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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4
1. 중아집 거실 (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중아. 바닥엔 입양될 때 신고 있던 딸기 양말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손끝으로 딸기 양말을 만지작대는 중아.
2. 중아의 침실 (밤)
침대밑에서 침대 프레임에 등을 기대곤 한쪽 무릎을 세운채 발끝만 보고 앉아있는 국. 아직도 화가 나 있다.
국 ...(그러다 입이 떨어진다. 툭 뱉듯) 정신병자, 이중아.
3. 중아의 거실 (밤)
물끄러미 양말을 만지던 중아.
그러다가 자신의 배를 두 손으로 포갠다.
중아 (평화롭게) 아기 강국. ...아빠 강국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너두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너는 너무 고민하지마라. 고민은... 나 혼자 할게. ...넌... 자거라.
자신의 배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그리곤 아기를 재우듯 조심스레 소중히 배를 두드리는 중아의 손. C.U.
F.O.
4. 수술실로 향하는 병원복도 (낮)
푸른 수술복을 입은 중아가 이동침대를 밀며 바삐 수술실로 향한다.
환자의 어깨와 팔의 심한 출혈, 환자는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다.
꽤 긴박한 상황이다. 중아의 옷까지 피로 젖어있다.
5. 병원복도 일각 (낮)
제법 익숙하고 빠르게 양쪽 목발을 짚으며 걸어가는 재복. 밝은 표정이다.
목에는 자신이 뜬 분홍색 목도리를 한 채, 기분좋게 뛰듯이 목발을 움직인다.
그러다 문득 표정이 굳으며 제자리에 선다.
멀리 대기실 의자로부터 처방전을 받으러 가는 한 남의 뒷모습.
다리를 유난히 전다. (매우 심하게) 처방전을 받고 돌아서다가 처방전을 받으러 가는 다른 이와 부딪힌다.
바닥으로 넘어지는 남자.
그러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어서서 옷을 털고는 문쪽으로 다리를 절며 걸어간다.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재복.
이때, 재복의 옆으로 바삐 재복을 스쳐 지나치는 중아의 이동침대.
침대 바퀴가 재복의 목발을 건드리면서 재복이 바닥으로 넘어진다.
바닥에 넘어져서 중아를 바라보는 재복.
중아, 힐끔 재복을 본다.
중아 (재복을 돌 볼새가 없다. 멀어져 가며 소리친다) 얼른 일어나라, 이재복. 바닥 드럽다.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중아의 이동침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재복.
재복 내 마음두 드럽다, 지금.
그리곤 일어선다. 목도리를 툭툭 턴다.
재복, 목발을 짚으려다가 목발을 벽에 세우곤 걸어본다.
한걸음, 두걸음 조심스레... 미소. 그리곤 한 걸음을 내딛다가 뛰어가는 꼬마에 부딪쳐 넘어진다.
재복 (뛰어가는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소리친다. 손을 뻗으며 따지듯이) 야. 너 왜 남의 복도에서 뛰구 지랄. ...(그러다 잠시 멈칫... 조용히) 욕두 고쳐야 돼. ...다리 저는게, 욕까지 하면, 얼마나 욕을 먹을까? 인간들한테? ...얼마나 무서울까? 인간들이?
그리곤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예전의 그 중아처럼 뒷통수를 벽에 콩콩 찍는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병원복도에서 상념에 젖은 뒷통수를 찧는 재복의 모습이 역광을 받아 어두운 실루엣으로 남는다.
6. 수술실 앞 (낮)
동석이외에 중아와 다른 어시스턴트가 있다.
바이탈이 떨어지는 환자.
급박한 수술실 상황이다.
동석의 얼굴과 가슴으로 환자의 피가 솟구친다.
동석 (신경질적으로) 피 때문에 안 보여. 야, (중아에게) 야, 물.
중아 (기구로 생리 식염수를 부으며)
동석 (소리를 버럭) 통째 부어.
중아 (식염수통을 붓는다.)
마취과 (마취 보조에게) 에이씨. 피 더 갖구 와.
마취보조 (급히 나가는데)
마취과 (보조에게 소리친다.) 바이탈 떨어진다.
동석 (인상을 쓰며 마취과 의사를 본다.) 계속이야?
마취과 피 좀 막지?
동석 그냥 줄줄 세. 피가... (중아에게) 야, 주걱 갖구 와.
중아 (심장 충격기를 가져 온다.)
마취과 그냥 떨어지네, 이거? (바이탈 사인이 수평선을 이룬다.) 에이씨. (그리곤 동석에게 손가락으로 X자를 그린다.)
동석 (환자를 보며 눈을 깜박인다. 그러더니 두 손을 깍지끼며, 환자의 가슴에 힘껏 내리친다. 몇 번을)
중아 (그런 동석을 물끄러미 본다.)
마취과 (체념한 듯) 그만해에. 갈비뼈 부러져.
동석 (툭 내뱉듯) 에이씨. ...신경질 나. (물러서며 뒤쪽에 꽂혀있는 사진 쪽으로 몸을 돌려 선다. 팔짱을 끼고 서서 그냥 사진만 보고 있다. 아무 말도 없이. 마치 수술 전에 상태를 숙지하는 듯한 자세로 뚫어지게 사진을 본다.)
중아 (그런 동석의 뒷모습을 보다가 환자를 본다. 그리곤 자신도 손을 깍지끼워서 환자의 가슴을 내리친다. 쿵쿵쿵)
동석 (돌아서서 중아를 본다.)
중아 (안타까운 눈으로 여전히 가슴을 쳐본다.)
동석 이중아.
중아 (동석을 본다.) 네, 선생님.
동석 피나 닦아라, 환자. (그리곤 수술실을 나간다.)
마취과 정리하자.
중아 (그러다가 물끄러미 환자를 본다. 그리곤 다시 가슴을 때린다. 천천이 쿵쿵쿵)
중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취과와 간호사, 어시스턴트.
7. 시연의 집 앞 (낮)
계단 밑에 선 국.
대문을 열고 나오는 시연.
대문 소리에 국이 시연쪽으로 몸을 돌린다.
시연, 국을 보며 미소.
국도 시연을 보며 미소짓는다.
8. 시연의 승용차 안 (낮)
운전을 하는 국.
조수석에 앉아있는 시연.
시연 이젠 괜찮을 것 같은데...
국 빨랑 이사가요, 시연씨. ...그리구 휴대폰 번호두 바꾸구...
시연 네.
국 손에 흉터두 지울 수 있을거예요. 요즘 성형 잘하니까...
