '절대사랑'이 준 히트를 거두긴 했지만 전성기를 호령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번 9집에서 그가 바라는 것도 정상의 재탈환보다는 관록의 음악성에 대한 각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삶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언제였습니까?
굳이 말한다면 1987년 시나위 앨범 발표 전이었죠. '부활' '작은 하늘' '카리스마' 등 여러 그룹을 거치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꿈 많고 거침이 없었지요. 가수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음악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돌이켜보면 돈도 없었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인기가수가 되어서 힘들었죠. 사생활을 침해받고 언론에 의해 내 의도와는 다르게 묘사되고... 한때 가수활동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그룹을 전전할 때 가수할 마음이 없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데뷔하게 된 거죠?
헤비메탈 밴드에 있었지만 전 메탈과는 다른 감성의 곡도 무지 좋아했어요. 시나위에서 '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겁니다. 메탈은 아니지만 '비틀스나 아바 같은 그 좋은 음악들을 왜 배척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죠. '겨울비'가 그때 쓴 곡인데, 그런 '가요스런' 곡들을 버리기가 아까웠습니다. 그것들을 모아 판을 내고 싶었어요.
대중가수가 되고난 뒤 내심 목표로 둔 것이 있다면
록은 언제나 내 고향이고 중심이죠. 록이 빨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활동에 임했습니다. 사실 제가 등장한 이후로 록발라드가 많이 나오게 되었죠. 록이 대중음악화(化)되고 다양한 록이 소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온 것 같습니다.
뒤늦게 사랑받은 곡 '아름다운 구속'은 업 템포의 록과 김종서식 발라드를 절묘하게 결합해냈죠. 목표에 근접한 곡이었겠네요.
미국에서 작업했는데 쉽게 나온 곡이에요. 편곡도 어려움이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자연스러웠죠. 당연히 노래도 술술 나왔죠. 편하게 부른 곡이 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록스러우면서 발라드적인 것을 유지하려는 의지도 아마 무의식적으로 가동되었을 거예요. 이전 3집의 '남겨진 독백', 4집의 'Plastic syndrome'도 사실 그랬습니다.
김종서씨에게 영향을 준 앨범들은 어떤 것들이죠?
비틀스의 < White Album >, 레드 제플린 1집이죠. 비틀스는 아직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못 봤죠. 전곡의 악보가 실린 책을 통째로 외우려고도 했으니까요. 레드 제플린은 메탈로 나를 데려갔고... 더 꼽는다면 예스의 < Fragile >, 아바의 < Arrival >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 Wish You Were Here >도 빼놓을 수 없죠. 더 언급해도 됩니까? 그렇다면 (핑크 플로이드의) < Meddle >도 좋아요.
가장 맘에 드는 자신의 앨범은?
3집입니다. 영화 <세상 밖으로>의 OST 작업과 겹치기도 했고 너무 바빠서 충분한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디어가 샘솟은 시절에 그것들을 최대한 잘 집결해 연결한 앨범이라고 봐요. 나중 5집 김종서 밴드의 틀을 짠 앨범이기도 했구요. 세션맨들과 마치 밴드처럼 녹음했죠. '자 갑시다. 하나 둘!'하고 합주하듯 떴으니까요.
자신의 곡 하나가 딱 하나만을 꼽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대답 없는 너'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그 전과 그 후로 가른, 인생의 분기점이 된 곡이었으니까요. 모든 것을 바꾸게 한 곡이며, 좌충우돌을 겪으며 지금까지 저를 오게 한 곡이기도 하죠.
2005/09 임진모 (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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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인터넷 검색하다 보물을 찾았습니다^^
정말 보물이네여~ 앨범 전체를 틀어주세여!! 우리의 소망이지여...ㅎㅎ 정보 감사합니다!^^
임진모 아저씨의 인터뷴가 보네요..보컬이 요동의 예술.. 맞아요~잘 읽었어요^^
정말 보물 맞네요....
좋은 기사 자알 읽었습니다..땡큐..
정말 보물입니다^^ 덕분에 김종서님이 좋아하는 앨범이 뭔지도 알고... 함 구해봐야죠
꽤 길다 싶을 수도 있지만 후다닥 읽어내린... '보물'임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종서님이 언급하신 앨범들을 찾아보고싶군요. 좋은 펌글, 감사합니다.^^*
저두요 저두 3집이 가장 맘에 들어요...종서오빠다움이 물씬 풍겨난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