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2월 1일,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이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주식시장이 출렁이자, 재경부가 서둘러 “현재로선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진화에 나선 일이 있다. 그만큼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방안은 '뜨거운 감자'로서 누군가 선뜻 나서서 주장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지겹게 들어왔던 '게이트'와 재벌들의 변칙증여 문제가 모두 주식을 이용한 불법행위라는 점에서,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방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각되었다. 아무리 '뜨거운 감자'라 할지라도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는 법, 이제 참여연대가 '총대를 메고' 이 문제를 적극 공론화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의 당위성에 대하여 논할 것이고, 두번째 글에서는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과연 주식시장에 큰 충격이 되는지,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도입할 방안은 없는지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사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 하나만 갖고도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의 당위성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론은 주식시장의 혼란을 그 이유로 내세운 '시기상조론' 앞에 현실을 모르는 공자님 말씀 정도로 치부되어 번번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서글픈(?) 현실을 잘 아는지라 너무도 당연하여 촌스럽기까지 한 원칙론은 더 이상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심각한 현실적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과세의 현실적인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금융시장이 투명하지 않아 권력형 비리와 탈세가 판치는 세상
'게이트'는 현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런데, 작금의 이 '게이트'는 과거의 권력형 비리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권력형 비리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 재벌과 사과박스이다. 즉, 로비의 주체는 주로 재벌이고 로비의 수단은 사과박스에 넣은 현금이었다. 반면, '게이트' 하면 떠오르는 상징은 벤처와 주식이다. 로비의 주체는 벤처기업이고 로비의 수단은 주로 주식이기 때문이다.
정현준 게이트의 경우,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자살한 전 금감원 국장 정래찬씨였다. 정씨는 동방금고 사장 유조웅씨의 배려로 평창정보통신의 주식 23,000주를 헐값에 매입하여 단기간에 6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챙겼다. 사과박스에 현금 6억원을 넣어 주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세련된 범죄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다수의 정관계 인사가 가입했을 것으로 추측된 5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사설펀드였다. 만약, 사설펀드 가입자와 그 거래내역이 밝혀졌다면, 주식투자를 빌미로 사실상 로비가 이루어졌음이 입증되고 아마 여러 사람이 다쳤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흐지부지---.
이용호 게이트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용호는 김영준과 더불어 비즈니스플러스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주)삼애인더스의 주가조작을 통해 단기간에 154억원을 챙겼다. 주가조작을 가능케했던 재료는 보물인양사업. 이를 위해 청와대 인사와 국정원, 대통령 친인척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이들이 아무런 대가없이 그냥 움직일리는 없다. 그래서, 여운환씨에게 넘어간 20억원의 로비자금 출처에 비추어, '로비용 펀드'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깜깜 무소식. 다만, 경찰청의 허 총경이 삼애인더스에 차명으로 8천만원을 투자했다느니, 김영준씨가 코스닥기업에 차명으로 투자하여 9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느니 하는 잔가지 몇 개만 쳤을 뿐이다.
주식투자 사설펀드에 대하여 조사해봤자 도대체 결과라고 나오는게 없으니, 왜 그럴까? 검찰의 수사의지 부족. 물론, 정답이다. 아니, 이는 결과가 마음에 안든 모든 사건에 대하여 다 정답일 수 있다. 이러한 공자님 말씀같은 일반적인 정답만 갖고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윤태식 게이트의 경우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밝혀진 것이 상대적으로 많다. 경제신문사 사장, 청와대 경호관, 경찰청 형사, 언론사 간부 등등이 수백주에서 수만주의 패스21 주식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윤태식 게이트의 경우에만 수사의지가 있었고 다른 게이트에서는 없었다는 것인가?
그 비밀은 세금에 있다. 패스21은 비상장회사이다. 비상장회사의 경우 매년 법인세를 신고할 때 모든 주주의 주식보유현황과 주식이동현황이 기록된 '주주 이동상황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 비상장주식의 거래로 인한 시세차익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하기 위해서이다. 즉, 비상장회사 주주에 대하여는 세금을 걷기 위해 주주현황과 이동상황을 국세청이 철저히 관리하게 되므로, 비상장주식을 뇌물로 주거나 부당한 거래를 통하여 로비를 할 경우 파악하기가 그만큼 용이하다는 것이다.
반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이나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세금이 없다(세금이 없다는 것은 소득세가 없다는 것이지 증권거래세는 모든 주식에 다 붙는다). 그래서 상장회사는 법인세 신고시 대주주(여기서 대주주라 함은 세법상 소액주주이외의 주주를 의미한다.)에 대하여만 주주 이동상황명세서를 제출하면 된다. 그러니, 대주주에 해당되지 않도록 차명계좌를 잘 이용하면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거액을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장(등록)주식에 투자한 사설펀드는 블랙박스가 될 수 밖에 없다.
비상장주식도 차명을 이용한다면 상장주식과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않은가? 이론적으로는 맞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주식을 사려고 하니 이름을 빌리자고 부탁한다고 하자. 그때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무얼까? 세금이다. 즉, 상대방이 자신에게 세금만 물려놓고 책임을 안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그런데, 상장주식을 거래할 경우 아무리 거액을 벌더라도 소득세가 없으며, 증권거래세는 주식양도시 아예 거래금액에서 떼 버리니 걱정할게 없다. 그리고 대주주가 아닌 다음에야 국세청에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 경우 이름 빌려준다고 크게 손해나는게 없으니, 선심쓰는 셈 치고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상장주식은 안 그렇다. 세금 문제가 걸려 있고 국세청이 보고 있으니 형제간이라도 명의를 빌려주기가 그다지 쉬운게 아니다.