시연 안 지워두 되요.
국 무서워요? 성형하는 거?
시연 (찔끔) 아니, 뭐... 무섭다기 보단... (그러면서 괜시리 찔려서 두 팔을 엇갈려 가슴을 숨긴다.)
국 수술받아요. 병원은 내가 꽉 잡구 있잖아요.
시연 언니가 잡구 있지, 자기가 잡구 있나?
국 중아 얘긴 하지두 마요.
시연 ...(물끄러미 본다.)
국 ...
시연 아저씨.
국 네?
시연 (불쑥) 왜 살아요?
국 (힐끔 시연을 본다.) 태어났으니까, 살죠?
시연 아니이. 언니랑.
국 ...부부니까.
시연 ...
국 (다시 힐끔 본다.) 왜요?
시연 아니요. ...(말이 없다. 그러다 깨달은 듯) 둘이 그림이 돼요. 그거 인정.
국 (씩 웃는다.)
시연 근데... 왜 사는진 모르겠어요. 아이 때문두 인정.
국 왜 그래요? 뭐가 이상해요, 중아랑 나랑?
시연 나야 모르죠. 아저씨가 알겠죠, 이상한지 안 이상한지는...
국 ...
시연 ...
국 ...중아랑 나랑... 참 특별하게 만났어요. (미소가 어린다.) 나한테는 그게 ...도장처럼 박혀있어요.
시연 ...(자신의 무릎 위에서 살짜기 손바닥을 펴 본다. 칼날에 다친 손바닥에 선명하게 금이 간 흉터가 있다. 물끄러미 그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러다 주먹을 쥔다. 정면을 보며) 따지고 보면, 특별하지 않은 만남이 있나?
국 (힐끔 시연을 본다.)
시연 (자신의 손바닥만 본다. 그리곤 미소) 이젠 손금이 달라졌네. ..점보러 가야겠다.
9. 병실 (낮)
어두운 표정으로 식판을 가지고 들어오는 중아.
재복이 목도리를 한 채 중아를 본다.
재복 (중아를 보며 짜증스레) 아, 니가 왜 이런 거 갖구 들어와? 누가 너더러 밥 날라 달래?
중아 (인상을 쓰며) 고만 좀 징징대라?
재복 ...(입을 닫는다.)
중아 (침대 위 식판을 펼쳐 재복 앞에 둔다. 그리곤 인상을 쓰며 재복이 감은 목도리를 본다.) 다 떴네?
재복 응.
중아 그거 니꺼 아니다?
재복 (티꺼운 투로) 알어.
중아 벗어. 반찬 텨.
재복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서 의자로 휙집어 던진다. 그리곤 수저를 들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다.)
중아 (손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다.)
재복 (또 짜증) 아, 모잘라. 넌 나가서 감자탕이나 먹어, 뚱땡이 의사랑...
중아 (물끄러미 보며) ...아까, 넘어져서 짜증나냐?
재복 ...(밥을 먹으며 중아를 째려 본다. 그리곤 식판만 보며 밥을 씹는다. 어둡게) 어떤 사람이... 다리를 욜라 절드라. ...그냥, 어깨만 스쳤는데두 바닥으로 꼴까닥... 넘어 가드라. 근데... 아무렇지두 않게 일어나서, 옷이나 툭툭 털구, 아무렇지두 않게 그냥 걸어가드라. (씹던 밥을 어렵게 목 안으로 넘긴다.)
중아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재복 ...나두... 아무렇지두 않겠지? 몇 년이 지나면? ...그게 서럽드라. ...이렇게 난감하구 죽구싶은 일을... 아무렇지두 않게, 옷에 먼지 털듯이... 그게 서러워.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밥이나 실컷 쳐먹구, 뒤비 잘거니까, 내 밥 뺏어 먹지 마. (노려보며) 알았냐?
중아 ...(재복을 보다가 다시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다.)
재복 ...(빤히 쳐다보며) 너, 나 고문하냐? 하지말라는 짓만 하면서? (다시 반찬을 집으려는 중아의 손을 젓가락으로 잡는다.)
중아 ...(슬픈 듯) 나두 먹어야 돼. ...환자 한 명 죽었어. ...그러니까, 나두 먹어야 돼.
재복 (슬픈 중아의 눈을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푼다.)
중아 (다시 반찬을 집어 오물대며 씹는다.)
재복 ...나, 넘어뜨리구 간 그 환자?
중아 응.
재복 팔만 다친 거 아니야?
중아 어깨랑 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낮게)죽었어. (눈가가 젖는다.)
재복 ...
주아 ...왜 눈물이 나냐면... 그 사람이 죽어서 슬퍼.
재복 ...죽는 건... 원래 슬퍼.
중아 왜 눈물이 나냐면... ...니가 살아서 기뻐. (눈물이 쏟아진다.)
재복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중아 ...니가 다쳤다구만 생각했는데... 넌, 살아 난 거였다, 이재복.
재복 ...
중아 ...옷에 먼지래두... 난 기쁘다.
재복 ...(눈물 흘리는 중아를 슬픈 듯 바라본다.) 중아야. 일루 와 봐. 내 옆으루...
중아 (눈물을 닦으며 재복 옆에 선다.)
재복 (눈물이 흐른다. 터프하게) 포옹 한번 하자. 감격의 포옹.
중아 (재복을 안는다.)
재복 (중아를 안는다.)
중아 ...
재복 아기 강국두 이해해 주겠지?
중아 응. 이해한대.
눈물을 흘리는 재복과 중아.
영원처럼 그렇게 서로를 꼭 안고 있다.
10. 헬스클럽 안 (낮)
러닝 머신 위에서 걷는 시연과 그 옆에 서서 팔짱을 낀채 주변을 살피는 국.
시연 아저씨. 그냥 아저씨두 옆에서 운동해요.
국 난 운동하려 온 거 아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며) 아직두 맘이 안 놓여, 난.
시연 (쌩글쌩글 웃으며 장난스레) 그러구 옆에 서 있으니까, 꼭 나한테 뻑간 사람 같잖아요오. 나만 졸졸 쫓아다니구...
국 (그러자 마자 옆쪽의 러닝 머신위로 오른다.)
시연 (인상을 쓰며) 아우, 으찌나 가오를 잡으시는지..
국 (인상을 쓰며) 무슨 가오를 잡아요? (그리곤 삐져서는 걷기 시작한다.)
시연 ...삐졌어요?
국 (아무말도 않고 기계버튼을 누르며 뛴다.)
