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잠이 없는 편인데 선생님글이 벌써(14일 것)올려 져있네요
참 저하곤 달리 삶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고 음미하시며 생활하시는 것같아 부럽습니다
비추어 저를 볼 때 너무 마구잡이로 사는 것 같아 느끼게 하는 것이 적지 않답니다.
그냥 저 같은 마구잡이 사고 방식도 있답니다.
물론 엉터리지만 이게 제 한계이니 한번 들어보세요.
지난 동안 직장생활을 할 때 이야깁니다.
어떤 처녀 아이들은 향수를 곧 잘쓰더라구요
처음 그가 스쳐 지날 때 풍기는 향은 참 상큼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차차 그것 이 진해져 가더니
결국은 너무 진해 역겨운 냄새로 까지 발전 되더라구요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엷은 향에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농도가 짙어질 뿐이었던 것입니다.
타인을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향에 빠져 버리는 거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죄를 져서 자유를 구속 당하고 고생하는 사람일까요?
아니 지요
그 사람은 자기가 한 짓에 대한 열매를 수확하는 것일 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문명이 발달돼서 아무리 바보 같다해도 부지런 하기만 하면 입에 풀칠 할 정도는 됩니다.
불행을 느끼는 사람?
아니지요.
행복은 간단하게 분모가 욕망이고 분수가 현실이란 수치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두 변수를 잘 조절하면 그럭 저럭 별 불만 없이 지낼수가 있답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죄를 진 적도 없고, 부지런도 했고, 행복하다고도 느꼈는 데 그것이 죄가 되는 사람입니다..
--------------------------------------------------------
글쎄요
어린왕자님께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 좀 수준이 아래라 그러겠지만.
이 글을 읽고나서 되래 불필요하고도 혼란스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면 어떻게 설명이 될수 있을까요?
전 그냥 아침이면 행복한 기분으로 출발하는데
이런 글을 읽고 보면 정말 내가 행복한가?
아닌가?
의구심이 생겨,
일단 현상을 파악해야하고 또 분석을 해서 저자신에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설득을 시키고 안되면 구걸이라도 해야 처음 기분인 본전을 겨우겨우 찾을수 있을 것 같답니다..
저는 요,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뜨거운 물에 손을 담것을 땐 그냥 뜨거우니까 얼른 빼냅니다. 그 물이 섭씨 몇도 인지 관찰하고 생각해서 빼는 것을 모르고 지내도 그냥 대충 생활이 되더랍니다. 매우 원시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게으른 형태지만 그게 편하더라구요.
논리와 분석의 필요성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학교다닐땐 쉽게 피다고라스 정리에서부터 미적분까지 수리적이고 조금의 오차가 있어서는 않되는 그런 수학을 어렵게 배운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얼마나 이용되나요?
직삼각형의 두변 길이를 알고 나서 빗변의 길이가 궁금하다면 어쩌나요?
제곱,제곱에 루트를 씌우고 해서 어렵게 풀어서 알아내나요?
저의 경우엔 그냥 자로 한번더 그냥 빗변을 재고 맙니다.
면적이 얼만지 궁금한가요?
그냥 등기소가서 등기부등본 띄어보면 되더라구요.
갑자기 톨스토이의 인생론 첫 부분이 생각나네요
아무 문제 없이 방앗간을 잘 하던 사람이 그것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하다 망해버리는 장면 입니다.
--------------------------------------------------------------------
정말은 이것 보다도 더 중요한게 있는 것 같답니다
이 글로 예를 들어 봐도 되겠지요.
이 세상엔 이 글을 읽기 전의 상태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고 아니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불행한 기분에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될수가 있겠지요,
왜 냐면 그는 이렇게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지않고 그냥 혼란 중에 있었을 테니요.
반면 행복한 기분에 있는 사람에겐 혼란을 줄수가 있지요. 자기의 행복한 기분을 제시된 과정으로 검증받으려 할것이니까요.
약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만 먹으면 됩니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다 먹이면 공연히 오랜만에 비싼 외식하고 나온 사람 입맛만 버리게 되는경우도 있답니다.
그러니 어쩔수 없이 자기 처신에 대한 상대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게 사회적동물입니다.
저 역시 그런게 싫어서 이 산속에서 적지 않은 나이에 청바지 에 작업복 걸치고 망치질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을 가질수 있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때론 정말 내가 전지전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도 내 보지만 , 이미 제 능력이 미미한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냥 순한 척하고 같이 어울려 살기로 했답니다.
저희 집위에 절이 하나 있답니다.
하는 걸 보면 꼭 땡촌데
그래도 대승불교인척 하나 봐요. ----- 이거 하난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이더군요.
얌체 같지만 내일 아침엔 향기만 나고 사색하지 않아도 되는 글 읽어보면 않되나요?
저는 요 思索.을 하면 얼굴이 死色 이 되는 경향이 있나봐요.
두서 없이 죄송합니다.
저녁에 늦게 까지 소주먹고 들어와서 (읽어볼 자격도 없는 사람이 읽어보고 )눈을 비비며 쓴 글인데다
워낙 글 솜씨가 없어서 ---------- 혹 결례가 되었다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글 계속 혜택 입을수 있기 기대 합니다.
김 광 남 드림.
--------------------- [원본 메세지] ---------------------
좀 늦은 시간에 산에 올랐습니다.
밑에서 보는 산은 아직 검은 빛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상에서 산을 내려다 보니
어느새 연초록으로 색칠돼 있는 아름다운 수채화 그 자체입니다.
세상은, 삶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컵을 밑에서 보면 둥근 원만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담겨있는 내용물이 보이듯이
산은 정상에서 내려다 보아야 아름답고,
사람은, 삶은 그 만큼의 날들을 살아 볼 수록
서로 알게되고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산은 우리에게 그런 순리를 깨우쳐 주려고
험한 경사를 만들어 놓고 오르라 합니다.
아직 산에는 벚곷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도로변에 질서 정연하게 피어잇는 벗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산재되어 있는 벚꽃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순리를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의 마을에만 있으면
사람들과의 부대낌으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여유를 잃고 살게 됩니다.
하지만 산길을 걷노라면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 합니다.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내려 가노라니 벼랑이 나오고 길이 끊겨집니다.
문득 이 구절이 생각납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개워라>란 책에 나온 대목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간다."
하니발이 로마를 침공할 때 길이 끊기자 한 얘기라죠 아마...
등산을 가장 안전하게 하는 방법은 사람이 많이 다닌 길로 다니면 됩니다.
하지만 어제처럼 길을 잘못들게 되면
꽤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서 다른 길로 간다는 건 싫증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찾으며 내려 갑니다.
어느 길이든지 처음엔 한 사람이 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길이나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이란 말과 1등이란 말이 가치있게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한번 가면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늘 남이 먼저 간 길로 가며 평안을 희구한다는건 진부한 삶이 되고 맙니다.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에
처음으로 내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마음의 상쾌함이
우리에게 뿌듯함과 미소를 가져다 주듯이
조금은 위험이 따르더라도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자가 되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들 사이로 난 길만을 갈 것이 아니라
나에게 사색을 가져다 줄 수 있고,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므로
누구를 대하든 편안한 미소를 건넬 수 있는 나를 위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산길 닮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