권력형 비리가 생기면 언론이고 뭐고 다 들고 나와 일단은 비리 연루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이러한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점잖게 한마디하고 끝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나서 몇 년 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비리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란 과연 무엇일까? 권력자의 친인척 관리를 잘해야 하고, 특별검사제를 만들고 ---. 이거 다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근본적인 방법은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리는 돈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 돈은 어딘가로 부터 나와 어딘가로 들어간다. 그 흐름만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 적발할 수 있다. 언젠가 적발되는 비리를 저지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 적발되는 탈세를 저지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금융실명법과 금융소득종합과세 실시로 부족하나마 은행권은 투명성 확보에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문제다. 은행이 투명하면 무슨 소용인가? 주식시장에 한번 들어갔다 오면 그 흐름이 끊기는데---. 그래서, 필자는 상장(등록)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하여도 소득세를 과세하고, 그 이동상황을 국세청이 인별로 관리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2) 착실한 월급쟁이도 열받고, 부자도 열받고, 법인도 열받는 세상. 한마디로 모두가 열받는 세상 사람들은 단지 가난하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남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단지 세금을 많이 낸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남보다 많이 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처럼 '형평성의 문제'는 단순한 원론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국민들이 세제세정에 형평성이 없다고 생각할 때, 세금 내는 것에 화가 나고 결국은 탈세하는 것이 나쁘다는 인식 조차 못하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국가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 2001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1998년과 2000년 사이의 도시가구 소득 변화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가구의 12.3%가 소득급감 가구로 분류되었고 3%는 소득급증 가구로 분류되었다. 소득급감 가구는 1998년 대비 2000년 소득이 42.1% 줄어든 반면, 소득급증 가구는 반대로 534% 증가하였다. 또한, 소득급증 가구의 소득증가요인은 금융소득이 497배 증가한데 있으며, 금융소득의 증가는 엄청난 주식투자이익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전반적으로 중하층의 비중이 증가하는 가운데서도 '주식대박'에 의해 소득이 급증한 가구가 눈에 띄게 늘어나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월급쟁이들이 '땀흘려 일한 대가인 근로소득에 대하여도 세금을 거두는데, 주식투자로 돈 번 것에 대하여는 왜 세금을 걷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할 말이 있는가? 사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착실히 살아온 월급쟁이들이 열받게 된다.
열받는 것은 월급쟁이뿐만이 아니다. 부자들도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열받는다. 지난 3월 20일, 전경련은 '대주주 규제실태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과세하지 않으면서 유독 대주주에 대하여만 과세하는 것은 차별적 과세라며 주장하고 나섰다. '이 나라는 부자인게 죄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주식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안내는 세금을 왜 내야 하는가?' 이게 그들의 불만인 것이다.
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열받는다. 개인의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는 비과세하면서 법인의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과세하기 때문이다(상장주식 양도차익이 법인의 과세표준에 포함되어 법인세가 과세됨). '왜 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가?' 화가 난 일부 법인들은 사실상 법인 자신이 주식투자를 하면서도 명의는 임직원 개인명의로 투자를 하는 변칙거래 마저 서슴치 않게 된다.
원칙을 무시한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가 이처럼 서민과 부자, 법인등 모든 경제활동의 주체로 부터 형평성에 관하여 불만을 사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없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원칙을 회복하면 된다. (3) 재벌의 변칙증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
우리나라 재벌들은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 세법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변칙증여에 자주 이용한 바 있다. 재벌2,3세가 상장 직전에 있는 계열사의 비상장주식을 헐값에 사들인다. 비록 헐값이지만 회계장부에 의한 평가액을 기준으로 보면 적정가격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후 상장되어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게 되면 이를 팔아치워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 예를 보자. 95년 삼성그룹의 이재용은 계열사인 (주)에스원 주식 12만1천8백주를 23억원에 매입하였다. 매입 직후인 96년 1월에 에스원의 주식은 상장되었고, 주식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30만원대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이재용은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하여 약35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그런데도, 이재용은 증권거래세외에 어떠한 세금도 납부한 바 없다. 자기 힘으로 한푼도 벌어본 적이 없는 학생이 주식을 이용하여 수조원의 재산을 불려도 세금 한푼 못 걷는 우리나라, 과연 재벌의 변칙증여의 자유가 보장된 재벌의 천국이다. 이에 대하여, 대주주에 대하여는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차명으로 거래할 경우 이를 어떻게 적발하여 어떻게 막을 것인가?
(4) 투기의 나라
각종 언론에서 우리나라 주식투자 문화에 대하여 비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외국에 비하여 단기적인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가 단기투자 선호 문화에 일조를 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즉,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과세를 하면서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은행권 보다 주식시장에 자금이 더 몰리게 할 뿐 아니라, 배당을 목적으로 한 주식투자가 아니라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적인 주식투자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당신 말은 이해하겠는데, 현실이 문제야. 주식시장 망하면 당신이 책임질테야?' 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현재, OECD회원국은 30개국이다. 이중에서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7개국 정도이다. 선진국인 OECD회원국의 대다수가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과세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 주식시장 몰락'의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좋다. 다음 글에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과연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하여 과세하면 주식시장이 망하게 되는지, 또 주식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도입하는 방안은 없는지에 대하여 논하겠다.
<편집자주> 조세일보와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이 공동기획으로 '공평과세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제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칼럼은 주 1회 게재되며 참여연대 사이트(www.peoplepower21.org) 조세/예산감시코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