시연 왜 삐져? 삐질 일이 뭐가 있다구?
국 (계속 인상을 쓴다.)
시연 삐졌어, 삐졌어. ...성격 그를 줄 알았어, 내가. ...갑빠 무너지니까, 삐졌어.
국 (버럭 소리친다.) 내가 시연씨한테 뻑 갈 일이 뭐가 있어요? 불쌍해서 그러는 거지?
시연 ...(물끄러미 보면서 입이 비뚤어진다.) 그것 땜에 삐진거야? ...아우, 구려. 그건 더 아니다. 그건 더더욱 삐질 일이 아니다. 웃자구 한 얘길.
국 (소리친다.) 아, 안 삐졌다니까요?
시연 아저씨두 은근히 다혈질이야. 소리 지르는 거 보면... (씩 웃으며) 남성성이 느껴져.
국 (얼굴이 빨개져서는 앞만 보고 뛴다.)
시연 (놀리듯) 이중 인격자. 순진한 얼굴의 다혈질 성격. 헤...
국 에이, 진짜. (그리곤 기계 버튼을 끈다.)
여자1E 가짜야, 가슴.
시연 (뒤돌아 여자1을 본다.)
여자2· 그지? 나두 한 눈에 알아봤어.
여자1 영화두 봤잖아. 누워있는데, 진짜면 그럴 수가 없거든.
시연 (얼굴이 빨개져서 앞만 본다. 그리곤 기계버튼을 누른다.)
국 (멀뚱하게 서서 시연을 본다.)
시연 (어색하게 팔로 자꾸 가슴을 가린다.)
국 (그냥 계속 시연을 물끄러미 본다.)
시연 (인상을 쓰며 국을 본다.) 왜요? 뭘 봐요?
국 ...(씩 웃는다.) 삐졌어요?
시연 내가 왜 삐져요?
국 삐졌구나?
시연 (버럭 소리친다.) 아, 안 삐졌다니까?
국 뭐 그거 갖구 삐지냐?
시연 (버튼을 멈추며 국을 본다.) 하여간 연예인만 보며 질투를 하는 년들이 있어요, 아저씨. ...저런 년들두 일종의 스토커예요. 언어폭력. 아저씨가 잡아 넘겨야 돼, 저년들.
국 (그냥, 씩 웃는다.)
시연 ...(어색한 얼굴로) ...뻥까는 거야, 저년들...
국 (웃으며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그리곤 즐겁게 걷는다.)
시연 (물끄러미 국을 본다.) 그래요. 어쩌라구요? 가짜면?
국 (웃으며) 이중인격자.
미소지으며 걷는 국.
삐져서 걷는 시연.
시연 (궁시렁) 에이씨. ...(가슴을 슬쩍 보며) 귀신같은 년들.
11. 병원복도 (밤)
부자와 함께 복도를 걸어가는 성만.
복도를 걸어가는 중아와 마주친다.
성만, 중아에게 미소를 지으면 부자, 어색한 표정으로 중아에게 다가간다.
중아 (긴장된 표정으로 부자를 본다.)
부자 (아무 말도 없이 중아에게 초록색 목도리를 내밀곤 재복의 병실쪽으로 걸어간다.)
중아 (말없이 초록색 목도리를 받아 서 있다.)
성만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아에게 다가간다.) 오늘은... 내가 병실 좀 지킬까 하구... 내일 쉬니까...
중아 재복이... 병실 안 지켜두 돼요, 할아버지. 혼자서 다 할 수 있어요.
성만 그러니까, 내가 지킨대지. 혼자서 알아서 하니까, 내가 힘들 일은 없을거 아니예요. 그냥, 잘해주는 척 흉내만 낼라구... (그러면서 미소) 나중에 조 놈이 또 씹을지두 몰라서 그래. 병구환 한번 안했다구...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라서...
중아 (미소) 좀 짜증을 많이 내니까, 그럴땐 그냥, 다리를 때리시면 돼요.
성만 (환하게 웃는다.) 잘됐네. ...그 동안 내가 당한 거 다 풀게 생겼네.
중아 (인사를 하며) 들어가세요. (그리곤 뒤돌아서는데)
성만 (중아를 향해) 정아양.
중아 (뒤돌아 물끄러미 성만을 본다.)
성만 (중아의 한손을 두손으로 애잔하게 어루만지며 중아의 손만 본다.)
중아 (가슴이 내려앉듯 성만을 본다.)
성만 (중아의 손만 보며 나직하게) 내가 아주 많이 살아 봤드니... 사는게 때미는 거드라구... ...때밀구 가벼워졌구나 싶으면, 다시 몸때 쌓여서 가렵구, 꺼끄럽구, ...그래서 다시 때밀구...
중아 ...
성만 (중아를 본다.) 재복엄마... 그걸 못해. 계속 그렇게 가렵다구 긁구 있어, 때 못밀구... 긁어서 자꾸 상처만들구, 딱지 만들구. ...근데, 아가씨 만나서, 처음으루 묵은 때 밀구, 아주 화사했어. ...그 순간만 기억해요, 아가씬. ...우리 재복엄마, 재 몸때 벗겨내는 것두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죄가 커서...
중아 ...(슬픈 듯) 네.
성만 내가 참 엄하구 고리타분하게 애들 키웠는데... ...그게... 후회되요. ...나이가 곽 차서 세상끝에 서 보니까... 세상 중간에서 보던 거랑 많이 달라. ...지금에서야 세상 속이 참 재미난 거구나, 느껴요. ...애들을 재미나게 키울걸. 나두 재미나게 살구. ...후회돼. 아가씨두... 그냥, 우리 재복엄마, 재미나게 느껴줘요.
중아 ...(눈물이 맺힌다.) 네.
성만 난 맘속으로 정아양을 딸 삼았어. 그치만, 난 무조건 재복 엄마 편이라서, ...그냥 몰래. ...아무도 몰래.
중아 ...네. (눈물이 흐른다.)
성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딸을 달래듯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토닥여 준다.) 정아양은 내 딸이구, 재복이 놈은 재복 엄마 아들이구... 그래, 난.
중아 네. 할아버지.
12. 병실 안 (밤)
재복의 병실을 정리하는 부자.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통들을 열어보며 쉰내를 맡는다.
재복이 정형외과 의학서적을 보고 있다.
부자 (걱정스레) 좀 팍팍 먹어, 재복아... 일주일 된 반찬이 그대루야, 왜?
재복 (대답도 않고 책만 본다.)
