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동물, 천록상(天鹿像)
근정문 앞 금천(禁川)을 가로지르는 영제교 양옆 호안 석축(護岸 石築)에 있는
네 마리의 돌짐승은 천록(天鹿)이다.
이 돌짐승을 혹은 해태, 혹은 산예(狻猊,·사자 모습을 한 전설상의 동물)라고 하지만,
해태는 털이 있어야 하고, 산예는 사자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뿔이 하나인 데다 비늘이 있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천록상이다.
이 돌조각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선시대 뛰어난 조각 작품의 하나로 손꼽을 만한 명작이다.
다만 그 중 한 마리는 이상하게도 등에 구멍이 나 있고,
또 한 마리는 일찍부터 없어져 2001년 영제교(永濟橋)를 복원할 때
새로 조각하여 짝을 맞춰 둔 것이다.
산예(狻猊)
타고난 용맹성과 위엄으로 인해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불리는 사자는 신성함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여겼다. 또한 사자는 산예(狻猊), 백택(白澤) 등의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위엄이 있고 용맹스러워서 신물(神物)로 여겨왔다.
문헌에 나타난 사자에 관한 내용은 연암 박지원 (朴趾源, 1737 ~ 1805])이 [열하일기(熱河日記)] 철경록(輟耕錄)에 왕과 여러 대신들을 모아 잔치를 벌인 대취회(大聚會)에서 사자의 위용(威容)을 “사자는 몸이 짧고 작아서 흡사 가정에서 기르는 금빛 털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는데, 여러 짐승이 이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 라고 묘사하였다.
조선 후기 저명한 학자인 사옹(蒒翁) 홍성모(洪錫謨, 1781년∼1857)는《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정초 세화로 계견사호(鷄犬獅虎)를 그려 붙였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佛法)과 진리를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되었으며, 기원전 3세기경 불교 발생국인 인도의 아쇼카왕 석주에 사자상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사자의 두려움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다스리는 용맹함 때문에 부처를 인중사자(人中獅子)라 비유하기도 하고,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호신으로 표현되며,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사자 위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