부자 (냉장고 문을 닫고 다가와서는 귀엽게 웃으며 재복이 보는 책을 본다.) 뭐야? 책보네? 재복이가? 안 어울리게?
재복 (인상을 쓰며) 아, 절루 가아. 혼자 봐야 집중돼.
부자 (계속 보며) 얘, 너 이거 읽을 줄 알어?
재복 그럼 한글두 못 읽어, 내가?
부자 아니이. 한글은 한글인데, 어려운 한글이잖아. (다시 보인다는 투로) 어머. 재복이 웃긴다아. 이런 책두 이해하구...
재복 이해는 못해.
부자 근데, 왜 봐?
재복 중아가 줬어. 보라구...
부자 (굳은 듯 재복을 본다.)
재복 (힐끔 부자를 본다.)
부자 ...
재복 (짜증스레) 또 시작이다. 가, 어머니.
부자 (기분 상한 듯 가방을 챙기며) 갈거야... 니 아버지 오늘 여기 계신대.
재복 (버럭 소리친다.) 아, 왜에? 그냥 집에 가서 고등어나 먹구 자빠져 있으라 그래.
성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죽을때까지, 고등어 타령을 해라, 아주.
재복 (갑자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눕는다.)
부자 어디 갔다 왔어요?
성만 응. 뭐 좀 사 왔어. 얼른 들어가 봐.
부자 네. (째려보며) 이젠, 나만 보면 가래요, 쟤 (그리곤 병실을 나간다.)
성만 (이불을 뒤집어 쓴 재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곤 재복에게 다가와 이불을 젖힌다. 엄한 얼굴로.)
재복 (인상을 쓰며) 아, 뭐야아 나 잘거야, 할아버지. (그리곤 눈을 꼭 감는다.)
성만 (테이블에 쇼핑백을 올려놓고 그 속에 든 스티로폼 도시락을 꺼낸다. 그리곤 젓가락으로 그 안에 든 수육을 집어 한 손으로 재복의 입을 벌린다.)
재복 (반짝 눈을 뜨며 짜증스레) 아, 뭐야아?
성만 (엄한 눈으로) 김 날 때, 먹어. 안 식힐라구 뛰어 왔어.
재복 싫어.
성만 (그냥 강제로 입에 쳐 넣는다.)
재복 (인상을 쓰며 벌떡 일어서서 바닥에 퉤 뱉는다.)
성만 (다시 젓가락으루 재복의 입에 우겨 넣는다.)
재복 (고기를 손에 꺼내 들며 인상을 긁는다.) 할아버지, 노망 났어?
성만 그런 걸루 쳐, 그럼. 고기만 먹어, 어쨌든.
재복 ...(인상을 쓰며 성만을 본다. 그리곤 손에 들었던 고기를 씹는다.) 씨, 야밤에 고기 맥여서, 응? 소화불량으로 보낼라구? 가 줄께, 기꺼이...
성만 소화 잘되는 고기야. 안 죽어.
재복 무슨 고긴데?
성만 개고기.
재복 (버럭) 에이씨. 내가 개새끼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성만 (피식 웃는다.) 니가 사랑두 할 줄 알어?
재복 ...
성만 철 들었네, 그럼...(그리곤 다시 재복의 입에 고기를 가져간다.)
재복 (순순히 받아 먹는다.)
성만 ...뼈 다쳤다니, 고기는 맥이고 싶은데... 내가 알기론 이게 소고기보다 비싸... 비싼거 먹이구 싶었다.
재복 ...(씹던 입을 멈춘다. 움직이는 감정을 다잡듯...)
성만 ...
재복 ...(물끄러미 성만을 바라본다.)
성만 (다시 재복의 입에 고기를 넣는다.)
재복 (갑자기 싫은 표정으로 성만을 본다.)
성만 ...
재복 ...아직두 재섭는 교수부부, 우리 어머니한테 재섭게 굴지?
성만 ...(할 말이 없다. 들고 있는 젓가락이 부끄러운 듯, 도시락으로 손을 내린다.)
재복 (싸늘하게 바라본다.)
성만 (미간을 찌푸리며) 손 아퍼, 나. (도시락을 재복 앞에 내밀려) 이젠 니가 알아서 먹어.
재복 (차갑게) 그래서 내가, 아버지를 좋아할 수가 없어... 그 욜라 잘난 교수들 땜에...
그리곤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눕는다.
성만, 미안한 눈빛으로 재복의 이불깃을 본다.
성만 (물끄러미 한참동안 재복을 보다가 쓸쓸하게) 즐겁다... 니가 아버지라 불러줘서. (미소짓지 마세요. 절대루...)
성만, 서글픈 눈으로 재복의 발을 바라본다.
13. 시연의 집-골목(밤)
콜라를 빨대로 꽂아 마시며 글을 걷는 국과 시연. 시연이 재복과 걷던 그 골목을 국과 걷는다.
국 내일부턴 매니져 온다니까, 걱정 안할게요. 근데... 그래두 경호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시연씨? 나 아니어두?
시연 알았어요. 근데, 다른 경호원들두 그래요? 내가 대문 들어가서 닫힐 때까지, 계속 그 앞에 서 있는 거요? 아저씨처럼?
국 ...(물끄러미 시연을 보며 버벅댄다.) 그럴걸요? 잘 모르는데? 내가 확인을 안해 봤는데?
시연 난, 그 기분이 참 쏴하든데? 콜라처럼?
국 ...별 거 아닌데, 그거?
시연 그니까... 아저씨 입장에서 별 거 아닌게... 나한텐 별거가 되는 거. 그게 참... 날 확 쏴잖아요.
국 오히려 내가... (그러더니 잠시 시연을 바라본다.) 사실은... 나두 쏴한 거 있는데.... (시연의 손을 보며) 시연씨 손.
시연 (국을 본다.)
국 시연씨가 다쳤을 때 보다, 지금 흉진 게 더 미안하구... 쏴하구... 시연씬 별거 아니겠지만, 난 그게...
시연 (대뜸 손바닥을 펴며 불만스레) 이게 왜 별게 아니예요?
국 (물끄러미 손바닥을 본다.)
시연 (시비걸 듯) 누가 별게 아니래요? 이걸루 평생 협박두 할 수 있어, 아저씨. 내가 요즘 명성땜에 참는 거지.
국 그러니까, 성형을 받으시라구...
시연 (벌컥) 아, 성형얘기는 왜 자꾸 하는데?
국 아니, 그 성형이 아니라...
시연 지금 내 가슴 봤죠?
국 아니요.
시연 봤으면서... (그리곤 픽 웃으며 앞서 걷는다.)
국 (따라가며) 안 봤어요오.
시연 아저씨.
국 네.
시연 내일부터 못 보네요, 우리?
국 ....네.
시연 마지막이니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민다.)
국 (시연의 손을 잡는다.)
시연 (씩씩하게) 마지막이니까, 하고 싶은 말은 할께요.
국 ...
시연 자고 싶으면 언제든 오세요. 강 국씨.
국 ... (미소) 네. 시연씨.
국을 향해 미소짓는 시연. 그런 시연의 모습을 보며 맑은 미소를 보이는 국.
마주잡은 국과 시연의 꼭 잡은 손.
14. 병원복도 (밤)
홀로 나와서 손으로 개고기를 집어 먹는 재복.
중아가 다가와 앉는다.
권하지도 않은 고기를 그냥 손으로 집어 먹는다.
재복 에이, 나 먹기두 모잘...
중아 (그냥 도시락을 획 뺏는다. 그리곤 재복의 손이 닿지 않게 한켠으로 등돌려 먹는다.) 왜 나왔나? 안 자구?
재복 (인상을 긁으며) 저 할아버지 노망나서 큰일이야. 내가 한 방에서 자보네. 십 분이상 밥두 같이 못 먹었는데...
중아 니가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걸, 할아버지 흉을 보나? 아줌마처럼?
재복 (인상을 쓰며) 아, 고기 내놔, 그거 먹어야 뼈에 좋대.
중아 (도시락을 감추며) 아기 강국이 이거 먹구 싶단다, 재복아.
재복 ...(중아를 보며 웃는다.) 너 그 고기가 무슨 고긴줄 아냐? 너 같은 외국 애들은 진실을 알면... 토해.
중아 뭔데?
재복 강아지 고기.
중아 (별일 아닌 듯) ...아기 강국이 강아지 좋대. (그러면서 집어 먹는다.)
재복 (빼앗으려 한다.) 아, 비싼거야아.
중아 (도시락을 들고 멀리 달아난다. 그리곤 씩 웃는다.) 뺏어 봐라? 걷지두 못하는게 까뿔구 있어.
재복 (비웃듯) 하, 참... 볼래?
중아 뭘?
재복 (일어선다.) 나의 피나는 노력으루... 난 걷는다, 이 중아. 볼래?
중아 그래라?
재복 (조심스레 다친 한발을 내 딛는다. 그리곤 중아를 본다.) 봤지?
중아 뭘 봐?
재복 (어이없다는 듯) 미치겠네... 지금 이 발이... 바닥에서 힘을 줬어.
중아 힘은 걷지 않구 앉아서두 줄수 있다.
재복 아, 참... 한 걸음을 더 걸어 달라는 거네? 넌?
중아 응.
재복 하 참. 돈 받구 보여줘야 되는데... (그리곤 긴장된 얼굴로 다음 발을 본다.)
중아 재복아.
재복 ...응 중아 ...(진지하게) 내 앞에서 넘어진다구 쪽팔려 하지마라... 그냥 걸어.
재복 (물끄러미 중아를 본다. 그러다가 버럭...) 넌 의사가 쪽팔린게 뭐냐? 나한테 배운게 고작 그거냐?
중아 응.
재복 (인상을 쓰며 비굴하게) 나한테 배울 건 없지, 사실.
중아 입 닥치구, 강아지 고기나 가져가. (그리곤 멀리서 도시락을 앞으로 내민다.)
재복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을 뗀다. 바로 넘어진다. 인상을 쓴다.)
중아 (재복에게 다가온다.)
재복 (두 다리를 한 켠으로 모은 자세다.) 에이씨. 아까는 세 걸음 걸었는데... 무슨 인어공주두 아니구... 지금 내 자태가 완전 인어공주 아니냐? 걸을 땐 아프구? ... 이러다 물거품이 되려나? (어둡게 자신의 힘없는 다리를 본다.)
중아 ...(재복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민다.) 넌 말이 많잖아. 그래서 인어공주는 못된다.
재복 (중아의 손을 잡으며 일어선다.) 인어공주는 말수가 적었나?
중아 (픽 웃으며) 하, 바보, 그 동화두 제대루 안 봤나?
재복 만화루 본 거 같은데?
중아 (의자에 앉히며 한심한듯)... 그런 너한테, 의학책을 준 나두, 무척 구리다.
재복 ...(물끄러미 중아를 보면서 인상을 쓴다.) 너... 우리 계층 언어 쓰지마라.
중아 왜?
재복 ... 너, 삼개 국어 한다구 욜라 자랑했지?
중아 응.
재복 삼개 국어에서 그쳐. 내가 우리 바닥 언어 만큼은, 니 잘난뻥에 희생시키지 않겠다.
중아 (생긋 웃는다.) 욜라 구리군.
재복 (인상을 쓰며) 너, 애 교육을 하겠다는 거냐, 말겠다는 거냐?
국E 중아야.
중아/재복 (소리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국 가자.
중아 응. (일어선다. 굳은 표정으로 국에게) 옷갖구 올게. (그리곤 진료실 쪽으로 걸어간다.)
재복 (왠지 눈치를 본다.)
국 (재복 옆에 다가와 앉는다. 그리곤...) 좋아졌나부다?
재복 응. ...아, 오늘... 우연히 강아지가 대화의 화제가 되는 바람에.
국 이재복.
재복 응.
국 (심각하게) 난... 중아가... 충동적이라구 생각해. ...나두... 그런 충동 느끼니까, 그 기분 알지만...
재복 ...
국 근데... 충동을, 진실이라구 생각하니까, 그게 답답해.
재복 ...
국 이젠... 중아두 책임감 가져야 돼. 가족에 대해서... 정신 맑은 거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그걸 못하는 건... (재복을 본다.) 눈 앞에 이재복이 있어선가 봐.
재복 ...(물끄러미 국을 본다.)
국 (말문을 닫고 앞만 본다.)
재복 ...(한참을 국을 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알았다.
국 ...(자신의 두 손을 깍지낀다.)
재복 ...(말없이 국을 바라본다.) 근데...
국 ...(재복을 본다.)
재복 ...강국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어서 욜라 멋져. 중아랑 있으면, 욜라 미더워. ...근데, (국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사실은 중아두 그래. ...중아는 자기 자신한테 책임지구 싶어해. ...그것만, 인정해 줬으면 좋겠네, 강국이. ...그거, 대단한 일이라는 거... 가족 지키는 것만큼, 자기 지키는 거, ...욜라 훌륭한 일이라는 거...
국 ...(물끄러미 재복을 본다.)
재복 ...난... 알아서 할게.
국 (재복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곤 자신의 깍지 낀 손을 본다.) 가족 지키면... 자기두 지켜지는데. 별루 안 어려운데, 그거...
재복 ...(물끄러미 국의 옆모습을 본다.) 원래... 세상엔... 고통 먹구 사는 삐구들이 있어. 그냥, 취향이니까, ...강국이 이해해.
멀리서 외투를 입은 중아가 온다.
중아 (국에게) 가자. (재복에게) 너두 빨리 가서 자. (그리곤 앞서 현관으로 간다.)
국 (일어선다. 그리곤 재복을 본다. 손을 내민다.)
재복 (국의 손을 잡는다.)
시연과 약수를 했던 그 손으로 재복의 손을 잡고 선 국.
두사람, 서로를 보며 슬픈 듯 옅은 미소를 보낸다.
15. 국의 승용차 안 (밤)
아무말 없이 앞만 보며 운전하는 국과 옆 차창만 바라보는 중아.
국 ...난 니가 시간이 필요하다구 생각해, 중아야.
중아 ...(국과 같은 톤으로) 난 니가 시간이 필요하다구 생각해, 국아.
국 ...말장난 하지 말자, 이중아.
중아 (다정하게) 니가 생각하는 가족은 니 그림이지, 우리의 그림은 아니다. ...이젠 내가 너한테 시간을 줄게. ...그리구 기다릴께. 니가 꿈 깰때까지...
중아의 시선으로 보이는 차창밖의 풍경. 어지러운 간판들과 네온들.
국의 시선으로 보이는 전경. 깊은 밤 차없이 쭉 뻗은 아스팔트.
차창에 반사된 중아의 얼굴과 어지러운 네온이 물처럼 흐르듯 거리.
F.O.
16. 시연의 집 (아침)
이삿짐을 나르는 인부들과 한켠에서 인부들에게 참견을 하는 시연모.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귤을 까먹는 펭귄 형제들.
시연모 (크리스탈 컵을 싸고 있는 인부에게) 아저씨. 그 크리스탈 그거 조심해야 돼요. 내가 아까와서 십년동안 딱 한 번 쓴거야.
시연 엄마. 그냥 일루 와서 귤이나 까드셔.
시연모 그래두 깨지는 건 주의를 줘야지.
시연 그럴거면, 표장이살 말든가...
시연모 그래두 인간이 하는 일에 실수 없니? (그리곤 다시 인상을 쓰며 주방을 간다.) 아저씨. 그 은수저... 셋트니까, 젓가락 흘려서 짝 안 맞으면, 나 돌아요.
시민 우리 엄만 웬 그릇이 저렇게 많어? 몇 트럭은 되겠다, 누나. 그지?
시연 글쎄, 예전부터 그릇만 보면 환장을 하드라? 막상 쓰는 그릇은 다 이빠진 그릇들이구... 저거 다 물갔어.
시경 누나들 시집갈때, 준다구 야금야금 샀다는데?
시해 아으, 줘두 안 가져. 썩었어, 그릇들.
시체 난 괜찮든데? 복고적이구? 꽃 많이 들어간 것두 좋구?
시연 참. 우리 꽃돌이 아빤 어디 가셨나?
시연모 (주방에서 나오며) 방에 처박혀서 인상긁구 있잖니.
시연 왜?
시연모 싫대. 자긴 여기가 좋대. ...시연이 니가 가서 좀 구슬러. 안 먹혀, 내말.
시연 아으, 왜 땡깡을 피워?
시연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낚시복장이다.)
시연모 이건 또 무슨 엽기야?
시연부 난 고기 잡으러 가. (그리곤 현관으로 나선다.)
시연모 그냥 가면 어뜩해? 이사갈 집 알구 가야지.
시연부 인연이 닿으면, 우리가 언젠가 만나겠지.
시연 아빠, 가출해?
시연부 응. (그리곤 나간다.)
시민 (일어서며 시연부를 쫓아 나간다.) 아빠. 가출정보는 나한테 물어봐야지. 내가 몇 번 해봐서 빠삭하잖아.
시연 (시연모에게) 안 잡어?
시연모 ...꼭 집단생활을 하면 초를 치는 인간들이 있어. ...근데... 그런 인간들일수록, 초친 주변에서 맴돌게 돼있지. 왜냐면... 궁금하거던. 지가 초를 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시연 왜 저렇게 싫대? 이사가는게?
시연모 원래 남자들은 추억의 인간들이라 그래. 과거형 동물들. (그리곤 다시 주방으로 가며) 아저씨. 그 목기는 기스 잘 나. 그거 부딪히겠네, 그렇게 쌌다간...
시연 (물끄러미 시경을 보며 볼을 톡톡친다.) 그럼 너두 과거형 인간이냐?
시경 (귤을 먹으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과거는 너무 짧아.
시연 (씩 웃으며) 에유, 쬐끄만게 말빨은...
시경 단지, 내 기억엔, ...재복이 형이 남아있지. (그리곤 무심하게 화장실로 간다.)
시연 (굳은 표정)
시채 (시해를 툭 치며 시연의 눈치를 본다.) 쟤 지금 폭탄 건드렸지?
시해 (속삭인다.) 애가 너무 영특해. 가끔 징그러.
시연 (물끄러미 앉아있다가 제 방으로 간다.)
17. 시연의 방 (아침)
어수선한 시연의 방.
시연, 침대밑에서 재복의 스크랩북과 왕관을 꺼낸다.
스크랩북을 펼쳐보는 시연.
잠시 미소가 어린다.
시연 그래봤자... 넌 그냥 내 기둥서방이야.
그리곤 소중하게 앨범을 가슴에 안는다.
18. 재복의 병실 (낮)
문 앞에 서서 입을 벌린채 망연히 서 있는 중아.
텅빈 병실.
침대 위엔 재복이 떠놓은 분홍목도리만 곱게 접혀져 있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어 재복의 버튼을 누른다.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휴대폰을 끊는다.
문가에서 침대를 향해 어려운 한걸음을 내딛는 중아.
한걸음을 내딛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마치 지난밤 인어공주 재복이처럼...
그렇게 넋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중아.
중아 ...(넋을 잃은 목소리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재복.
휑한 병실안.
19. 대학로 (낮)
그림을 그리는 재석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괸채 그림을 보는 국.
재석 (초상화를 그리며) 이렇게 사람 얼굴을 그리다 보면... 내가 부끄러워 져.
국 왜요?
재석 다른 사람 얼굴을 땀구멍 하나, 주름 하나 또렷이 짚어내는데... 내 얼굴은 거울을 봐두, 어뜩케 그려야 되는지 모르겠어. 단점두 모르겠구, 장점두 모르겠구... 그냥, 눈, 코, 입 달린 위치만 보여. 자화상 그리는 화가들, 그것들, 진짜 독한 것들이야. 어뜩해 제 얼굴을 알아보나 몰라.
국 목사님.
재석 그놈의 목사님.
국 왜 목사하다 마셨어요? 목사님은?
재석 남들이 자르기 전에 관뒀어.
국 잘릴 짓 하셨어요?
재석 ...입장차이지, 뭐.
국 무슨 짓 하셨는데요?
재석 누굴 좋아했어.
국 누구요?
재석 (힐끔 보며 인상을 쓴다.) 왜 캐물어?
국 불륜이구나?
재석 그래, 불륜이다.
국 (못마땅한 듯) 개나 소나 다 불륜.
재석 (인상을 쓰며) 내가 개냐, 소냐?
국 다 싫어요. ...인간이 참을 줄을 알아야지.
재석 ...(물끄러미 보다가 그림을 그린다.) 죽어라 참아두 안되니까, ...내가 널 맡아 키웠지.
국 (놀라서 재석을 본다.) 네?
재석 (그저 묵묵히 그림만 그린다.)
국 네? 목사님?
재석 ...(아무말도 않고 그저 그림만 그린다.)
국 ...(의아한 눈으로 재석을 보다가 조심스레) 우리 엄마, ...좋아하셨어요?
재석 (입을 꽉 닫는다.)
국 네?
재석 (그림만 그린다.)
국 (연필을 빼앗으며 재석의 팔을 잡아 흔든다. 인상을 쓰며) 말하세요, 빨랑.
재석 (인상을 쓰며 다시 연필을 뺏는다.) 아, 얘가 왜 이래? 왜 이렇게 보채냐, 오늘?
국 (인상을 쓰며) 말하라구요.
재석 아니야. (그리곤 인상을 쓰며 초상화를 그린다.)
국 ...근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재석 ...니 엄마 아니란 뜻이야. ...내가 좋아한 사람.
국 ...
재석 니 엄마가 좋아한 사람을 나두 좋아했지.
국 (의아한 눈으로 재석을 본다.)
재석 ...
국 ...아빠요?
재석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스케치만 한다.)
국 (얼어붙듯 재석을 바라본다.)
20. 부자집 골목길 (낮)
부자집 골목길을 헐떡대며 뛰어가는 중아.
21. 부자집 대문앞 (낮)
초인종을 누른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더니 대문을 쾅쾅 손으로 두드린다.
중아 아주머니. 아주머니. ...저, 이중아예요. 아니 이정아요.
부자 (문을 연다. 의아한 눈으로 중아를 본다.) 여기는 어뜩케...
중아 재복이 델구 가셨어요?
부자 (놀란 듯) 뭐?
중아 재복이요.
부자 재복이가 왜요?
중아 (물끄러미 부자를 본다.) 아직 치료 더 해야되요, 아주머니.
부자 알아요.
중아 ...(흔들리는 눈으로 부자를 본다.)
부자 ...
중아 ...(넋을 잃은 얼굴로) 재복이 주세요. 아주머니가 숨긴 것 같애요.
부자 (같은 눈빛으로) 아가씨.
그렇게 망연히 부자를 바라보고 서 있는 중아.
할말을 잃고 중아를 바라보는 부자.
22. 호텔 앞 횡단보도 (낮)
횡단보도 앞에 목발을 짚은채 작은 배낭을 매고 선 재복의 모습.
푸른 신호등.
보도를 건너려 횡단보도 위로 두세걸음을 옮기다가 넘어진다.
깜박이는 신호등.
목발을 잡고 바닥을 기어서 보도 위로 올라와 앉는 재복.
그리곤 신호등에 등을 댄채 담배를 꺼낸다.
담배를 입에 물곤 불도 켜지 않은채, 세운 목발기둥만 잡고 있다.
횡단보도를 오고가는 사람들.
말없이 그렇게 앉아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곳에 홀로 외로운 섬처럼 담배만 물고 앉아있다.
L.S.
23. 중아의 집-거실 (밤)
소파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중아.
거실 바닥에 놓여있는 분홍목도리를 멍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때, 거실 현관문을 열며 들어오는 국.
물끄러미 중아를 바라본다.
중아, 계속 목도리만 본다.
국, 말없이 중아를 바라보다가 침실로 가려는데...
중아 국아.
국 (돌아선다.) 응.
중아 목도리 니꺼야.
국 (목도리를 본다.)
중아 재복이가 너 주려구 만들었다.
국 (물끄러미 목도리만 바라본다.)
중아 ...재복이.
국 ...
중아 갔어.
국 ...
중아 내가 싫어서... 갔어. 내가 귀찮게 해서... 갔어. ..다친 다리루... 그냥 갔어. (국을 보며 힘없이) 좋겠다?
국 응.
중아 (허한 듯 다시 목도리를 본다. 그리곤 소파에서 내려와 목도리를 집어든다.) 해 볼래?
국 아니.
중아 (그냥 무심한 표정으로 목도리를 둘러준다.)
국 ...
중아 ...(물끄러미 목도리를 본다.) 뜨개질두 잘하구, ...먹구 사는데는 지장 없겠다, 이재복.
국 (중아를 와락 안는다. 그리곤 눈물이 흐른다.)
중아 (당황한 듯 국의 품에 안겨있다.)
국 날 좀 도와줘, 중아야.
중아 ...
국 도와줘.
중아 ...
국 ...도와줘.
중아 국아.
국 그냥 도와줘.
중아 ...
국 그냥...
중아 (국의 등을 어루만진다.)
국 ...무조건 도와 줘.
중아 (국의 품에서 떨어지며 국의 눈물을 닦아준다. 마치 길잃은 강아지를 대하듯) 도와 줄게, 국아. ...도와 줄게. 내가...할 수 있는 만큼만...
국 (눈물어린 눈으로 중아를 본다.)
중아 (국의 눈물을 두 손으로 정성껏 닦아준다.) 이렇게 도와주면 되나?
국 (고개를 끄덕)
중아 (어둡게) 알았다.
국 옆에만 있어라, 중아야. ...혼자가 싫다.
중아 ...(흔들리는 눈으로 어렵게) 알았다.
국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중아를 본다.)
중아 (국의 목도리를 슬픈 듯 한참동안 바라본다. 풀어낸다. 그리곤 소중히 접어 한 팔로 가슴에 안는다. 그리곤 한 손으로 국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여전히 어둡게) 알았다, 국아.
중아의 가슴 위에 소중히 감싸안은 분홍색 목도리. C.U.
마치 재복을 놓을 수 없듯 목도리를 부여잡는 중아의 손. 캡쳐. (시간경과 의미)
이후, 삼개월 뒤쯤으로 설정.
감독E 컷. 엔지. (다음씬 소리 선행)
24. 방송국 셋트장 (낮)
(시연은 헤어스타일에 다소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롤셋팅 같은 걸루 웨이브를 주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시연. 상기된 표정이다.
스탭들이 지친 듯 서 있고 감독도 포기한 듯 카메라 옆에 앉아있다.
감독 (스크립터에게) 지금 몇 번 갔어?
스크립터 아홉 번이요.
감독 (지친듯) 한시연씨, 대본 안 외어요?
시연 ...(긴장한 듯) 외웠는데, 자꾸 혀가 꼬여서...
감독 (대본을 뒤적여 보며 고민을 하더니 촬영 감독에게) 그냥 가자. 대사 없애구 반응샷만 따지, 뭐. 없어두 될 것 같애, 이 대사는...
촬영감독 그러죠, 뭐.
조감독 셋트 이동합니다.
감독 (조감독에게) 작가한테 전화 좀 해 봐. 상의 좀 하자구...
조감독 네. 감독님.
연기자들과 스탭들이 하나 둘 촬영장에서 벗어난다.
낮게 한숨을 쉬며 스탭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연.
조명팀들이 조명을 정리한다.
조명이 꺼져가는 셋트 위에서 외롭게 서 있는 시연의 모습.
25. 경호학과 교수실 (낮)
노크소리.
책상 앞의 교수가 고개를 든다.
교수 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국. (국의 머리를 컷팅하기 바람. 이마가 드러나면 좋을 듯)
국 (미소지으며)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 (반갑게 국을 맞으며 악수를 한다.) 오랜만이야, 강국. (등을 두드리며) 내 애제자. 앉어.
국 네. (자리에 앉는다.)
교수 커피 할래?
국 네.
교수 (한켠의 테이블로 가서는) 다방커피다?
국 네. (벌떡 일어서서 교수 옆으로 간다.) 제가 탈게요, 교수님.
교수 아니야아. 있어.
국 아닙니다.
교수 그럼 같이 타자. 너 먹을 건 니가 타구, 나 먹을 건 내가 타구.
국 (미소) 네.
교수 (커피를 타며) 왜 보자 그랬는지는 알지?
국 네.
교수 강사하다가... 내 뒤이어. 니가...
국 ...머리가 나빠져서, 학생들 가르치기 힘들어요, 교수님.
교수 난 아이큐가 백두 안돼. 그래두 학과장 하잖아. ...걱정말구 와. 그냥 방송국 경비만 세우긴 아깝지이.
국 (미소)
(국과 시연의 헤어만 변화를 주고 중아와 재복은 그대로 두어도 좋습니다.)
26. 부부의원 수술실 (낮)
수술실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중아.
동석 아, 참. 들어오지 말라니까 그러네. 어뜩케 입덧할 시기엔 줄창 퍼먹드니, 거꾸로야? 연구대상이야, 이중아. 인체의 신비. 석션.
중아 (석션기를 든 순간, 바닥으로 쓰러진다.)
동석 (놀라서는) 이중아.
피투성이 바닥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은 중아.
27. 방송국 앞 (낮)
우울한 표정으로 방송국 앞에 서 있는 시연.
이때, 시연 앞에 승용차가 선다. 경적을 울린다.
승용차 차창을 내리는 국. 시연을 향해 미소짓는다.
시연, 방긋 웃으며 국의 승용차 조수석에 오른다.
28. 부부의원 다른 수술실 (낮)
중아가 눈을 뜨면 수술실 조명이 눈 앞에 켜진다.
수술실 베드 위에 누워있는 중아.
깜짝 놀라서 몸을 일으킨다.
이때, 병란이 들어온다.
중아 저 수술받아요?
병란 노선생이 너 수술실 못 들어오게 겁준다구, 여기다 올려놨잖니.
중아 사이코야, 노선생님.
병란 과로에 빈혈. 니 병명. ...너 왜 그러니? 임산부가? 너는 수술실에서 하잘 것 없는 존재야. 니가 뭐라구 그렇게 수술실을 지키니? 지구 지키듯이?
중아 그냥... 다른 건 재미없어요. 수술말고는...
병란 언젠 재미있었니?
중아 네. (살포시 미소) 언제는... 재밌었어요.
병란 (인상을 쓰며) 애 생각이나 해. (그러면서 나간다.)
중아 (자신의 배를 만지며) 내 마음... 이해해라, 아가. 재미없다.
29. 도로 (낮)
횡단보도.
녹색 신호등이 점멸한다.
횡단보도 앞으로 내려서는 중아.
그러다 다시 제자리로 올라선다.
이내 신호등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오고가는 차들.
중아, 괜시리 붉은 신호등임에도 한 발을 횡단보도로 옮기려 한다.
그러다 멀리 모터사이클 소리를 듣는다.
놀라서 내밀었던 발을 뒤로 뺀다.
헬맷을 쓴 남자의 스쿠터가 중아 곁을 빠른 속도로 스친다. (100CC급 스쿠터. 손으로 할 수 있는 기어변속 기종 중에서, 느낌이 좋은 걸로... 너무 작은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중아, 스쿠터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다 신호등을 본다.
녹색등.
걸음을 내딛는 중아.
30. 세차장 앞 (낮)
스쿠터가 멈춰선다.
헬멧을 벗으면 재복이다.
스쿠터에서 내려서는 재복.
쇠기둥박힌 듯 무거운 한 다리를 바닥에 끌며 세차장 안으로 걸어간다.
31. 도로 (낮)
미소를 지으며 차창밖을 바라보는 시연.
굳은 듯 얼어붙은 시연의 얼굴.
시연의 시점으로 세차장 안으로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재복의 모습.
놀라서 벌어진 입. 무너지듯 아련한 눈으로 재복을 바라보는 시연.
포즈.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